의사 수는 몇 명이 적당한가?
학생시절, 의료사회학에서 의사와 같은 전문직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고 배웠습니다. '만들어진 병상은 이내 채워진다’는 뜻으로 Built beds are filled beds 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따라서 늘지만 의료는 공급이 늘면 수요를 창출해 버린다, 그러므로 의료서비스 공급은 (국가가) 제한해야 한다. 그냥 두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해 내어서 사회적 비용이 자꾸 커지기 때문에”라는 요지의 의료사회학 이론입니다. 즉, 의사 수가 늘어날수록 의료비 지출은 늘어나기만 하므로 의사 수를 정부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의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오류는, 원인과 결과를 잘못 파악했습니다. 수요가 존재하는 곳에 공급이 창출되는 것이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식의 예외적인 법칙은 없습니다. 과거에는 부족했던 (그래서 비싸서 접근이 어려웠던) 공급이 늘어나면서 그 서비스에 보다 (싼 가격으로) 쉽게 접근 가능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숨겨졌던 수요가 드러났을 뿐입니다. 여전히 수요가 충분히 만족되지 못했기 때문에 공급이 창출될 수 있고 마치 공급이 수요를 이끌어 내는듯하게 보일 뿐입니다. 의료 서비스가 생명을 다룬다고 해도 경제학적으로 특별하지 않습니다.
둘째 오류는, 공급 증가와 수요 증가를 부정적으로 (마치 쓸데 없는 돈을 쓴 것처럼) 평가하는 점입니다. 공급이 증가하는 현상을 통해 소비자의 편익이 증가하므로 이는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닙니다. 소비자의 편익이 증가한다면 (시장에서 결정되는) 의료비의 증가는 긍정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제가 마취과 의사이므로 제 분야의 예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과거에는 폐쇄공포증이 있는 환자는 억지로 참고 MRI를 찍거나 아니면 촬영을 포기해야 했지요. 하지만 요즘은 늘어난 마취과 의사들이 이런 분들을 외래에서 수면 마취하고 생체징후를 감시합니다. 덜 긴장한 상태로 비교적 편하게 촬영을 마치고 깨어납니다. 마취과 의사가 감시하는 만큼 보다 안전합니다. 돈을 더 쓰는 건 사실이지만 환자의 편익은 증가하였으니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이 현상을 보고 “마취과 의사 많이 만들어 놨더니 지들이 먹고 살려고, 예전에는 그냥 찍던 MRI 촬영을 (불필요하게) 재워서 찍는구나, 면허 가진 도둑놈들이네” 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는 장시간 촬영이나 방사선 치료 또는 공포스런 치과치료를 받을 생각조차 못했던 환자들(어린이들, 지적 장애인들 포함)이 성공적으로 치료받고 있습니다. 늘어난 의사의 수(공급)가 불필요한 의료서비스(수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는 (경제적 이유 혹은 의료기술의 미비함 때문에) 숨겨져 있던 의료적 필요를 채우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만약 숨겨진 의료적 수요를 다 채우고 나면, 그 이상으로 의사 수나 병원의 수(공급)가 증가 한다고 해도 환자들의 수요가 더 늘어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럼 어느 정도의 의사 수가 적당한가? 그건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심근경색을 치료하는 혁신적인 방법이 새로 등장했다면, 특정 분야에서는 더 필요할 수도 있고, 인구분포가 달라지고, 인공지능이 의사의 역할을 대체하면서 어떤 분야에서는 더 적게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스탈린이 소련의 유리 공장 근로자의 수를 예측할 수 없듯이 오늘날의 정부도 의사의 수가 얼마나 적정한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소비자의 최대 편익을 생각한다면 의사의 숫자는 시장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입니다.
시장이 주는 면허증
이제 반론이 생깁니다. 시장이 의사의 숫자를 결정하도록 한다면, '면허는 누가 발급할 것인가, 의사가 되고 싶은 누구나 쉽게 의사가 될 것 아닌가, 자격 없는 사람들이 잘못된 의학적 행위들을 할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생깁니다. 쉽게 말해 돌팔이들이 넘쳐날지도 모른다는 우려지요. 하지만 자유로운 시장에는 의사로서의 자격을 검증할 새로운 도구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먼저 의료서비스의 소비자들인 환자와 그 보호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현재에도 환자들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전에 병원을 방문하여 이 의사가 어느 대학을 졸업했고 어느 병원에서 수련 받았는지 살펴봅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어느 병원에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받았는지 물어봅니다. 인터넷에는 동종 병원과 의사들을 평가하는 카페의 글이 넘쳐납니다. 이런 경향은 정부가 면허와 의과대학 정원수를 이용해 의사 수를 제한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평가를 해주는 권위 있는 의사단체 또는 소비자 단체가 등장할 것입니다. 어떤 환자가 현대의학의 혜택을 받고자 결심한 이상 돌팔이를 찾아갈 가능성은 낮습니다.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어느 의사가 자격이 있는지 평가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욕구가 있는 곳에는 항상 공급이 따라옵니다. 미국의 소비자 단체들이 자동차의 성능과 안전을 비교하듯이 공신력 있는 단체가 생겨서 적절한 자격을 가진 의사들을 구분해 낼 것입니다.
의사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실력과 평판을 관리하게 됩니다. 믿을만한 교수진과 교육 재원을 가진 의과대학들이 모여서 평가 단체를 만들어 각 의대졸업생이 과연 자격을 갖추었는지 평가할 것이고, 자신들이 인정한 의사들은 믿을 만하다고 대외적으로 자격증(면허증을 대신할)을 발행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의사 단체는 반드시 하나일 필요는 없습니다. 미국에는 대입 시험이 SAT와 ATC가 존재합니다. 두 가지 모두 정부가 시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학생도 두 가지 중 택일, 또는 둘 다 시험 볼 수 있고, 학생을 평가하는 대학도 둘 중 하나 또는 한쪽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면허증을 정부가 발행하지 않아도 민간 시장에서는 경쟁 체제 아래에서 그 자격을 평가하는 단체가 서로 경쟁하며 환자들의 치료에 합당한 의사를 선택할 수 있게 도움을 줍니다.
의사의 자격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의료보험 회사에 의해서도 이루어집니다.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각종 중증 질환에 대해, 환자들이 직접 관련 전문의들을 평가하고 선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의료기관의 능력을 평가하는 민간 회사가 그런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도 있겠습니다만, 환자들이 가입한 보험회사들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그런 평가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보험회사들은 가맹 병원이 행하는 의료 서비스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평가해서 보험금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병원을 추천해 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의료보험에 가입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자유 시장을 가진 사회에서는 의료 보험은 (정부) 혼자 독점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민간 보험 회사들이 의료 보험 시장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니 환자의 선택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어느 병원 어느 의사가 실력이 있는지 열심히 조사하고 평가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개원하거나 취업하기 위해서는 의료 행위에 대한 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보험 회사는 그 의사가 졸업한 학교, 수련한 병원, 이전 근무 경력 등을 살펴봅니다. 만약 문제가 발견되면 보험회사는 의사의 보험 가입을 거부할 것입니다. 물론 의사도 보험 회사를 거부하고 진료할 수는 있겠지만, 소송에 대한 리스크를 크게 짊어져야겠지요. 이런 방식은 자유 시장이 면허증 못지않은 역할을 하는 살아있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정부가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의사면허증이 없어진다고 해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의료 사고가 생기는 경우는 어떨까요? 그런 경우에는 민사상의 손해 배상을 통해 그 정당성을 다투도록 하면 될 일입니다. 면허가 없었다고 하더라고 서로 합의에 의해 시작한 의료 시술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면 시술자는 자신의 충분한 자격을 가진 상태이며, 자신의 행위가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검증된 의료행위였음을 증명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 굳이 정부가 발행한 면허증이 아니라 공신력을 가진 기관의 자격증은 과거 면허증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비과학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찾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면허제도를 국가가 독점하고, 무자격 의료인을 형사 처벌하는 상황에서도 무자격 시술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면허제도를 통해 얻는 편익은 자유 시장이 제공하는 장점에 비해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가가 발행한 한의사 면허증은 비과학적 의료 시술을 국가가 오히려 인정하고 권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국가의 면허증이라는 것이 환자의 안전을 해치는 행위를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과학적 검증이 안된 약물과 의료 행위가 면허라는 이름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오히려 자유 시장에서는 국가의 보호가 없기 때문에 비과학적 시술을 하려고 해도 환자로부터의 민사 소송이 걱정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면허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이비 의료인들은 점점 그 활동이 위축될 것입니다.
왜 시장에 맡겨야 하나? 시장으로 가야만 정부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어
대학 입시에서 의과대학은 매우 인기 있는 전공이지만 실제 의사들의 직업적인 만족도는 저조한 편입니다. 의사들의 불만은 경제적 성공 가능성이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전문직으로서의 독립성이 훼손되었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은 면허증을 받고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동시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됩니다. 의료 수가는 자기 뜻대로 정할 수 없고 보험 회사와 협상을 할 수도 없습니다. 보험 회사를 거치지 않고 환자와 의료 서비스 가격을 직접 합의할 수도 없습니다. 정부에 의한 의료수가 통제 때문에 의료 시장에서는 가격이라는 지표가 작동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온갖 의료 자원의 부적절한 분배와 왜곡된 인센티브가 발생합니다. 뿐만 아니라 의학적 판단은 의학 논문이나 교과서가 아니라 심평원이 정한 고시에 의해 판단되어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면 청구금액은 삭감될 뿐 아니라 감사를 받게 됩니다. 즉, 의사들은 과학적 객관적 지식에 의해 자신의 의료 행위를 정당화 하거나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정부 관료와 사회주의 의료제도의 지시에 순응하는 노예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의사들이 자신들을 의노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혹자는 의료 수가를 정상화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수가 인상은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1,500원이 정상일지 10만원이 정상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1,500원 본인부담금이 의료시장을 왜곡한 것처럼 10만원으로 정해진다고 해도, 정부에 의해 강제로 정해지는 의료수가는 다른 종류의 왜곡된 인센티브를 만들 뿐입니다. 또한 외래 진료비가 만원에서 10만원이 되면 2분 진료하던 것을 20분 진료할까요? 그냥 10만원 받으면서도 2분 진료하고 하루에 100명을 보는 서비스가 지속되지 않겠습니까? 의료 수가의 정상화는 당연하고 옳은 일이지만 그 정상화의 기준은 시장에서 정해지는 가격이 되어야 합니다. (자비심이 많은 누군가는 의료시장이 민영화 되면 가난한 사람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의료 혜택을 받게 해주는 방법은 그들에게 의료비를 제공해주면 해결됩니다. 의료 수가를 강제적으로 낮추는 것은 바른 방법이 못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자유로운 시장은 가난한 계층에게 더 효과적인 의료서비스를 더욱 저렴한 방법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도 주장하고 싶습니다.)
의사들이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일차적으로 정부의 강제적인 요양기관 지정과 국민건강보험 공단의 독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 독점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정부는 의사들에게 면허를 내놓으라고 할 것입니다. 면허제 아래에서 정부의 보호를 받으므로 당연히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업적 양심과 사유 자유권을 찾기 위해 투쟁한다면, 면허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를 선택할 것인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냥 단순히 의료 수가를 인상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면 이런 고민스런 결정을 할 필요는 없지만 여전히 노예로 살아야 합니다.)
자유주의 사상이 등장한 이후로 국가간의 무역에서부터 복지제도까지 국가의 개입이 작으면 작을수록 시장은 번영하고 개인들은 더 큰 편익을 얻게 된다는 것은 이미 입증이 끝난 이야기입니다. 의료 시장도 다른 분야와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어느 한 순간 면허제가 사라지고 자유 시장 시스템이 등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분제가 사라졌듯이 면허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의사들을 보호하는 대신, 가격을 통제하는 현재의 방식은 언젠가는 자유로운 시장 거래로 대체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 시장으로 가면 의료 시장은 번영을 얻고 가난한 환자들도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의료는 그저 싸기만 한 누더기 의료 시스템으로 남을 것입니다. 저의 짧은 글이 존경하는 의사 동료 여러분과 의료 정책을 생각하는 많은 분들에게 작은 생각할 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장윤성 / 의사
NO. | 제 목 | 글쓴이 | 등록일자 | |
---|---|---|---|---|
320 | ‘농망(農亡) 4법’이 맞다 권혁철 / 2024-11-27 |
|||
319 | 교육개혁? 시장에 답이 있다 권혁철 / 2024-11-13 |
|||
318 | 잘 살고 못 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권혁철 / 2024-10-23 |
|||
317 | 자본이 어려운 당신에게 최승노 / 2024-10-10 |
|||
316 | 겨울 해수욕장에는 ‘바가지요금’이 없다 권혁철 / 2024-10-10 |
|||
315 |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고민 필요하다 권혁철 / 2024-09-24 |
|||
314 | 이유 있는 금융 부문 낙후...작은 정부 구현은 금융 규제 개혁부터 권혁철 / 2024-09-11 |
|||
313 | 뜬금없는 한국은행의 대학생 선발 방식 제안? 본업에 충실하길... 권혁철 / 2024-08-28 |
|||
312 | 복지 천국으로 가는 길은 노예로의 길이다 권혁철 / 2024-08-14 |
|||
311 | ‘노란봉투법’ 통과되더라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야 권혁철 / 2024-07-24 |
|||
310 | 저출생의 무엇이 문제인가? 권혁철 / 2024-07-11 |
|||
309 | 국민연금 운용 독점의 부작용 최승노 / 2024-07-08 |
|||
308 | ‘인플레이션’ 용어의 왜곡과 정부의 숨바꼭질 놀이 권혁철 / 2024-06-26 |
|||
307 | 부동산 규제 철폐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권혁철 / 2024-06-12 |
|||
306 | 시진핑 `신에너지 경고`의 의미 최승노 / 2024-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