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문제가 FTA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FTA로부터 농업이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 중에 대표적 두 가지를 들라면 식량안보 논리와 농민보호 문제일 것이다.
외국의 싼 농산물이 밀려오면 국내의 농업생산은 급속하게 위축될 것이고, 그 틈을 이용해서 외국의 식량 메이저들이 식량 공급을 줄이고 값을 올릴 것이라는 예측이 식량안보 논리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별로 현실성이 없는 걱정이다. 식량은 석유처럼 무기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식량을 무기화하려면 생산량을 쉽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석유는 비교적 그것이 쉽다. 매일 매일 채굴량을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채굴업자들이 대기업이고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의견 조율도 비교적 쉽다. 그러나 식량은 그런 사정과는 거리가 멀다. 먼저 씨를 뿌리는 시기와 수확 시기 간에 최소한 몇 달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생산을 조절하기가 어렵다.
더욱 큰 문제는 식량은 생산자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숫자는 아마도 전 세계에 수억명에 이를 것이다. 이들이 서로 담합을 해서 쌀 생산량을 조절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만큼 서로 짜고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땅 조차도 없는 홍콩과 싱가포르가 지난 수 십 년 동안 안정적으로 식량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설령 식량이 무기화된다고 해도 현재의 국내 쌀 가격보다 더 높아질 것 같지는 않다. 만약 해외로부터의 식량 조달가격이 그렇게 높아진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다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다른 어떤 산업들보다 농업은 새로 시작하기가 쉬운 산업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염두에 둘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이 난다면 누구도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있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쟁 등의 비상사태를 위해 식량을 비축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자유무역의 이점을 포기해가면서까지 농업을 유지할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건전한 세계 시민 국가로서의 역할을 잘 한다면 전쟁을 치러야 할 이유가 없다. 전쟁은 오히려 북한처럼 고립주의를 택할 때에 더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편 농민의 어려움은 농업과는 분리해서 다루어야 한다. 자유무역으로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은 소득을 보전해주는 등 복지정책적 수단으로 생활을 지원해주는 것이 옳다. 농업과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자유무역 자체를 막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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