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에서 장백산관광호텔을 운영해오던 박범용씨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중국 정부가 멀쩡한 호텔을 철거하라고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박씨를 비롯한 이 지역 4개 호텔의 주인들은 지린성 정부로부터 25년간 영업해도 된다는 약속을 받고 투자를 시작했다. 그러나 2006년 9월 갑자기 태도를 바꿔 철거명령을 내리기에 이른 것이다.
중국 정부가 그렇게 나오는 이유는 백두산 일대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신청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중국 정부의 약속을 믿고 막대한 투자를 한 한국인에게는 부당한 처사임이 분명하다.
손해를 보게 된 한국 투자자들이 중국 정부나 지방 정부를 상대로 중국 법원에 제소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낱 외국인 투자자가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그것도 중국 법정에서 이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투자자-국가 소송이다. 해당국 정부의 약속 불이행으로 손해를 본 외국 투자자가 해당국 법원이 아니라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조정을 요청할 수 있게 하고, 해당국 정부가 그 조정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FTA 상의 투자자-국가 소송조항이다. 이 조항은 매우 보편화된 제도로, 우리가 이미 다른 나라들과 맺고 있는 80개의 투자보장협정 및 한ㆍ칠레, 한ㆍ싱가포르 FTA에도 포함되어 있다.
15년 전인 1992년 맺은 중국과의 투자보장협정에는 이 조항이 없었던 탓에 백두산의 한국 투자자들은 이런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서 올해부터 새로 발효되는 한ㆍ중 투자보장협정에는 우리측의 요구로 보다 강화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들어가게 되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유독 미국과의 FTA에서만 투자자-국가 소송이 문제되고 있는 것은 미국의 투자자를 지나치게 이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서 우리의 기업들도 미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 정부에게 그것을 보호해 달라고 요구하려면 한국에 투자하는 미국 자본에 대해서도 약속을 지켜주어야 한다. 약속의 실효성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바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다. 정부가 약속을 어겨서 투자자에게 피해를 줄 경우 상응하는 보상을 하겠다는 것일 뿐 경제주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른 나라와의 약속을 지키고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절차와 내용으로 정책과 법을 만드는 나라라면 투자자-국가 소송을 염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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