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이전 영국이 자유주의적 정책을 펴고 있을 즈음, 독일의 히틀러는 국가 사회주의를 강력히 펴나간다. 거의 모든 중요 산업이 국가의 통제 하에 있었으며, 생필품은 배급제였다.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하고 히틀러가 사라진 후에도 사회주의는 독일의 피할 수 없는 길인 것처럼 보였다. 국유화와 배급제를 표방하던 사회민주당 출신 정치인들이 전후 미군정 하 독일의 주요 실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제정책의 책임을 맡았던 요하네스 셈러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닭 사료”사건이 독일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
셈러는 당시 미국이 독일에 원조해주고 있던 옥수수가 닭이나 먹는 “닭 사료”라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데, 그 말에 격분한 미군정 사령관은 셈러를 해고하고 대신 그 자리에 무명의 경제학자였던 루드비히 에르하르트를 임명한다. 에르하르트는 소위 질서자유주의라고 불리는 학파에 속해 있었다. 이 학파는 경제활동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해주되, 정부는 독점을 막아주고 시장에서의 낙오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정도만을 제공해주면 된다는 생각을 공유한 학자들의 모임이었다.
에르하르트는 하루 밤 사이에 물가 통제를 포기하고 가격 자유화를 단행했으며, 생필품의 배급 시스템도 폐기해 버렸다. 독일 국민들은 나치 시절부터 수 십 년간 이런 제도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에르하르트의 조치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미군정 사령관도 큰 놀라움을 표명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결과는 교과서에 나온 대로 나타났다. 암시장이 사라지고 가게의 상품 진열장에 물건들이 진열되기 시작했다. 독일 경제가 전후의 폐허에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1949년 9월 사회주의를 내세운 슈마허와 자유시장경제를 내세운 아데나워간의 치열한 선거전 끝에 아데나워가 새 수상으로 선출된다. 에르하르트는 아데나워가 수상으로 있던 14년간 경제장관으로서 독일경제의 기적, 즉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낸다. 독일은 비참한 패전국에서 벗어나 유럽 경제 질서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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