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업계 숙원 과제 '자율등급제’ 도입, 규제 완화 통한 효율행정 대표 사례
▪ 문체부 장관 지정 받은 '자체등급분류사업자’가 직접 청소년관람불가 등 등급 분류 가능
▪ 부작용 예상되나 소비자, 사업자, 정부 각각 누리는 편익 더 클 것으로 예상
▪ 단기적 혼란 방지 위해 지정제 도입했으나 장기적으로는 신고제가 더 바람직…3년 후 재논의 기대
■ 들어가며
2023년 3월 28일부터 국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OTT(아래 설명 참조) 사업자는 장관으로부터 자율등급분류사업자로 지정 받은 경우,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사전심의를 받지 않고 '제한관람가’를 제외한 나머지 상영등급을 자율적으로 분류하여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됐다. 이른바 '자율등급제’의 도입이다.
OTT 업계는 자율등급제가 가져올 변화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 동안 OTT 업계의 신속한 영상물 서비스와 마케팅의 걸림돌이 돼 왔던 영등위 사전심의제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다만, '자체등급분류사업자’를 정부가 심의하여 '지정’하도록 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정제가 아닌 신고제로 규제를 더욱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OTT 자율등급제 도입은, 기존에 사전 규제에 해당됐던 심의제를 사후 규제의 형태로 개선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사업자의 자율성을 일차적으로 신뢰하고 소비자 역시 자유롭게 선택하고 판단하는 시장 질서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사전 심의제로 인해 '역차별’을 당해야 했던 국내 OTT 사업자들이 해외 OTT 사업자와 공정한 경쟁을 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 주요내용
이 법률 개정안은 OTT 자율등급제의 도입에 필요한 전반적인 제도적 틀을 새롭게 마련했다. 개정 및 신설된 조항별로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자체등급제는 OTT 사업자의 선택사항이다. 제50조의2 제3항에서는 “자체등급분류사업자는 자체등급분류 결정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등급분류를 요청하여 그 결과로 자체등급분류 결정을 대체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한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지정가이드’에 따르면, OTT 사업자는 자체등급분류 업무운영 계획서(자체등급분류 절차 운영 계획, 자체등급분류 사후관리 운영 계획)와 각종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하며, 등급분류 책임자와 자체등급분류 담당 인력(해외종사자 포함), 각종 교육 이수 계획 등을 상세하게 작성하여 제출해야 한다. 영세한 OTT 사업자는 사실상 영등위에 등급 분류를 맡기는 편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제1차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는 7개 업체가 처음으로 선정됐다. 11개 후보군 사업자 중 4곳은 지정 받지 못했다.
■ 법률안 개정 과정과 처리 현황
이 법률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체계자구심사를 맡은 법제사법위원회, 마지막 본회의 까지 특별한 이견 노출 없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2022년 9월 7일 국회는 본회의는 재석 234인 중 찬성 228인, 반대 1인, 기권 5인으로 이 법률개정안을 처리했다.
자율등급제 도입을 위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은 박정‧이상헌‧황보승희 의원 등 3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상헌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최종 통과된 법안과 마찬가지로 '지정제’를 도입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박정 의원과 당시 국민의힘 소속(현재는 무소속)이었던 황보승희 의원은 '신고제’를 도입했다. 문체부 장관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사업자에 대해 자체 심의를 거쳐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지정해주는 '지정제’에 비해, 요건을 충족한 사업자가 기관 신고를 통해 자격을 획득하는 '신고제’가 더 근본적인 의미의 규제 완화라고 볼 수 있다.
세부적인 법안 심사를 맡고 있는 문체위 산하 문화체육관광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는 이른바 '지정제 vs 신고제’를 둘러싼 토론이 일부 진행됐다.
정부 측은 지정제 찬성 입장을 내놨다. 청소년 유해 영상물의 무분별한 유통과, 사후 사업자에 대한 제재 조치 실효성 미비를 그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신고제 법안을 냈던 황보승희 의원은 다음과 같이 수용 의견을 냈다.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은 “초기에는 지정제로 하되 말씀하신 3년 정도 운영해 보고 문제가 없을 경우에는 신고제 등으로 전환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며 “지정제가 사실 정답은 아니지 않느냐”고 의견을 덧붙였다. 정부 측은 수용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와 같은 법안 심의 과정 결과, 최종 처리된 법률 개정안에 다음과 같은 부대의견이 반영됐다.
1. 대표적인 규제 개혁에 따른 '효율 행정', 사회적 비용 대비 편익 높아
자율등급제 도입에 따라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모든 OTT 영상물에 대해서 일일이 심의를 거쳐 등급을 분류해야 하는 행정적 부담을 줄인 반면, OTT 사업자 역시 심의 신청, 결과 대기, 이의 신청에 소요되는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비디오물 등급분류 건수가 2016년 6,580건에서 2021년에는 16,167건으로 3배 가까이 증가한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사전심의제가 더 이상 OTT 시장규모 확대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비용적으로도 OTT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보통 OTT 사업자가 심의를 신청하면, 10분 분량 당 10,000원의 수수료를 납부해야 한다. 해외 콘텐츠의 경우에는 17,000원으로 비용이 상승한다. 가령 회당 30분 분량의 해외 드라마 100편 시리즈물을 OTT 사업자가 사전 심의를 거쳐 등급을 부여 받기 위해서 드는 비용만 5,100만 원이다.
국내 OTT 사업체 중 하나인 '쿠팡플레이’가 사전심의에 따른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소위 '꼼수’를 쓴 사례도 유명하다. 2021년 정기국회에서 양정숙 의원은 쿠팡플레이가 유명 온라인 콘텐츠 'SNL코리아’를 방영하면서 DMB 방송사인 QBS를 통해 오전 3시에 먼저 방송한 것이다. 쿠팡플레이가 이런 방법을 쓴 이유는, 앞서 방송사를 통해 방영된 프로그램을 비디오로 제작해 단순 재방영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등급분류 심의를 거치지 않고 기존 등급을 부여하도록 하는, 시행령 제23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쿠팡플레이의 편법 실태는 오히려 자율등급제의 조기 도입 필요성을 높이는 사례로 작용했다. 국내 OTT 업계가 2020년부터 이미 자율등급제 도입을 주장해왔지만 관련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간 업무 조율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아 입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던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던 것이다.
자율등급제 부작용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더 낮은 연령의 관람가로 영상물 등급을 분류하여 시청자 범위를 넓히려는 OTT 사업자가 존재할 것이고, 실수나 업무 과중에 의해 등급이 잘못 분류되는 사례도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회 전체 효용을 따졌을 때, 일부 OTT 사업자의 고의‧과실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폐해에 비해, 영상물등급위원회와 OTT 사업자가 누리는 편익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OTT 소비자도 자율등급제 혜택을 누린다. 기존에 비해 더 빨리 OTT 콘텐츠를 접할 수 있고, 특히 해외에서는 이미 방영되고 있는 콘텐츠를 국내에서는 짧게는 2주, 길게는 수개월씩이나 늦게 접해야 하는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OTT 산업이 활성화될수록 소비자가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의 다양성 또한 커지므로, 결국 자율등급제 도입은 소비자·기업·공공기관 모두에게 '윈-윈'이라고 할 수 있다.
2. '지정제'는 또 다른 규제, 과도기적 역할 후 '신고제'에 비켜줘야
자율등급제와 함께 도입된 자체등급분류사업자의 지정제는 엄밀히 말해 '허가제’ 성격을 갖고 있는 사전규제라고 할 수 있다. 심사 항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살펴보면, 업체 측에서 작성하는 내용 중 단순 사실 여부를 기재하여 적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 항목도 있지만, 일부 평가자의 해석과 내용의 구체성 정도에 따라 점수를 매길 수밖에 없는 이른바 '정성평가’ 항목도 존재한다. OTT 업체 입장에서는 영등위와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만 지정 및 재지정에서의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소위 '대관 업무’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OTT 업계는, 자율등급제 최초 도입 과정에서 초기 부작용에 대한 우려에 대비해 일차적으로는 지정제를 도입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당초 규제 완화의 취지에 가장 적합한 신고제를 도입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신고제를 도입해도, 얼마든지 기관 차원의 사후 대응과 직권에 의한 재분류, 취소 등이 가능하므로 사전대응 성격이 강한 지정제는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개정법률안 부대의견에서 명시한 '3년 후 추가 규제 완화 검토’를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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