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감소 우려에 '찔끔’, 반도체 위기론에 '확’…우여곡절 끝 통과된 K-칩스법
▪ ’22년 12월 '8% 조특법’ 통과 후폭풍, 정부‧국회 서둘러 추가 개정
▪ 미국 칩스법 여파, 글로벌 감세 ‧ 인센티브 경쟁에 한국도 '생존 해법’ 모색
▪ 단기적으로는 세수 감소해도 장기적으로는 투자‧고용 확대 따른 효과 기대
■ 법률 개정안 내용
2023년 3월 30일, 국회를 통과한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소위 'K-칩스법’이라 불리기도 한다. 앞서 2022년 8월 미국에서 발효된 '반도체칩과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서 차용했다. 반도체와 같은 국가전략기술은 물론, 신성장‧원천기술 사업화를 위한 투자에 대해 더 높은 세액공제율을 적용한다. 반도체 뿐만 아니라 이차전지, 백신, 디스플레이와 같은 핵심 산업에 대한 기업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한 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법 통과 얼마 전인 2022년 12월, 국회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이미 처리한 바 있다.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반도체 등 핵심 기술에 대한 투자세액공제율을 높이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왜 국회는 약 3개월의 짧은 격차로 연달아 유사한 법률 개정안을 처리한 것일까? ’22년 12월 법안(1차 개정안)과 ’23년 3월 법안(2차 개정안)을 함께 묶어서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투자세액공제율 조정에 관한 부분은 크게 국가전략기술, 신성장‧원천기술, 일반으로 나눌 수 있으며, 2023년 증가한 투자금액에 대해서 특별히 적용되는 임시 투자세액공제율 조정이 따로 마련돼 있다. 표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차 개정 전부터 2차 개정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를 순서대로 표기하였다.
표에서 나타나듯, 1차 개정안에 반영된 공제율 상향폭에 비해 2차 개정안에 반영된 상향폭이 더 높다. 대기업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율은 두 배 (8% → 15%) 가까이 상승했고, '23년 투자 증가분에 한해 적용되는 임시 투자세액공제율까지 적용하면 25%의 세제 혜택을 누린다. 국가전략기술에 투자하는 중소기업은 최대 35%의 공제 혜택의 대상이 된다.
■ 법률안 개정 과정과 처리 현황
1차 개정안
이처럼 2차 개정 과정에서 대폭 공제율이 늘어나게 된 것은, 1차 개정안을 둘러싼 경제산업계 전반의 불만족과 윤석열 대통령의 강도 높은 법률개정 필요성 주문에 따른 결과다.
사실 1차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도 대기업의 국가전략기술 투자 세액공제율을 25%까지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다. 미국과 대만 때문이다. 앞서 미국에서 발효된 칩스법이 25%까지 반도체 투자설비에 대해 세액 공제 내용을 담고 있었고, 그 당시 대만에서도 마찬가지 25%까지 투자 세액공제율을 올리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였다. (실제 이 법은 '23년 1월 대만 입법원을 통과했다) 중국 역시 2025년까지 187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을 반도체 기술 개발에 투입하기로 발표하면서 '한국 반도체산업 위기론’이 불거졌다.
여당 국민의힘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이하 '與 반도체특위’)를 구성하고 전문가 출신인 양향자 무소속 의원을 위 원 장 으 로 임명해 일찌감치 투자세액공제율 상향을 준비했다 . 그리고 2030 년까지 국가첨단전략산업 시설에 투자하는 경우 대기업 20%, 중견기업 25% 금액을 법인세에서 공제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해 각각 10%, 15%까지만 세액 공제가 가능하다며 여당 안을 반대했다.
기획재정부는 더 방어적이었다. 세액공제 확대에 따른 세수 부족을 우려해 대기업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율 8% 안을 제시했다. 극심한 여야 대립 정국 속에서 표류하던 조세특례제한법은 정부안인 '대기업 8% 세액 공제’ 안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처리 현황은 다음과 같다.
與 반도체특위 위원장인 양향자 의원은 이 법안이 통과되자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발표했다.
1차 개정안의 후폭풍은 거셌다. 경제계, 언론은 '반쪽짜리’, '사실상 후퇴’, '용두사미’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일주일 후 윤석열 대통령은 “기획재정부는 관계부처와 협의해 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에 대한 세제지원을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며 추가 법률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획재정부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새해 첫날, 일주일 내에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투자 세액공제율을 10%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을 발표할 것을 약속했고, 3일 대기업의 국가전략기술 투자 세액공제율을 최대 25%(15% + 임시 투자증가분 10% 추가 적용)까지 올리겠다는 정부안을 발표했다.
2차 개정안
다음해 2월 임시국회가 열리자 정부 제안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의 조세소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측은 대기업이 추가 혜택을 받는 점에 대해서 반대하고, 세제 공제에 따른 단기적 세수 부족을 우려했다. 아울러 정부가 2022년 12월 당시에는 이른바 '8% 안’을 주장한 것과 달리 다시 세액 공제율을 높여야 한다는 쪽으로 급히 의견을 바꾼 것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양한 비판과 염려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쟁’이 과열되고 국내 기업 반도체 수출에 적신호가 켜지자, 여론은 추가적인 투자세액공제율 상향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은 3월 임시국회에서 정부‧여당의 제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3월 30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처리 현황은 다음과 같다.
앞서 1차 개정안 표결 당시와 달리, 2차 개정안에 대해서는 반대표가 나왔다. 반대토론도 진행됐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본 법안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공급망 재구축 전략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대비 방안이 부족하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이 법안이 사실상 '재벌 특혜’ 법안임을 강조하며 이를 윤석열 대통령發 '하명 입법’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1.
글로벌 분업화 구조에서 국경과 진영에 관계 없이 반도체를 생산하고 자유롭게 거래하던 종전의 자유 무역 질서 대신, 우방‧동맹국 간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협력적 관계 속에서 전략적으로 반도체를 생산, 거래하는 질서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칩과 과학법’을 통해 주요 반도체 기업의 중국 내 생산 시설 확대를 막고, 궁극적으로 '탈중국화’를 이끌어내고자 하고 있다. 미국 러몬드 상무부장관은 “미국의 목표는 첨단 반도체기술을 가진 모든 기업이 연구개발과 대량 생산을 하는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되는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냈다.
이미 중국 내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을 가진 국내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투자처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국 투자 환경이 개선된다면 그만큼 국내 투자의 유인이 높아질 것이고, 동시에 중국 의존도도 낮출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게 된다. 국가전략기술 투자 세액공제율 확대는 가속화되는 '기술 패권 경쟁' 질서 속에서 우리 기업 리스크를 낮추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생존 해법이라고 볼 수 있다.
2. 글로벌 기업 감세‧인센티브 경쟁 속 불가피한 선택
세계 주요국가가 앞다퉈 법인세를 비롯한 기업의 조세 부담을 낮춰주는 '감세 경쟁’을 펼치고 있고, 제조업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공에 나서고 있다는 점 역시 투자세액공제 확대를 판단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주요 변수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22년 4월 발간한 <2022 조세수첩>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법인세율을 인하한 OECD 국가는 20개 국이며, 세율을 인상한 국가는 한국을 포함 6개국 뿐이었다. 법인세 인하 국가에는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제조업 강국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미국은 자국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을 대상으로 약 390억 달러(50조 원) 규모 보조금을 책정했고 유럽연합(EU)은 430억 유로(62조 원) 수준의 자금을 동원해 권역 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구마모토 현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중인 대만 TSMC에게 4,760억 엔(4.6조 원)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반도체 분야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2023년 4월 일본 정부는 혼다社의 배터리 투자 계획에 1,600억 엔(약 1조 460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이어 6월 도요타社 배터리 증산 계획에 대해 1,200억 엔 (1 조 900 억 원 ) 보 조금 을 지급하기로 결 정 했 다 . 중국 정부는 디스플레이 산업 육성을 위해 토지‧용수‧전기 상지원, 제조설비 보조금 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에 따르면 정부 지출, 조세 지원, 금융 특혜 등을 통한 정부의 산업 육성‧지원 정책이 2018년 3,909건 대비 2020년 5,081건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해외 기업 유치와 자국 기업의 리쇼어링*에 사활을 걸고 제도적‧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국 정부도 국내 기업의 엑소더스를 막고 국내 생산시설 확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강력한 유인책이 필요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 리쇼어링(Reshoring): 생산비‧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긴 기업들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는 현상
3. 단기적으로 세수 감소 우려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 세수 확대 기대
투자 세액공제율 확대를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은 '세수 감소’ 우려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23년 6월 발간한 <재정 추계‧세제 이슈> 보고서에서도 국가전략기술 세액 공제율 상향, 임시 투자세액공제 도입에 따른 2024년도 세수 감수분을 2조 9,991억 원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정부도 세수 부족을 예측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당연히 공제되는 세액 범위가 넓어져 단순 계산에 따라 세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세수 확대와 경제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내부 의사결정에 따라 미뤄뒀던 투자를 임시 투자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앞당겨 실행하게 되면 그에 따라 기업의 비용 지출과 고용도 함께 늘어나게 되므로 그에 따른 시장 자극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22년 11월 발표한 <법인세 감세의 경제적 효과 분석>은 법인세 최고세율 1%p 인하 시 기업의 총 자산 대비 투자 비중은 5.7%p 증가하고, 고용은 3.5%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실상의 감세에 해당되는 투자세액공제율 확대도 같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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