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에 압수`수색권 부여 적절치 않아

조동근 / 2003-10-22 / 조회: 8,294

- 2003.9.2. 이훈평 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162595: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중개정법률안 -

1. 강제조사권 부여를 위한 개정안 발의

지난 9. 2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조사 공무원에게 강제조사권(압수 및 수색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12인의 국회의원에 의해 발의되었다.1)
동 법률개정안은 먼저 그 제안 배경으로 다음을 적시(摘示)하고 있다. 현행법상 공정위는 강제 조사권이 없고 기업이 조사를 방해하거나 거부해도 과태료만 부과되므로 기업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위법행위가 발견되어 거액의 과징금을 내는 것보다 유리하기 때문에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사례가 빈발(頻發)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상황에서 시장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 이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부당 공동행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공정위 조사 기능의 실효성 제고 차원에서 부득이 조사공무원에게 새로이 압수'수색권을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동 법률 개정안의 제안 이유이다.

2. 법률개정안의 핵심쟁점 검토

공정위의 일차 소임은 경쟁촉진에 있음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담합 등 부당공동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공정위의 조사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제안에는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공정위의 권한강화가 규제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압수'수색권 부여가 공정위 조사기능 강화의 ‘충분조건’인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국회 발의안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공정위의 물리적 강제력 부족이 담합 등 부당 공동행위를 적발함에 있어 결정적인 애로 요인임이 입증돼야 한다. 이하에서는 동 법률개정안의 핵심 쟁점을 중심으로 그 타당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첫 번째 쟁점은 제안 배경 설명에서와 같이 기업들이 위법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를 기피하고 방해한 사례가 ‘빈발’하였는지의 여부이다. 적법한 조사활동이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기업이 정당한 이유 없이 공권력에 도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이 무엇을 믿고 조사를 기피하거나 방해했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조사를 기피하거나 방해한다고 조사 자체가 면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과태료를 물어가면서까지 무턱대고 공정위와 맞설 이유는 없다. 공정위는 2001년 기업이 조사에 불응할 경우의 과태료를 임직원은 1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법인은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대폭 올려, 기업이 조사에 응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그리고 행정처분이나 시정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하지 않는 경우 하루 최고 2백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이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기업의 조사 불응으로 인한 실제 과태료 부과건수는 2건에 불과해, 기업이 조사에 순응한 것으로 나타났다.2) 따라서 기업이 조사를 기피하거나 방해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는 제안 배경 설명은 현실을 다분히 과장한 것이다. 결국 발의안의 이같은 제안 설명은 압수'수색권의 부여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견강부회(牽强附會)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그 같은 사례가 빈발했다손 치더라도 이는 압수'수색권으로 풀 문제가 아니다. 과태료를 더욱 인상시켜 기업의 조사를 유도하는 것이 정도(正道)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쟁점은 현재 상황에서 공정위에게 굳이 압수'수색권을 부여해야만 하는 가이다. 공정위는 현장조사권, 자료제출 요구권, 자료 영치권 등 실질적으로 사법수사권과 다를 바 없는 조사와 이행수단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카르텔 등 공동행위에 대해서 공정위는 검찰고발 의무를 가지며 검찰은 고발을 요청할 수 있다. 따라서 공정위의 ‘강제력 부족’이 부당 공동행위를 적발치 못하게 하는 요인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위반행위의 조사 등의 근거가 되는 법조문(공정거래법 50조)이 “법의 시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조사에 필요한 자료나 물건의 제출을 명하고” 식으로 포괄적으로 기술되어, 공권력 행사과정에서 권위적 과잉행정이 조장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공정위의 계좌추적권은 검찰의 수사권보다 강력한 것으로 법원에서 영장을 발급받지 않고도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공정위가 압수'수색권까지 갖게 되면, 무소불위의 칼자루를 공정위에게 쥐어주는 셈이 된다. 따라서 물리적 강제력의 부족이 법 집행의 애로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 한, 공정위 조사공무원에 대한 사법경찰관의 지위부여는 과도한 권한집중이라는 역기능을 초래할 여지가 있다.

규제권한이 크다고 규제권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규제권위는 공정거래법의 수범자인 사업자가 규제에 순응할 때 비로소 높아지는 것이다. 지난 98년 이후 5년간 공정위가 내린 시정명령 총 1천4백44건 중 2백 63건에 대해 당사자들이 법원에 소송을 냈다. 기업이 공정위의 시정조치에 불복하고 행정소송을 제기한 비율은 18%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공정위의 무리한 법률적용으로 인해 공정위가 법원에서 패소하는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국회에 낸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대법원 상고심에서 공정위의 패소비율은 98년 16.67%, 99년 23.33%, 2000년 25.0%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는 공정위 규제권위의 추락을 의미한다.

공정위의 이같은 패소는 공정위가 무리하게 담합의 잣대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2003년 4월 맥주 3사가 맥주 값을 똑같은 비율로 올린 것을 담합으로 보고 3사에게 2억 8천만~6억 8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공정위의 시정명령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지난 97년말 국내시장의 99%를 차지하던 맥주 3사의 가격 인상률이 같다하더라도 이는 당시 재정경제원과 국세청에서 허용한 가격 인상률이 이들이 요구한 수치보다 훨씬 낮아 허용인상률 전부를 가격 인상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2002년 10월에도 자동차 보험료를 담합해서 인상했다는 이유로 11개 손해보험사에 7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공정위의 행정조치는 잘못이라는 서울고법의 판결이 내려졌다.3)

공정위의 담합 판정이 법원으로부터 제동이 걸린 이유는 공정위가 담합에 대한 뚜렷한 물증 없이 단순히 담합을 ‘추정’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 19조는 사업자가 일정한 거래분야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를 할 경우(예컨대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수준으로 가격을 올리는 등) 사업자간의 담합에 대한 명시적인 합의가 없는 경우에도 부당한 공동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되어 있다. 물론 대부분의 담합은 암묵적으로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뚜렷한 물증을 잡기는 어렵다. 그러나 추정에 의한 담합 판정은 자연스런 가격인상도 담합으로 몰아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 따라서 담합 등 부당 공동행위를 적발하는 데 있어 관건은 물리적 강제력이 아닌 ‘전문성 제고’인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공정위 조사공무원에 대한 사법경찰관의 지위부여가 부당공동행위 적발 실적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결국 압수'수색권 부여 이외의 정책접근이 요구된다 하겠다.

3. 부당 공동행위 적발과 예방을 위한 여타의 대안

담합 등 부당공동행위는 속성상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담합을 입증하기는 결코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이미 발효 중인 “공동행위 신고자 등에 대한 감면제도”를 보다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로써 담합 판정과 과징금 부과에 따른 절차적 정당성과 정책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담합의 정황적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상시정보수집체계’를 현재의 관급건설공사 입찰 분야에서 여타 공동행위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거래분야 및 사업자 단체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업종별 협회와 전문자격자 단체 등 정부로부터 위탁받은 업무를 수행중인 각종 사업자단체는 비회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 담합의 소지가 큰 만큼 카르텔 제보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정보수집체계를 상시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한편 손해배상제도를 보완하여 공정거래법의 사적(私的) 집행을 제고해야 한다. 사적 소송은 부당공동행위에 대한 민관 공동 전선(戰線)을 구축해 공정거래법의 집행저변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이처럼 담합 등 부당한 공동행위로 피해를 본 사적 당사자가 법원에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되면 사전적으로 담합을 억지시킬 수 있다. 이때 피해자의 손해액 입증이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 법원이 관련증거 등을 기초로 직접 손해액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4),사적 집행의 활성화 차원에서 공정위의 시정조치가 확정되기 전이라도 소송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 이같은 공정위 조치 전 사적소송 제기는 다행히 현재 입법예고 된 상태로 연내에 국회를 통과하면 2004년 1월부터 발효된다. 하지만 사적 소송은 담합 등 부당 공동행위에 국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촉진과는 무관한 여타 공정거래법의 규제, 예컨대 경제력 집중규제 등에 대해서까지 남소(濫訴)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4. 요약 및 결론

그간 공정거래법에 근거한 규제의 포괄범위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이 이어져 왔다. 시장경제는 개별시장의 논리에 따라 규율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은 모든 시장의 규율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정위는 all round player(다기능 규제자)로서의 판관(判官)을 자처해 왔다. all round player로서의 공정위를 뒤집어 보면, 공정위가 경쟁촉진을 통한 효율증진과 소비자 후생 증대라는 경쟁법의 본령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문어발식 정책관여와 규제가 정부 내 공정위의 위상을 강화시키는 데는 도움이 됐을지 모르지만 경쟁촉진을 위한 공정위의 규제권위는 분명 저하되었다.

담합 등 부당공동행위를 적발하는 데 있어 관건은 물리력 확보가 아닌 전문성 제고이다. 따라서 압수'수색권 등을 통해 물리적 강제력을 보강하는 것이 규제권위를 높이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러한 정책사고를 가졌다면 이는 단선적인 행정 편의주의의 소치이다. 계좌추적권과 압수'수색권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여지가 있다. 그리고 국민들로 하여금 부지불식간에 기업을 불법을 저지르는 집단으로 인식케 할 우려가 있다.

담합 등 부당 공동행위 억제를 통한 경쟁질서 확립은 공정위의 존재 이유 그 자체이다. 따라서 실익이 없는 그리고 과다한 권한집중이라는 오해를 초래할 수 있는 강제조사권에 의지하기 이전에 시장규율을 충실히 활용하는 다면적인 접근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손해배상제도를 보완해 공정거래법의 사적집행을 활성화시키고 담합의 정황적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상시정보수집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의 내부신고자 제도를 십분 활용하여 담합 판정의 정책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1)발의안의 제안이유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현행법상 공정거래위원회는 강제조사권이 없고 조사를 방해하거나 거부해도 과태료만 부과되는 등 기업입장에서는 위법행위가 발견되어 과징금을 내는 것 보다 이익이라는 생각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음.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기능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하여 시장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 이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하여 공정거래위원회에 새로이 압수'수색권을 부여하려는 것임.”

2)2000년 4대 그룹에 대한 부당 내부거래 조사의 일환으로 A그룹의 B계열사에 대한 현장조사 과정에서 공정위 조사요원의 조사활동이 방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B계열사의 입장은 다르다. 인사자료가 입력된 전산시스템 자체에 위해를 끼칠 염려가 있는 행위를 요구했기 때문에 조사에 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3)이같은 공정위의 일부 패소를 이유로 공정위의 부당 공동행위 적발실적을 폄하해서는 안된다. 2002년 공정위는 부당공동행위를 한 학생복 제조업체 및 정유사를 검찰에 고발하였으며, 2003년에는 A양회 등 7개 시멘트 제조업체의 시멘트 공급 거부행위를 ‘사업활동 방해를 위한 담합행위’로 판정하고 검찰에 고발하였다.

4) 손해배상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법원이 손해액을 판정해주면 원고(피해자)의 입증부담이 없어져 남소의 여지가 있으며 또한 장기적으로는 민간 법조계의 입증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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