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전쟁의 상대는 중국 등 이른바 '적성국’은 물론이고 한국을 포함한 동맹, 우방국 가림 없이 모든 나라다. 트럼프 대통령은 엊그제 세계 모든 나라의 대미 수출품에 10%, '최악의 침해국’으로 분류된 나라들에는 최고 49%의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에는 34%, 우리나라에는 25%, 그리고 유럽연합(EU)에는 20%의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또 이와는 별도로 이미 자동차, 철강 등 주요 품목에 대해서는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어 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관세 전쟁’의 밑바탕에는 국제 무역이 무역 참가국 상호 간에 이익이 되는 윈-윈(win-win) 게임이 아니라, '죽기 살기식’(win-lose)의 제로섬 게임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런 류(類)의 사고방식은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다. 관세 장벽 등 보호무역을 옹호할 때마다 등장하는 그런 논리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이 강간과 약탈을 당하도록 허용했다....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 친구와 적국으로부터 갈취당했다”는 말은 국제 무역을 제로섬 게임 식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국제 무역을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의 제로섬 게임으로 이해하고 이에 맞춰 정책을 펴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역사적 경험적으로 오류임이 그동안 충분히 증명되어 왔다. 무역 장벽을 높이 쌓고,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나라치고 잘사는 나라가 없다. 일례로 1929년의 '공황’이 장기간의 세계 '대공황’으로까지 사태가 악화된 주요 원인 중 하나도 '스무트-할리 관세법’을 통한 '관세 전쟁’이었다. 이 법의 목적은 이 법의 본래 명칭이 잘 보여준다: “정부 수입을 늘리고, 외국과의 통상을 규제하며, 미국의 산업을 장려하고, 미국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등의 목적을 위한 법”이다. 현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급하고 있는 '관세 전쟁’의 목적 그대로이다.
이번의 '관세 전쟁’도 마찬가지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직관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국제 무역을 '윈-윈 게임’이 아닌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관점 자체가 심각한 오류와 착각에 기반하고 있기에 그 결과는 당연히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 오류와 착각이 여럿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착각은 국제 무역에서 국가와 기업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제 무역에서 국가도 기업이 경쟁하는 것처럼 경쟁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회사’가 '유럽이라는 회사’ '일본이라는 회사’ '한국이라는 회사’ 등과 국제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관세 전쟁을 벌이고 여기서 승리함으로써 미국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예를 들어, 현대기아차와 도요타자동차가 치열하게 경쟁하여, 현대기아차가 승리하고, 반면에 도요타자동차는 몰락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기아차에 좋은 일이다. 그런데, 국가 간에는 그런 식의 경쟁이 성립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일본 경제가 몰락하면 한국 경제에 이로울까?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몸살을 앓는다’는 말도 있듯이, 기업 간의 경쟁에서는 한쪽이 승리하고 다른 쪽이 몰락하면 승리한 기업에 좋은 일이겠지만, 국제 무역에서는 상대국 경제가 몰락하는 것은 자국 경제에 좋은 일이 아니다. 기업 간의 경쟁에서와는 정반대로 국가 간에는 이웃 나라가 잘 살아야 우리에게도 좋다. 국제 무역에서 국가 간에 '죽기 살기 식’ '뺏고 빼앗는 식’의 경쟁을 한다는 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미국의 '관세 전쟁’과 관련해서는 전 세계가 이구동성으로 비판하고 있다. 자유무역을 가로막고 보호무역으로 가는 것은 미국 경제는 물론 전 세계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옳은 비판이고 올바른 관점이다. 그런데, 보호무역이 아닌 자유무역이 타국은 물론 자국에도 좋은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나라들 대부분에서 보호무역 조치들이 빈번하게 취해지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일례로, 우리나라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신 을사늑약’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하기도 했었다. 보호무역을 미국이 하면 나쁜 것이고, 한국이 하면 좋은 것인가?
우리가 이번 '관세 전쟁’의 집중포화를 피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외교적, 통상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고도 중요하다. 아울러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유무역이 아닌 보호무역은 타국만이 아니라 우리도 피해를 입는 '자해행위’라는 것, 그리고 보호무역이 아닌 자유무역이 번영으로의 기회를 열어준다는 점을 깊이 새기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어쩌면 중장기적으로 번영을 위해서는 후자의 '교훈 얻기’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권혁철(자유시장연구소장,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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