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노벨상은 한국과 연관이 깊다. 먼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인인 한강 작가가 선정되었다는 것이 그렇고, 두 번째는 한국과 북한을 주요 사례로 하여 '잘 살고 못 사는 이유’를 밝힌 미국 MIT의 다론 아체모글루(또는 아제모을루 또는 아세모글루) 교수 등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노벨상과 그 상을 받는 수상자의 작품과 저서에 관심이 예년에 비해 훨씬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노벨 문학상을 받는 한강 작가의 소설은 순식간에 전국 서점에서 동이 났다고 한다.
노벨 문학상을 받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한국에서의 반응은 이처럼 뜨거운 반면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특히 한국과 북한을 대표 사례로 한 저서에 대한 반응은 거의 무관심에 가깝다. 하나는 한국인이 수상자이고, 다른 것은 비록 한국과 북한을 대표 사례로 한 것이긴 하더라도 수상자가 외국인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하나는 '고차원적인’ 문학이고, 다른 하나는 '저차원적인’ '먹고 사는 일’에 관한 것이라 그런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아무튼 노벨 경제학상에 대한 반응이 냉담한 것은 유감이다. “의식이 풍족해야 예절을 안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라야 좋은 문학 작품도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체모글루 등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간단명료하다. '잘 사는 나라는 잘 사는 이유가 있고, 못 사는 나라는 못 사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검증해 보기 위해 장장 700여 페이지(번역본 기준)에 걸친 탐구 여정을 떠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여정의 시작은, 앞서 말했듯,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을 포함하여 동서로 갈라졌었던 서독과 동독, 그리고 한 동네였다가 둘로 갈라진 미국의 노갈레스와 멕시코의 노갈레스를 비교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비교해 본 결과를 단 한 장의 사진이 대변해서 보여준다. '대낮같이 밝은 남한의 밤과 칠흑 같은 북한의 어둠’을 보여주는 사진, 즉,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밤에 찍힌 한반도 위성사진이 그것이다.
저자들이 남한과 북한, 동독과 서독, 그리고 두 개의 노갈레스시에서 출발한 의도는 분명하다. 그것은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못 사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던 몇 가지 주장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틀린 주장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국가가 지리적으로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빈부가 결정된다거나, 문화적 차이가 빈부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주장 등이 있는데, 모두 틀린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틀렸다는 근거는 '같은 지역’에 있는 남한과 북한, '단일 민족에 똑같은 문화’를 가졌던 남한과 북한의 격차가 확실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왜 어떤 국가는 잘 살고 또 왜 어떤 국가는 못 사는지 그 이유를 지리나 문화적 차이 등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만 한다.
'포용적 경제제도’니 '착취적 경제제도’니 하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했지만, 결국 저자들이 찾은 답은 경제질서의 차이다. 다시 말해, 시장경제질서인가 아니면 사회주의적 통제경제질서인가의 선택이 한 나라가 부자가 되느냐 가난한 나라가 되느냐를 판가름낸다는 것이다.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저자들의 전체 여정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잘 알다시피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 언어, 문화, 역사, 풍습, 관습 등 모든 것이 같았고, 또 해방 이후 그렇게 같은 출발선상에서 출발했다...대한민국과 북한이 서로 달랐던 것은 오직 경제질서였다. 대한민국은 시장경제질서를 택했고, 북한은 사회주의 통제경제질서를 택했다. 바로 이 순간의 선택이 대한민국과 북한을 이른바 천당과 지옥으로 갈랐다.”(필자의 『경제학 제대로 이해하기』에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측면에서의 중요한 내용을 알려주기도 한다. 즉, 누가 우리를 잘 살게 하려는 사람이고, 누가 우리를 못 살게 만들려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누가 시장경제질서를 옹호하고 멀리하는가, 그리고 누가 통제경제질서를 배척하고 선호하는가를 보면 누가 어떤 사람인지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권혁철 자유시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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