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해수욕장에는 ‘바가지요금’이 없다

권혁철 / 2024-10-10 / 조회: 604

매년 여름이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바가지요금’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해수욕장이나 휴가지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국이 나서서 이 바가지요금을 근절시키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바가지요금’이 근절되었다는 말은 들리지 않고, '바가지요금’ 이야기는 매년 되풀이해서 듣게 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마도, 10년 후 20년 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역시 같은 말을 듣게 되고, 동일한 당국의 엄포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런데, 찬바람이 불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 해수욕장에서 바가지요금을 씌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을 것이다. 바가지요금은커녕 오히려 가격을 크게 할인하기까지 한다.


시장과 가격에 대해 조금의 이해라도 있다면 이런 현상을 당연하고도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일 것이다. 가격은 '터무니없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경제학을 다룬 책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법칙이다. 물론, '배웠다’고 해서 시장과 가격 원리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몇 년 전 한 연구기관에서 조사한 바를 보면 그렇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약 20%만이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공급자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응답이 44%로 가장 많았고, 생산비용이 가격을 결정한다는 응답은 17%에 이른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직업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공무원과 대기업 종사자 사이에서 공급자가 가격을 결정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각각 54%와 51%로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공무원과 대기업 종사자라면 '많이 배운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의 시장경제 이해도가 더 낮게 나온 것이다.


시장경제와 가격 결정 원리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원인이 무엇이든 문제는 그런 성향이 국가에 의한 가격통제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각종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에 정부의 규제가 성행하고 있는 이유들 중 하나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라면 가격이 높다고 하면, '라면 사무관’을 지정해 통제에 나선다. 또 어느 부문에서 이익을 많이 보고 있다 하면, 곧 이 부문에 대한 규제에 나서는 것이 정부와 정치인들이다.


이번에는 골프장, 그중에서도 대중형 골프장의 그린피가 이들의 '레이더망’에 걸렸다. 그린피를 규제하자는, 그린피에 최고가격제를 적용하는 법안을 발의중이라고 한다. 골프장에 대한 불만 사항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코로나19로 해외로 나가지 못하자 국내 골프장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다; 그러자 골프장들이 그린피를 대폭 인상하였다; 이렇게 대폭 인상된 그린피는 내려갈 줄을 모른다. 한편 골프장의 서비스 품질은 형편없어졌다; 여름 폭염에 타버린 그린 위에 맨땅이 드러나고, 페어웨이도 잔디가 죽고 땅이 드러난 이른바 '모래 바닥’에서 골프를 치게 한다. 이런 영업을 하면서도 대중형 골프장들의 수익은 지난 몇 년 간 급격히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공영방송은 “고객을 봉으로 알고 악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일부 대중형 골프장들로선 반성이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라고 논평했다.


대부분의 규제가 그렇듯이, 이번에 그린피에 최고가격제 규제를 하겠다고 하는 국회의원이나 공영방송의 기사나 모두 가격 결정 원리에 대한 이해는 매우 낮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수요와 수요자에 대한 측면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골프장 홈페이지는 예약일에 신청자들이 몰려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일이 흔히 벌어졌었다. 그 정도로 수요가 폭발했고,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했다. 공영방송은 가격이 높은 이유를 직접 목격하면서도 그것과 가격을 연관지어 인식하지는 못한다. “평일 낮 최고 그린피가 24만 원에 달하는 데도 아마추어 골퍼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었다”고 보도하면서도 “고객을 봉으로 알고 악덕한 모습”을 보인다고 질타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골퍼들이 끊임없이 몰려드는데, 이 골프장이 가격을 인하할 이유가 있는가.


골프장 그린피는 조만간 인하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렇게 되는 것은 국회에서의 최고가격 규제 법안 때문도 아니고 공영방송이 질타해서도 아니다. 그 이유는 이미 공영방송 보도에도 나와 있는 바, 인터뷰를 한 골퍼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저도 여기 다닌지가 거의 8-9년 됐는데 최고 개판이에요....내가 봤을 때는 여기는 안 와야 돼요. 저도 이제 안 오려고요.” 이미 한참 전부터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가 종료되고 해외 골프가 늘어나면 골프장 그린피가 내려갈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국내 골프장의 서비스 품질이 가격 대비 형편없어 빠져 나가든 아니면 해외 골프가 저렴해서 빠져나가든 수요자들이 외면해서 수요가 줄게 되면 골프장 그린피는 자연히 내려갈 것이다.



권혁철 자유시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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