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을 '샤워실의 바보’라는 우화를 통해 묘사했다. 프리드먼은 이 우화를 통해 정부의 무능과 어설픈 경제정책을 비판했다. 이 우화는 이렇다.
샤워실에 들어간 바보가 냉수와 온수가 나오는 수도꼭지를 튼다. 잘 알다시피 냉온수 비율을 잘 맞추었다 해도 대체로 처음 나오는 물은 차가운 물이 나오고, 조금 기다리면 따뜻한 물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찬물이 나오자 이 사람은 수도꼭지를 온수 방향으로 급하게 돌려 버린다. 그러자 이번에는 너무 뜨거운 물이 나온다. 깜짝 놀란 이 사람은 수도꼭지를 다시 냉수 방향으로 급하게 돌려 버린다. 이번에는 또 너무 차니까 다시 온수 쪽으로, 그리곤 다시 냉수 쪽으로...
작금 금융당국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이 우화의 '모범 사례’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작년 초 금융당국은 위축된 부동산 시장을 떠받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끌어내렸다. 또 서민을 위한 것이라며 디딤돌이니 버팀목이니 하는 저리(低利)의 정책 대출 상품도 내놓았다. 찬물이 나온다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방향으로 수도꼭지를 확 틀어버린 격이다. 그 결과, 가계대출이 늘고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시행을 두 달 연기하자, 이른바 '대출 막차’를 타야 한다는 압박감에 너도나도 은행 창구로 몰렸다. 이윽고 '부동산 가격 폭등’ '가계빚 폭증’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금융당국은 이제는 대출을 급격하게 축소시키는 쪽으로 급선회한다. 찬물 쪽으로 수도꼭지를 확 틀어버린 것이다.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지시를 따르느라 갈팡질팡하고,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은 금융당국의 규제와 통제가 덜 미치는 대출처와 대출 방법을 찾아 나서고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관치금융’의 적나라한 민낯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축소를 주문하자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인상했다. 이것이 실수요자의 이자 부담만 늘린다는 지적이 있자 금융당국은 '대출 금리 인상은 우리가 바란 게 아니었다’며 금리 인상 아닌 다른 대책을 주문했다. 그러자, 은행들은 부랴부랴 주택담보대출 최장 만기 30년으로의 축소, 1주택자 주택담보대출 및 전세대출 중단 등의 대책을 쏟아냈다. 불과 2-3주 만에 5대 은행이 내놓은 대출 제한 및 축소 대책이 10여 건에 달한다. 이번에는 실수요자까지 대출이 막혔다는 비판이 나오자 금융당국은 실수요자 보호를 강조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실수요자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어떤 대출 수요자가 실수요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도 기준도 사실상 없다.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와 통제, 그리고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된 부문이 금융 부문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관치’가 극심한 부문 중 하나가 금융 부문이다. 규제와 통제가 심한 부문일수록 시장은 왜곡되고 경쟁은 제한되며,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샤워실의 바보’ 우화를 말한 프리드먼은, 윤석열 대통령도 수차례 읽고 감명을 받았다는 유명한 책 『선택할 자유』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장에서의 자발적인 교환은 자유와 번영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런데, 정부 권력이 시장에 대한 통제와 규제를 함으로써 자유는 침해당하고 경제는 침체에 빠진다. 따라서, 자유와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통제로 인해 왜곡된 시장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지나치게 확대된 정부 권력을 축소시켜 '작은 정부, 제한된 정부’로 가야 한다.
마침 정부도 '작은 정부’를 본격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를 본격적으로 지향하겠다면서, 중점적으로 추진할 10대 핵심 규제개혁 과제도 확정했다. 정부 몸집을 줄이고, 규제를 해소해 민간이 주도하는 역동경제가 구현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보도를 보면 금융 부문에 규제개혁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가장 낙후된 부문인 금융 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개혁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권혁철 자유시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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