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자유를 억압하는 연금 개혁

김수철 / 2024-08-27 / 조회: 241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이슈가 하나 있다. 바로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대표적인 국가 주도의 사회보장 시스템이다. 수많은 직장인과 기업은 국민연금 기여분을 내고(각각 4.5%) 이를 적립한 사람들은 만 62세부터 가입 기간 평균소득 대비 40%의 소득 대체율에 해당하는 국민연금을 받게 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지속되는 출생아 감소와 노인인구 증가로 기금의 운용이 불투명해 지면서 국민연금 요율을 올리는 방안이 대두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9%의 요율을 13%까지 올린다는 복안이다. 다만 이럴 경우 납세자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을 우려해 소득 대체율도 40%에서 44%까지 올려준다는 당근을 내놨다. 특히 일부 정치권에서는 45%까지 올리자고 이야기하며 포퓰리즘 논쟁이 불붙기도 했었다. 일명 '더 내고 더 받기'라 불리는 국민연금 개혁 문제가 그것이다.


문제는 이런 해결책이 '조삼모사’라는 점이다. 당장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 출생율을 자랑하고 있으며, 고령화 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이로써 2050년대에는 연금 기금이 고갈 난다는 추산이 나온다. 이 추세대로면 현재 1990년대생은 연금을 퍼붓기만 하지 한 푼도 못 건질 공산이 크다. 이번 대책으로 요율을 4%p 올렸는데 문제는 소득 대체율마저 올려서 들어오는 돈 못지않게 나가는 돈도 커진 상황이라 연금 고갈이란 결말은 해결되지 못한 상태이다. 심지어는 소득 대체율을 45%까지 올리자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를 채택할 경우 기금 고갈의 시계가 더 빨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것이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강제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의 국민연금에 대한 반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그들은 자신의 소득 상당수를 강탈 당하지만 미래에 과연 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크다. 가뜩이나 불신이 깊은데, 강제로 돈까지 떼이는 상황이니 불만은 점점 커져간다.


40여 년 전 이 상황을 기막힌 통찰력으로 예측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선택할 자유》를 집필한 밀턴 프리드먼이다. 그는 《선택할 자유》에서 놀랍게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정확하게 예견했었다. 당시 미국에서 붐이 일던 복지 정책에 관한 비판을 하면서 특히 연금제도가 갖는 모순을 논리정연하게 개진했다.


"사회보장제도의 재정상의 문제는 다음의 간단한 사실로부터 발생한다. 즉 이 제도로 연금을 받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며, 이 연금을 지급하기 위하여 보험료를 내는 근로자의 수보다도 계속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216~217p)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 연금 '더 내고 더 받기’의 본질을 신랄하게 비판한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사회 문제인 연금 운용의 불투명함을 오래 전에 꿰뚫어 본 대단한 혜안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는 연금의 또 다른 문제인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문제점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젊은 세대에서 연로한 세대로 소득을 강제 이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17p)


프리드먼에 의하면 시장 경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기반해 최적의 효율을 낸다. 정부의 개입이 커질수록 개인의 선택할 자유는 억압받고 경제는 비효율의 늪에 빠진다는 것이다. 연금 요율의 상승으로 생산가능인구에 속하는 젊은 직장인의 선택은 구속받게 된다. 공제로 인해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그렇지 않았다면 구입할 재화의 양이 줄어들어 민간 경제에도 악영향을 준다. 게다가 기업들도 정부에 의한 사회보장 정책에 부담하는 몫이 상승하면서 민간 경제는 위축된다.


하지만 연금 부담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사회 정의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국민의 형평성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이런 주장의 허구성 또한 일찍이 간파했다. 프리드먼은 미국판 국민연금이 '빈곤한 이에게서 부유한 이로 소득이전' 이라고 일갈했다. 빈곤한 가정 출신은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하고 그만큼 세금도 일찍 납부하게 됨을 지적했다. 반면 연금의 수혜 대상은 빈곤한 가정도 있지만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 혜택을 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얄궂게도 빈곤한 노동자가 중산층 이상 계층의 생활 보장을 위해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월급의 일부를 희생하는 아이러니가 일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연금 보험료 납부는 빈부와 상관없이 월급에서 고정적 비율을 징수하기에 도리어 상대적 빈곤 세대가 더 큰 부담을 떠맡고 있는 형국이다.


이렇듯 개인의 선택할 자유를 제한하고, 시장 경제에 역행하며, 사회 정의 구현이란 명분도 사실이 아닌 국민연금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공무원 연금, 사학 연금 등은 이미 적자가 나서 국민 연금 적립금으로 메워주고 있다. 연금을 통합하고, 변화된 재정 상황을 솔직히 인정하고 수급 금액을 낮은 방향으로 조정해 직장인의 선택할 자유를 돌려줘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 인구 시대가 수십 년 후에 도래할 것을 대비해 노년층의 구직 열망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노년층이 일정 금액 이상의 수입을 얻으면 연금을 받지 못해 오히려 일자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프리드먼은 이 책에서 선택의 자유를 통해 개개인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고, 개별 경제 주체의 이기심이 모여 궁극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이익을 보는 이타적 사회의 구현이 가능함을 역설했다. 최근 화두에 오른 국민연금 논쟁은 반시장적이고, 미래 재정도 불확실하다. 게다가 연금 수급 변수 때문에 초고령 사회에서 노인 근로 의욕도 저하되고 있다. 오히려 소득 대체율을 낮게 조정하고 현재 직장인에게 부담 지울 요율도 경감시켜 경제적 자유를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프리드먼이 말했듯이 시장의 힘을 통해서만이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근의 국민연금 논의가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사회 후생을 증대하는 이타심은 의타심이 아닌 프리드먼이 말한 개인의 선택할 자유를 통해 가능함을 깨닫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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