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를 향한 제안] 약 배송 허용법

윤주진 / 2024-01-23 / 조회: 2,856


vol 12 약 배송 허용법_22대 자유 입법 과제.pdf



G7은 합법, 한국은 불법인 약 배송, 비대면 진료 정착 위해 허용해야 

• 비대면 진료 한시적 허용 종료와 함께 다시 막힌 약 배송시범사업 효과 가로막는 요인

 약물 오남용·오염·복용지도 한계 등 '반대 논거' 설득력 낮아, 1957년 도입된 낡은 규제 고쳐야

 국민 일상에 자리잡은 비대면 진료, 그 효과·편의성 온전히 누리려면 약 배송 마지막 단추 꿰야


◈ 자유기업원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경제·기업 분야를 비롯해 정치·사회·교육·문화·외교안보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22대 국회가 자유주의 가치에 입각하여 추진해야 할 22대 입법 과제를 선정해 제안합니다.


■ 들어가며

기존 업계의 거센 반발로 인해 신산업 연착륙이 어려움을 겪는 가장 대표적인 업종이 '비대면 진료’다. 코로나19 펜데믹 당시 보건 당국이 감염병 위기대응을 '심각 단계’로 격상하면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는 '경계 단계’로 위기대응 단계가 하향조정 되면서 중단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사용자가 늘어나고 관련 업계의 허용 요구 목소리가 커지면서 보건 당국은 시범사업 형태로 비대면 진료를 일부 허용하고 있다. 최초에는 사실상 재진(같은 진료과목에 의한 두 번째 진료)에 대해서만 허용하던 비대면 진료를, 지난 2023년 12월부터 대폭 범위를 확대하여 초진(최초 진료) 환자도 비대면 진료를 일부 경우에 한하여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시범사업 추진에도 불구하고 그 규제가 전혀 풀리지 않은 요소가 있다. 약 배송이다. 처방전에 따라 제조된 의약품을 수령, 복용하는 것이 사실상 진료 전체 과정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약 배송 전면 금지는 비대면 진료 정착의 핵심 요소로 거론된다.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은 비대면 진료의 성공적 도입을 위한 약 배송 허용 입법 과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 주요 현황과 현행 제도의 문제점

코로나19 감염자가 2020년 초부터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병원과 약국 등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을 점차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대면 진료(원격 의료)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시민단체, 언론 등에 의해 강하게 제기되기 시작해 정부는 최초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대책을 발표한다. 2020년 3월 보건복지부는 「전화상담 또는 처방 및 대리처방 한시적 허용 방안」을 시행한다.


이후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비대면진료 허용 대책이 보다 구체화되고, 반대로 코로나19 위기가 잦아들면서 비대면 진료는 시범사업 형태로 축소 허용된다. 약 배송과 관련 정책 경과는 다음과 같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작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단계부터 약 배송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섬‧벽지 환자, 취약계층, 희귀 질환자로 그 대상이 좁혀지면서 사실상 비대면 진료 약 배송 사업은 전면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비대면 진료 이용 증가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이들이 약 배송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비대면 진료 자체를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주요 선진국의 약 배송 현황은 어떻게 될까?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2023년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G7 국가의 약배송 허용 현황은 다음과 같다.

독일의 경우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2004년부터 의약품의 배송 판매가 허용된 독일에서도 지역약국 경쟁력 강화를 위해 처방의약품의 배송 판매는 금지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2년 간 사회적 논쟁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국민적 숙의 결과 독일은 약 배송을 계속 허용하기로 하면서 대신 지역 약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선에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다. 참조할만한 선례다.


국내 약 배송이 허용되지 않은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일단 법령상으로 약사법에 의해 막혀 있다.

약사법은 약국 또는 점포 이외 장소에서의 의약품 판매를 금지한다. 문제는 과연, 배송도 이 판매라는 개념에 포함되는 것인가 여부다. 관련하여 헌법재판소의 판례가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한 약국의 약사는 전화 상으로 신경정신질환 환자의 질병, 증상 등을 상담한 후 택배를 이용해 환자에게 의약품을 배달하였다가 벌금 2,000만 원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이에 해당 약사는 불복, 항소하였고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또 패소하여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게 된 것이다.


헌재는 약사법 50조 1항과 그 처벌 규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앞서 언급한 판매와 배송의 관계 문제에 대해서, 헌재는 “'판매’란 상품을 일정한 값을 받고 파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의약품의 판매에는 의약품의 주문, 조제, 인도, 복약지도 등 소비자로부터 의약품을 주문 받고 인도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구성하는 일련의 행위가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소비자에게 의약품이 전달되는 절차까지 모두 판매에 해당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약 배송이 허용되지 않은 근본적 이유는, 바로 약사들의 강력한 반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한약사회는 2022년 8월 “조제약 배달은 조제약 오배송, 불법 조제약 배송, 명의도용 등으로 인한 의약품 오남용과 건강보험재정 누수, 무자격자 조제, 환자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상존하며, 처방오류를 파악하기 어렵고 이에 따른 약화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게 된다”며 약 배송 합법화를 위한 약사법 개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냈다. 강력한 이익단체 중 하나인 약사회의 공개 반발로 정부·국회는 약사법 개정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 기존 입법 논의 및 대안

그렇다면 약사법 개정은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18대 이후 국회에 발의 된 법안 현황을 보면, 약사법 개정 시도는 드물었다. 18~21대 4대에 걸친 임기 중에 약 배송과 관련하여 약사법을 개정하려는 입법 추진 사례는 딱 한 차례 있었다. 2011년 3월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이종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이 전 의원은 당시 법안의 제안 이유로 “원격의료를 받은 환자에 대하여 원격지의사가 속한 의료기관의 의약품 조제 및 배송을 허용함으로써 보건의료취약지역에 거주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의약품 구입에 따른 문제를 해소하고 국민건강을 증진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법안은 '원격의료 처방에 관한 특례’로 원격지의사가 속한 의료기관의 조제실에서 그 처방에 따른 의약품을 조제하여 환자에게 배송할 수 있는 내용의 조항을 신설하고자 했다. 이 법은 18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약 배송 허용과 관련해 또 살펴볼 주요한 목소리는, 다름아닌 앞서 소개한 헌법재판소 판례 중 이영진 재판관의 반대의견이다. 이 재판관은 약 배송을 금지하는 약사법의 시대착오적 인식, 현실과 괴리된

우려에 대해서 조목조목 짚고 있다.

이영진 재판관의 의견은 과거 약사법의 약국 외 의약품 판매를 금지한 이유에 대한 논리적 반박을 담고 있다. 실제 약사법 50조1항은 과거 약사 면허 미소지자, 소위 말하는 '장돌뱅이 가짜약사’가 불법으로 의약품을 사들여 길거리나 비공개 점포 등에서 사람들을 모아 약을 판매하던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1957년에 도입된 이 법은 현재와 그 취지가 전혀 맞지 않게 된 것이다.


판매 안에 배송도 포함된다는 헌재 해석에 대한 반대 의견도 나온다. 구태언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행정부가 확대 해석하는 것이 문제”라며 “명확히 판매와 배달은 별도 행위”이며 그 논거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 배달비를 별도로 지급하는 것이 보편화됐다는 점을 들기도 했다.


■ 22대 국회를 향한 제안

비대면 진료는 이미 국민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의료 서비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2023년 3월 기준으로 코로나19 3년 기간 동안 약 1,379만 명이 약 3,661만 회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재택치료 건수를 제외하고도 736만 여건으로 일반 의료소비자의 비대면 진료 선호 현상을 대변하는 수치다.

의료종사자 이익 단체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대상을 확대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워킹맘·워킹대디, 취약계층, 노년층, 장애인 등의 비대면 진료 허용 목소리가 정부를 움직였다. 여기에 비대면 진료 혁신 스타트업의 부도, 폐업 위기까지 겹치며 정부의 소극적 대응이 거센 비판을 받은 것이다. 결국 2023년 12월부터 윤석열 정부는 초진까지 허용하는 매우 획기적인 시범사업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업계의 호평을 받고 있다.

문제는 약사법 허들이다. 과연 약사법 개정은 가능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세 가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말 그대로 약사법 50조1항의 폐지 또는 개정이다. 약 배송 문제 외에도, 온라인 상의 의약품 판매를 허용하고 있는 선진국 현황에 비춰봤을 때 의약품을 반드시 약국과 점포에서만 판매해야 한다는 조항 자체를 삭제하거나, 판매 가능 장소를 온오프라인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 아니면 네거티브 방식으로 조항 전체를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허용이 금지되는 판매 유형만 열거하여, 그 외에는 모든 판매 경로를 열어주는 방식이다. 가장 모범적이며 근본적 차원의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시행령을 통한 보완이다. 약국·점포 외 판매 금지 조항은 그대로 두되, 예외 사항을 대통령령에 위임하도록 하고, 보건복지부가 시행령을 통해 배송, 온라인 판매 등을 허용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따르게 되면 정부 부처가 여론에 따라 입장을 쉽게 바꿀 소지가 있으므로 불안정적이다. 정권 성향이나 정부에 대한 외부 단체 압력에 따라 시행령이 바뀌게 되면 비대면 진료 업계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와 기업 성장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셋째, 현실성은 떨어지나 배송을 판매의 한 단계로 이해하는 기존 헌법재판소 판례를 뒤집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법 개정 없이도 의약품의 배송은 판매에 해당되지 않게 돼 가능해진다. 다만, 최근에 나온 헌재 판결을 스스로 뒤집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커 이는 현실성이 다소 떨어진다.

결론적으로 법 개정이 가장 유효한 해법임을 알 수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지역구 약사 유권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국회의원이 약사법 개정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이러한 방어주의적 태세가 22대 국회에서도 이어진다면 국내 비대면 진료 산업의 발전은 또 도약 기회를 상실한다. 의약품보다도 훨씬 더 높은 신선도가 보장돼야 할 수산물마저 아침에 주문하면 저녁에 배송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약국을 찾아 처방을 받게 하더라도, 여러 병원과 여러 약국을 전전하면 얼마든지 오남용은 그대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약 배송을 금지해야 할 명분은 점차 사라지고, 약 배송까지 허용됐던 코로나19 당시 비대면 진료 서비스의 효용성과 편의성에 대한 대중의 기억은 선명하다.

22대 국회는 과연 약사법 개정의 용기를 낼 수 있을까? 22대 국회에서도 의료 소비자의 권익이 과연 이익단체의 목소리에 또 묻히는 것은 아닌지 예의주시 할 필요가 있다. 22대 국회가 국민 생활 속 비대면 진료 도입의 최종 걸림돌로 전락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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