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의 대가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중요할 수 있고 사람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행동경제학은 무제한적 합리성(unbounded rationality)을 가진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을 가정한다.
그러나 실제는 어떠한가? 불현듯 돈 봉투를 놓고 사라지는 날개 없는 천사,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구조를 돕는 의인, 그리고 귀중한 휴일을 반납하고 연탄을 나르는 봉사자까지. 우리는 곳곳에서 다양한 유형의 비(非)경제적 인간을 수시로 목격한다. 아마 탈러가 행동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이유도 경제학을 진짜 인간의 모습에 가깝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행동경제학을 통해서 전통적인 경제학이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여러 비합리적 행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를 악용해 사람들의 비합리적 행위를 조장하고, 이를 ‘넛지(nudge)’로 포장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넛지란, ‘타인의 행동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한다. 직역하면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는 뜻이다.
필자가 소속된 연세대학교는 2013년 3월부터 교육부의 자율경비 선택납부제 권고조치에 따라 자율경비를 등록금과 분리해 고지하고 개인이 이를 선택적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당연하게 납부하던 학생회비는 오롯이 학생의 선택에 맡겨지게 됐다. 선택납부제 시행 첫 해, 1만원으로 산정된 1학기 학생회비 납부율은 40%였고, 2학기에는 28%까지 떨어지게 됐다. 기존 학생회에 공급되던 재원이 반의반 토막이 난 것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부 학생 대표자들은 자율경비 옵트아웃(opt-out)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기본적으로 학생회비 체크박스에 우선 체크를 하고, 이를 학생들이 일부러 풀지 않는 한 자동으로 납부가 되도록 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디폴트값 효과(default effect)를 노리자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회의적이었다. 당시 행동경제학을 알진 못했으나, 현상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미봉책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선택납부제 시행 첫 해, 1학기와 2학기의 납부율 차이인 12%p의 의미를 설명했다. 최근 자료를 찾아보니 학생회비 납부율은 20%에도 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문제는 여전히 이같은 상황이 답보하며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법은 넛지가 아니라 학생사회의 정치적 효능감 제고에 있지 않을까 싶다.
행동경제학은 잘 배우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할때 훨씬 가치있게 작동한다. 이를 오남용하여 낭패를 보는 일은 생각보다 잦다. 최근 카카오의 사례만 해도 그렇다. 카카오는 지난해 발생한 카카오톡 서비스 장애의 사과 차원에서 전 국민에게 이모티콘을 지급했으나, 추가로 제공한 톡서랍 플러스 이용권이 일종의 관성(inertia)을 노린 것이 아니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이용권의 무료 제공 기간이 종료되면 자동으로 유료 서비스로 전환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선한 의지를 믿고 싶으나, 의심하는 사람들의 시선 역시 합리적이다. 누구나 행동경제학을 배우지 않아도, 행동경제학적 사고방식을 습득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구한민 자유기업원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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