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충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일까. 한반도 역사상 현재만큼 자유롭고 풍요로웠을 때도 없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요즘만큼 그 결을 완전히 달리하는 사회적 갈등의 첨예한 대립이 있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인간사회의 모든 갈등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한정된 자원에서 기인하고, 인간의 역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연속이었다. 비록 이 한정된 조건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것에 대한 자신의 위치를 상당히 자율적인 수준에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는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자원에만 온전히 의존해서 돌아가는 경제체제가 아니다. 이러한 시기는 인간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또한, 인간이 이로부터 상당한 자율성을 가지고 이 원초적 속박에서 '해방’된 지는 범지구적인 범주에서 보았을 때는 1세기도 채 되지 않았으며, 아직 이러한 자율을 획득하지 못한 나라들 역시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는 부가가치를 통해 보다 항구적인 '자유’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경제체제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쓰는 화폐의 가치는 더 이상 금본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임의성은 양날의 칼과 같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현인은 이 문제, 즉 금본위와 인플레이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 이것이 내가 이번 공모전을 계기로 이 책을 다시 읽기로 했을 때 잡았던 포인트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인플레이션이란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고, 앞으로 적어도 향후 2년간은 지속될 가능성이 큰 전 세계적인 위기이며, 동시에 그로 인한 파급은 지난 역사의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을 알코올 중독에 비유한다(9장). 또한 단언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인플레이션의 원인들(“탐욕스러운 기업인, 자기이익만 주장하는 노동조합, 절약할 줄 모르는 소비자, 아랍의 족장(p.326)” 등등)은 지속적이고 전범위적인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키는 근본 요인일 수는 없다고 말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의 문제는 현재의 인플레이션 변화율에 영향을 끼치는 일시적 요인이거나 촉발시킨 촉매제일 수는 있지만,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위기를 발생시킨 근본 원인은 아니라는 뜻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딱 잘라 말한다. 인플레이션은 근본적으로 통화적 현상이고, 이는 경제학에서 몇 없는 “분명한 명제”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그 원인 역시 화폐량의 맥락에서 철저히 이해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것임에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 인플레이션이 위험한 가장 큰 까닭이라고 말이다.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이 술을 마시는 순간에는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술을 깨고 난 후에는 악몽과 같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술을 먹고 술에서 깨면 또 고통이 반복이 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출구가 없다. 인플레이션 역시 이와 유사하다. 처음에 시중에 돈이 풀리면 일정 기간 동안에는 구매력이 좋아지고, 시장에는 활기가 돈다. 사람들 대부분은 좋은 방향으로 편향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만 인식을 한다. 하지만 이는 정보의 신호등으로서의 가격의 오류이다. 신호등이 고장이 나면 교통사고가 연이어서 그리고 동시 다발로 날 수밖에 없듯이, 올바른 시장 가격이 표시되는 것에 오류가 생기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최악의 상황은 스태그플레이션, 즉 경기는 침체 일변도인데 물가는 계속 오르는 모순이 현상화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밀턴 프리드먼이 말한 대로 인플레이션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통화량에 의한 화폐적 현상이라는 게 명제적인 사실이라면, 통화량을 줄이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시피, 이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경제란 일상의 생활이고, 현실이며, 인간의 욕망이기에 그러하다. 사람들은 당장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으면, 그것이 눈속임이라고 할지라도 기꺼이 넘어갈 요량이 있지만, 고통스러운 진실을 견디는 것은 꺼리고 싶어 한다.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 고통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풀린 경기 부양책으로 인해 뭔가 굉장히 풍족해진 것 같이 보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책적으로 그렇게 많은 돈이 풀렸음에도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졌고, 그에 따라 사회적인 갈등의 양상도 과거와는 그 결과 강도를 달리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시장의 실패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정부 실패로 보아야 하는가. 오히려 여러 제약적 법들과 정치적 요구로 인해 기업의 활동은 상당히 위축되었던 게 지난 몇 년간의 사실이다. 프리드먼의 말대로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고, 금본위가 아닌 현재, 돈의 가치를 보증하는 권력을 가진 집단은 곧 정부이다. 그렇다면 통화량의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을 정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프리드먼의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통화 정책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권력을 제어하는 장치로서 금본위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적어도 『선택할 자유』에서는 이에 대한 프리드먼의 의견은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럴 경우 금본위의 목적은 디플레이션, 즉 통화량을 억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적어도 인플레이션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장이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위축이 되지 않을까. 시장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가장 합리적인 것이다. 지급보증을 약속하는 종이(지폐)의 가치를 담보하는 게 사람들 사이의 믿음인 것이 더 나은 것인지, 아니면 금의 무게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프리드먼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그 나라의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 나라의 항구적인 경제력과 국가 재정의 경영 능력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프리드먼은 금보다는 사람들이 화폐의 가치에 대해 공유하는 믿음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믿음에 기반한 경제체제라는 말은 뭔가 그 근저의 뿌리가 깊지 못한 신기루와 같이 들린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누리는 번영은 바로 이러한 경제체제로 인한 결과이다. 아무리 시니컬한 사람도 이를 집산주의적 통제 체제의 결과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자명한 사실을 부정하는 지록위마 같은 짓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단지 주어진 자원에만 의존하는 것을 넘어, 무형의 가치를 유형으로 만들어내는 경제체제를 이룩한 것은 이 믿음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올바르고 프래그머티즘적인 실질적 선으로 이어지게 만들게 해주는 조건이 곧 자유이다. 프리드먼은 말한다. “다수의 원칙이라는 투표방식은 의견의 일치 없이 순응할 것을 요구하지만, 시장은 순응이 없는 진정한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가능케 한다(p.93).”말이다. 또한 강조한다. 토마스 제퍼슨이 믿은 자유와 평등은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동일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하고, 그렇기에 그 민주주의의 방점은 결코 다수의 의견에만 편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 믿음이 온전하고 그래서 그것이 시장의 가격이라는 합리적이고 실제적인 신호로서 올바르게 작동을 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경제체제는 정치적인 계산기와 논리에 의해 더욱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명분은 바로 우리들 스스로가 제공한다.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p.178)”라는 말은 매우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상하다. 왜냐하면 사람들 각자가 필요로 하는 양과 질은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를 어떻게 정량화하고 정성화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서? 그리고 다수결로 뽑힌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한에 의해서? 이는 우리 스스로 자율적 자유를 포기하는 행위가 아닐까. 뭔가 주객이 전도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 인플레이션의 위기도 분명 이런 맥락에서 한번 반성을 해봐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모든 게 총체적으로 얽히고설켜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지경인 것 같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자유란 것을 한 번도 제대로 알려 하지 않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권리 그리고 책임을 너무도 쉽게 방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NO. | 수상 | 제 목 | 글쓴이 | 등록일자 | |
---|---|---|---|---|---|
20 | 대상 | `결정할 권력`에 맞서는 `선택할 자유` 정신건 / 2024-08-27 |
|||
19 | 대상 | 자유의 위기와 구속의 길: 《노예의 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김현익 / 2024-08-27 |
|||
18 | 최우수상 | 위스키 한 잔에 담긴 노예의 길 금성윤 / 2024-08-27 |
|||
17 | 최우수상 | 평등을 갈망하는 우리들 임성민 / 2024-08-27 |
|||
16 | 최우수상 | 반지성의 시대에 자유와 이성을 정회훈 / 2024-08-27 |
|||
15 | 최우수상 | 노예가 될 것인가, 주인이 될 것인가 김수만 / 2024-08-27 |
|||
14 | 최우수상 |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자유 김유진 / 2024-08-27 |
|||
13 | 최우수상 | 도덕적 인간, 윤리적 인간 김회연 / 2024-08-27 |
|||
12 | 최우수상 | 유토피아를 향한 잘못된 욕심 강수진 / 2024-08-27 |
|||
11 | 최우수상 | 선택할 자유를 억압하는 연금 개혁 김수철 / 2024-08-27 |
|||
10 | 최우수상 | 더 많은 자유를 위한 선택 임경효 / 2024-08-27 |
|||
9 | 최우수상 | 하이에크가 사회 초년생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강선행 / 2024-08-27 |
|||
8 | 우수상 | 하이에크와 현대사회의 자유주의 로드맵 김은준 / 2024-08-27 |
|||
7 | 우수상 | 자유의 원칙과 인권의 관계 서현순 / 2024-08-27 |
|||
6 | 우수상 |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은 자유와 안전 그 어느 것도 누릴 자격이 없다. 서민준 / 2024-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