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기생충> 아카데미상 쾌거는 국가 문화지원 덕택이다?

이문원 / 2020-02-17 / 조회: 9,801

이는 사실 한국 언론에서 크게 회자된 내용은 아니다. 지난 10일 (미국 LA 현지시간)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한국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 부문 수상에 성공하자, 늘 한류를 경계하던 일본 언론 측에서 내보낸 주장이다. 아카데미상 시상식 당일 저녁 야후재팬 메인화면에 걸려 2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린 인터넷매체 엔카운트 2월 10일자 기사 '오스카 역사 바꾼 한국영화 <기생충>이 일본에 내민 과제’가 한 예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계 모든 노력의 결실이다. 한국영화계에서는 국책으로서 뛰어난 영화 제작을 지원한다. 1990년대 후반 부산국제영화제를 취재하고 놀란 적은 KOFIC(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금전적, 인적 지원의 후함이었다. 인구가 일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000만 명 규모의 한국에서도 10억엔 이상 규모의 작품을 제작한 것은 이 같은 공적지원이 있어서이다.”


상당히 엉뚱한 해석인데, 이처럼 '국책이기에 뛰어나다’는 식 논리로 K팝이나 한국영화 성공 '비밀’을 분석한단 일본기사들은 무수히 많다. 아니, 사실상 대부분이라 봐도 좋을 정도다. 활자매체보다 방송으로 갈수록 심하고, 그중에서도 버라이어티 방송으로 갈수록 더 그렇다. 심지어 TBS라디오 '액션’에서 아카데미상 시상식 중계를 맡은 영화평론가 마치야마 토모히로는 “한국에선 국비유학으로 영화 스태프들을 할리우드 각 현장에서 공짜로 일하게 해 노하우를 배워왔다”는 등 논리를 아예 시상식 중계 도중 펼치기도 했다.


당연히 근거는 없는 얘기다. 그런데 의외로 역사(?)가 꽤 긴 논리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1년 2월 26일자 후지TV '미스터 선데이’ 방송분에서 NHK 기자 출신 패널 키무라 타로가 “한류열풍은 한국정부가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를 조작해 이뤄지고 있으며, 브랜드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부터다. 이후 국가브랜드위원회 측이 이에 항의하자 후지TV에서 사과방송을 내보내며 상황은 마무리됐지만, 이 같은 논리 자체는 살아남아 '다른 버전’으로 계속 이동됐다. 위 TBS라디오처럼 “할리우드 국비유학” 같은 식으로 변종을 이루면서 말이다.


한국 측의 지속된 항의와 반론에도 꿋꿋하게(?) 같은 논리를 반복하다보니, 결국 일본 바깥으로까지 넘어갔다. 미국과 유럽 등지의 K팝 팬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되다가, 2016년 3월 23일과 29일 2회 걸쳐 방송된 영국 공영방송 BBC 라디오 다큐멘터리 '한국, 고요한 문화 강국’에서까지 거론되기에 이른다. 이에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다큐멘터리에 직접 출연해 “K팝, K컬쳐와 같은 한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생각해보면 정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란 점을 알 수 있다. 수익을 내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던 중소기업이나 영화감독에 의해 자체적으로 생겨난 것”이라며 기존 통설을 부정하는 수순에 이르렀다.


그럼 실제론 어떨까. 아무리 근거 없는 주장일지라도 그 '맥락’ 자체는 과연 맞는 얘길까? 하나씩 살펴보자.


국가 지원은 <기생충> 같은 상업영화, 아카데미상 캠페인 등과는 아무 관련 없다


일단 한류를 지원한다는 문화체육관광부 측 예산내역부터 확인해보자. 2011년, 그리고 2016년보다 한층 확대된 2020년 예산 6조4803억 원 중 콘텐츠 관련 최대 예산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실감형 콘텐츠산업 육성에 책정된 870억 원이다. 언뜻 미래지향형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투자 같지만, 실제적으론 공공서비스 및 산업과학기술 분야에 응용되는 기술지원이 골자다. 이외에 국공립 박물관 및 미술관 등 주요 문화관광 거점에 실감콘텐츠 체험관을 조성하겠단 목표. 한류 콘텐츠와 이렇다 할 연관은 없다.


'한류’란 이름으로 책정된 예산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류축제 및 K팝 전용 공연장 확충, 해외에서 한국 생활문화상품을 소개하는 '모꼬지 코리아' 신설, 그 외엔 콘텐츠 관련 지식재산 보호 및 콘텐츠 표준계약서 제정 및 개정, 해외 초중고 한국어 과목 채택 및 대학 한국어학과 개설 유도 등이다. 나머지 핵심예산도 콘텐츠 모험투자펀드 신설, 콘텐츠 기업보증 확대 등으로 나온다. 모두 위 일본 언론에서 ’넘겨 짚는' 부분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장르를 영화로 좁혀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실제 콘텐츠에 예산이 책정돼 지원되는 형태는 사실 <기생충> 같은 일반상업영화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절대다수가 단편영화 내지 다큐멘터리영화 등 '독립영화’란 이름으로 불리는 비상업적 콘텐츠들이다. 이른바 콘텐츠 '다양성’을 위해 지원된단 명분이다. 어떤 의미에서 <기생충>이나 방탄소년단 등에 공적자금이 지원된다면, 그건 국내에서조차 문젯거리가 된다. '이미 잘 나가는’ 업계에 국가가 자금지원을 한단 개념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과거에도 크게 다른 건 없었다. K팝 부흥초기, K팝 아이돌들 유럽공연에 해당국가의 한국대사관 측이 도움을 준 일은 있지만, 그 역시도 K팝 기업들이 현지 분위기를 익히고 노하우를 얻게 되면서 공적개념 도움을 받게 되는 일은 더 없었다. 결국 실제 벌어지고 있던 일은 위 김종덕 전 문광부장관 설명과 별다른 게 없단 얘기다. 그저 “수익을 내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던 기업들에 의해 자체적으로 생겨난 것”이 한류다.


<기생충>의 경우도 같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및 창업투자 자본들이 우르르 충무로에서 빠져나간 뒤로도 꿋꿋이 버텨냈던 CJ 측에서 그간의 노하우와 축적된 자본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국책’ 같은 요소는 어디서도 볼 수 없다. 심지어 아카데미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역량과 투자 역시 100% 기업 자체 노력에 기인한다. 파이낸셜뉴스 2020년 2월 10일자 기사 'CJ 'K컬처’ 지원 결실...'기생충’ 아카데미 시상식 주인공’, 그리고 같은 날 연합뉴스 기사 '오스카상을 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를 보자.


“CJ그룹이 '오스카 캠페인’이라고 불리는 '아카데미 수상을 위한 사전 홍보작업’에 들인 돈만 100억 원이 넘는다는 후문이다. 업계에선 아카데미 시상식 각 부문 투표권을 가진 수천 명의 미국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홍보 목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전한다.”


“BBC 방송에 따르면 오스카 최우수 작품상 수상을 위해 한 영화사가 쏟아 붓는 비용은 통상 약 1000만 달러(약 123억6천만 원)에 달한다고 영화 프로듀서이자 블로거인 스티븐 팔로우스는 추산했다. 이중 절반은 광고에 투입되고, 나머지는 심사위원, 관계자 시사용 DVD(스크리너) 제작과 시사회 개최, 연기자의 홍보행사 출연료, 홍보담당자 등에게 현금으로 들어간다.”


이 정도 돈을 써야 다른 할리우드 영화들과 비로소 '같은 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된단 얘기다. 아카데미상 수상이란 영화만 좋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이 정도 도박성 캠페인에 100억 원 이상을 쏟아 부을 수 있는 탄탄한 영화기업의 존재가 뒷받침돼야 한단 얘기다. 국가지원으로 영화 한 편 내놓는다고 될 일이 아니며, 그래서 아카데미상 후보지명까지 이르는 비영어권 영화들은 대개 유럽 등지 선진국들 영화들만 해당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가 만들어내진 않았어도 우리가 밥을 주고 있는 '국책 한류’ 논리


흥미로운 점은, 아마도 시샘에 의해 시작됐을 일본 언론의 위 '국책 한류’ 주장이 다른 나라들까지 번져간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같은 주장이 한국서도 특정부류에 '동의’를 얻어냈단 점이다. 주로 국가지원을 받는 독립영화인들, 그리고 어떤 식으로건 공적개념의 민간 접촉면적을 넓히려는 정치세력에 의해 '더 많은 지원’ 요구가 팽배해졌다.


실제 상황은 '국책 한류’가 아니지만, 앞으로 '국책 한류가 돼야한다’는 주장. 듣기만 해도 기이하지만, 사실 이런 주장은 좌익정치권에선 의외로 흔하게 나오는 주장이다. 한미FTA와 스크린쿼터 축소를 둘러싸고 등장했던 오마이뉴스 2007년 3월 9일자 기사 '한미FTA로 우린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의 한 대목을 보면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계영화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자본은 한국 영화자본과 비교할 수 없다. 어디 자본뿐인가. 세계적인 톱스타는 모두 할리우드 영화계에 있다. 할리우드 영화인 <그리스도의 수난>은 제작비가 2500만 달러였다. 국내영화 한 편당 제작비 10억으로 잡는다면 이 영화 제작비로 25편의 한국영화를 만들 수 있다. 이러니 기고 나는 재주가 있다고 한들 한국영화가 어디 경쟁상대나 될 수 있겠는가? (중략)

스크린쿼터 축소 압력은 우리 식탁에 73일만 김치와 된장을 올려놓으라는 말과 같다. 그리고 292일은 스테이크와 햄버거와 콜라를 올려놓으라는 것이다. 한국 영화관에서 73일만 한국영화를 보고 292일은 미국영화를 봐야 된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끔찍한가. 우리 삶이 얼마나 팍팍해지겠는가? 한국영화만큼 자국영화가 활발하게 제작되고 상영되었던 멕시코가 이미 그 경험을 했지 않은가?”


이런 식 패배주의와 공포조장, 그리고 그를 통한 공적지원 확대 주장은 언제부턴가 대중문화계를 둘러싸고 사실상 상존하다시피 했다. 그러니 저 일본 언론 측 날조된 논리를 자료를 조작해서라도 어떻게든 '팩트’로서 굳히려는 움직임이 빈번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K팝 해외시장 70% 이상을 차지하던 일본시장에서 K팝이 일시 주춤하자 '정부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처럼 쏟아지곤 했는데, 그러다 또 중국시장이 확대되면 일순 사그라들었다가, 중국이 한한령을 내려 수익이 줄어들면 또 튀어나오고, 그러다 방탄소년단 기점으로 미국시장이 새롭게 열리면 다시 또 사그라드는, 그야말로 '위기’ 때마다 목소리를 높이는 식의 꾸준함(?)을 보여 왔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저 '국책 한류’ 주장의 끈질긴 생명력은 일본 언론 등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 측에서 끝없이 늘려주고 있다고 봐야할 여지도 많다. 매년 어떤 명분으로든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은 늘어만 가고, 또 실제 민간업계와 접촉면적을 조금이라도 넓히려는 시도 역시 꾸준한 편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국책 한류’ 논리는 '우리가 만들어내진 않았지만, 우리가 밥을 주고 있는 괴물’이라고도 볼만 하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한국영화는 “국책이 아니었기에” 성공하고 성장해온 역사


끝으로, 이번 <기생충> 쾌거 관련으로 눈길 가는 지점 하나를 더 짚어보자. 언급했듯, 이번 아카데미상 쾌거를 놓고 일본 언론 측에서 '비결은 국책’ 운운을 다시 늘어놓자, 이번엔 한국서도 반발이 일어났다. 특히 젊은 층에서 그랬다. 민족주의적 차원에서 한국인의 예술적 자질을 폄훼하는 주장처럼 보여 공분을 샀다. 그런데 그렇다고 또 <기생충>은 국가 지원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긴 애매했다는 게 문제다.


그런 식 주장이라면 '앞으로도 국가 지원은 필요 없다’는 식 논리로 읽힐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좌익 성향 유저들이 많은 대다수 인터넷 커뮤니티 특성상 '그런 주장’은 또 하기 싫어하는 것이 지배적 분위기다. 그럼 이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 일본 측 논리를 부수면서, 동시에 '국가 지원’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서 찾아낸 '해결책’이 걸작이다. 아래는 일본 언론 측 보도가 나온 바로 다음날인 2월 11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들로 삽시간에 퍼져나간 '봉준호 감독과 한국영화계가 이룩한 성과를 국책이라 날조하는 일본에 반박할 때 참고하기 좋은 기사들’이란 포스팅의 일부다.


““앞서 공개된 MB정부의 문건을 통해 '문화계 좌파척결’ 시나리오가 있었고, 구체적인 살생부가 작성돼 실행된 정황은 확인됐다. (중략) 영화제작자 ㄱ씨의 말이다. “특히 이제 정권이 바뀌었으니 봉준호, 박찬욱 같은 빨갱이는 영화를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WP는 봉준호와 송강호 이외에 이미경(미국명 미키 리) CJ그룹 부회장까지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그린 영화 '기생충’은 자유로운 사회가 예술에 얼마나 중요한가란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대략 이런 식이다. 문화예술계에 대한 국가 지원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어찌됐건 <기생충>은 그렇게 탄생된 영화가 아니며, 그 이유는 감독과 회사 대표가 보수정권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인물들이기 때문이란 것. 스크린 독과점, 수직계열화 등등 이슈로 늘 '한국영화계를 망치는 주범이자 자본주의의 악’처럼 묘사되던 CJ 이미경 부회장이 순식간에 '핍박받는 민주투사’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물론 진실은 다르다. <기생충>은 물론 지난 사반세기 동안 한국영화 성과 자체가 1995년 이후 영화계에 발을 들이민 CJ, 롯데 등 기업들 분투 덕택이었다는 것, 그에 국가 지원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게 진실이다. 나아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영화 감독들,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등은 모두 저 '국가 지원’이 사실상 없던 시절 육성돼 성장한 이들이다. 오히려 국가 지원이 늘면 늘수록 그에 의존해 '흥행 부담 없이 편안한’ 독립영화계를 떠나지 않으려는 이들이 늘어나는 실정이다.


많은 의미에서 지금의 한국영화는 “국책이 아니었기에” “국가 지원이 사실상 없었기에” 성공했다고 볼 여지도 있단 얘기다. <기생충>도 그렇게 탄생됐고, 향후 그만한 성과를 거둘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처럼 일본서 시작된 한류 '국책 폄하’는 오히려 우리가 처한 실제 현실을 더 잘 알려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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