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제도의 목적과 증권집단소송제

도서명 손해배상제도의 목적과 증권집단소송제
저 자 김정호
페이지수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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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증권집단소송의 도입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있어 왔다. 이 논문에서는 현재 제안되어 있는 증권집단소송법률안들이 위법행동 억제와 손해전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근본 목적에 합치되는 지의 여부를 따져 보았다. 집단소송이란 피해자 중의 하나 또는 몇몇이 변호사와 공동으로 다른 피해자들의 명시적 위임없이 제기하는 소송이다.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피해자들도 집단소송에서 나온 판결의 결과를 그대로 적용받는다.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논의되고 있는 증권집단소송은 허위공시, 분식회계, 내부자 거래, 주가조작 등의 위법행동을 대상으로 한다.


상세 내용

제1장 들어가는 글

제2장 증권집단소송법(안)들의 내용 비교
제3장 손해배상제도의 목적와 불완전성의 보완
제4장 변호사 소송으로서의 증권집단 소송제
제5장 보상효과, 억지효과, 증권집단 소송제
제6장 대안


손해배상제도의 목적은 두가지이다. 첫째, 잠재적 가해자들로 하여금 타인에게 피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것(억지효과)이고, 둘째는 피해자의 손해를 전보해 줌으로써(보상효과) 지나친 방어 행동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같은 목적을 달성하려면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배상액이 위법행동으로 인한 사회적 순손실과 일치해야 한다. 


위법행동에 대해 소송이 제기되려면 기대되는 배상액이 소송비용보다 커야 한다. 따라서 피해자의 숫자는 많지만 개별 피해의 규모는 작은 사건들에 대해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은 작다. 허위 공시, 분식회계 등의 사건은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집단소송은 소송을 변호사의 사업으로 만들어줌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첫째, 발행시장에서의 위법행동으로 인한 피해자는 손해의 전보를 필요로 하지만, 유통시장에서의 위법행동으로 인한 피해는 개별적 보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실된 가치보다 비싼 값에 싸게 사서 손해를 본 투자자가 있다면 반드시 비싼 값에 동일한 주식을 매각하여 이익을 본 투자자들이 있다. 계속적으로 주식시장에서 거래하는 투자자들이라면 거의 같은 확률로 이익과 손해를 볼 것이기 때문에 개별적 보상은 필요 없다. 위법행동으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순손실은 불특정 다수 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전체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성격의 손실은 개별적 소송이 아니라 형사처벌이나 행정적 제재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리고 현행 법체제는 그런 벌칙을 가지고 있다. 


그렇더라도 억지효과가 있다면 증권집단소송제는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제대로된 억지효과를 가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억지효과는 위법행동에 대한 기대처벌수준에 비례하며, 그것은 다시 적발확률과 적발된 후의 처벌수준에 의해서 결정된다. 증권집단소송은 대부분 금융감독위원회의 제재조치를 받았거나 또는 형사처벌을 받아 위법행위의 내용이 밝혀진 사건에 대해서 제기될 것이기 때문에, 적발확률을 높이는 효과는 없다. 한편 증권집단소송은 일단 적발된 이후의 평균적 처벌수준을 높이는 효과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배상액이 위법성의 정도와는 무관하게 획일적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억지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소송제도가 억지효과를 가지려면 당해 위법행동으로 인한 사회적 순손실과 배상액수가 비례해야 한다. 위법행동과 손해간의 개별적 인과관계, 그리고 손해와 이익의 상쇄관계를 정밀하게 따지는 대신 위법행동 이후 주가가 하락하면 위법행동과 손해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정하는 제도 하에서는 배상액은 사회적 순손실과 연관성을 잃는다. 둘째, 경영자의 거짓에는 주주들에게 이로운 것도 있다. 가해자의 위법행동이 주가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주주들에게 이로운 거짓까지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셋째, 회사가 제공한 거짓 정보를 투자자가 신뢰하지 않은 경우에도 실제 지급한 금액과 변론종결 시점의 가격간의 차이를 배상하게 하기 때문에 사회적 순손실을 훨씬 초과하는 배상을 하게 된다. 


배상액수가 원리에 합당하게 책정된다고 하더라도 위법성의 정도와 무관하게 소송의 확률이 같아야 억지효과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위법성이 작은 기업일수록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위법성의 정도보다는 변제능력이 큰 기업에 대해 소송이 집중될 것인데다가, 또 그런 기업일수록 경영성과가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영성과가 좋다는 것은 대체로 위법한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작음을 뜻하기도 한다. 

 

증권집단소송제로부터 억지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소송이 화해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서, 화해금액의 크기와 위법성의 정도가 비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증권집단소송제의 도입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증권집단소송제가 없더라도 이미 기존 법체계가 허위공시나 분식회계, 주가조작 등의 위법행동에 대해 형사처벌과 행정제재를 규정하고 있다. 이들 위법행동을 더욱 철저히 막고자 한다면 위법행동의 적발 노력을 배가한다든가, 또는 적발된 후의 벌칙을 강화하는 등 기존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낫다. 증권집단소송제는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큰 제도이다. 그래도 이 제도를 도입해야겠다면, 적용 대상을 발행시장에서의 허위공시 등에 국한한다든가, 손해배상액수에 제한을 가하는 등의 보완책을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