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사면권 제한

박효종 / 2002-09-01 / 조회: 5,338

No.014

사면과 복권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며 통치권의 행사다. 또 사면과 복권에는 입법이나 사법의 결함을 교정하고 가혹한 법 집행을 제한하려는 긍정적 요소가 들어있고 국민화합에도 유효한 수단임을 인정하는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국민의 정의감(sense of justice)과 법 집행의 형평성을 감안하지 않고 행사되는 자의적 사면은 정당성을 가지기 어렵다. 특히 사면과 복권은 궁극적으로 사법작용의 효력을 행정권으로 소멸시키는 3권분립의 중대한 예외적 성격을 가지는 조치이기 때문에 사법부의 권위가 훼손되지 않도록 합리적 기준에 따라 신중하고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면이 법치주의나 정의의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정치적 편의주의나 ‘포퓰리즘(populism)’에 따라 행사되면 법질서가 무너지고 국가권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손상될 것이 뻔하다.
특히 사면'복권은 정치적 공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적 공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일단 잘못을 저질러 사법처리된 사람의 형집행을 중지하거나 복권시켜주는 행위이므로 아무리 엄정하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사법적 정의를 훼손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사면'복권은 국민의 정의관과 가치관 형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치교육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정치문화의 형성에도 현저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집행에 신중해야 하며, 특히 오'남용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는 사면과 복권과 관련된 합리적 기준이나 적절한 절차적 통제장치가 없는 실정이다.

사면권과 복권권 남용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대통령 취임일 또는 8'15경축일을 통해 특별사면과 복권이 연중행사처럼 실시되어 왔다. 역대 정부가 다 마찬가지로 사면과 복권에 대해서 남발'남용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김대중정부는 특히 심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3월 김대통령 취임기념으로 3만 4000여명이 대사면을 받은데 이어 지금까지 5차에 걸쳐 7만 여명이 사면되었고 이중 10분의 1에 달하는 7000여명이 복권돼 면죄부를 받았다. 미국의 경우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재임 8년동안 사면청원 3000여건을 받아 실제로 사면한 것이 3건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사면과 관련하여 우선 사면대상의 규모를 문제삼을 수 있다. 아무리 국민화합을 명분으로 삼고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수립이후 100차례에 가깝게 수백만명에 이른 사면은 일단 규모로 보아 사면권 남용의 현저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두번째로 사면대상 선정의 적절성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사면'복권된 사람가운데 비리정치인들과 선거사범, 및 비리 경제인등이 적지않게 포함되어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일반 시민들과는 달리 우리 정치'사회'경제분야에서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지도층으로서 특권과 책임도 큰 만큼, ‘노블리스 오불리제’ 정신에 입각하여 롤즈(J. Rawls)의 표현대로 ‘좋은 질서를 가진 사회(a well-ordered society)’를 이룩하는데 각별히 기여해야 할 도덕적 의무(moral obligation)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도자로서 수행해야할 도덕적 의무는 차치하고 권력형 부정부패를 저질러 최소한의 규범이라고 할 수 있는 실정법을 위반하고 공공이익(public interest)을 저해하는 행동을 한 사람들이다. 또한 ‘세상의 소금’이라기보다는 세상을 오염시킴으로서 국민들의 준법정신과 정의로운 정치문화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의 형을 복역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일정 수준의 도덕적 검증도 거치지 않은 이들을 사면'복권시키는 것은 정치적 불공정성의 대표적 사례이며, ‘악인악과(惡因惡果)’ ‘선인선과(善因善果)’의 준칙에도 맞지 않는다.
한 예로 과거 수서비리와 한보사태 기아사태비리에 연루된 권력형 정치인들과 경제사범들이 사면'복권돼 국회의원이 되거나 공직에 임명된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 대통령의 친인척으로 권력형비리에 연루된 사람들도 상징적으로 짧은 수감생활만 했을 뿐, 모두 풀려 나왔다. 정부의 이같은 조치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과를 가진 정치인과 국회의원들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정치인 누구도 감옥에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얼마 후 감형되거나 풀려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통법을 위반한 사람들이 얼마 되지않아 사면'복권될 것을 예상하고 난폭운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사면과 복권을 기대하는 것은 이른바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면'복권이 그 원인이다. 그러므로 공직자들은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되고 또한 정치는 부정부패의 악순환에 함몰된다. 즉 부정부패 자행→처벌→사면→부정부패 자행 등의 두터운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 결과 세계에서 부패지수가 매우 높은 나라로, 전과자들이 입법을 하는 희한한 나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 유감이다.
대통령의 사면'복권권이 남발'남용되는 한, 권력비리의 현상이나 부정부패의 악순환의 단절은 기대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현상을 부채질해 부정부패의 ‘악순환(vicious circle)’을 두텁게 할 뿐, ‘선순환(virtuous circle)’의 고리를 발견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형 집행중 그 형을 정지하고 사면해 면죄부를 주는 것만 해도 과분한 특혜라고 할 수 있겠는데, 거기에다 일정 기간의 관찰이나 도덕적 검증없이 복권까지 시켜주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보다 신중해야할 복권권 행사

사면도 신중해야 하지만, 특히 복권은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복권은 사면후 당사자가 최소한 5년 등, 일정 기간 이상 스스로 반성하고 사회에 봉사함으로써 객관적으로 도덕적 자세 및 준법정신이 확립되었다는 판단이 설 경우에 해도 결코 늦지않다. 그렇다고 해서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준칙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이유는 다른데 있다. 사실 부정부패를 저질은 사람이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깨끗한 사람’이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깨끗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잘못을 통절히 뉘우칠 뿐 아니라,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범하지 않기로 굳게 의지를 다진, 바이블에 나오는 ‘돌아온 탕아(prodigal son)’와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한 회심(悔心)을 갖지않은 사람의 경우,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유혹에 빠질만한 사람이며, 심지어는 법망에 걸리지 않게 보다 완전범죄를 도모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마치 감옥에서 형을 마치고 출소한 사람이 내면적으로 새사람이 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도소에서 오히려 보다 정교한 범죄를 계획하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혹은 환자가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해서 곧 건강한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복권은 사면후 일정한 도덕적 검증기간을 거친 후에 이루어지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복권에 대한 대통령의 재량권을 제한함으로 자의적 권력행사를 줄이자는 의미이지만, 우리의 불법'위법'부패정치를 정화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정치란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 왕’이나 ‘수호자 집단’처럼 도덕과 공익에 투철한 사람이 전념하는 ‘좋은 통치의 예술(the art of good government)’이지, 부정을 저지르고 근신이나 참회조차 하지않는 사람들이 일구어내는 ‘가능성의 예술(the art of the possible)’은 아니다. 따라서 복권에 대한 엄격한 조건의 법제화는 부정부패의 ‘악순환’을 깨끗한 정치의 ‘선순환’으로 바꾸는데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사면'복권권은 1948년 8월 30일 법률 제2호로 제정된 이래 단 한번도 개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법률 제1호인 정부조직법이 이미 54차례의 개정을 거쳐 현재에 이른 것과 비교해보면, 그간 역대 대통령들이 사면'복권권을 정치적 선심내지 민심회유 혹은 득표극대화의 목적이나 국면 전환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즐겼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또 사법권을 포함해 삼권을 장악해서 행사하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커다란 특징이기도 하다. 역대 대통령을 보면 취임한 후 곧바로 사면권을 행사함으로써 “나는 법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보여주고 법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과거 왕조시대에 왕자가 태어났다든지 궁중에서 왕손의 결혼이 있을 때 베푸는 사면령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 것이 사면'복권권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면권이야말로 “현대국가의 법제중 가장 군주제적인 것”이라고 비판하는 의견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법에 의해 지배되는 민주사회에서 대통령 개인의 자의적 판단과 재량에 의해서 사면이 결정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사면권이 왕조시대의 은전권(恩典權)처럼 여겨지는 풍토를 반영한다. 실상 헌법이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하면서 국무회의 심의사항으로 명시한 것 자체가 사면'복권을 대통령의 재량권의 영역에 두어 남용토록 부추키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역대정부가 선심쓰듯 수시로 단행한 대규모 사면과 복권이 국민적 공감을 얻기보다 제왕적 권력행사에 있어 ‘당근’용으로 사용되는 정략적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면심사위원회와 복권심사위원회의 신설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는 사면이야말로 “고도로 집중된 권력의 표현”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권력의 표현이 정점에 달하는 것은 교수대나 총살대 앞에 서있는 죄수에게 사면령을 내릴 때라는 그의 지적은 실감난다. 사면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난 느낌을 갖게되며 권력자는 권력자대로 마지막 순간에 관용을 베품으로써 자신이 마치 법위에 군림하는 듯한 우월감을 맛보게 될듯하다. 실제로 혁명단체에 가입하여 짜르체제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고 처형받게 된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마지막 순간 짜르의 사면령에 의하여 극적으로 생명을 구한 다음 비슷한 느낌을 토로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에서 보듯, 국왕이 확정된 형의 효과를 일부 혹은 전부를 소멸시키거나 형을 선고받지 않은 사람에 대하여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것은 왕정시대의 유산이지만, 지금도 많은 민주국가에서는 국민화합의 정치적인 이유나 혹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국가원수의 특권으로 사면권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부수반이 법원에서 선고한 형의 효력을 변경하는 것은 3권분립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사면'복권권행사와 관련된 보다 객관적인 통제장치 설정의 필요성은 자명하다.
이 점과 관련하여 금년 8'15 광복절을 앞두고 법원전산망 게시판을 통해 특별사면이나 감형은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하기 전에는 할 수 없게 하고 특별사면과 특정인에 대한 감형 및 복권은 사면위원회의 신청이 있어야만 할 수 있도록 사면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한 두 현직판사들의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차제에 우리도 대통령의 사면'복권권 행사가 사법권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부정부패 악순환의 고리를 단절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에 1948년 제정된 이후 한번도 손질하지 않은 사면법을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정의의 원칙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정부의 사면'복권조치는 정의와 자비가 황금비율로 섞이는 ‘좋은 질서를 가진 사회’를 건설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인위적이며 자의적인 재량권 행사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심사위원회의 운용을 통해서 대상자를 사전 검증토록 하고 가석방처럼 일정한 형기를 채운 사람에게만 사면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면법개정을 통해서 권력형비리와 선거사범은 사면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민주선진국들은 사면을 극히 제한적으로 실시함은 물론이고, 하더라도 소규모에 그친다. 또 사면대상자의 객관적 검증을 위해 사면심사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하기도 하고 사면전에 대법원장의 의견을 청취하기도 한다.
강조하거니와, 사면의 헌법적 취지는 사법권에 의해 야기될 수 있는 기본권의 침해를 시정하는 것이다. 즉 경직된 사법부에 대한 대통령의 견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사법부나 입법부에 비해 압도적 힘의 우위를 지닌 대통령에 의한 대규모 사면은 권력분립의 취지를 훼손시킬 뿐이다. 더욱이 사면권 남발로 “법은 지키는 사람만 손해”라는 풍조가 만연함으로써 법치가 흔들리고 법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면'복권권 행사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경일 사면’이나 ‘기념일 사면’ 혹은 ‘월드컵 사면’은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면'복권대상자에 대한 객관적 검증을 위해 사면법을 개정하고 ‘사면심사위원회’와 ‘복권심사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용할 것을 제의한다.

박효종(서울대,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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