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정책: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김영용 / 2002-04-03 / 조회: 7,353
No.003

1. 문제의 제기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복지정책은 소득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른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조세를 이용한 보조금이나 이들의 상업활동과 관련되는 가격을 통제함으로써 그들의 물질적 생활 향상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따라서 복지정책은 흔히 조세권과 자원배분의 강제력을 가진 정부의 독점적 영역에 속하게 된다.

복지정책은 흔히 가격의 소득분배 기능을 정보전달 기능 및 유인제공 기능과 분리한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즉, 정보전달과 유인제공 기능은 시장가격이 담당하고 소득분배 기능은 정부가 맡아 생산을 극대화함은 물론 공평한 소득분배를 이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이러한 생각대로 작동해주지 않는다는 데에 복지정책의 딜렘마가 있다. 복지 정책을 통하여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은 “분배 방식이 생산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또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할 것인가는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크게 의존한다. 어려운 일에 매달려 열심히 일한 결과의 전부 또는 일부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일할 유인(誘因)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즉, 가격의 소득분배 기능을 정부가 맡아 소득재분배에 중점을 두면, 가격의 정보전달 기능과 유인제공 기능도 함께 작동하지 않으므로 생산은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따라서 정부가 소득재분배에 큰 비중을 두더라도 생산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증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즉, 복지는 근로자들의 일할 유인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점과, 의도한 바람직한 성과보다는 의도하지 않은 잘못된 결과를 가져온다는 데 문제가 있다. 특히 정부독점적 복지는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그 성과를 잘 알 수 없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 시행중인 한국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도 이러한 문제를 모두 안고 있다. 기초 소득에 못미치는 가계에 대해 정부가 소득을 100% 보조해 주는 정책은 근로자들의 일할 유인을 감퇴시켜 사회 전체의 생산을 감소시키고, 수혜자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정부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장 최선의 해결책은 민간에 의한 복지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또한 100%인 음소득세율을 근로 소득세의 최고 세율인 36% 수준으로 낮추어 그 성과를 관찰하면서 보완해 나가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2.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문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기존의 ‘생활보호법’을 대체하고 ‘생산적 복지’ 이념에 입각하여 1999년 9월 7일 공포(법률 제6024호)되어 2000년 10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입법배경으로서는 많은 저소득층이 사회보장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복지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므로 국가가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할 필요성과, 단순 생계지원이 아닌 수급자의 자립자활을 촉진하는 생산적 복지 지향의 종합적 빈곤대책의 필요성을 들고 있다. 저소득층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동시에 자립자활을 위한 생산적 복지 구현이라는 정책 변화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복지는 본디 소비적인 것이기 때문에 생산적 복지란 허구에 불과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밀튼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이 제안한 음소득세제(陰所得稅制: negative income tax system)를 기초로 한 것이다. 음소득세제는 가난을 구제하는 일이, 직업, 성별, 연령 등의 구분에 의할 경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 그 자체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음소득세제는 바로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현금 보조이기 때문에 실물로 보조하는 것보다 개인의 효용을 더 높일 수 있는 형태이다. 또한 이로 인해 사회가 짊어져야 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명확하며, 음소득세율의 책정에 따라 근로 의욕의 감퇴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물론 음소득세제 실시로 인해서 근로 시간이 감소하는 것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감소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며, 늘릴 수는 더욱 없다.

단점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보조금은 다른 사람들이 내는 조세로써 충당되는데, 보조금을 받는 가난한 사람들도 민주사회에서는 투표권을 가진다. 따라서 투표권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이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커지면서 보조금 액수가 계속 커질 뿐만 아니라 그 수급 대상자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모든 복지 프로그램이 안고 있는 문제이며 음소득세제에만 특별하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는 2000년과 2001년의 수급 기준의 변화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지만 2001년에는 2000년에 비해 소득 기준 지급액이 3% 증가하였으며, 재산 기준으로는 전월세값 상승을 이유로 200만원이 상향 조정되었다. 그에 따른 수급 대상자는 2000년 12월 현재 151만명에서 2001년에는 155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되어 예산은 2000년에 비해 924억원이 늘어난 2조7천9백23억원으로 책정되었다. 이 현상은 어떠한 복지 제도든지 일단 만들어지면 끊임없이 그 금액이나 수급 대상자가 증가하기 때문에 재정 압박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가장 큰 문제는 음소득세율이 100%라는 사실이다. 음소득세율이 100%라는 말은 가구별로 정부가 정한 기초 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부족액을 100% 보조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4인 가족의 경우 가구 소득이 40만원이라면 기본 소득 96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56만원을 전액 정부가 보조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가구가 30만원을 더 벌어들여 소득이 70만원이 되었다면 정부 보조금은 26만원으로 줄어든다. 즉, 추가적으로 벌어들인 30만원에 대한 한계세율(marginal tax rate)이 100%인 셈이다. 이렇게 되면 일하기를 매우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한 시간도 일하지 않고 96만원을 모두 정부로부터 보조받고자 하는 유인이 강하게 작용한다. 현재 정부는 이러한 근로 의욕 감퇴를 막기 위하여 가구가 실제로 벌어들인 소득의 85%만 최저생계비 산정에 필요한 소득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물론 실제 소득 100%를 가구 소득으로 인정하는 것보다는 일할 의욕을 덜 감소시키겠지만 음소득세율은 여전히 100%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또한 기초 소득을 초과하는 소득을 벌고 있는 가계도 그 초과 소득이 별로 크지 않고 그에 대한 가치를 크게 부여하지 않는 한, 기초 소득마저 벌지 않으려는 유인을 가지게 된다.

3. 해결책

▶ 정부독점적 복지정책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민간에 의한 복지다. 독지가에 의한 복지 재단이 설립되어 출연금이나 기부금에 의해 복지가 시행될 경우 정부독점적 복지정책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 물론 민간에 의한 복지정책은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좀 더 성숙한 사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각종 언론 매체에서 주관하는 기부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한국에서도 민간에 의한 복지가 그다지 비관적인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남을 도움으로써 얻는 만족이 이기심의 발로라면 이기심과 이타심이 꼭 배타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민간에 의한 복지 활성화를 위해서는 외국과 같이 기부금에 대한 조세 감면 규정을 정비하고 체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 정부가 재정을 바탕으로 복지정책을 실시하는 한, 그로 인한 문제점을 완전히 해소할 방법은 없다. 다만 일할 유인을 덜 줄이기 위해 음소득세율을 적정하게 산정하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현재 한국의 근로소득세는 최고 36%이다. 따라서 현재 100%인 음소득세율을 36%로 전환하고 그 결과를 관찰하여 조정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음소득세율이 36%로 책정되면 기본 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의 36%만 정부가 보조하게 된다. 따라서 기본 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가 추가로 30만원을 더 벌어들였다면 이 중 36%인 10.8만원만 정부 보조금에서 삭감되고 64%인 19.2만원은 가구 소득으로 귀착된다. 따라서 음소득세율이 100%일때보다 근로자들이 일할 유인이 훨씬 덜 감소할 것이다.

▶ 위에서도 기술한 바와 같이, 음소득세제는 성별, 연령, 직업 등에 상관없이 월 소득이 일정액에 미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대상으로 한다는 점과, 여러 가지 공적부조 성격의 복지 프로그램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 만큼 복지 정책에 소요되는 비용도 비교적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따라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정책을 계속 시행한다면 의료나 국민연금 등 여러 분야에 산재해 있는 복지 프로그램을 국민기초생활보장 정책으로 통합하고, 그에 따라 가구별 소득과 재산 기준 수급액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료나 국민연금 보험료 등은 이미 소득에 따라 그 불입액이 결정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복지정책을 그대로 유지한 채, 국민기초생활보장 정책을 따로 시행하는 것은 이중삼중의 복지수혜가 된다.(김영용,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참고문헌

Friedman, Milton, Social Welfare Measures, Captialism and Freedom(Chap. 11),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2

Friedman, Milton and Rose D. Friedman, The Power of the Market, Free to Choose (Chap. 1), Harcourt Brace Jovanovich, Inc. 1979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yykim@chon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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