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규제혁파가 절실할 때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5년마다 대통령을 선출했다. 규제개혁은 어느 정부에서나 포함했던 공약이었다. 효과는 없는데, 비용만 유발시키는 낡은 규제들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없다는 것은 집권에 성공한 어느 정치세력에도 명쾌했다. 행정쇄신위원회, 규제기요틴, 한시적 규제유예, 규제일몰제, 규제비용관리제, 규제 샌드박스는 각각 지난 20년, 매 정부마다의 규제개혁 아이콘들이었다.
2018년 OECD에서 발표한 제조업규제지수는 회원국 중 5번째로 높았다. 모든 정부에서 소리높이 외쳤던 규제개혁의 성과치고는 무안한 수준이다. 더구나 코로나로 급격히 올라간 재정부담과 인구급감에 따른 연금부담 등을 포함하면 이미 GDP 100%에 근접하는 국가채무와 향후 재정수요 급증을 고려하면, 불합리한 규제의 혁파는 국가운명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과제이다. 제한적 재정상황에서 규제개혁은 미래를 대비할 가장 효과적인 대안일 수밖에 없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지위로 올라선 유일한 국가라는 자부심도 혁명적 규제혁파가 없다면 지속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번 2022년 집권할 정부는 특히 중요하고 더 특별하다. 수도권 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각종 직역보호 규제 등 안 그래도 바로잡아야 할 규제가 많은 형편에 지난 5년, 문재인 정부 이후, 도입된 설익은 규제가 너무 많아졌다. 블라인드 면접은 제대로 된 기업은 아무도 제대로 채택하지 않았고, 애꿎은 공공기관만 도입되어 있다. 아무리 조심하다 해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고 발생에 경영책임자에게 징역형을 부과하는 규제도 생겼다. 개인정보보호를 한다며, 위반 시 기업 매출 총액의 3%를 과징금으로 매기겠다는 법도 국회통과를 기다리고 있고 스타트업의 진출을 가로막는 수많은 규제도 여전하다.
규제는 이상과, 바람직한 목적만으로 타당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부담과 문제해결 가능성, 규제 외의 다른 대안의 존재 등 많은 것을 따져보아야 한다. 당연히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다. 규제를 둔 가치상충과 이해상충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따져서 도입하지 않거나, 시험적으로 해 보았으면 좋았겠지만, 한 번 도입된 규제는 그것이 문제가 아무리 도드라지더라도 쉽게 개선하기 어렵다. 블라인드 채용은 학력차별 금지와 공정성 추구라는 거대담론 앞에, 중대재해처벌법은 가슴 아프게 목숨을 잃은 근로자의 안타까움 앞에, 불편하고 과도하니 개선하자는 말도 꺼내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이런 규제를 혁파하려면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이 정부조직 개편이다. 불합리한 규제혁파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규제를 둘러싼 가치갈등과 이해상충에 시장에 대한 이해와 균형감이라는 합리성을 무기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규제개혁의 논리를 체화하고 정부 내 규제개선에 소극적인 다른 부처와도 겨룰 수 있는 유능함을 가진 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기구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제대로 된 규제혁파를 위해서는 정부 내 규제관리의 진용부터 제대로 짜야 하는 것이다.
규제개혁위원회의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
1997년 제정된 행정규제기본법과 이듬해 설치된 규제개혁위원회는 우리나라 규제체계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국무조정실 내 규제조정실은 규제개혁위원회 사무국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비상임의 규제개혁위원회에 대해, 실질적으로 정부 내에 규제개혁을 책임지고 있다. 통상 2주에 한번 몇 건의 신설·강화규제 타당성을 심사하기 위해 위원회가 소집되는 구조로는 수많은 규제개혁 과제를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나라의 규제개혁체계에 대해서는 같은 문제점들이 반복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먼저 규제개혁위원회 활동의 기복이 정부별로 너무 컸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정부의 규제개혁의 핵심기구로 기존규제와 신설·강화규제를 망라한 강력한 추진동력을 가졌으나, 노무현 정부 이후엔 신설·강화규제의 심사를 전담하는 기구로 축소되었다. 대신 규제개혁추진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규제개혁장관회의 등 다른 체계를 통한 규제개혁이 시도되었다.
이런 구조로는 정부 내에 규제개혁에 필요한 전문성과 관리적 지식을 축적되지 못한다. 어느 한 정부에서 아무리 규제개혁에 상대적으로 더 열심이었다 해도, 국회에서의 정치적 견해차이나 의사일정 등으로 법률개정이 안 되거나, 정부교체에 따라 해당 어젠다에 대한 규제개혁에 관심이 줄어들면, 애써 만들어 놓은 이전 정부 규제개혁 성과가 사장되는 등 일관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일회적인 강력한 규제개혁은 가능할지 몰라도, 꾸준하고 예측가능 한, 꾸준한 규제개혁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우리나라 규제개혁체계의 근간인 규제개혁위원회의 기능을 보다 명확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규제개혁위원회는 전문성을 갖춘 위원의 구성과 이들 간의 상충하는 가치와 논리에 대한 충실한 토론과 합의가 가능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따라서 규제개혁위원의 구성에 정치적 고려나, 성별균형 등과 같은 정무적 고려가 아닌 전문성 있는 인사를 고려하고, 필요한 경우 청문회를 통해서라도 자질을 검증한 이후, 위원의 임기를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 위원구성의 균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임기는 동일하게 하더라도 임명시기를 달리하여, 정부의 변화에 따라서 위원회 구성의 전면적 변화가 발생해 규제관리의 방향이나 일관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규제개혁위원 중, 상임위원을 두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들 상임위원은 기존규제의 개혁과제, 신설·강화규제의 합리성에 대한 검토, 규제영향분석이나 규제 샌드박스 등 중요한 규제개혁 제도의 운영 등을 책임지고 규제개혁위원회 운영의 전문성을 확보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전원 비상임인 규제개혁위원회의 구조로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사무국인 규제조정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규제개혁의 일관되고, 안정적인 추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규제조정실, 독립차관제로 격상 등
규제개혁위원회 사무국인 국무조정실 내 규제조정실은 각 부처를 설득해 규제개혁 과제를 실질적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견근무와 순환보직에 따라 임명되는 관료배치 원칙으로 한계가 지적되어 왔다. 여러 부처에서 파견된 관료들이 한시적으로 머무르는 곳이다 보니, 규제개혁에 소극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규제조정실에 있다 하더라도 몇 년 후 복귀해야 할 소속부처의 규제를 개혁하는 데는 인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순환보직은 규제조정실에 몇 년 머물다 규제개혁과 전혀 상관이 없는 국무조정실 내 다른 실로 보직변경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규제개혁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되기 힘들다.
이에 대한 대안은 규제개혁위원회 사무국 역할을 하는 국무조정실 내 규제조정실은 지금처럼 국무조정실 내에 두되 차관급의 독립기구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규제개혁차관을 지금처럼 국무총리 소속 국무조정실 내에 설치함으로써 각 부처의 복잡한 규제안건에 대한 조정력을 담보할 수 있다. 규제개혁에 차관급 기구를 굳이 둘 필요가 있을까라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규제개혁은 지금처럼 1급의 실장부서로는 복잡한 규제개혁 현안에 대응하는데 충분하지 못하다. 제대로 된 신설·강화규제에 대한 타당성 심사, 규제일몰제와 규제비용관리제, 규제 샌드박스 등의 체계적 운영, 주요 규제개혁 과제에 대한 지속적 관리, 불합리한 규제 발굴 등 규제개혁위원회 사무국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관료는 규제개혁 차관부서에 입직 후, 규제개혁에 대한 업무를 습득하고, 경험을 축적하며, 선배관료로부터 규제개혁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다. 주로 규제친화적인 정부 내 부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규제개혁 친화적 관료의 안정적인 양성이 가능한 것이다. 이들은 규제개혁의 성과로 조직 내에서 승진을 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관료는 자연스럽게 규제개혁에 전문성을 갖게 되고, 민간의 규제개혁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도 축적시키는 등 정부조직 내에 규제관리의 역량을 쌓을 수 있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질적인 규제개혁 과제의 경우, 그 히스토리도 체계적으로 파악해, 대응할 수 있는 역량도 기대할 수 있다.
규제개혁 독립차관제를 설치하면, 규제개혁 예산편성을 별도로 하는 등 규제개혁에 필요한 물적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흔히 규제개혁을 두고‘돈이 들지 않는 개혁수단’이라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제대로 된 규제개혁을 위해서는 전문가에 의한 규제영향분석이 체계화 되어야 하고, 일몰이 도래한 규제의 타당성도 설득력 있게 분석되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한 규제개혁임에도 여러 이해상충으로 해소가 안 되는 경우, 보조금 등의 정책수단과의 정책혼합도 가능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예산이 필요한 것이고 이런 예산을 가장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예산의 독립편성 단위인 독립된 부처의 형태를 갖추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규제는 행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국회에서는 수많은 불합리한 규제입법이 제대로 된 심사도 없이 통과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규제관리를 엄격하게 할수록 국회를 통한 부실한 규제입법이 이루어지는 모순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때그때의 사고와 사회적 문제에 대응한다며 합리적 분석보다 정치적인 이익에 기반 해 국회에서 만들어진 규제입법은 문제해결은 커녕, 사회문제를 심화시키고, 규제부담도 더 높이는 모순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을 멈추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국회에서 규제입법에 대한 체계적 분석과 심사시스템을 서둘러 갖추어야 한다.
<참고문헌>
이혁우, 새정부의 국정과제: 규제개혁,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책지식허브센터, 「정책&지식」, 제872회, 2017.5.
이혁우, 『규제를 규제한다』, 2021. 6.
이혁우·김진국, “규제개혁의 창: 추진체계의 정비”, 『규제연구』, 24권, 특별호, 2015.8
최병선·이혁우, “한국 규제개혁시스템 혁신방안”, 『규제연구』, 23권, 특별호, 2014. 8.
OECD, Product Market Regulaion: OECD PMR Indicators, OECD, 2019
이혁우 /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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