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재산관련 세제, 특히 부동산관련 세제는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이 가운데 특기할 사항은 이러한 세제개편이 대체로 부동산 가격급등기를 중심으로 빈번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의 부동산 세제개편이 우리나라 조세체계 자체를 반듯하게 정비하는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정책세제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즉 세제개편의 원칙이나 청사진 보다는 경제상황의 변화나 정치 또는 정책적 목적에 따라 개편되어 온 것이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개편사례로 토지과다보유세의 도입과 종합부동산세의 도입을 꼽을 수 있다. 토지과다보유세는 1980년대 중반 경제호황기 당시, 심각하였던 부동산 가격급등에 대응하고자 도입된 세금이다. 그 명칭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시피, 토지과다보유세는 투기적 토지수요자들에 대응하고자 초과누진세율의 적용과 인별합산과세 방식을 채택한, 매우 강력한 가격억제 정책이었다. 2005년 도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종합부동산세는 외형적으로는 토지과다보유세와 같이 직선적이지 않지만, 그 기능상으로는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조세정책이 경제상황 변동에 따라 빈번히 개편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드러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무엇인가 대책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는 공감의 여지도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정책수단들과는 달리, 조세정책은 그때그때의 상황변동에 대응하는 식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된다. 조세는 단기대응용 정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본디 조세란 나라살림의 근간을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변동보다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다 신중하게 계획되고 시행되어야 한다. 조세가 특정 시기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정책적 목적에 따라 수시로 바뀌게 되면 조세체계의 왜곡이 가중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음을 물론, 당초에 예상하지 못했던 심각한 문제도 유발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 재산세제는 개편의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며, 본 고에서는 우리나라 재산과세의 바람직한 개편방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2. 재산세는 이상적인 지방세
재산세는 본질적으로 지역밀착형 특성이 매우 강한 조세로 알려져 있다. 부동산과 같은 재산은 부동산이 위치한 지방정부에서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의 수준에 따라 그 가치가 변동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도로, 상하수도와 같은 물리적 기반서비스는 물론이고, 교육시설, 환경, 치안, 행정 서비스의 수준이 해당지역의 부동산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물론 공공서비스가 전적으로 지방정부에 의해서만 제공되는 것은 아닐 것이지만, 부동산과 같은 재산에 제공되는 서비스는 대체로 지방정부에 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공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학교, 도로, 환경, 치안, 공원 등은 대개 지방정부가 공급의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공공서비스 수준이 높은 경우 해당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재산세는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받게 되므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재산세액도 높아지고 가격이 하락하면 세액도 낮아진다. 재산세가 지역밀착형 특성을 갖고 있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며, 이에 따라 조세이론에서는 재산세의 과세논리를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공적 서비스의 대가’로 보는 것이다. 재산세가 지방정부의 세금으로 아주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었다고 하는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재산세가 지방세로서 이상적인 세금이 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세수의 안정성이 높기 때문이다. 재산세는 경제적 거래에 과세되는 것이 아니라 재산 보유액을 기준으로 과세되기 때문에 다른 조세에 비해 세수의 변동성이 크지 않다. 즉 걷히는 세금 액수가 경제적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반면 경제적 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다른 세금들, 예컨대 소비세나 소득세 등은 경기위축에 큰 영향을 받는다. 경기가 위축되면 생산과 소비가 줄어들기 때문에 세금액수 역시 따라서 감소하는 것이다. 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 당시나 2008년의 금융위기 때에 소득 및 소비관련 세금들의 세수가 급격히 감소하였던 것은 이의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재산세는 이러한 경기변동에 영향을 덜 받는데, 이는 재산세의 과세기반인 재산보유액의 경기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재산과세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특징, 즉 과세의 보편성에서 찾을 수 있다. 과세의 보편성이란 세금의 부과와 징세과정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성질을 의미한다. 따라서 과세의 보편성이 확보된다는 것은 세금을 부과하고 걷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재산세는 재산의 소유자만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면 과세가 가능한 세금이기 때문에 과세의 보편성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예컨대 토지나 주택은 주인이 몇 번이고 바뀐다 하더라도 소유주만 명시되어 있으면 언제든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따라서 재산소유자가 누구인지만 알 수 있으면, 어느 지방자치 단체이건 어렵지 않게 세금을 부과하고 걷을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비해 과세 및 징세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경우 과세의 보편성이 높은 재산세는 지방정부의 세금으로 매우 적합한 것이다.
한편 재산과세는 과세대상, 즉 세금을 부과하는 대상이 상대적으로 덜 유동적이라는 특징도 갖는다. 경제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세금, 즉 과세대상의 유동성이 높은 세금의 경우에는 납세자의 행태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고 걷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예컨대 소비세는 납세자가 의도적으로 세금부담을 회피하는 것이 가능하다. 소비자는 지불액수와 조세부담이 가급적 낮은 지역에서의 구매를 선호할 것이므로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행태는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외국에서는 소비자가 세금부담이 낮은 곳을 찾아 지방자치단체들의 경계나 심지어 국경도 넘나드는 것도 흔히 발견된다. 이 처럼 소비세 등은 납세자가 세부담 저감을 목적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과세물건의 이동이 불가능한 토지와 건물 등의 경우에는 세금을 피할 목적으로 다른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도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재산세는 보다 안정적으로 걷힐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왜 재산과세가 지방세로 운영되는 것이 좋은지 보다 명확해 진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방정부의 세금징수능력과 재정자립문제를 고려해 본다면 이는 더욱 그러하다 할 것이다.
3. 재산세는 지방정부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대 조세이론에서는 재산세가 지방세로 운영되는 것이 옳다고 보고 있으며,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지방정부의 세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드물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영국의 NNDR(National Non-Domestic Rates: 국세화된 비거주용 자산세)과 우리나라의 종합부동산세가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영국의 NNDR은 국세로 도입된 것일까? 영국의 NNDR이란 도입이전의 NDR(Non-Domestic Rates: 비거주용 자산세)을 국세화한 것이다. 즉 원래는 지방세였던 것을 국세로 전환한 것이다. NNDR 도입이전의 영국에서는 지방정부가 자기 지역의 기업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기업에 많은 세금을 부과하게 되면 기활동의 위축을 가져와 경제활력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 당시의 대처(Thatcher) 행정부에서는 NDR을 국세화하여 기업에 부과되는 세부담을 완화해준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결국 NNDR은 지방정부의 과세횡포를 바로잡고 납세자의 세금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생겨난 세금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종합부동산세는 왜 국세로 도입한 것일까? 다양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겠지만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개입할 여지를 더 두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중앙정부의 정책수단이 많아지면 시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의 정도는 높아지게 된다. 실제로 종합부동산세의 도입을 검토할 즈음, 몇몇 지방자치 단체들에서는 지역주민들의 세부담 저감을 위해 당시의 재산관련 세금(재산세, 종합토지세)의 세율을 인하 조정한 적이 있었다.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과세당국의 자발적 세금인하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더구나 지방정부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세율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과 법적 근거를 갖추고 있었으므로 이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입장에서는 애써 올린 세금을 지방정부가 낮추어주게 되면, 보유세 부담을 높여 부동산 수요를 억제하려는 당초의 정책효과가 반감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방세를 국세화한 데에는 지방정부의 조정여지를 차단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중앙정부의 입장도 이해할 수는 있다. 정책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세화를 시도한 것이고, 더구나 여기에서 걷힌 세수를 지방정부를 나누어주면 되니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의 상황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조세로 경기조절(수요억제를 통한)을 하는 것은 그 효과도 뚜렷하지 않을 뿐 아니라, 조세 논리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조세정책은 보다 먼 장래를 내다보고 긴 호흡으로 운영해야 하는 것인데, 단기적 경기조절을 위해 사용하다보면 경기상황이 변화할 때마다 세제를 개편해야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정책의 일관성이나 신뢰도 측면에서 보자면 절대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
4. 재산관련 세금은 지방정부에 돌려줘야
주지하는 바와 같이 종합부동산세는 부동산 가격억제라는 정책목적으로 도입된 세금이다. 종합부동산세는 과세실적이 아직 충분히 축적되지 않아 실효성에 대한 엄밀한 분석은 어렵다. 하지만 근래 발표된 연구결과들은 종합부동산세의 정책효과에 대해서 대체로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또한 근래의 부동산 가격안정의 원인이 종합부동산세의 도입 때문이라고 보는 의견이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종합부동산세는 당초의 정책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여러 가지 부정적 문제만을 남겨놓은 세금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부수적으로 기대했던 세수확보기능이나 형평성 제고효과 역시 뚜렷하지 않다. 반면, 도입에 따라 발생할 것이라 예상했던 다양한 문제들, 즉 세제의 위헌성 문제나 세부담 급증에 따른 부정적 효과들은 이미 현실화되었다. 물론 이러한 부정적 효과들은 이후의 노력으로 일부 해소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며, 국세로 운영되는 문제 역시 그대로 존치되어 있다.
향후 부동산 세제개편은 우리세제가 안고 있던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는 정책세제로서의 기능을 강조하기 보다는 우리나라 세제를 보다 반듯하게 정립하는 방식으로 개편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명분만 있을 뿐 과세의 실효성이 높지 않은 종합부동산세는 재산세로 통합운영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과세정상화 차원에서뿐 아니라, 현재의 2단계 과세체계(1단계로 재산세가 부과된 후, 2단계로 종합부동산세가 과세되는 형태)가 안고 있는 문제도 해소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라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국세로 운영됨에 따른 문제 역시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세율과 과세단계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연구가 수행되어야 하겠지만, 과세단계의 축소 및 누진율의 완화를 도모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세제개편이 지향하는 원칙, 즉 세제간소화에도 부합하는 방안이지만 현재 재산세제가 안고 있는 비효율 문제를 완화하는 데에도 효과적인 방법인 것으로 평가된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통합은 지방재정의 안정화를 높이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에도 종합부동산세의 세수는 전액 지방세로 이전되고 있지만 징수 및 배분과 관련한 권한을 중앙정부가 갖고 있어 지방정부의 재정자치의 수준이 온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재산과세의 통합 방안은 지방재정의 자치도를 높임과 동시에 이를 통해 지방자치 수준의 제고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겸 /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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