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보조금 지원을 받는 시민운동단체(NGO)의 발전 방안

권혁철 / 2006-11-29 / 조회: 8,305

1. 시민운동단체의 건강한 발전은 필수

비정부기구(NGO) 및 비영리기구(NPO)로서 권력이나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대신 인간의 가치를 옹호하며 시민사회의 공공선(公共善)을 지향하는 민간조직체라고 정의되는 시민운동단체와 시민운동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시민운동단체들은 국회의원 후보자의 낙천과 낙선, 고속철 건설, FTA 추진, 교원평가제 등등 정치, 행정, 사회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이제까지 사적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던 기업의 경영과 지배구조 등과 관련해서도 목소리를 높이면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87년 이후 비로소 등장한 우리나라의 시민운동단체는 겨우 2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4의 권력이라 불리워질만큼 그 세력과 영향력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크게 확장되었다.

시민운동단체는 통상 정부와 시장 또는 기업과 더불어 사회를 구성하는 3대 주요 부문이다. 따라서 사회가 안정적이고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 시장, 시민운동단체 3대 부문이 각각의 영역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한편으로는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다른 한편 중첩되는 영역에서는 상호경쟁을 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특히 다른 두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출현한 시민운동단체의 건강한 발전과 자기역할에의 충실은 우리 사회의 건전하고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시민운동단체들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다른 부문의 행위자들에 대한 감시와 비판, 그리고 견제를 제대로 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시민운동단체들의 지금까지의 활동들을 살펴보면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문제점과 혼란과 갈등을 야기해 오히려 사회 전체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받는 시민운동단체들이 선거에 직접 개입하거나 정부정책과 직접 관련이 있는 ‘홍보성 활동’을 함으로써 ‘정부의 관변단체’라는 비판까지 받게 된 현실은 시민운동단체는 물론이고 감시와 비판을 받아야 할 정부 및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2. 시민운동단체에 대한 정부지원은 부적합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부터 ‘공익활동을 증진하고 민주사회의 발전에 기여토록 한다’는 목적의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따라 매년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의 정부보조금이 시민운동단체에 지원되고 있다. 2003년의 경우 정부부처와 각종 위원회 등을 통해 시민운동단체에 지원된 금액은 총 411억 원에 달했으며, 지난해인 2005년에는 행정자치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된 지원금만 99억 원에 달했다.

시민운동단체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정부 및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와 감시를 꼽을 수 있다. 권력의 오용과 남용, 부정과 부패, 무능, 공권력에 의한 시민들의 자유와 권익의 침해 등에 대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견제와 감시를 하고 비판을 가하는 것이 시민운동단체의 중요한 역할이다. 따라서 정부보조금과 관련하여 시민운동단체가 감시대상인 정부 및 권력으로부터 보조금지원을 받으면서 과연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견제와 감시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문은 시민운동단체 진영 내부로부터도 자연스레 나온다. 2001년 이후 정부보조금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경실련의 한 관계자는 시민운동단체가 개혁운동을 하면서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면 정치적 중립성과 도덕성이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시민운동단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시민운동단체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문제시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지를 통해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정부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할 시민운동단체가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는다는 것에는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 시민운동단체 활동의 중립성과 독립성에 커다란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3. 우리나라에서의 정부보조금 지급 현실

활동의 중립성과 독립성 유지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는 특히 친정부적 정치활동을 하거나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한 시민운동단체들에게 정부 예산이 지원된 것이 알려지면서 현실로 드러났다.

2000년에는 경실련 등 16개 시민운동단체들로 구성된 의료개혁시민연합이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던 의약분업과 관련하여 정부의 의약분업정책 홍보, 소비자교육 등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면서 보건복지부로부터 수억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2003년에는 적게는 4000만 원, 많게는 1억3천만 원씩의 보조금을 지원받은 상당 수 시민운동단체들이 ‘2004년 총선시민연대’에 참여하여 낙선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총선시민연대의 낙선대상은 한나라당 100명, 민주당 57명, 자민련 24명 등 야당이 대부분이었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10명이었다. 야당에서 ‘총선시민연대는 열린우리당의 산하직능단체’라는 반발이 나온 것이 무리가 아니다.

또 다른 경우로는 언론관련 시민운동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을 들 수 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2003년 한 해 동안 국정홍보처, 행정자치부, 방송위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 4개 기관과 언론재단으로부터 총 1억3000여만 원을 지원받았다. 또 다른 시민운동단체인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언론재단으로부터 4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특히 언론재단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과 언론개혁시민연대 2개 단체에만 시민운동단체 예산을 나눠주었다.

특기할 것은 이 두 단체가 정부를 비판하는 신문을 공격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는 특정 신문사들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면서 소위 신문시장의 개혁을 추진해왔다. 이에 따라 신문 사주의 지분 제한, 주요 신문사의 시장점유율 제한, 소유와 경영 및 편집의 분리, 유통구조 변경, 피해구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신문법과 언론피해구제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고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앞장서서 주도적인 활동을 벌였던 두 단체가 바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과 언론개혁시민연대였다.

또한 많은 시민운동단체들의 활동가들이 일정한 역할을 한 이후 마치 ‘논공행상’을 하듯이 정부의 요직이나 각종 위원회 및 국회로 진출하는 현상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정부와 시민운동단체의 인적 밀착관계는 대체로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이루어져 왔으며, 노무현 정부 들어 더욱 긴밀해졌다. 그러다 보니 시민운동단체 활동가들이 자신의 정치활동을 위한 발판으로 시민운동단체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 되었다.

선거에 직접 개입하는 시민운동단체나 정부정책과 직접 관련이 있는 ‘홍보성 활동’을 하는 시민운동단체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원은 그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또한 ‘정부의 관변단체’ ‘입신양명의 발판’이라는 비아냥까지 받는 시민운동단체의 활동은 시민의 지지와 호응을 얻어내지 못할 것임은 자명하다. 이런 현실은 시민운동단체는 물론이고 감시와 비판을 받아야 할 정부 및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4. 시민운동단체의 발전 방안

성숙한 시민사회를 위해서는 시민운동단체의 건전한 활동은 필수적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활동을 주 임무로 하는 시민운동단체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재정적 독립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시민운동단체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앞서 보았듯이 시민운동단체들이 정부권력과 유착된 모습을 보이고,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정부의 보조금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시민운동단체의 재정적 취약성이다. 따라서 현재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모습의 시민운동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시민운동단체 스스로의 자성과 자정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주요 이유가 시민운동단체 재정의 취약성이며, 이는 회원들의 회비납부 실적이 극히 저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극적인 회원모집 캠페인과 회비납부시스템 개선 등을 통해 ‘시민 있는 시민운동’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 소수의 명망가 출신 중심의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지양하고 다양한 시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자신들의 재정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선단식 활동을 하는 것도 재정적 취약성을 가져오는 주요 원인이므로, 이에 대한 구조조정도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정부가 시민운동단체에 보조금을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시민운동단체들이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촉구하고 자극하는 법적, 제도적 방안들이 함께 마련되어져야 한다.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시민운동단체들에 대한 규제책과 유인책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제안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시민운동단체들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치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시민운동단체에 대해서는 이들을 일종의 정치조직으로 간주하여 시민운동단체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권리에서 배제시켜야 한다.

둘째, 시민운동단체들이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이에 근거하여 정부의 보조금이 지급되므로, 신중하고 철저한 사업평가와 분석 및 사후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정치활동에 참여하거나 정부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사업을 하는 시민운동단체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일체 배제하며, 이미 지출된 경우에는 반드시 회수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활동가들이 시민운동단체를 개인의 입신양명의 발판으로 이용하는 행태를 억제하기 위하여 시민운동단체와 공직의 겸직금지는 물론 시민운동단체에서의 활동시기와 공직 진출 시기 사이에 일정기간의 경과기간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정부보조금을 노린 1회성 시민운동단체의 난립을 막고 비전을 갖고 장기간에 걸쳐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의 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는 시민운동단체의 자격을 회원의 수, 활동경력, 전국적 규모 여부 등을 기준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시민 있는 시민운동’이라는 시민운동단체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보조금 규모를 회원들의 회비 납부액에 상응하여 차등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모든 시민운동단체들에 대해서는 감사원의 감사를 의무화한다.

권혁철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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