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교육, 특히 초중등 교육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국민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불만은 만연한 사교육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보다 극단적으로는 유학, 교육이민 등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입시정책을 비롯한 정부의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반대 의견이 분출되고는 한다.
정책에 대한 불만은 사실 수요자의 입장에서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우리나라 교육의 경쟁력에 대한 우려이며, 다음으로는 획일성에 대한 불만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수요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교육정책은 경쟁력을 높이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도 교육의 경쟁력과 다양성 확보라는 두 가지 축을 바탕으로 교육재정의 지방 분권화 문제를 논의해가고자 한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교육 경쟁력과 다양성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우리의 교육 경쟁력에 대해서 걱정하는 한편으로 경쟁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갖고 있다. 경쟁력보다는 제대로 된 인품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분명 옳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경쟁력 있는 사람의 인품이 잘못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올바른 견해일 수 없다. 경쟁력과 인품은 대체되는 관계라기보다는 보완의 관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경쟁의 세기에 경쟁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경쟁 자체를 폐기하기보다는 경쟁이 사회 전 구성원에게 도움이 되도록 사회체제를 설계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자세이다. 교육 부문도 마찬가지이다.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이 경쟁력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경쟁력 있는 교육은 보다 경쟁적인 환경 하에서 형성될 수 있다. 교육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은 경쟁의 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단, 경쟁이 오직 하나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교육에서 학생들을 극한 경쟁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는 대입 경쟁은 분명 심각한 문제이다. 한차례의 시험이라는 단 한 번의 경쟁 결과가 학생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해서 경쟁을 제한하거나 막으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국가 생산성 자체를 감소시킬 우려가 있다. 더 현명한 대응방안은 경쟁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입시라는 한 시점으로 집결된 경쟁의 시점과 수학 능력이라는 한 지표로 집결된 경쟁의 차원을 더 넓히는 것이다. 즉, 다양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경쟁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시스템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다양성의 확보는 기본적으로 분권화가 진전될 때 가능하다. 정책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논의되고 결정되고 시행된다면 다양성의 확보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또한 다양성의 확보를 위해서는 고등학교의 절반에 달하는 사립학교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 불행히도 거의 모든 사립학교들이 공립학교와 차별화되지 않고 다양성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논의되거나 시도되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의 도입 확대랄지 학부모와 학생의 선택권 확대를 위한 노력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 개혁이나 교육정책을 논할 때 교육정책이나 교육시스템 내의 개혁만으로는 해결 가능하지 않은 문제들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교육시스템에 대한 필요 이상의 기대와 불평은 현실의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교육의 경쟁력에 대해서 걱정하는 이유는 국민 개개인의 경쟁력과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높은 성적을 얻는 교육 경쟁력과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개개인의 경쟁력이 결코 국가 경쟁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크게 주목하지 못해왔다. 교육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제반 조건 형성이야말로 교육 경쟁력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이다. 우수한 인재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려면 경쟁을 제약하는 사회 관행의 많은 개편이 필요하며 이는 교육의 영역을 사실상 넘어서는 것이다. 이를테면 최근의 교대와 의대의 약진으로 요약되는 전공서열화는 분명 교육시스템 내에서 관측되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교사와 의사가 우리나라에서 공적인 보호에 따른 렌트(rent)를 누리는 직종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고득점자들을 이들 전공으로 이끄는 것은 적성이나 비교우위보다는 직업의 안정성과 향후 높은 기대수입일 것이다. 이러한 전공 쏠림은 우수한 인재들을 경제성장에 필요한 혁신을 가능케 하는 분야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매우 우려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우려는 교육 제도 내의 개혁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교육에 있어 획일적인 것은 공급 뿐 아니라 수요도 마찬가지라는 사실 역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수요는 한편으로는 다양하면서도 획일적이다. 다양한 측면은 사교육비를 보면 알 수 있다. 최근의 가계조사 자료를 보면 사교육에 전혀 지출을 하지 않는 가구가 있는 반면 사교육비가 전체 지출의 30%를 넘는 가구도 적지 않으며, 50%에 가까운 가구들도 있다. 이렇게 사교육에 대한 지불의사는 다양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넓게 분포한 사교육비 지출의 궁극적인 목적이 대학 입학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획일적이다. 만약 더 나은 대학 입학이라는 학부모들의 목적 자체를 변화시킬 수 없다면 획일성을 극복하는 방법은 단순한 분권화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현재 우리 교육에 문제로 지적되는 획일성은 공급에서의 획일성 뿐 아니라 수요측면의 획일성에서도 비롯된 바가 크다.
그럼 교육 이외의 부문의 개혁과 보조를 맞춘다는 전제하에서 교육의 경쟁력과 다양성의 확보를 도울 수 있는 분권화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2.교육재정분권화의 필요성
분권화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분권화의 목적은 지방자치단체의 참여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에서 다양성을 추구하고 보다 합리적인 교육재정 운영을 취하자는 데 있다.
현재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에 투입되는 공공재원은 약 30조원을 넘는다. 공식 통계를 보면 이 중에서 중앙정부가 부담하는 부분은 약 70%이고 지방자치단체나 지방교육청, 그리고 학부모가 부담하는 부분이 나머지 30%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의 기여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지방교육세 등 법정전입금 부분은 실질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능동적인 기여라기보다는 법률에 의해 결정되는 자동적, 수동적 기여이다. 따라서 이들 수동적 기여분을 빼고 지방자치단체의 능동적 기여분이라고 할 수 있는 비법정 전입금만을 떼어 놓고 본다면 전체 예산의 1%를 넘지 못한다. 적어도 재정측면에서 자치단체의 기여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되는 상황이다.
자치단체의 재정적 기여가 없이는 자치단체의 자율과 책임도 함께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럼 자치단체의 재정적 기여를 통해 자치단체의 자율과 책임을 부여하는 분권화의 이득이 무엇인지부터 우선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분권화의 이득의 후보로는 재정의 확충, 경쟁의 촉진, 다양한 정책의 시도 등을 들 수 있다.
우선 재정확대의 측면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교육재정은 최근의 확충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단체의 기여 증가가 전반적인 재정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전반적인 재정확대보다는 지방자치단체의 한계적 기여로 지역별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 자치단체 기여에 따르는 중요한 변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증대는 지방자치단체가 기여하는 금액의 증가로도 나타나겠지만, 중앙정부가 지방교육재정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현실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지역의 교육발전을 위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형태로, 그리고 한계적으로(marginally) 기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실적인 기대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경쟁의 촉진이라는 측면을 살펴보자. 전통적인 지방재정 이론에 따르면 주민들은 이른바 발에 의한 투표(voting by feet)에 의해 자신의 취향에 가장 적절한 지방공공재를 제공하는 지역을 주거지로 선택하게 된다. 교육서비스의 속성을 지방공공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방공공재의 형태로 제공될 때 자치단체 간 경쟁이 제고되고 그에 따라 교육의 질이 향상되고 수요에 부응하는 공급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저출산에 따라 가까운 장래에 인구 감소가 발생하는 현실에서 지역 주민을 잡아당길 수 있는 구심점이 절실히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 구심점으로 교육만큼 중요한 것을 달리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교육이 지방자치단체 간 경쟁의 중심이 될 여건은 이미 형성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경쟁의 차원이 다양하지 못하다면 경쟁이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분권화가 독점보다는 경쟁적인 환경을 제공하리라는 데는 큰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분권화의 이득은 다양한 정책의 시도이다. 우리는 어떤 교육 정책이 바람직한 지에 대해 실제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교육부문에서 가장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평준화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 교육의 획일성에 대한 대안으로 평준화 폐지가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평준화냐 아니냐를 선택하는 문제는 선험적으로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이 요구된다. 또래 집단 중 유사한 능력을 갖춘 학생들을 모아놓는 것은 특히 성적이 높은 학생들의 경쟁을 자극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쟁이 성적이라는 하나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질 때 그 경쟁이 향후 학생 개개인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보장할 수 없다. 또한 우수한 학생들일수록, 즉 사회에 대한 일정 역할이 요구되는 학생일수록 그들이 졸업 후 활동할 사회와 비슷한 집단을 접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또한 비평준화에는 적지 않은 학생들의 열등감과 좌절감이라는 비싼 대가도 있다. 우수한 학생들의 경쟁을 자극하는 데서 오는 혜택(benefit)이 다수 학생들의 절망이라는 비용(cost)보다 높다는 명제는 적어도 선험적으로는 그 진위를 판단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평준화의 선택이냐 아니냐는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지역 차원에서 결정되는 모습이 바람직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평준화냐 아니냐를 선택하기에는 그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평준화 정책의 문제도 다양성 확보를 위한 분권화의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선택사항으로 놓아두고 실제 정책의 결과를 평가하면서 정책의 효과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평준화 뿐 아니라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한 많은 정책적 실험들이 다양하게 실행될 수 있다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분권화의 이득이다.
이상에서 분권화의 이득의 후보로 제시한 재정확보, 경쟁촉진, 다양한 정책의 시도 등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실제로 분권화를 추진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 추진에는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교육에서 대단히 중앙집권적인 재정과 행정 구조를 유지해 왔다는 중요한 제약조건이 존재한다. 이 제약조건 하에서 분권화를 추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3. 점진적인 분권화 추진
많은 불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육이 그 동안 거두어 온 성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획일화되고 중앙집권화 된 교육재정 및 행정 구조 속에서도 우리나라 교육은 단기간 동안 지표상 놀라운 발전을 해 왔다. 이러한 성과는 실상 재정 및 행정 구조가 중앙집권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 졸업생들의 중학교 취학률조차 높지 않던 시기에, 그리고 지방자치가 이루어지지도 않던 시대에 교육 자치와 지방자치 통합 내지 지방자치단체 참여의 확대는 실현가능성 없는 그야말로 탁상공론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치단체의 역할 확대를 위한 방안들을 논의할 수 있는 시점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교육에 대한 참여가 부족하다는 점은 그 동안 너무나도 많이 지적되어 왔다. 또한 지방자치와 교육자치의 통합에 대한 논의도 적지 않게 이루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관행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중앙정부에서 보면 그 동안에 가졌던 교육에 대한 정책의 독점권을 쉽게 놓기 어려울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새로운 시도에 대한 주저(망설임)가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낮다는 중요한 제약조건도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분권화의 추진은 점진적인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주체는 중앙정부라고 할 수 있다.
상당 정도 분권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정부는 초중등교육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형평화를 위한 재정지원이나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일련의 조치들은 중앙정부의 몫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최소기준(national minimum)을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서는 많은 부분들은 자치단체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교육 정책이 자치단체와 교육자치단체의 협의로 이루어지는 구조부터 정착될 필요가 있다.
재정측면에서 보자면 지방자치단체의 수치상 기여분을 늘리는 정책보다는, 달리 표현하면 법정전입금을 증가시키는 조치들보다는 지방자치단체가 그 지역 교육에 기여하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하고, 지방자치단체의 그러한 노력이 주민에 의해 인식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현재의 교부금 지원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중앙정부의 전입금이 거의 전액 교부금 형식으로 지원되는 것은 지방교육청의 입장에서는 세출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지만, 지방자치단체에게는 오히려 교육자치단체에 대한 지원을 할 유인을 더욱 감소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대응투자의 적극적인 활용 등을 통해 자치단체 초중등 교육 투자와 유익한 정책적 시도의 유인을 제공하는 형태로 자치단체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분권화를 위해서는 중앙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노력이 필요하다. 집권화된 관행을 깨는 노력은 집권화를 주도해온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분권화의 이득이 분명하다면 정부가 적극적인 노력을 게을리 할 이유가 없다. 물론 교육 분권화의 이득을 최대로 구현할 수 있는 교육 외 부문의 제반 개혁 역시 정부와 우리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김진영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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