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도문제의 발생배경과 독도영유권 논쟁의 경과
1904년 2월 23일의 한일의정서, 1904년 8월 22일의 제1차 한일협약으로 시작되는 일제의 한국침략 와중인 1905년 2월 22일 일본은 소위 ‘도근현고시 제40호’라는 것을 통해 우리의 고유영토인 독도를 불법으로 편입조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36년간의 일제 식민지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하자 전승국인 연합국에 의한 일본의 침략영토 처리가 단행되는데, 독도에 관해 구체적으로 처음 언급한 1946년 1월 29일의 ‘연합국최고사령관 총사령부 훈령(SCAPIN 제677호)’은 독도를 울릉도, 제주도와 함께 일본의 관할범위로부터 제외할 것을 분명히 규정하였다. 그런데, 그 뒤 1951년 9월 8일 마련된 전승국 연합국과 일본과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는 일본의 영토포기 지역들 중 한국의 도서들을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라고만 명시하고 독도를 직접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이 조항의 해석을 둘러싼 한일간 논쟁의 불씨를 남겨놓게 되었던 것이다.
이어 1952년 1월 18일 한국이 소위 ‘이승만 평화선’의 선포를 통해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천명하자 2월 28일 일본의 첫 항의가 제시되면서 이 때부터 한일간 독도영유권 논쟁은 본격화 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한일 정부간 수 차례의 영유주장 논리의 반박서가 교환되다가, 1961년 5월 16일 한국에 군사쿠데타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서 1962년 7월 13일 일본정부의 반박서를 마지막으로 한일간 공식적인 반박서의 교환은 끝나게 되고, 이어 1965년 한일간 기본조약 체결에 의한 관계정상화로 인해 독도문제는 일단 보류상태로 남겨두게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한국의 독도 등대설치와 독도개발 계획에 대응하여 일본정부의 독도영유 주장은 다시 대두되면서 이 때부터 일본 순시선과 항공기 및 어선의 독도 영해침범 사례가 꾸준히 발생해 왔다.
그러다가 1994년 11월 유엔해양법협약의 발효에 따른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의 설정과 관련하여 독도문제는 다시 한일간 뜨거운 현안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1995년 12월 한국의 독도 접안시설 착공과 관련하여 일본이 거세게 항의하는 한편, 1996년 9월30일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는 당시 일본 자민당이 독도영유권문제를 총선공약화로 추진하였고, 1997년 6월 들어 한국정부가 당초 1997년 11월 완공 예정이던 독도의 접안시설 완공을 4개월 앞당겨 7월에 조기 완공한다는 계획을 마련하자 발표 직후인 6월 2일에 일본 외무성은 독도문제와 관련해서는 외교채널을 통해 처음으로 공식 항의를 제기하면서 독도 개발계획과 접안공사의 중단을 정식으로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 문제는 당시 진행중이던 한일간 어업협상의 난항과 맞물려 일본측에서는 97년 7월 20일(일본내 배타적경제수역법안 통과 1년째 되는 날)을 시한으로 어업협정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일방적으로 어업협정을 파기할 의사가 있음을 자국 언론에 흘리는 한편, 6월 8일, 9일, 15일에 걸쳐 한국 어선 4척을 일본이 일방 선언한 ‘직선기선 영해’를 침범하였다는 이유로 나포하였다가 한국측 항의를 받고서야 풀어주는 등 사태가 여느 때보다 복잡화되는 과정을 겪기도 했다. 결국 독도를 ‘중간수역’에 두는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긴 했으나 국내적으로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00년판 일본의 외교청서에서는 독도가 일본영토임을 예년에 비해 더욱 강하게 주장하고 있어 독도영유권 논란은 한일간 피해갈 수 없는, 그러나 언젠가는 건너야만 될 다리인 셈이다.
2. 독도영유권 논쟁의 쟁점
독도영유권 논쟁의 쟁점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역사적 권원에 있어, 한국측과 일본측은 각자 역사적 문헌을 통해 독도가 역사적으로 자국의 고유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다. 둘째로 지리적 근접성에 있어, 한국측은 울릉도를 기준으로 독도의 근접성을 주장하는 한편 일본측은 본토를 기준으로 독도의 근접성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 근접성 주장은 국제법상으로 영유권 판단의 근거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셋째로 일본의 독도편입조치와 관련한 선점의 합법성 문제에 있어, 한국측은 일본의 선점이 국제법적 요건을 갖추지 않은 불법적 영토탈취라고 주장하는 반면 일본측은 국제법적 요건을 갖춘 합법적 편입조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후 영토처리 과정과 관련하여 일본이 포기해야될 지역으로 독도가 직접 열거되었던 문건인 1946년 1월 29일의 ‘연합국최고사령관 총사령부 훈령(SCAPIN 677호)’과 독도가 직접 열거되지 않았던 문건인 1951년 9월 8일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상이 부분 해석에 있어, 한국측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SCAPIN 677호의 조항에 모순되는 어떠한 규정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SCAPIN 677호에 이미 명시된 일본의 침략영토 포기조항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입장임에 반해, 일본측은 영토처리에 관한 최종결정은 SCAPIN 677호가 아닌 샌프란시스코조약이며 여기에는 독도포기조항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들고 있다.
3. 독도영유권 분쟁의 향후 전개 전망
다음은 독도문제와 유사한 세계 여타의 도서영유권분쟁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서 향후 독도 영유권분쟁이 어떻게 또 어디까지 전개될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독도분쟁 시나리오라 할 수 있는데, 주목할 점은 여타의 일부 도서영유권분쟁들 경우 실제 아래와 같은 전철을 거쳐서 무력충돌 내지 전면전까지 초래하였다는 점이다.
일본은 1951년 1월 28일 한국의 평화선 선포에 맞서 처음으로 독도영유권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 이래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의 현 실효적 점유의 효력을 상쇄시킬 목적으로 독도 영유권 주장을 계속하면서 본격적 국제분쟁화 시도의 여러 여건이 조성될 때까지 명분을 축적해 나갈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건’이라 함은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전쟁포기 헌법조항 개정 및 군사대국화 진입, 우익정부 등장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여건들이 어느 정도 조성되었다고 판단될 시 일본은 본격적인 독도문제의 국제분쟁화를 시도하려 들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국제여론을 감안하여 최우선적으로는 이미 1954년에 한국에게 제의한 바 있는 ‘ICJ 합의제소’를 다시 정식으로 한국에게 제의하는 작업부터 시작할 것이고, 한국은 당연히 이를 거부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그 다음 수순으로 유엔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하여 유엔총회의 결의안을 통해 한국에게 재차 외교적 압박전술을 구사할 것이며, 이마저 효과가 없을 경우 그 다음 수단으로 독도에 대한 군사위기(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를 야기한 후 유엔 안보리의 개입을 유도하여 ‘평화적 해결을 위한 당사국간 협의와 ICJ 합의제소를 촉구하는 유엔안보리의 권고결의안’을 얻어 내려 할 것이다.
어떤 경로를 거치든 한국이 국제적 여론에 밀려 부득이 ICJ 합의제소에 동의하게 되고 마침내 독도문제는 ICJ의 판결 단계로 접어들 것이다. 그러나, ICJ 판결이 한국영토이건 일본영토이건 어떤 방향으로 결정되더라도 패소한 상대방은(한국이건 일본이건) 이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독도문제는 이제 양국간 타협 아니면 물리적 군사력에 의한 해결의 양자 택일로 남게 될 것이다.
4. 대책
영유권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일본을 상대로 영유권을 계속 지켜내기 위해 물리적 군사력에 의존한다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독도영유권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전략적, 논리적 차원의 해법 및 고려사항 몇 가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주변 분쟁지역에 대한 입장 정리
독도영유권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정부는 중-일간 센카쿠문제 및 러-일간 북방도서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는데, 우리의 독도영유 논리(일본의 불법 영토탈취)를 적용한다면 중-일간 센카쿠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측의 입장을 지지해야 할 것이며 러-일간 북방도서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입장을 지지해야 하는 미묘함을 인식하여 냉철하고 현명하게 처신해야 할 것이다. 중국측의 입장을 지지해야 하는 센카쿠 영유권분쟁에 대해서는 별 어려움이 없으나, 일본의 입장을 지지해야 하는 북방도서 영유권분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고려가 필요할 것 같다. 즉, 북방도서 문제에 있어서는 현재 구소련이 2차대전시 불법점령한 이 지역의 반환을 주장하는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여야 마땅하나, 이 경우 일본의 전략적 우위 확대에 따른 일본의 팽창주의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우리의 안보적 차원에서 고려할 때 북방4도서 전체가 일본으로 반환되는 것 보다는 북방4도서 중 가장 작으면서 쿠릴열도의 줄기에서도 비켜나가 있는 하보마이와 시코탄 두 섬 정도만이 일본에 반환되는 선에서 러일간 북방도서 문제가 해결되도록 바라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 생각된다.
2) 독도 관련 대미외교의 필요성
한일간 독도영유권 문제가 본격 비화되었을 때 과연 미국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독도문제에 있어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기 어려운 속사정을 안고 있음을 간파할 필요가 있는데, 미국 자신이 관련된 도서영유권 분쟁사례를 보면 이를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우선, 일본이 한국의 국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일방적으로 편입조치(도근현고시 제40호)한 것과 같은 전철을 미국도 밟은 사례가 있는데, 첫 번째 사례는 1967년 영국으로부터 아프리카 남동해의 Diego Garcia섬(도서국인 모리티우스 인근에 위치)을 이양 받아 1980년 1월 4일 이 섬에 일방적으로 해군 기지 건설방침을 선포함으로써 모리티우스 국가로부터 영유권 분쟁이 제기되고 있으며, 두 번째 사례는 자마이카 해협에 위치한 Navassa섬을 19세기에 일방 점유하여 제2차대전 중 이 섬에 등대를 설치하는 등 자국의 관할하에 둠으로써 아이티(Haiti) 국가로부터 영유권 분쟁이 제기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독도에 대한 한국의 현 실효적 점유(등대 설치 및 경비대 주둔 등)에 대해서도 쉽사리 인정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는데, 바로 캐나다와의 Machias Seal 도서를 둘러싼 영유권분쟁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섬은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지대 해안에 위치하고 있어 양국이 모두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도서인데, 캐나다가 이 도서에 1832년이래 등대를 설치하고 경찰 경비대가 보호순찰 활동을 하며 실효적 점유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를 인정치 않으며 1984년부터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영유권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은 이러한 미국 자체의 도서영유권 분쟁사례들의 추이를 계속 추적해 나감으로써 한일간 독도 영유권분쟁과 연계하여 미국의 입장표명이 어떻게 변해나갈 것인지를 예의주시하면서 독도영유권 분쟁시를 대비한 대미외교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3) 한미일 군사관계 정립 문제
미국과 관련하여 복잡한 문제로 현재 미국이 한국의 동맹국이기도 하지만 일본의 동맹국이기도 한 사실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직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은 국제연합군사령관에게 귀속되어 있으며 실질적으로는 미군사령관에게 남아 있는 실정이다. 만에 하나 한일간에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의 군사작전은 미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게 되며 미국은 일본과의 안보조약 관계로 인해 상당히 복잡한 양상으로 될 수밖에 없다. 1994년 한-미연례안보회의를 계기로 1995년부터 평시작전통제권은 이미 한국으로 환수되어 있으므로,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문제도 독도문제와 관련하여 심도있게 검토되어질 필요가 있다. 물론 현 남북한 대치상태를 감안하여 신중히 검토되어야 하겠지만, 전시작전통제권의 완전환수 이전에 취할 수 있는 과도단계로서 미국의 전시작전통제권 범위를 對북한 작전시의 경우로 축소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독도 군 주둔 문제
독도경비를 위해 현재의 경찰 주둔을 군으로 대체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온 바 있고, 이에 대해 정부에서는 군이 주둔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독도분쟁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는 점과 한국이 독도를 무력강점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게 됨으로써 현재의 실효적 지배 효과를 상쇄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며 현재의 경찰 주둔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의 방침대로 경찰이 주둔한다고 해서 이상과 같은 우려가 완전히 해소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재검토가 요망된다. 왜냐하면, 독도문제는 한국이 원하든 원치 않든 세계도서분쟁의 리스트에 따르면 이미 분쟁으로 간주되고 있는 경우도 있을 뿐만 아니라, 만약 경찰주둔이라도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면 과연 이것이 실효적 지배의 “평온하고 계속적인” 지배 요건을 갖춘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상의 “실효적 지배” 효과는 독도문제가 만에 하나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되었을 경우만을 전제로 한 것인데, 과연 ICJ 판결이 독도분쟁의 최종 해결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냐는 점이다. 만약 독도문제의 경우 ICJ 판결 자체가 결코 최종 해결수단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판결이 어떻게 나든 패소국은 결코 인정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현재 우리 정부가 경찰주둔으로 인한 “실효적 지배”의 효과 자체에 너무 정책적 비중을 둔 나머지 군사적 차원의 대책은 그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서 독도의 군 주둔이 독도분쟁의 유일한 군사적 대안이 될 수 없음도 바로 현재 우리의 딜레마이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의 전시작전통제권은 실질적으로 미군사령관에게 귀속되어 있는 상태이고, 독도를 둘러싼 무력충돌이 야기되었을 때 과연 우리 군이 주둔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독도 경비의 경찰 또는 군 주둔 문제는 이상 여러 가지 전제와 관련 군사적 현 여건을 감안하여 결정되어야 할 민감하고 미묘한 부분임을 강조하면서, 여기에서는 다음의 절충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개인적 견해로는 독도분쟁이 ICJ 판결로 인해 최종 해결되어질 정도의 분쟁이 아닌 한, ICJ 판결시 실효적 지배의 인정(이 자체도 불투명함)을 염두에 둔 경찰주둔 방침 보다는 군사적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군 주둔 방침으로 기본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본다. 다만 전시작전권 문제에 따른 군 작전상 한계를 고려할 때, 군 주둔의 시기는 한미간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이후나 최소한 환수 이전이라도 전시작권통제권의 작전범위만이라도 대북작전 경우로 한정시킨 이후에 고려됨이 바람직하리라 본다.
배진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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