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실험은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그 반향은 북한 핵실험에 대해 압도적으로 비판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본 국제 이슈해설은 우선 독일의 언론에 나타난 기사를 중심으로 유럽 측의 시각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북핵은 한반도나 미국 그리고 6자 회담 당사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직후 독일 등 유럽사회의 반응은 핵과 관련해 유럽 사회가 얼마나 민감한 지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주요 언론이 연일 북핵 보도를 쏟아내고 있고 관련 기사에 대한 네티즌들의 댓글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의 북핵 보도에는 무려 1,300여개의 댓글이 달려있고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이 실시하는 설문조사에는 무려 1만 명이 넘는 독일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북핵과 관련해 독일 언론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북한을 조명하고 있다. 하나는 북한의 핵실험 이후 동북아 지역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의 상황과 김정일의 실체에 관한 것이다.
2. 핵실험은 김정일의 아킬레스건이다.
억압을 수단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는 억압자들에게 그만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FAZ)는 김정일 자신과 추종자들에게 주어져야 할 보상규모가 매달 수백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40여개 북한 계좌에 대한 동결 조치는 그 규모로 2천4백만 달러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보상이 중단될 것이라는 신호탄과 같다. 미국은 수퍼노트(100달러 위폐) 세탁의 본거지인 마카오 은행에 이어 자국내 중국은행을 포함한 모든 은행의 거래내역을 조사하고 있다. 금융기관을 상대로 거래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김정일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일본, 호주, 베트남을 포함한 20여개 국가가 의심스러운 대북거래를 완전 중단했고 일본은 북한을 왕래하는 해상교통을 통제해 북한의 중요한 외화벌이 통로를 막아 버렸다. 이 루트는 대량의 엔화가 현찰로 북한으로 유입되는 통로였다. 미ㆍ일의 이 조치로 김정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온 한 국제정치 전문가는 금융제재가 핵실험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도 금융제제는 '북한 좌절의 원천’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북한이 대북제재는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다고 반발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김정일은 인민에는 무감각하지만 권력주변에는 지나치게 민감하다.
3. 독일이 보는 중국의 고민
알게마이네 차이퉁 지 10월 11일자는 핵실험 이후 북중 간의 특별한 관계(치아와 입술과의 관계)가 끝났다고 쓰고 있다. 그동안 북 중관계가 소원했던 적도 있었지만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양국 관계가 공고한 것처럼 비춰졌다는 것이다. 유엔의 대북제재에 중국이 동참함에 따라 대외관계의 기본노선(불간섭주의)을 수정하게 되었고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로부터 얻었던 지지도 위협받게 되었다. 동북아 지역에 촉발된 군비경쟁도 중국으로서는 달갑지 않다. 일본이 핵무장을 하려할 것이고 대만과 한국의 군비경쟁도 강화될 것이다. 동북아 지역의 유일한 핵 보유국으로서의 위상도 침해받게 된다.
유엔의 대북제재는 북한 붕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중국은 공공연히 대량 탈북자들이 몰려와 중국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는 명분으로 북한문제에 개입하고 있다. 북한 붕괴로 인한 남한주도의 통일은 목전에 미군을 두는 꼴이 되어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더욱이 핵실험으로 중국의 체면은 바닥에 떨어졌다. 적어도 국제사회는 중국의 사전 동의 없이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해왔다. 왜냐하면 중국이 북한의 생명줄과도 같은 에너지와 식량의 절대량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이 핵실험을 막지 못한 것을 계기로 중국에 대해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몫을 다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엔으로 부터도 특히 핵 비확산 분야에서의 역할을 감당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이제 중국은 에너지 정책적 이해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이란을 무조건 지지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함에 따라 중국은 대외정책은 물론이고 대북정책에도 일대 수정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이야말로 북핵 실험의 최대 피해자라고 FAZ는 분석하고 있다.
4. 무덤 속 폴포트가 시기할 북한의 핵 - 김정일의 성스러운 사명
디벨트(Die Welt)의 크렘프 기자는 10월 13일자 북핵 관련 보도에서 “Die todesneurotische Mission Kim Jong-il" "김정일의 살인광적 사명"이라는 제목 하에 하늘이 북한주민에게 부여한 임무에 대해 쓰고 있다. 김정일은 부친 김일성이 생전에 완수하지 못한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6.25 전쟁에서 미국의 개입으로 성공하지 못한 남한정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남한에서의 적색혁명은 김정일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성스러운 의무이다.
핵무기는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다. 핵은 김정일로 하여금 남한의 적화통일이 눈앞에 놓여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성스러운 임무는 모든 북한주민들에게도 동일하다. 김정일이 오늘 임무 수행에 나선다고 해도 이에 대항할 인민도 없고 군 장성도 없다. 왜냐하면 인민에서 군장성에 이르기까지 남한해방이라는 사명에 감격해 있기 때문이다. 디벨트는 이런 독재자의 주문에 대해 무덤 속 폴포트가 시기할 정도라고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성스러운 사명과 관련해 베를린의 유력 일간지 타게스슈피겔(Der Tagesspiegel)은 10월 8일자 보도에서 김정일은 어버이 김일성이 신으로 추앙받던 시대에 성장했고 1970년 노동당 선전부장이 되어서는 전국 곳곳에 김일성 동상을 세워 당시 동상이 3만개에 달했다고 쓰고 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김정일의 머리 속에는 폭력과 프로파간다의 세계만이 존재한다. 북한은 죽은 사람이 통치하는 지구 상의 유일한 나라이다. 인민들은 이데올로기로 조성된 허구의 세계에 살고 있다. 심지어 북한을 탈출한 한 탈북자는 김정일에 대해 일종의 경외심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5. 김정일, 섹스광이자 알코올 중독자
- 혼외 아이 9명/ 기쁨조는 성노리개, 행복조는 마사지 담당
핵실험을 계기로 유럽언론들의 또 다른 관심사는 김정일의 실체이다. 타게스슈피겔은 10월 8일자에서 “김정일의 삶은 어떨까?” 라는 제목으로 여러 정보채널을 통해 수집한 김정일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김정일의 호화스런 삶은 그가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시설들과 거느리는 여인네들로 잘 대변되고 있다. 10여개의 호화저택과 별장, 골프장, 최고급 자동차들과 호화 오토바이, 사격장, 극장, 산책로, 사냥을 위한 광활한 공원들과 예술적 탐익을 채우는 수천 개의 비디오 카세트들로 그의 생활은 사치하다. 김정일과 수 십차례 인터뷰를 했던 영국의 언론인 재스퍼 베커(Jasper Becker)는 64세가 된 김정일은 섹스광이자 알코올 중독자라고 말한다. 혼외관계로 얻은 아이도 9명이나 된다고 말한다. 주로 영화배우와 가수들이 김정일의 파트너들이다.
80년대 부터는 전국에서 미녀를 선발해 김정일에게 바치는 국가 차원의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160cm 이상 선발된 미녀들은 세 그룹으로 분류된다. 김정일의 성적욕구를 해소해주는 "기쁨조"(Befriedigungsteam), 마사지 담당 "행복조"(Happiness-Team) 그리고 “댄스그룹”이다.
김정일의 호화스런 생활의 이면에는 버림받은 인민들이 있다. 세계식량계획의 잉게보르그 슈뢰더(Ingeborg Schroeder)는 슈피겔과 갖은 인터뷰에서 “Das Regime ist unempfindlich gegenueber der Armut der Bevoelkerung" ”북한정권은 인민들의 빈곤과 기아에 무감각하다”고 전하고 있다.
6. 대북제재와 효과
- 권력자와 추종세력이 보상받는 것이 억압국가
슈뢰더 지부장은 식량 등 생필품에 대한 대북제재는 그다지 효과가 없을 것이며 그나마 사치품에 대한 거래 금지가 부유층과 특권층에 효과적이긴 하지만 이것도 중국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정권이 인민들의 고통에는 무감각하기 때문이다.
BDA은행에 대한 계좌동결 조치는 김정일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다. 디벨트(Die Welt)는 10월 17일자에 "Die Hausbank des Diktators" "독재자의 개인은행"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마카오 은행의 동결조치에 대해 권력주변에서는 이것이 추후 단행될 대규모 제재에 대한 신호탄이라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FAZ의 안네 슈네펜(Anne Schneppen) 기자는 10월 12일자 보도에서 금융제재는 권력층의 사치스런 생활의 중단을 암시하고 있고 권력의 동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전하고 있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소극적인 것도 북한 붕괴와 탈북자들이 대거 중국으로 몰려올 것이 두려워 압록강 국경 부근에 2.5 미터 높이의 철조망을 쌓아올리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가운데 FAZ는 핵실험 당일인 10월 9일 다음과 같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핵실험과 관련해 국제사회가 어떤 대응을 해야 할 것인가를 묻는 조사였다.
군사제재를 포함한 강력한 제재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인 사람은 61.79%로 국제사회가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10.68%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7. 북한의 비밀친구
디벨트는 10월 15일자에 “Nordkoreas heimliche Freunde" "북한의 비밀친구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및 남한이 나름대로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은 김정일의 철권통치가 없다면 북한은 내전이 발발해 친중, 친미, 친한 세력들이 대립할 것이고 남한 주도 하의 통일도 가능하다도 내다보고 있다. 2백만 명에 달하는 조선족들이 동요할 것이고 3만 명에 달하는 주한미군의 존재도 중국의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신문은 보도하고 있다. 북중 국경의 군인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압록강을 건너와 넋이 빠진 채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수없이 만난다. 하지만 모른 채 북한으로 돌려보낸다고 고백하고 있다. 불쌍하지만 그냥 받아줄 수 없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더욱이 북한붕괴를 막고 대북영향력을 확대시킨다면 대만과의 통일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협상에도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러시아 역시 대북제재에 소극적이다. 강한 제재로 북한붕괴를 초래해 동북아지역에 혼란이 가중될 것을 원치 않고 있다. 또한 이란의 가스와 원유에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는 대북제재가 이란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일본은 북핵을 빌미로 일미공조를 강화하고 있고 군사강국이나 헌법개정 등 민감한 사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북한이라는 변수가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군사강국으로서의 강한 일본을 건설하려는 야망이다.
디벨트는 남한도 북한의 비밀친구라고 보도하고 있다. 신문은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을 인용해 남한도 북한이 혼란에 빠져 수백만 탈북자가 밀려올 경우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쓰고 있다. 통일은 원하지만 지금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대북제재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요소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고 지적하며 대북제재의 효과를 의심하고 있다. 주변국들이 북핵을 빌미로 자신의 국익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혈안이 되고 있다.
8. 맺음말
-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기회
북핵을 둘러싸고 주변강대국들의 국가이익 챙기기가 무섭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연 우리의 국가이익은 무엇일까? 현상유지인가, 작통권환수인가, 친중반미인가. 한미동맹 강화인가.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분단고착화를 유도해 북한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의도와 동북공정이 내세우는 명분에 불과하다. 즉 분단을 전제로 한 평화공존은 고구려사를 중국에 넘겨주는 로드맵이다. 결국 중국은 북한을 편입시키려 할 것이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혼란기에 우리의 최우선 국가이익은 통일이어야 한다. 통일은 우리가 원하는 때에, 우리 뜻대로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통일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기회이고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통일이 불가능한 이유들을 나열해 역사적 기회를 무산시키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안정을 되찾고 통일 협상을 통해 단계적으로 통일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동화같은 이야기로 우리의 미래를 또 다시 흑암으로 몰아넣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분단 하에서 지불하는 비용만으로도 통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한반도 상황이 결코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이러한 핵 위기의 순간에도 뼈아프게 경험하고 있다.
박상봉 / 독일통일정보연구소 대표, 서울장신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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