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9.18 총선분석: 메르켈 총리와 대연정

박상봉 / 2005-10-21 / 조회: 5,319

1. 들어가는 말


슈뢰더 총리의 조기총선 요구와 연정파기로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합정부는 임기 1년을 남겨 두고 해체한 후 지난 9월 18일 총선을 실시했다. 총선결과 뚜렷한 과반수를 확보하는데 실패한 정당들은 10월 10일 기독연합당(CDU/CSU)와 사민당(SPD) 간 대연정에 합의해 기독연합당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를 선출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정치사에 몇 가지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된 것과 동독 출신이라는 점이다. 물론 새로 탄생한 여성 총리가 향후 독일정국을 소신 있게 이끌어갈 수 있느냐를 두고 벌써부터 잡음이 있다. 근소한 차이로서 기독연합당은 사민당을 앞섰지만 인물에 대한 평가는 슈뢰더가 메르켈을 앞서고 있고 이번 연정협상으로 슈뢰더 전 총리는 부총리 겸 외무장관을 비롯해 8개의 장관직을 사민당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지난 7년간의 적녹 정권(사민당과 녹색당의 연합정부)이 해결하지 못한 500만 명의 실업과 15년 동안에 무려 1조4천억 유로(약1700조원) 이상을 들여도 경제회복의 자생력을 회복하지 못한 동독경제의 원인을 집권정부의 반기업적 정책과 대중 포퓰리즘 때문이라고 확신하는 메르켈 신임총리는 'Sozial ist, was Arbeit schafft. 사회보장은 일자리가 만드는 것'이라며 새로운 독일을 건설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경제의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자민당(FDP)이 슬럼프를 벗어나 제3당의 지위를 탈환 한 것에서도 독일사회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라보게 된다. 독일의 대처라는 별명의 메르켈이 사민당과 동일한 수로 내각을 구성해 독일병을 치유하고 새로운 강한 독일을 건설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 독일정치와 9.18 총선


독일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히틀러 나치정권의 역사적 범죄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해 극우정당의 출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둘째, 칼 마르크스가 독일태생이라는 점으로부터 독일인의 이념적 성향을 읽어내야 한다.


이런 역사적 전통으로 인해 독일사회는 히틀러 나치정권으로 대변되는 극우세력이나 RAF 급진좌파세력에는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독일 양대 정당인 기독연합당(CDU/CSU)와 사민당(SPD)의 주요 정치적 과제 중 하나는 NPD(독일민족당), RAF 등 소수 급진세력의 지지기반을 어떻게 당내에서 흡수할 것이냐이다. 지난 1966년 최초의 양대 정당간 대연정에 대해 당시 정계에서는 두 국민정당이 연합정부를 구성할 경우 소수급진정당(극우, 극좌)이 출현할 가능성을 가장 경계했다. 1949년 서독의 건국 이후 극우당은 물론 극좌당도 한 번도 의회에 진출하지 못했던 것도 독일의 이런 정치적 특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독일 사회가 '사회적(Sozial)'이라는 개념에 민감한 것도 같은 의미에서 이해하게 된다. 물론 여기서 사회적이라는 의미는 '사회주의적(Sozialistisch)’이라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자본주의 모순을 적극 해결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발상으로 사회가 좌나 우로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다. 


하지만 독일사회에는 통일 이후 구 동독 공산당 SED의 후신인 민사당(PDS)을 지난 98년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의회진출을 허용하고 말았다. 98년에 5.1%의 지지율을 얻어 간신히 의회진출이 가능했으나 이번에는 무려 8.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민사당의 성과는 동독에서의 지지율이 거의 25%에 달해 기독연합당과는 거의 동동한 정도의 지지율이다. 이것은 통일 후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동독인들의 불안을 심리적으로 이용해 지지자를 끌어모으는 민사당의 전략이 성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는 자아르브뤼켄 주 총리를 지낸 라폰테인을 중심으로 한 사민당 내 급진세력이 당에서 분리되어 민사당과 통합, 좌파정당으로 선거에 임해 지지율이 많이 상승했다. 민사당은 주로 동독 구 공산당 세력들로 통일 후 모든 권력의 기반을 상실한 집단이 주축이 되어있다.


민사당의 지지율이 동독지역에서는 25%에 달하지만 서독지역에서는 불과 4.9% 달하는 것도 당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3. 총선결과와 정계변화


이번 9.18총선은 독일정당의 지형을 다음과 같이 변화시켰다.


첫째, 자유민주당(FDP)이 3당의 지위를 회복한 것이다. 자민당은 지난 1994년 총선에서 녹색당(Gruene)에게 제3당의 지위를 넘겨준 이후 11년 동안 캐스팅보우트로서의 역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자민당에게 9.18 총선은 제3당의 지위를 탈환하도록 했다. 자민당은 1998년 선거에서는 6,2%를 얻어 지난 69년 선거의 5.8%에 이어 가장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둘째, 동독 공산당 후신인 민사당(PDS)가 8.7%의 득표율을 기록해 4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지난 98년 선거에서 5.1%를 얻어 겨우 연방하원에 진출할 수 있었던 민사당에게 이번 선거는 하원 진출 마지노선인 5%를 훨씬 넘어 8.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셋째, 슈뢰더총리와 연정을 구성해 내각을 함께 구성했던 녹색당이 4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넷째, 전통적 국민정당인 기독연합당과 사민당의 통합득표율이 69.4%에 불과해 49년 건국총선 이후 가장 저조한 성과를 기록했다.


이런 총선결과와 정계변화는 상대적으로 사회보장과 복지에 비중을 두었던 지난 7년간의 슈뢰더 정권의 실패를 의미한다. 자민당의 3당으로의 회복도 이런 성향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통일 후 동독인의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심해지고 있음을 읽어내게 된다. 동독 공산당의 잔재인 민사당의 인기가 급상승해 무시할 수 없는 정당으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독에 비해 실업률이 2배인 동독지역에 대해 정치인들의 과도한 공약과 포퓰리즘이라는 유혹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타난다.


4. 대연정과 메르켈 총리 탄생의 의미


총선 후 어느 당도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하게 되자 다양한 연정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우선 신호등(Ampel) 연정으로 신호등의 적색, 황색, 녹색을 비유해 적(사민당), 녹(녹색당), 황(자민당) 사이의 연정 가능성으로 이 경우 52.1% 지지율이 확보된다. 비록 과반수를 얻지 못했지만 35.2%를 얻어 1당이 된 기독연합당을 주축으로 한 자마이카 연정도 검토되었다. 일명 슈밤펠(Schwampel)이라고 불리는 연정은 검정색 신호등연정을 의미한다. 적색(사민당) 대신에 검정색(기독연합당)을 대체한 신호등이라는 의미로 슈밤펠 연정으로 불렀다.


또 하나의 연정 가능성은 적적녹 연정으로 기존의 적녹(사민당-녹색당) 연정에 좌파정당 민사당을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이 경우 51% 지지율이 된다. 이와 함께 지난 1966년 이후 두 번째로 기독연합당과 사민당의 대연정에 대한 가능성도 거론됐다. 이 경우 69.4%의 지지율을 얻어 정치안정을 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독일사회는 대연정을 이루어냈고 사민당의 견제 속에 메르켈 내각은 자신이 추구해온 정책을 어떻게 조율해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선거 기간 중 메르켈 후보는 독일병의 원인을 슈뢰더 정권의 반기업적 정책과 과도한 규제 그리고 지나친 사회복지부담에서 찾았다. 통일 후 달성된 것들에 대한 평가절하와 상대적 박탈감에 불안해하고 있는 동독인의 불안심리도 독일병에 일조하고 있다. 슈뢰더 정권의 집권 2기인 지난 3년간만 무려 150만명의 일자리를 잃었고 매일 1천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유래 없는 실정을 보였다는 것이다.


메르켈의 정책적 흐름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반기업적 정책을 지양하고 재정을 통한 사회보장의 확대가 아니라 상대적 빈곤층에 일자리를 만들어주어 해결한다는 입장이다. 


고용 없는 복지확대는 더 큰 빈곤과 경제침체를 불러올 것이라는 것이다.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가 다시 한 번 품질과 경쟁력의 상징이 되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 과감한 친 기업적 정책들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첨단제품, 첨단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각종 규제를 철폐해 기업부담을 최소화해 기업경쟁력을 높인다. 현재 기업은 각종 규제로 인해 연간 460억 유로를 부담하고 있다. 또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장기실업자에게 고용의 기회를 확대하고 창업과 중소기업을 지원해 고용을 늘린다. 메르켈은 국제적 비교를 통해 근로시간을 확대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국가에서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되었다고 확신한다. 


한마디로 메르켈의 경제관련 정책의 핵심에는 고용확대가 자리하고 있다. 


둘째, 반미주의를 극복하고 동유럽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한다. 


슈뢰더 정권은 이라크 전쟁을 빌미로 반미정서를 확산해 국민의 지지를 얻어 미국과의 갈등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지나친 보호주의에 반대하고 있고 EU의 새로운 회원국인 동유럽 국가들의 역할을 확대해가며 미, 영과도 관계를 개선한다는 입장이다. 


이렇듯 자유와 시장의 가치에 보다 큰 비중을 두는 메르켈이 같은 동독인의 지나친 사회보장 요구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지 기대된다. 메르켈은 자유와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동독지역에서 인기는 저조하다.


"Unser Ziel ist nicht die bessere Verteilung des Mangels. Unser Ziel ist die Rueckkehr zu mehr Beschaeftigung, Wachstum und Sicherheit. 우리의 목표는 부족한 것을 어떻게 잘 배분하는데 있지 않다. 우리의 목표는 고용창출확대, 성장과 안정으로의 회귀이다“라는 메르켈과 기민당의 정책목표가 어떻게 추진되느냐에 따라 통일 15주년을 맞는 독일의 미래가 달려있다.


박상봉 / 독일통일정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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