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의 제기
10월 3일로 통일 14주년을 맞은 독일은 지난 89년 이루어낸 무혈혁명과 통일의 자부심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 공산독재를 몰락시킨 라이프치히 월요데모(M0ntagsdemos)는 슈뢰더 정부의 사회보장기금 축소정책(Hartz IV)을 반대하기 위한 저항운동으로 새롭게 부활하였고 독일 전체가 어두운 미래에 신음하고 있다.
경제는 통일 이후부터 성장에 문제를 보였다. 93년도에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데 이어 2001년부터 3년간 거의 성장이 정지되어 버렸다. 2002년도에는 또 다시 -0.1%의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정부의 사회보장기금 축소방안도 이런 독일경제의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동안 동독은 이런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기를 들어왔고 상대적 빈곤감과 불만을 토로해온 동독인의 저항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 시기를 연장해왔다.
이런 가운데 호르스트 쾰러(Horst Koehler) 대통령은 정부의 지역 보조금이 경제침체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무리한 보조금으로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경제회복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무차관과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역임한 경제전문가인 쾰러 대통령은 지난 9월 12일 “정부가 지역별 생활수준을 맞추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후세에 엄청난 부채를 떠맡기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국가의 정책 목표를 동서 양지역의 동일한 생활수준으로 설정한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은 동독인의 저항을 불러왔고 9월 19일 치러진 동독지역의 작센(Sachsen) 州와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州 의회선거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우려했던 대로 극우정당인 NPD(독일민족당)와 극좌정당인 PDS(민주사회주의당) 등 극단적 정당들의 진출이 두드러졌다. 브란덴부르크 주의 경우, 舊 동독 공산당 SED의 후신인 민사당(PDS)의 득표율이 사민당과의 각축을 벌이며 28%를 차지해 31.9%를 차지한 사민당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전통적으로 사민당 선호지역이었던 주에서 사민당은 득표율 7.1%를 상실하고 민사당은 지난 선거보다 4.7%나 추가득표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1야당인 기민련(CDU)의 득표율은 19.4%에 불과해 반세기 정계구도에 커다란 이변을 연출하고 말았다. 동독 지역의 정치적 상황이 예사롭지 않으며 전통 국민정당에 대한 동독인의 의식이 급변했음을 말해주는 결과였다.
또한 작센 주는 전통적인 극우적 성향을 반영이라도 하듯 외국인에게서 경제침체의 원인을 주로 찾는 독일민족당(NPD)에게 무려 9.2%의 득표율을 허락해 NPD는 정당 설립이후 최초로 주의회에 진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지난 득표율을 무려 7.8%나 초과한 결과였다.
2. 통일 후 정책적 과오
독일이 경제적 고통을 겪고 동독인은 물론이고 서독인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는 것은 통일 이후 추진해온 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통일 이후 14년간 1조2,500억 유로(한화 1,750조원)을 투입하고도 동독경제를 재건하지 못했고 높은 실업율과 특히 동독인들에게 좌절감과 상대적 박탈감만을 안겨다주게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자리잡고 있다.
1) 정치적 포퓰리즘
통일 14주년이 이런 어려움에 직면한 첫번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에서 찾아야 한다. 통일 당시 서독의 정치인들은 혼란에 빠진 동독인들에게 통일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데 급급했다. 동독의 '후견인’으로서 모든 어려움은 서독인이 담당할 것이라는 자만심에 빠졌다.
대표적 사례가 통일의 해인 1990년 7월 1일 단행된 동서독 간 화폐통합이다. 화폐통합은 동서독 마르크화의 교환비율을 어떻게 정할 것이냐가 가장 핵심사안이었고 당시 콜 정부는 예금, 축적재산 등 기존의 재산을 제외하고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수입지출에 대해 1:1의 환율을 적용했다. 하루아침에 서독과의 경쟁체제에 처하게된 동독기업들의 도산이 속출했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정치지도자들은 불안해 하는 동독주민들을 향해 빠른 시일 내에 동독도 서독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는 공언(空言)을 남발했고 동독인의 표는 이들에게 쏠렸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동독인에게 비현실적인 환상을 심어주게 되었다.
물론 당시의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이런 정책적 배려가 없었더라면 혼란을 쉽사리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Wenn DM nicht zu uns kommt, dann kommen wir zu DM. (만약에 서독의 마르크 화가 우리에게 오지않으면 우리가 마르크 화를 찾아간다)”는 동독인들이 무엇때문에 목숨을 건 혁명을 단행했는지를 잘 대변해 준다. 정치인들로서는 이런 동독인들의 숨막힌 요구를 거절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화폐통합과 같은 정책적 배려없이 무작정 서독행을 원하는 동독인들의 잔류를 해결해내기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이런 정책적 결정들은 실패를 초래했다. 가능한 한 최소한의 정치적 배려가 어디였는지를 정확히 찾았어야 했다.
2) 무임승차 근성
쾰러 대통령이 동서독 동일한 생활수준을 목표로 한다면 독일은 '보조금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부채국가을 모면할 수 없다며 목표 수정을 제의한 데 대해 슈뢰더 연방총리도 맞짱구를 치고 나왔다. 그는 독일 사회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무임승차 근성을 지적하며 현재 '공짜근성’ (Mitnahme- Mentalitaet)이 중산층까지 확산되어 경제는 독일경제를 좀먹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사민당의 경제 전문가 라이너 벤드(Rainer Wend) 씨는 “소득에 무관하게 공익보조금을 얻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고 아무도 이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고 공짜인생이 독일경제를 좀먹고 있다고 시사했다. 독일상공회의소 루드비히 게오르그 브라운 소장도 슈뢰더 총리의 인식에 동의한다며 독일사회가 합리성과 이성을 회복하기를 원했다.
이런 공짜근성의 확산을 정치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미연에 방지했다면 현재의 고통은 절감되었을 것이다.
3) 개혁과 변화에 대한 실기(失期)
게다가 전문가들은 통일된 독일의 경제침체에 대해 독일이 개혁과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선 통일 당시 이미 서독사회가 구조조정과 개혁의 필요성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동독이 붕괴하고 통일의 기회가 도래하고 만 것이었다. 모든 역량이 통일에 집중되었고 독일국민은 그들이 이루어낸 통일의 환희에 사로잡혀 있었다.
통일로 야기될 혼란과 후유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통일 이후에도 후유증과 각종 부작용과 불만들을 해결하는 데 돈과 노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로 인해 통일 후에도 올바른 혁신과 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도 구조조정과 혁신, 제도적 개혁을 실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독일의 최대 시사주간지 Der Spiegel은 9월 20일자 보도에서 통일 이후 안일한 태도가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초래했다고 쓰고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통일 후 서독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겠다”며 동독인의 후견인 행세를 자청했고 이 과정에서 동독인들은 새로운 체제에서 학습했어야할 내용들을 배우지 못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저렴한 양질의 상품이 만들어지고 경쟁력있는 기업을 통해 국가가 부유해지고 고용이 창출된다는 자본주의의 기초마저 배우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학습의 자리에 모자라면 서독이 도와주고 먹여주어야 한다는 요구로 채우게 된 것이다.
또한 자기 삶은 결국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진다는 시장경제의 포기할 수 없는 원리도 숙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트로이한트 2대 청장을 지낸 비르기트 브로이엘의 “공짜로 버터 빵을 먹을 수 없다" (Es gibt Butterbrot umsonst)는 철저한 원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3. 독일민족의 저력
쾰러 대통령은 통일 14주년을 맞는 기념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현재의 어려움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성과는 작게 보고 문제점은 확대하는 버릇에서 비롯되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독일은 폐허에서 기적을 이루어낸 저력과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민족이다. 근면함, 철저함, 완벽함과 같은 민족성으로 최고의 산업기술력을 확보해왔고 우수한 두뇌를 갖고 있다.
희망을 갖고 모두가 문제해결에 동참하고 미래의 비전을 함께 가꾸어나간다면 비록 시일이 걸리더라도 독일은 다시 이전의 활력을 되찾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현재 동독의 거리는 새로운 건물, 도로, 철로와 첨단 정보통신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어 과거의 암울한 모습이 아니다. 곳곳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과학과 첨단기술센터가 구축되어 있고 산업단지가 가동하고 있다. 비스마르의 조선소, 아이제나흐, 라이프치히 등지의 자동차 산업단지, 그라이프스 발트의 융합기술센터, 예나와 에어푸르트에 구축된 광학기술단지, 가터스레벤에 마련된 식물유전공학 센터와 베를린의 분자생물학 센터는 통일 이후 동독지역에 새로 구축된 최신 과학 및 기술첨단센터들이다.
무엇보다도 지난 1989년 동독의 공산정권을 평화적으로 해체한 민족의 자부심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선언이었다. 혼란의 시기에 주변강대국들의 이익을 조절해가며 통일의 위업을 달성해낸 헬무트 콜 서독총리와 드메지어 동독총리의 업적은 민족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역량을 독일경제의 최악인 실업을 해소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실직한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어 좌절에서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실업은 죄악이고 노력을 집중해 해결해야할 제일의 과제다.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는 기업이다. 특히 중 소기업들이 살아나도록 해야 한다. 창업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기업인을 돕고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을 되찾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기업을 일으키려는 기업인들에게 더 큰 발언권과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현재 독일의 실업율은 동독이 18%, 서독이 9%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쾰러 대통령은 당연히 14주년을 맞아 충분히 기뻐하고 축하할 자격이 있음을 선언했다.
4. 맺음말
통일후 14년간 무려 1조 2500억 유로(1750조원)이 투입되었지만 동독경제는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동독인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다. 동독인에 대한 과잉보호와 정치지도자들의 과도한 포퓰리즘으로 많은 자본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1조2500억 유로의 2/3가 가계로 유입되어 소비와 기타 관리운영비로 사용되었고 경제활성화를 위한 투자에는 불과 1/3만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독일은 이제 통일 14주년을 맞아 과거의 실패를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로 재기의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정치지도자들이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고 동독인들을 중심으로 한 무임승차근성에 대한 반성이 나타나고 있다.
9월 중순 15만명이 모여 슈뢰더 정부와 쾰러 대통령을 성토하던 월요데모는 급격하게 위축되어 갔다. 시위주도세력들이 벼르던 10월 2일 베를린 집회에는 당초 1백만 내지 2백만명이 모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4만여명이 참가하는 데 그쳤다. 또한 10월 3일 '별들의 행진'(Sternmarsch)으로 이름 붙여진 반정부 시위도 불과 3천명이 모였다.
이제 동독의 과제는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감에 시달리는 동독인들의 불만을 어떻게 해소하며 이런 상황 속에서 심리적 상처를 받은 정치지도자와 국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순화시킬 것인가에 달려있다. 또한 과도한 보호 속에서 나약해진 정부와 소비주체의 체질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투자지역으로서의 동독에 대해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실망가운데 동유럽 각지를 떠도는 기업들의 마음을 어떻게 되돌릴지가 통일 14주년을 맞은 독일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10월 4일 월요데모의 참가자는 막데부르그 400명, 베를린 200명, 게라 700명, 할레 600명, 데사우 200명, 드레스덴 300명, 바이마르 200명, 카셀 100명에 그쳤다는 사실이 독일 경제회복의 긍정적 사인이 될 것이다.
박상봉 / 독일통일정보연구소(IUED)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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