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개발 능력과 현황

신성택 / 2003-11-12 / 조회: 8,485


I. 북한은 실험되지 않은 핵무기를 이미 보유했다.


지난 봄 북경 3자회담에서 북한측 대표인 이근 외무성 부국장은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북한은 이미 핵무기 2개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모든 수단으로 핵무기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하였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으리라고 짐작해 온 터라 큰 소동은 없었다. 그러나 이게 보통 놀랄 일인가?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1997년 망명 직후 밝힌 바 있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는 "북한에서는 이미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부터 국제기구의 정밀사찰을 받게 될 경우를 대비해 일정 단계에 가면 핵보유를 선언하고 협상에 나선다는 전략을 세워두고 있었다"고 밝혔다.
핵보유국가로 인정받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공개적으로 실제 핵실험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식적 핵보유선언'을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IAEA가 전면핵안전조치협정(Full-scope Safeguard Agreement)을 운용하고 있고, 미국이 핵확산에 대하여 대확산조치(Counter-proliferation Measures)를 적용하는 현실에서는 핵실험을 공개하지 않아도 충분히 감지될 수 있다. 미소지진(micro earthquake) 수준 이하의 은밀한 '소형핵탄두실험'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핵실험에 대하여는 충분히 감시, 측정, 평가가 가능하다. 이번의 경우는 후자에 속하는 것이다. 핵보유 선언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핵보유의 실상을 자세하게 공개하지 않는 한,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무기사찰과 핵사찰이 있는데,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는 현실에서는 그대로 믿을 수 밖에 없다.
북한에는 고품위 우라늄광산이 여러 곳에 산재하고 있고,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흑연감속가스냉각로(5MWe원자로)가 있고, 그리고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재처리시설[북한의 표현으로는 방사화학실험실(radiochemical laboratory) 또는 동위원소생산실험실(radioisotope production laboratory)]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획득문제는 원료, 시설, 기술면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 다음 문제는 핵무기를 폭발시킬 기폭장치의 개발인데, 북한은 이미 해당분야별로 내폭실험(implosive experiment), 고폭실험(high-explosives experiment) 및 기폭실험(detonator/fuse experiment)을 1980년대 후반부터 140회 이상 실시하였으며, 1994년까지는 핵폭발장치 기본실험들을 완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남은 것은 국제사회의 압력 속에서도 핵무기개발을 계속하여 핵확산의 제1차적 목표인 핵탄두의 갯수를 늘리고 성능을 제고시키는 것이다.
한 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양태(樣態)는 다양할 수 밖에 없다. 관련되는 분야들이 워낙 상황적인 변수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필수적인 것만을 간추려 보면 어떤 필요충분적 요소들이 공통적으로 요구됨을 알 수 있다. 이른바 '핵무기 확보의 4대 요소'라는 것인데, 북한은 이들을 이미 충족시킨 상황이라는 것이다. 즉, 핵무기를 제조하여 군사적으로 이용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요구되는 네 가지의 요소가 있는데,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이들 기본요소를 단계적이 아닌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일방적 선언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아래와 같이 몇 가지 항목으로 세분하여 평가해 보자.


II. 북한 핵무기 확보의 4대 요소 평가


북한은 한국전쟁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함으로 해서 무력 적화통일의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쳤고 또 미국으로부터 핵위협을 당하는 수모를 수없이 당해왔다고 믿고 있어 김일성의 핵개발에 대한 의지는 통한에 사무친 최대의 숙원사업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이런 의지는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채광으로부터 핵연료 가공과 흑연감속원자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시설, 기폭장치, 탄도미사일의 완성 등 모든 것을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완성해 왔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핵폭발 실험인데, 오늘날의 핵실험은 물리적으로 버섯구름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핵폭발장치 완제품의 모의실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핵무기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또 북한은 핵전략상 핵실험을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한국과 일본도 핵개발을 시도할 것이다. 또 세계적 핵확산금지를 주장하는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핵개발을 하는 대신에 미국의 핵을 한반도에 재반입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어느 정도의 추정적 결론이 가능해진다. 북한은 핵무기를 이미 3∼7개 정도는 보유하고 있고 또 추가적인 핵보유를 위해 지하시설에서 은밀하게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NCND (Neither Confirm Nor Deny: 확인도 부인도 않는 불확실핵정책) 핵정책을 구사하면서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핵탄두를 경량화 하는데 막바지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① 김일성/김정일의 강력한 핵보유 의지
북한 핵무기 확보의 4대 요소 중에서 첫번째가 국가의 강력한 핵보유 의지이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가 핵무기를 확보할여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국가의 명예(prestige)로서, 즉, 강대국으로 인정받는 수단으로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경우, 그리고 둘째로 국가의 안전보장과 관련된 전반적인 위협을 핵무기를 통해 대처하려는 경우가 그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도 이 두 가지 배경에서 보면 정치/군사적, 경제적, 체제유지 측면에서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부자세습체제의 핵보유 동기는 너무나 다양하고 절박해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동기부여와 의지의 표출이 너무나 빨리 나타났다는 사실도 특이하다. 한국의 원자력연구는 이승만 대통령의 고집으로 시동되었는데,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TRIGA Mark-II 연구용 원자로를 설치한 기공식을 1959년7월14일 가졌고, 1962년 3월10일에 동 원자로를 미국에서 도입 가동시켰다. 그런데 북한은 불과 1년 뒤인 1960년에 벌써 '영변원자력연구기지'를 조성하고, 당시로서는 첨단격인 원자력 연구관련 장비들을 대거 가동시키면서 북한 과학자들의 사기를 높인 조치가 북한 핵보유 의지표출의 첫 신호이다.


② 핵무기 구성 물질의 확보
두번째 요소가 핵무기의 구성물질을 확보하는 것이다. 핵무기의 주원료인 고농축우라늄(HEU: high enriched uranium), 무기급 고순도 플루토늄(WGPu: weapon grade plutonium), 중성자촉발장치(neutron initiators), 고폭화약(HE: high explosives) 등이다. 특히 원료물질인 WGPu의 생산에 적합한 흑연감속로의 설계, 제작, 운영의 여러 단계를 자국의 역량으로 일궈냈다는 것만 가지고도 북한의 핵보유 능력은 인정해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에 소요되는 핵물질을 생산하는 핵시설의 배치와 운용형태가 과거 미국의「맨하탄 계획」과 유사하다. 우선은 국가적인 강력한 추진스타일이 그렇고, 미국의 로스알라모스 국립핵연구단지와 같은 영변 핵기지, 워싱턴주의 핸포드와 테네시주의 오크릿지 국립핵연구단지에 버금가는 평안북도 박천 연구기지 등이 핵탄개발에 소요되는 일체의 핵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 또한 흡사하다.


③ 핵무기 제작 기술과 노하우
세번째 요소가 핵물질을 만드는 기술과 핵무기를 제작해내는 기술이다. 후자의 경우를 기술이라는 표현 대신에 노하우(know-how)라고 한다. 핵무기 제조의 노하우는 타국에서 수입할 수 없다. 시간과 돈이 아무리 들더라도 반드시 자력으로 홀로 터득해야 하는 자국산 기술을 말한다. 노하우의 확보량은 핵활동의 이력에 정비례한다. 1960년에 시작했으니 40년이 넘는 시간이다. 미국이 맨하탄계획에서 투자한 시간이 고작 3년에 불과하고 그 기간에 3개의 핵폭탄을 만들었는데 북한이라고 40년이 넘게 걸려야 할 이유는 없다. 왜 미국처럼 핵실험을 하지 않는가? 또는 못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북한의 핵전략인 불확실전략 때문임은 명백한 것이다.


④ 핵탄과 미사일의 결합
네번째 요소가 핵폭발장치에 불과한 핵탄에 군사적 이용가치를 부여하는 지휘, 통제, 통신, 정보(C4 I: 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Information) 기술을 접합시키는 것이다. 제작된 핵무기를 보다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가, 적절한 시기에 적국의 심장부에 정확하게 날려보내는 단계이다. 구체적인 무기체계가 핵무기의 운반수단이고 주로 쓰는 것이 미사일이다.
북한은 1983년에 이집트로부터 소련제 Scud B(사정거리: 300 km)를 도입하여 역설계 방법으로 1987년에는 자체생산한 100기를 이란에 수출까지 했다. 1988년에는 Scud C(사정거리: 600 km)를 개발하여 황해북도 신계지역에 작전배치했다. 1993년 5월, 북한은 동해안에서 자력개발한 노동1호(사정거리: 1,300 km)의 시험발사에 성공했고, 1998년8월31일에는 대포동1호(사정거리: 1,700∼2,100 km)를 시험발사했다. 현재는 사정거리가 4,300∼9,600 km에 달하는 대포동2호의 시험발사 시기를 선택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중국, 러시아 및 미국 본토까지를 포함하는 장사정 미사일을 시험발사할여는 단계를 감안하면, 북한의 핵무기용 C4 I는 거의 완벽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III. 북한 핵활동/핵시설/핵물질의 기술적 평가

북한 핵보유 관련 발언의 진위를 분석함에 있어서 고려되는 요소들은 많지만 대략 두 가지로 구분 지을 수 있다. 하나는 아직도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지는 못하고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다는 이른 바 "낙관론"이다. 낙관론의 근거로는 ① 1992년 이전 WGPu 생산량의 한계, ② 핵탄제조 징후 미약, ③ HEU 미완성/미확보 단계, ④ 미사일 탑재기술 난이도, ⑤ 핵실험 부재 등이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이런 근거들을 반박하는 것으로써 이른 바 "경계론"이다. 경계론의 근거로는 ① 40년 이상의 장구한 WMD 개발 역사, ② 핵개발 4대 조건 충족, ③ 낙관론의 5가지 근거를 모두 반박할 수 있다는 핵활동/핵시설/핵물질의 기술적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핵사찰이 이뤄지지 않는 한 낙관론이든 경계론이든 완벽하게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핵활동/핵시설/핵물질의 기술적 평가에 대하여 북한이 합당한 반론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치를 판별하는 논법상 북한의 핵보유는 사실[眞]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① 북한의 핵활동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핵물리학 및 핵공학 교수요원을 소련에서 양성하였으며, 소련 드브나 연합핵연구소를 통하여서만 300명 이상의 핵과학자를 유학시켰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북한은 IAEA 기술협력을 통한 기술자훈련을 실시하였으며, 이때부터 방사화학연구소를 설립하고 핵연료의 가공 및 화학처리 기술연구(Cold Test)에 착수하였다. 핵에너지의 연구개발을 착수하면서 분강 노동자구역(현재의 영변 약산지구)에 핵연구단지를 조성하였다. 이때 IRT-2000이 도입되었고, Cyclotron(하전입자 가속장치)이 설치되었다. 부속시설로 X-ray 조사시설과 Cobalt 조사시설도 이 시기에 건설하였다. 그리고 핵에너지 활용을 위한 재처리 및 고속증식로 개념도입을 확정지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핵연료의 정련/변환/가공기술을 1970년에 개발하기 시작하였으며, 1974년에 IAEA에 가입하면서 IRT-2000연구용원자로(Critical Assembly)에 IAEA 보장조치(safeguards)를 최초로 적용하였다. NPT에서 규정하는 핵물질보장조치는 적용하지 않았지만 1976년에 동위원소생산연구실(IPL)을 설치하고 여기에서 우라늄/플루토늄과 관련한 화학적 기초연구를 실시하였다. 이미 많은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한 북한은 드디어 1979년 열출력 25MWth, 전기출력 5MWe의 영변시험원자력발전소 1호기를 착공하기에 이른다. 현재 북한 핵문제의 핵심인 '영변5메가와트 원자로'가 이것이며, 8000여개의 사용후핵연료도 여기에서 나왔다.
1982년에는 박천연구기지에서 우라늄 정련/변환시설을 가동하였고, 1985년 12월12일 NPT에 가입하면서 황해도 평산에 우라늄 정련/변환시설을 착공하였다. 이후로 2000MWth 플루토늄 생산용원자로(50MWe, 원자력발전소 2호기)를 착공하였고, 북한과 구소련 간에 원전(原電) 도입에 대한 경제 및 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시기에 대형 재처리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건설계획을 수립하고 여기에서 소요될 사용후핵연료의 공급을 위하여 연구용 시험원자력발전소의 운영이라는 미명하에 '영변5MWe원자로'를 가동하였다. 핵연료 가공 관련 기술적 문제점의 해결을 위하여 핵물질보장조치를 적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UO2 핵연료 제조시설을 운영하였으며, 1989년에는 태천발전로(200MWe)까지 착공하였다.
1990년에 핵연료주기시설의 가동 준비를 본격화하여 재처리시설에서 대규모 Hot Test를 실시하였고, 황해도 평산의 우라늄 정련/변환시설을 가동시켰다. 이로써 북한은 1994년 10월21일 '미-북 제네바핵합의(Agreed Framework)'가 이뤄질 무렵에는 이미 핵탄 2∼3개를 만들기에 충분한 핵물질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1999년 10월, 당시 미국방장관으로 북한 핵문제에 깊이 관여했던 William Perry박사도 'Perry보고서'에서 제네바 핵합의 이전에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을 '과거핵'으로 묘사하면서 이를 지적한 바 있다.


② 북한의 핵시설
북한은 운영, 건설 중 및 건설 예정인 시설을 포함하여 16개 시설을 IAEA에 신고하였으나, 이중 신포지구에 건설하기로 한 3기의 635 MWe 급 VVER원전은 1,000 MWe 급 한국형 경수로(KSNP PWR) 2기로 대체되어 현재 KEDO에 의해 건설중이며, 영변 5 MWe 흑연로를 비롯한 7개시설이 운영 중지되었다가 금년도에 모두 재가동시켰다. 태천의 원전을 비롯한 3개시설도 모두 건설을 재개했다. 그리고 영변의 IRT-2000(8MWth)과 평양 김일성대학의 미임계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영변 원자력연구단지는 본격적인 원자력 연구개발을 하기 위해 구소련의 협력사업과 연계하여 이들의 지원을 받아 조성하였다. 지역부지는 대략 270만평, 시설부지는 37만 5천평 정도이고 건물 수는 대략 150여개 동(棟)이다. 비날론을 개발하여 '노동영웅' 칭호를 받은 이승기 박사가 1967년 초대 소장으로 부임한 이래 핵물리연구소, 방사화학연구소, 동위원소처리실험실, 핵전자공학연구소, 3개의 미임계로, 베타트론, 선형가속기 등을 핵심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영변 이외에도 평양과 평성, 청진 등에 다수의 핵관련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다. 평양에는 평양방사화학연구소, 평양원자력연구소, 방사선방호연구소, 미임계연구센터 등이 있고, 평성지역에는 북한 과학원 산하의 주력연구기관들이 산재해 있다. 우리의 대덕연구단지에 해당된다. 주요 연구소로는 물리학연구소, 수학연구소, 전자제어기기연구소, 전자공학연구소, 반도체 및 컴퓨터연구소 등이 있다. 1965년 8월 청진에 설립되어 동부 공업지역의 방사선 및 방사성동위원소의 산업적 이용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현재 약 350명이 일하고 있고, 핵공학 제어시스템과 X-선 형광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밖에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과대학, 평성이과대학 등의 교육기관에도 다수의 핵관련 연구시설들이 운영되고 있다.


③ 북한의 핵물질
북한에는 비교적 풍부한 천연우라늄이 매장되어 있다. 북한에 우라늄 광맥이 발견된 것은 2차대전 말기인1943년에 일본이 원자탄개발을 위해서 일본 제8육군연구소로 하여금 북한지역의 우라늄 자원탐사를 실시한 바 엄청난 양의 우라늄이 매장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중국이 처음 핵실험에 성공한 1964년부터 중국의 협력으로 북한내 우라늄 광맥의 본격적인 탐사가 실시되었다. 기본적인 평가가 되겠지만, 북한내에 우라늄광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북한 핵개발의 궁극적인 잠재력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봐야 한다. 김일성은 두 차례에 걸쳐 우라늄 탐사를 실시했고 본격적으로 우라늄을 채광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 이다. 우라늄 광산은 웅기, 신포, 흥남, 순천, 박천, 평산의 6개소이나 현재 채광중인 광산은 황북 평산과 평남 순천 광산이며, 함남 신포 광산이 새로이 개발중에 있다. 북한의 우라늄 총매장량은 2,600만 톤에 달하며 가채량은 400만 톤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평북 박천과 황북 평산에는 우라늄을 정련하는 정련가공공장이 가동중에 있고, 지금까지 약 400톤∼450톤 정도를 정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노동당의 국제담당비서 였던 황장엽과 그를 수행하여 귀순한 김덕홍은 여러 차레 강연과 회견에서 "북한이 농축우라늄을 파키스탄에서 제공받아 핵개발을 완료하였다"고 했다. 이를 근거로 북한의 농축 능력을 추론할 수 있다. 우라늄 농축공장에 대하여 북한은 부인하고 있지만 여러 징후로 보아 존재 또는 운용하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라크의 경우로 추정컨대 영변 등지의 연구시설에 소규모로 은닉되어 운영되고 있을 것이다. 의심을 받고 있는 황해도 평산과 평북 박천의 우라늄 농축시설은 기술적 난이성과 이미 알려진 정보를 종합하여 볼 때, 존재한다고 해도 실험실 규모의 농축시설일 것이다.
북한은『방사화학실험실』이라는 이름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공장을 건설하다가「제네바 핵협정」이 합의되면서 동결상태로 들어갔다가 금년 봄에 완전히 재가동되었다. 알려진 대로 북한의 재처리 능력은 매우 심각하다. 북한은 동위원소 분리시설 및 방사화학 관련시설을 서방국가의 재처리시설과는 별개의 것으로 치부하면서 건설하였다. 북한이 방사화학실험실이라고 주장하는 대형 공장규모의 시설은 길이가 180미터, 폭 20미터, 5층높이에 축구장 2개규모의 넓이를 갖춘 전형적인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시설이다. 이 시설의 주건물에는 전처리공정, 플루토늄 추출을 주로하는 핫셀(hot-cell), 맥동탑(pulsed column), 혼합추출기(mixed settler), 장갑상자(glove-box) 등 주요장치가 있으며, 부속건물에는 2개의 대형 환기굴뚝, 변환 및 폐기물 처리공정, 화학물질저장조, 시스템운전을 위한 스팀장치, 폐기물 저장탱크 등이 운영되고 있다.
시설 규모를 미국 핸포드 재처리공장과 비교해 볼 때, 영변 방사화학실험실은 연간 약 200∼300톤의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며, 완공시에는 세계에서 2번째로 큰 규모의 시설이 될 수 있다. 이 시설을 건설하기 이전에 운용하던 방사화학연구소 및 동위원소생산실험실에서 재처리공정에 관한 선행연구를 수행하여, 현재 건설중인 방사화학실험실을 부분가동하고 플루토늄을 생산한 사실을 IAEA 임시사찰에서 밝힌 바 있다.
핵폭탄의 주재료인 Pu-239는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천연우라늄을 원자로에서 연소시키면 U-238이 중성자 포획반응을 하여 Pu-239로 전환 생성된다. 사용후핵연료에는 Pu-239외에도 동위원소인 Pu-238, Pu-240, Pu-241, Pu-242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구성비나 량은 핵연료(우라늄농축도), 원자로의 종류나 출력, 연소시간 등에 따라서 달라진다. 천연우라늄 이용 흑연감속형 원자로는 플루토늄 생산로라고도 일컬어지나 발전목적으로 말하면 연료의 연소시간이 길게 되고 사용후핵연료의 Pu-239 함유율이 적게 된다. Pu-239가 많이 생성되는 사용후핵연료를 만들기 위하여는 연소시간을 짧게 하는『단기저출력조사방식(短期低出力照射方式)』을 채택한다.
사용후핵연료부터 플루토늄을 추출할 때에는 반드시 방사성폐기물이 남는다. 같은 핵연료봉에서 추출된 플루토늄과 폐기물의 조성비를 조사해보면 그 수치는 이론적으로 일치한다. 북한은 지금까지 「핵연료사이클 연구를 위하여 1990년에 오직 한번 추출실험을 하여 92그램의 플루토늄을 추출하였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IAEA가 방사화학연구소에서 채집한 샘플에서의 플루토늄과 폐액속의 폐기물 구성비는 일치하지 않고 있어, 여러 차례의 추출작업이 있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한 채집된 폐기물샘플에 함유된 초월우라늄원소(TRU)인 아메리슘의 함유량을 분석한 결과, 플루토늄의 생산(추출)은 1989년부터 있었음이 명백하며, 이 분석을 근거로 하여 계산한 플루토늄량은 북한이 신고한 것보다 많은 것이 판명되었다. 현재까지 북한이 거부하고 있는 미신고 2개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이 실현되면 어느 정도의 진위여부는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보유 관련 발언의 진위를 떠나서 실제로 북한의 핵개발 잠재력량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아주 긴요한 것이다. 제네바 핵합의 이후 대북 경수로지원사업이 순항하고 특히 "햇볕정책"이 지속되면서 북한의 핵능력은 완전히 우리의 뇌리에서 지워져 버렸다. 그러나 2002년 10월 17일 북한의 HEU 핵개발이 알려지면서 북한의 핵 잠재능력은 반드시 파악해야 할 사안으로 떠 올랐다.
북한이 사실상 제네바 핵합의의 폐기를 선언하고 그간의 핵동결을 모두 해제하였다. 즉 동결돼 있던 모든 핵시설의 봉인(seal)과 감시용 카메라 장치들을 무력화시고 핵시설을 재가동시켰다. 북한이 지난 20여년간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해온 사실은 지난해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 프로그램 시인이나 핵시설의 재가동 위협이 즉흥적인 위기돌파전술이 아니라 장기간의 치밀한 준비 끝에 나온 것임을 짐작케 한다. 북한이 핵동결을 약속한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70차례 이상 핵무기개발을 위한 고폭실험을 지속적으로 해온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이것은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거나 최소한 핵실험을 유예한 상태에서의 핵개발 완료단계에 들어갔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1995년 5MWe 원자로의 핵동결 시에 모든 사용후핵연료봉을 인출하여 개당 22개의 연료봉을 넣은 400여개의 캐니스터를 수조에 넣고 보관해 왔다. 미국의 유명 사용후핵연료봉 관리회사가 특수 캐니스터를 제작하여 인출된 연료봉의 수분을 제거하고 아르곤가스와 함께 봉합하여 특정건물에 보관하여 왔다. 폐연료봉 8000여개에는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Pu-239가 25∼35 kg 정도 포함돼 있으며, 이를 5∼7개월 정도 재처리하면 핵탄두 3∼6개 제조 분량을 추출할 것으로 국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④ 북한의 핵무기 제조능력과 수준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궁금한 것은 핵무기 개발이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핵무기 개발 단계별로 기술적 평가가 중요하다. 먼저 기폭장치에 대해 살펴보자. 핵폭탄은 사고 시 위험 때문에 보관이나 운송 도중은 폭발되지 않도록 분리하였다가, 목표지점에 도달해서 폭발이 가능한 구조로 재구성하고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하게 폭발을 유도하기 위해서 고도의 '기폭장치기술'이 필요하다. 북한의 기폭장치 개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관련국들이 이미 개발 완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천강 상류의 구룡강변에 분화구 모양의 폭발실험 흔적과 실험으로 짐작되는 위성사진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다음으로 핵탄두를 적재할 수 있는 미사일의 확보이다. 미사일은 운반수단이다. 북한은 처음에는 사거리 300∼500km 정도의 구소련제 Scud미사일을 모방생산 하더니 1993년에는 사거리 1000km 이상되는 '노동1호'를 생산배치 했다. 1998년에는 사거리 1500km이상 목표를 가격할 수 있는 대포동 미사일을 시험발사 했다. 지금 북한은 1000기 이상의 미사일을 실전 배치해 두고 있다.
IAEA에서 적용하는 핵물질의 '의미있는 양(Significant Quantity)'은 플루토늄(Pu-239) 8kg, 우라늄(U-235) 25kg이며, 이는 보통 기술수준에서 약 20킬로톤(kt)의 위력을 낼 수 있는 양이다. 약 10kg의 우라늄 또는 플루토늄이 차지하는 부피(핵폭발장치 전체의 부피가 아닌 순수 핵물질만의 부피)는 소프트볼 크기만 하다. 핵탄두는 일반 고폭탄과는 달리 탄두 부피가 작은 대신 어느 한 부분에 무게가 집중되므로 핵폭탄 탑재 미사일의 균형을 잡아주는 첨단의 탑재 및 유도기술이 필요하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북한이 핵 및 화학·생물학 폭탄을 탑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는데도 10여년이면 충분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성택 (한국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센터장/核工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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