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가 줄 세우는 새해 도서
2022년의 마지막, 서점가를 찾은 에디터는 예상치 못한 풍경을 발견했다. 연간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의 비율이 점차 줄고 있다('2021년 국민 독서실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연간 종합 독서량은 4, 5권에 해당한다고 한다)고 하지만, 연말연시 서점은 대부분의 섹션은 물론, 계산대까지 지혜를 찾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던 것이다. 새해를 맞이해 올해 주목해볼 도서부터, 새로운 출발선에 선 리더(Reader)들을 위한 리더(Leader)들의 문장도 함께 소개한다.
연말연시 독자들의 도서 Pick “새해 트렌드가 궁금해”
교보문고의 12월 넷째 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3』(김난도·전미영 외 저 / 미래의 창 펴냄)이 종합 1위를 기록했다. 이는 2023년 소비 트렌드를 전망한 책으로, 계묘년(癸卯年) 전반적인 트렌드 해석이 인기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도서는 2023년을 키워드 'RABBIT JUMP’로 정의한다. 대표적인 현상으로 '불황의 전망’ 속에서 소비자들의 평균이 없어지고, 팬데믹 이후 직장문화 역시 변화를 겪으며 이전의 승진 체계는 옛 유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책은 Z세대 이후의 새로운 종족, 알파세대의 등장에 대해서도 설명하며 미래에 대한 대비를 준비하도록 한다. 에세이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김혜남 저 / 메이븐 펴냄)도 함께 베스트셀러 상위권 자리에 올랐다. 정신분석 전문의이자 작가인 김혜남의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2015) 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으로, 일부 내용을 추가해 새롭게 선보였다. 30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해 오고, 22년간 파킨슨 병을 앓으면서도 유쾌하게 살 수 있었던 비법으로 저자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그런가 하면 새해 서점에서는 경제, 재테크를 다룬 책도 인기였다. 부동산, 주식, 재테크 등 다양한 분야 경제 전문가들이 돈의 흐름을 전망하고 노하우를 전한 『머니 트렌드 2023』(정태익·김도윤 외 저 / 북모먼트 펴냄)은 10위를 기록했다.
새해에 주목해볼 이 책들
1.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저 / 문학동네 펴냄)
최근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도서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김연수 작가가 9년 만에 펴낸 소설집이다. 안팎으로 변화의 시간을 겪으며 글을 써온 작가는, 최근 2~3년간 집중적으로 단편 작업에 매진하며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선보이게 됐다. 도서는 여덟 편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시간’에 대한 김연수 작가의 변화된 시각을 담고 있다. 표제작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지구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으로 떠들썩했던 1999년 여름, 동반자살을 결심한 스물한 살의 두 대학생, '나’와 '지민’이 등장한다. '나’와 '지민’은 외삼촌의 출판사에서 시간여행을 다룬 '소설’을 접하게 된다. 두 사람은 소설 속 인물의 스토리가 자신들과 닮아 있다는 걸 깨닫고 놀란다. 소설 속 연인이 동반자살을 한 그날이 새로운 인생의 첫날이 되며 역행하는 시간을 겪게 된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가며 연인은 처음 만났던 순간이 다가옴을 느끼고, 설렘과 기쁨을 상상함으로써 바뀌게 된 '현재’를 깨닫게 된 순간 연인들의 시간의 흐름은 다시 미래로 향한다. 소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의 외삼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p.29 「이토록 평범한 미래」 中) 그 밖에도 「난주의 바다 앞에서」, 「진주의 결말」 등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2.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저 / 문학동네 펴냄)
2018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김지연 작가의 첫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가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책’ 공동 2위로 선정됐다. 소설집은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부터, 김지연 작가가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케 한 작품 「작정기」 등 총 9편의 소설을 담았다. 김지연 소설세계의 출발점인 단편 소설「작정기」에는 김지연 작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다. 친구 '원진’이 이혼 소식을 알려온 날, 원진과 '나’는 충동적으로 일본행 비행기표를 끊는다. 하지만 원진의 할아버지가 부고 소식을 알려오며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된다. '나’는 우연히 만난 일본인 여자 '유코’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녀가 자신의 여행을 죽은 친구를 대신해 떠나온 것으로 이해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나’는 오해를 바로잡지 않는다. 언젠가 원진이 죽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진이 갑작스레 죽고, '나’는 그때 자신의 생각이 원진의 죽음을 재촉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에 빠진다. 몇 달 뒤, 업무차 한국에 온 유코가 '나’에게 자신이 만든 정원 모형을 건넨다. 그제야 '나’는 오래도록 참았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작정기」에서는 상대방을 향해 어떤 강렬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결정적인 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인물의 모습이, 그리고 뒤늦게 한 시기를 반복해 떠올리며 그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공간을 열 때의 애틋함을 느끼게 해준다. '인물들을 실컷 울게 해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참고: 채널예스 김지연 인터뷰), 9편의 이야기는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더라도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를 때 강한 울림을 남긴다.
3. 『벤저민 그레이엄의 13가지 부자 수업』 (이지성 저 / 차이정원 펴냄)
경제연구소 자유기업원에서 '2023 추천도서 50권’을 선정해 발표했다. 선정된 도서는 지난 한 해 동안 발간된 책 중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로 구성됐다. 이번 추천도서 목록에는 『선택할 자유』, 『패권 충돌의 시대 한국의 대전략』 등 정치·시사 분야를 비롯해 부동산, 주식, 재테크 등 경제 전망을 읽고 공부하는 도서들을 주로 만나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도서 『벤저민 그레이엄의 13가지 부자 수업』의 경우, 유튜브 채널 '이지성TV’에서 2020년 12월부터 13개월 동안 방송된 '벤저민 그레이엄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강의는 당시 주식시장이 호황이었지만, 곧 다가올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제 폭락에 대비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그레이엄은 세계 최고의 투자가 워런 버핏의 스승이자 가치투자의 창시자이자, 1,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의 여파로 발생한 엄청난 경제 대폭락을 경험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의 투자철학은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었다. 이지성 작가는 그레이엄에 주목한다. 도서는 그레이엄의 저서 『증권분석』, 『현명한 투자자』, 『벤자민 그레이엄 자서진』 등을 아우르며 이지성 작가의 탁월한 통찰을 담았다.
4.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해설: 국부론의 철학적 토대』 (조현수 저 / 진인진 펴냄)
경제연구소 자유기업원에서 선정한 '2023 추천도서 50권’ 중에서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1723~1790)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는 도서들이 눈에 띈다. 개중에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해설』, 『한 권으로 읽는 국부론』 등이 포함되어 있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 해설: 국부론의 철학적 토대』는 '보이지 않는 손’과 『국부론』으로 널리 알려진 애덤 스미스의 사상적 기초를 심층적으로 소개한 연구서다. 『도덕 감정론』은 애덤 스미스의 도덕철학 강의를 구성하는 4개 주제인 '자연종교’, '윤리’, '법학’, '정치경제학’ 중 하나인 윤리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철학서 중 하나이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롭고 조화로운 경제원리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로 인간의 '도덕’에 대해 탐구했다.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사람 사이의 공감, 도덕 등이 상호작용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사회구성원들의 더 큰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저자는 『도덕 감정론』은 인간의 도덕감정만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며 상업사회의 도래라는 18세기 스코틀랜드 사회의 사회경제적 변화라는 역사적 발전을 감지하고, 이 과정에서 초래되는 '허영’, '우월함, 존경, 인정에 대한 욕구’가 초래하는 교정하는 '성품’과 그 성품의 가지는 사회경제적인 효과에 대한 종합적인 탐구라고 설명한다. 도서는 애덤 스미스가 서술한 1차 자료와 방대한 2차 자료를 섭렵하여 작성한 본격적인 학술이론서로서, 9개의 장과 에필로그를 통해 상업사회의 양면성과, 선행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자본주의 경제학의 시조 애덤 스미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5. 『낯선 땅 이방인』 (로버트 A. 하인라인 저 / 장호연 역 / 시공사 펴냄)
독서광으로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매년 휴가철 자신의 추천 도서를 '게이츠 노트Gates Notes’ 사이트에 소개하곤 한다. 지난 12월, 빌 게이츠가 소개한 다섯 권의 도서는 예년과 달리 조금 특별하다. 지난 한 해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한 대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 5권을 선정한 것이다. 그중 SF의 거장 로버트 A.하인라인의 『낯선 땅 이방인』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과 빌 게이츠 모두 학창 시절부터 좋아하는 책이라고 전해진다. 英 『가디언』지에서 '시간이 지나도 SF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라는 평을 받은 이 도서는, 화성으로 간 인류의 유일한 후손으로 화성인들의 손에서 자란 주인공 밸런타인 마이클 스미스가 20여 년 만에 모성 지구로 돌아오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기성세대의 물질만능주의와 보수주의에 넌더리를 내던 당시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이 작품을 통해 저자인 하인라인은 1961년 SF 소설의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휴고상 장편 부문을 수상했다.
6. 『고립의 시대: 초연결 시대에 격리된 우리들』 (노리나 허츠 저 / 홍정인 역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국립중앙도서관은 격월마다 책과 함께 생활하는 현장 사서가 인문, 사회, 자연, 어문학 등의 주제분야에서 좋은 책을 소개하고 있다. 중앙도서관에서 2022년 '12월 사서추천도서’ 목록을 발표했다. 팬데믹 이후 세계 각계의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외로움’을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도서 『고립의 시대: 초연결 시대에 격리된 우리들』의 저자이자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스마트폰과 도시의 비대면 시스템, 감시 노동에 갇힌 채 살아가는 21세기 현대인이 소통 본능을 잃은 '외로운 생쥐’처럼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물리적 거리 두기가 사람 사이의 관계의 단절되고, 이로 인해 외로움이 확산되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것. 외로움은 알코올 의존증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만보다는 2배나 더, 매일 담배 15개비씩 피우는 만큼이나 건강에 치명적이다. '혼자 되어 쓸쓸한’ 감정인 외로움은 정신적·신체적으로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고, 국가는 사회적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외로움과 고립감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이 사회를 소외와 배제, 양극화와 정치적 극단주의로 내몬다고 설명한다. 그 분열을 메우려면, 우리는 지금 '외로운 세기’의 현실을 세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책은 그 구조적인 해결책을 찾고 공동의 노력을 시작하게 하는 첫걸음을 뗀다.
이승연 MB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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