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E Home

삼성전자 `영업이익 배분` 선례··· 산업계 "이익 투쟁 도미노 우려"

글쓴이
자유기업원 2026-05-21 , greenpostkorea.co.kr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예고 시점을 불과 90분 앞두고 고용노동부 장관의 막판 중재로 '2026년 임금·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극적으로 도출했다. 반도체 라인 가동 중단이라는 최악의 파국은 면했으나, 기업의 고유 영역인 '자본배분 결정권'이 노조의 집단 투쟁을 통해 제도화되면서 정부와 주주, 산업계가 동시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번 합의가 자본시장 질서와 산업 생태계 전반에 미칠 구조적 파장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파격적 보상과 복지 확대… 총파업은 일단 유보


노사 간 잠정합의안에 따르면, 핵심 쟁점이었던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특별경영성과급이 신설되었다.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 1.5%에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특별성과급을 더해 최대 12% 수준의 재원이 형성되며, 기존의 지급률 상한선은 전면 폐지된다.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인 300조 원 달성 시 메모리사업부 직원은 1인당 최대 6억 원의 성과급을 받게 되는 구조다.


여기에 평균 임금 인상률 6.2%, 직급별 연봉 상한선(샐러리캡) 상향, 사내 주택대부 제도 신설 등 파격적인 복지 조항도 대거 포함됐다. 노동조합은 이번 잠정합의안 도출에 따라 당초 21일로 예정했던 총파업을 유보했으며, 오는 22일부터 27일까지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해 합의안의 최종 비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세전 영업이익 배분은 위법"… 개정 상법 둘러싼 '주주 총공세'


그러나 자본시장의 시선은 차갑다.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 및 삼성전자 주주 일동은 21일 공식 성명을 내고 "주주총회 결의 없는 자본분배 합의는 법률상 무효"라며 사법 조치를 공식 선언했다. 주주들은 영업이익(세전이익) 단계에서 일정 비율을 노조에 사전 할당하는 구조는 상법 제462조(이익의 배당)를 우회하여 주주의 잔여재산청구권을 침해하는 '위장된 위법배당'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지난해 개정·시행된 상법 제382조의3을 내세웠다.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해서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함에도, 천문학적인 재원을 임의로 유출하는 합의에 찬성한 이사회 경영진에게 업무상 배임 및 손해배상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주주운동본부는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ACT)' 등을 통해 소송인단 결집에 착수했으며, 이사회 결의 무효확인 소송 및 단체협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4대 사법 절차를 동시에 밟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의 기류도 주주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삼성전자 노사 합의에 앞서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세금도 떼기 전에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제도적으로 나눠 갖는 것은 투자자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영업이익 배분은 투자자와 주주가 하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다. 행정부 수반이 특정 노사합의를 직접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이례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이익은 노조가 청구, 손실은 기업이"… 산업계 번지는 경고음


산업계는 이번 사태가 국내 대기업 전반의 보상 체계를 흔들고 '이익 배분 투쟁'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대법원은 지난 1월 29일 선고(2021다248299)에서 삼성전자 성과급의 임금성을 부정한 바 있다. 성과급은 근로의 대가가 아닌 '경영성과의 사후적 분배'이므로 근로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리다.


고광용 자유기업원 정책실장은 "이번 잠정합의는 총파업 위기를 막았다는 단기적 봉합의 의미가 있지만, 영업이익의 일정 몫이 노조의 집단적 압박과 교섭을 통해 배분될 수 있다는 무거운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기업이 파업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재원을 내주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이익은 노조가 청구하고, 손실과 투자 위험은 주주와 기업이 부담하는 비대칭'이 고착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주요 대기업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가 노동조합의 협상 노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그간 경영진이 실적 호조기에도 상시 위기론을 제기하며 성과 보상에 소극적이었던 것에 대한 내부 불만이 누적된 상태"라며 "이번 사례로 주요 대기업의 현장직 및 사무직 노조 역시 상징적 투쟁이 아닌, 조합원의 실질적 이익 분배를 최우선으로 관철하는 노조로 기류가 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 천문학적인 성과급 제도화가 기업의 미래 설비투자 및 연구개발(R&D) 재원 결정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깊어진다. 이에 따라 반도체 사이클의 변동성과 관계없이 장기적인 자본배분 유연성이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과해 최종 비준될 경우, 삼성전자 이사회가 상법상 주주 충실의무와 단체협약상 노사 합의 의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법적 책임 사이에서 어떠한 판단을 내릴지가 향후 최대 변수로 부상한다. 자본시장과 노동 현장, 산업 정책이 교차하는 이 전례 없는 갈등의 귀결이 대한민국 기업 지배구조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