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문제 정치화로 노사관계 파행 우려
지난달 31일 청와대에서 합의된 △노사정위원회 개편 △개편 때까지의 한시적인 노사정지도자회의 출범에 대해 청와대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노사정 사이의 공감대”,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장래를 위한 큰 선물”이라고 크게 만족해하는 분위기이지만, 노사관계 전문가들 사이에는 이런 청와대의 흡족해 하는 모습과 달리 ‘과연 잘 되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우선 지금까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노사문제에 정부가 직접 나섰다고 해서 별다른 ‘뾰족한 수’가 있었느냐는 반응이다. 성신여대 박기성 교수(경제학)는 “노사정위원회 자체에 문제가 많다”면서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인데 오히려 노사관계가 정치화하고 불확실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교수는 이어 “시장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개입할 경우 협의에 의해 한쪽이 손해를 볼 것이 뻔한 데 국가는 이들에게 어떤 형식으로든 선물을 안겨줘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고 말했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도 “설령 합의가 이뤄진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면서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키고 노동시장이 경직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또다른 간섭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가 손해”라며 “‘노동조합 위협효과’ 때문에 공공부문이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독점부문은 큰 영향이 없겠지만 다른 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교수는 노사정위원회의 대표성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유리한지도 의문이라는 것. 통계에 의하면 현재 국내 취업자수는 2,200만명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이중 임금근로자는 1,400만~1,6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노조가입자는 160만~170만명 정도를 헤아린다. 노조 조직률이 12%에 불과한 현실에서 이들의 대표성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유기업원의 권혁철 박사 역시 대표성문제와 과 관련 “비정규직, 중소기업이 참여한다고 하지만 여기에서 배제된 농민 자영업자들의 권익은 대변할 길이 없다”면서 “참가한 사람들이 배제된 사람들의 손해로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전망했다.
단국대 김태기 교수(경제학)는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마지막 카드를 뽑아든 의미를 갖는다”면서 “여기서 실패할 경우 앞으로 합의를 통한 노사안정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노사문제의 해결책은 사회적 합의를 통한 해결보다는 시스템에 의한 해결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3권이 분리돼 있는 현실에서 국회의 역할이나 사법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대통령은 선택을 해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에 논의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의견수렴절차는 국회에 맡기고 정부에서는 의견만 개진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노사관계는 이해관계가 크게 상충되기 때문에 누가 나서도 근본적 해결은 불가능하다”면서 “대통령, 노동부, 국회, 검찰, 사법부 등 관련 국가기구가 시스템에 의해 제 역할을 해낼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는 조금 다른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숭실대 조준모 교수(경제학)는 “금융노련, 보건의료노조 등 파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화의 창구를 만드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면서 “노동조합에도 명분을 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전 예방적 노력으로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가 합리적 노선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오는 4일 정부, 경영계, 노동계가 참여하는 노사정지도자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여기에는 중소기업 대표와 비정규직 대표도 참여한다. 이는 지난 99년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탈퇴이후 5년만에 노사정간 대화창구가 마련되는 의미를 갖는다. 재계는 일단 “노사간 회의체 운영이 나쁠 것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 민주노총내에서도 현행 노사정위원회 구조가 바뀌고 새로운 대화틀이 마련된다면 대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가고 있다. 그러나 주5일제, 비정규직, 사회공헌기금 등 노사간 이해관계가 크게 갈리는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파국의 불씨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도 없지 않다.
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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