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어디 사업할 곳이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정부.국민.근로자 모두가 다 기업을 못살게 굴지 않습니까."
최근 중국 산둥(山東)성 쯔보(淄博)시에서 만난 방더(邦德)도자 최영식 사장은 "사업을 왜 몽땅 옮겨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꾸했다. 그는 "한국에선 도저히 사업을 할 수 없어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덧붙였다. 1998년까지 한국에서 전기 부품을 만들던 최 사장은 이후 중국으로 사업체를 옮겨 지금은 산둥성 치난(齊南)시에서 제철용 탄소공장을, 쯔보시에선 건축자재용 패널 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환경만 좋았더라면 그만큼의 일자리가 국내에 더 생길 수 있었다는 얘기다.
세계 최고수준의 반 기업정서와 기업규제가 고용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업이 투자해야 일자리가 늘어날텐데 기업은 국내보다 중국 등 해외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은 "정부는 재정을 풀어 일자리를 늘릴 생각 대신 떨어진 기업 사기부터 먼저 높여라"고 주문했다.
반기업은 반(反)고용 = LG칼텍스정유 허동수 회장은 지난해 노조가 파업을 하면서 김선일씨의 참수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퍼포먼스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당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인은 해외에 나가면 사업하는 보람을 느낄 정도로 대우받지만 정작 국내에선 '정경유착의 주범'식의 대접을 받고 있다"면서 "이 같은 일을 한번 당하면 한국에서 사업할 마음이 싹 없어진다"고 말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도 "기업은 국민생활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하는 데도 국민은 마치 기업 때문에 못사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열의를 갖고 일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고 반문했다.
팽배한 반 기업정서가 이처럼 기업인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기업가 정신을 사라지게 만드는 요인으로 반 기업정서가 노사분규에 이어 2위로 꼽혔다. 국내 반 기업정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국적 컨설팅 회사인 액센추어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사이에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인은 한국의 경우 70%였다. 경쟁 상대인 싱가포르(28%)와 대만(18%)은 물론 미국(23%).일본(45%).독일(40%)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 것이다.
중소기업인조차 반 기업정서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지난 연말 전경련이 중소기업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명 중 7명(68.7%)이 '반 기업정서가 심각한 것으로 느끼고 있다'고 답변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기업이 규모를 키우지 않고, 틈만 나면 중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려는 데는 반 기업정서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 기업정서에 편승한 정부 규제 = 지난해 정부는 부동산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개발이익환수제와 주택투기지역 지정 등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당연히 건설경기는 얼어붙고 집값은 2003년에 비해 2.1% 떨어졌다. 주택건설 투자액도 전년에 비해 12조8000억원 감소했다. 이 때문에 35만개의 일자리 창출 기회가 사라졌다(주택산업연구원 분석).
정부 규제도 일자리 창출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정부가 규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매번 "정부 규제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켜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규제를 수치화한 경제자유지수는 세계 하위권 수준이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이 조사한 '2005년 국가별 경제자유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45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집단소송제와 출자규제 등 기업이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정부 규제는 반 기업정서에 편승해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황인학 연구조정실장은 "반 기업정서와 이에 편승한 정부 규제 때문에 기업은 치르지 않아도 될 비용을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연말 정부가 밀어붙인 공정거래법이 정부안대로 통과되자 재계 관계자는 "기업에 조금만 애정을 갖고 있다면 정부가 이토록 재계 의견을 묵살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정부와 재계가 공동추진 중인 기업도시도 반 기업정서 때문에 일그러져버렸다. 지난해 관.재계가 머리를 맞대 정부안을 만들었지만 국회 입법과정을 거치면서 대폭 손질됐기 때문이다. 한 광역지자체 부지사는 "법안이 이렇게 된 것은 여당이 시민단체 등의 반대여론을 너무 의식했기 때문"이라면서 "기업 없는 기업도시로 전락하면 일자리와 투자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물었다.
김영욱 전문기자, 창원 = 김상진 기자 young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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