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기술유출 막으려면 인센티브정책 필요하다”

자유기업원 / 2005-03-02 / 조회: 9,580       사이언스타임즈,@

오전 8시 30분 인천국제공항 국제선 대기실에 검은 안경을 쓴 중년의 한 남자가 서있다. 그는 L전자 연구소의 책임연구원. 수없이 외국출장을 다닌 그지만 오늘 그의 행동은 유난히 좌불안석이다. 그 이유는 손에 든 007가방 속에 들어있다. 지금 그의 목적은 출장이 아니다. 그는 L전자의 생존을 좌우할 핵심기술을 몽땅 카피한 CD 두장을 들고 영원히 한국을 떠나기 위해서 공항 출국대기실에 서 있는 것이다.

이는 기업소설의 일부분이 아니다.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기술유출사건의 한 단면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1998년이후 밝혀진 우리 나라의 핵심기술 유출사건은 무려 51건, 그 피해액은 44조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나라의 기술유출 문제가 더 이상 좌시할 사안이 아님을 말해준다. 특히, 국가기술개발의 주도권이 국책연구소에서 민간기업으로 넘어간 지금 시점에서 기업의 기술유출문제는 국가경쟁력에 자칫 심대한 손상을 입힐 우려도 있어 심각성을 더한다.

자유기업원의 최승노(43,경제학 박사) 대외협력실장은 오랫동안 기업연구에 매달려왔다. 그런 그가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연구분야는 기업의 기술유출로 인한 피해사례다. 그가 이런 분야에 눈을 돌린 이유는 그만큼 기업의 기술유출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최 실장은 “기술 빼내기는 역사적으로 매우 오랜 일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술유출이 매우 빈번해져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면서 “기업은 막대한 자본을 들여서 기술을 개발하기 때문에 그 기술의 보호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술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기술쟁탈전 치열
▲ 최승노 실장  ⓒ

기술유출문제는 국가간 또는 기업간에도 일어난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21세기 들어 더 심해졌다는 사실이다. 최근 기업들은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신경을 쓰지만 남의 기업에서 개발한 기술을 빼오는 데 연구비 못지 않게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이 기술 빼돌리기에 혈안이 된 이유는 개발의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이유는 다른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최 실장은 “갈수록 기술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지고 있다. 장시간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어렵게 만든 기술이 시장에서 순식간에 사장이 되고 만다. 그런 이유로 기업들은 경쟁 기업의 기술을 빼내려는 유혹을 쉽게 떨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기업연구소의 기술개발이 활발해진 반면에 그 기술을 훔칠 수 있는 방법은 더 쉬워졌다고 최 실장은 설명했다. 그것은 하드웨어적인 기업들이 정보화시대가 전개되면서 대거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해 기술을 빼돌릴 수 있는 기술들 역시 발전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들도 보안시스템에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신경을 쓰고 있지만 지키는 사람 열 명이 도둑 한 명을 잡기 어려운 것이 정보화시대 기업연구소가 처한 현실이다.

최 실장은 “소프트웨어는 사무실에서 단 몇 시간이면 동료들 모르게 몽땅 복사할 수 있다. 그리고 가방 속에 들고 나가면 아무도 알 수 없으며 각종 소프트웨어적 기법을 통해 기술을 빼돌리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기술유출의 주범은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한 기업이 타사의 기술을 확보하려면 개발한 사람을 완전히 내사람으로 포섭하면 된다.

가뜩이나 새로운 경영문화가 도입되면서 평생직장의 개념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희박해지고 있어 연구원들은 고액의 보상금에 쉽게 유혹 당하기 더 쉬워졌다. 그는 “사람은 명분과 합리성이 중요하다. 이는 연구소의 연구원들이라 해서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지금의 직장 분위기 하에서는 안정감을 갖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인력의 이동에 의한 기술유출문제는 앞으로도 기업을 괴롭히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기술유출 막는 인센티브 필요해

국내의 대표적 시장경제연구기관인 자유기업원에서 기업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최 실장은 시장경제론자의 관점에서 기술유출문제를 바라봤다. 그는 “기업이 라이벌 기업의 기술을 훔치려는 이유는 기술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기업은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경쟁기업의 기술을 빼내는 데 신경을 쓰게 된다”고 말했다.

기업은 경쟁기업이나 타사의 기술개발자를 포섭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이며 그것이 오히려 기업간 기술쟁탈전을 초래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 따라서 그는 “국가든, 기업이든 핵심기술을 지키려면 개발한 주체의 지적재산권이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민간기업이 자사의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보안시스템의 강화와 또 하나는 성과보상제다.

최근 들어서 대기업들은 자사의 핵심기술을 지키기 위해 보안시스템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여기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비생산적이라는 한계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에 비해 성과보상제는 기술유출의 문제가 대부분 인력의 이동에 의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효과적인 제도라는 것이 최 실장의 주장. “성과보상제는 민간기업이 인력의 이동을 막는 데 가장 필요한 방법이다”

한편으로 그는 인센티브제를 보완하기 위해 현행 프로스포츠나 연예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적료제도를 기술인력시장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프로스포츠에서 이적료는 선수가 성공하기까지 들인 구단의 투자비용이다. 따라서 선수를 다른 구단이 영입하려면 그에 상당하는 비용을 줘야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기업의 연구자가 프로선수나 연예인처럼 수십억원의 수익을 기업에 가져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는데도 기술인력시장에는 그러한 이적료제도가 없다. 만약에 이 연구자가 다른 기업의 매수에 빠져서 이동을 하게 되면 그 기업은 엄청난 손해를 막을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조행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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