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기울어진 운동장…서울대 공대 사태를 보면서

자유경제원 / 2016-01-19 / 조회: 5,870       미디어펜

서울대 공대 사태를 보면서

서울공대 '공학도의 도전과 리더십2' 강의에 자유경제원 현진권 원장과 최승노 부원장이 강사로 들어갔다고 해서 학생들의 반발이 심한 모양이다. 반발의 이유는 이 강사들이 정치적 편향성 때문이라는 내용도 있고, 학문적 엄밀성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내용도 있다.

나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적 사고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을 하면서 정치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어떤 생각과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는 한 정치적 함의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현진권 원장이나 최승노 박사를 문제시하는 이유는 이 두 사람의 주장이 학생들의 정치적 신념을 거스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상적 상황이긴 하지만 만약 참여연대 활동을 했던 고려대의 장하성 교수나 경제개혁연대를 이끌고 있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 같은 사람이 강단에 선다고 해도 정치적 편향성이 문제가 되었을까? 아닐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장하성이나 김상조 같은 사람들의 사상과 주장은 학생들의 성향과 비슷하기 때문에 편향되었다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편향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그림은 한겨레신문이 P&C정책개발원과 공동으로 한국의 여론주도층 52명을 상대로 정치적 성향을 조사해서 좌표에 표시한 결과다.1)

이 그래프에서 좌우에 걸치는 횡축은 경제적 자유를 인정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가장 좌측은 공산주의-통제경제, 가장 우측은 경제적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체제, 소위 신자유주의 체제를 의미한다. 좌파-우파의 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아래위로 뻗은 종축은 개인적 자유를 인정하는 정도이다. 가장 위쪽은 권위주의, 아래쪽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인정하는 자유주의를 나타낸다. 조사 대상이 되었던 대부분의 한국 정치인들은 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인정하면서도 경제적 자유를 인정하는 데에는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병호 박사와 좌승희 박사 정도가 중도를 넘어서 소위 우파라고 불릴 정도의 위치를 점했다.

   
▲ 좋든 싫든 각자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게 만든 체제가 우리의 삶을 이 정도로 끌어올려 주었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나라의 정치판을 보면 걱정이다. 아니 정치판보다 더욱 큰 걱정은 한국인의 생각과 태도이다. 한국 지식인과 정치인들에게 투영되는 좌파 성향은 우려될 정도다.

내가 대화 나눠 본 바에 따르면 현진권 원장은 공병호 소장과 비슷한 정도로 시장경제 지향적이다. 다른 어떤 정치인들, 유명인들보다 우측에 있다. 그야말로 극우파라고 불릴만하다(필자는 약간 더 우측인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 내에서의 기준에 의해서만 그렇다. 다른 나라의 유명인들 정치인들과 비교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오바마 대통령을 생각해 보라. 이 사람은 미국 정치인들 중에는 좌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조사대상 중에는 이 사람보다 비슷하거나 더 우파인 사람은 좌승희 박사, 공병호 박사가 전부 다이다. 독일의 메르켈 프랑스의 사르코지 같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한겨레신문이 작성한 이 그래프는 우리나라의 대부분 정치인들, 지식인들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면 좌파들임을 잘 보여준다. 각자에게 경제적 자유를 주기보다는 국가의 개입과 재분배를 선호한다는 말이다. 우파라고 욕먹는 박근혜 대통령도 국제적 기준으로 본다면 중도 좌파정도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이런 성향을 보이는 이유는 국민들의 성향 자체가 좌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생활은 자기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우파가 되는 데, 한국인들 중에서 그런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몇%나 될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국가가 모든 생활을 책임져 주겠다는 정치인들이 득세를 하는 이유는 유권자들이 표를 주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자칭 타칭 애국 우파/반공 우파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경제적 자유를 받아들이는 정도로 따지자면 좌파로 분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공대 학생들의 생각도 다른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듯이 자연스럽게 좌파적 사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번과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도 그럴 만하다. 자기들의 신념에 거스르는 강사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면 세뇌 당하는 느낌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한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면 매우 정상적인 주장이 한국에서는 예외적이고 불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자유기업원(자유경제원의 전신)이 산학협력의 일환으로 대학의 신청을 받아 <대학시장경제 강좌>를 시작했을 때, 해당 경제학과 교수들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반발을 해서 경제학과가 아니라 경영학과에 설치하게 되었다. 또 2008년에는 좌편향된 역사교육을 바로잡기 위해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강사진이 구성되었는데 뉴라이트 성향이라 해서 야단이 난 적이 있었다. 2)

한국에서 좌파식 사고는 편향이 아니지만 우파식 사고는 편향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나는 그래도 70년전과 비교해 보면 지금이 많이 나아진 셈이라고 생각한다. 해방 직후 미군청청의 한국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가 동아일보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당시 응답자 가운데 경제체제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원하는 비율은 77%였다. 자본주의는 14%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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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政廳輿論局에서는 朝鮮人民이 어떤 種類의 政府를 要望하는가를 관찰키 爲하야 三十項目의 設問을 列擧하고 輿論을 조사하였는데 設問에 反映된 民意는 다음과 같다(동아일보 1946년 8월 13일자).

問三, 貴下의 贊成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
가. 資本主義 1,189명(14%)
나. 社會主義 6,037명(70%)
다. 共産主義 574명(7%)
라. 모름니다 6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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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사하면 자본주의가 30% 쯤은 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필자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70년 전보다는 자본주의가 낫다고 깨닫는 사람이 더 많아졌을 거라고 믿고 싶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정치판을 보면 걱정이다. 아니 정치판보다 더욱 큰 걱정은 한국인의 생각과 태도이다. 좋든 싫든 각자의 삶을 책임지게 만든 체제가 우리의 삶을 이 정도로 끌어올려 주었다. 사회주의가 옳다고 여기면서도 사회주의로 살 수 없었던 덕분에 잘 살게 되었다는 말이다. 625 전쟁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 북한이 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나쁜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 금줄이 끊어졌다. 사람들은 신념대로 체제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차츰 70년 전에 선택하지 못했던 그 체제를 향해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이 나라의 명운이 다되어 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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