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생산성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제19대 국회를 한마디로 평가한다면 불임성의 악화일 것이다. 단적인 증거가 이전 국회에 비해 더 많은 법안이
제출되고 있지만 정작 통과된 법안은 비율만이 아니라 절대적인 숫자에 있어서도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제20대 국회가 제19대 국회의 악폐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의원발의법안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원발의 법안의 증가 추세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타났다. 다만 최근에는 그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졌을 뿐이다. 국회의원들이 더 능력이 있게 되었거나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면, 의원들이 법안 제출에 골몰하게 된 것은 많은 외부평가주체들이 국회의원의 실적을 재는 중요한 지표의 하나로 법안 발의 건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발의법안건수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한다. 내용도 모르면서도 그냥 이름만 올리기 (이래서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부결하는 웃픈 상황도 빗어진다), 법안 품앗이로 서로 등 긁어주기, 글자 몇 자만 바꾸는 개정안 내기 (이 경우 통과 가능성도 높다), 폐기 법안 재활용하기, 남이 제출한 법안 베끼기 (그래서 나중에 하나의 안으로 통합되는 유사법안이 많다) 등 다양한 수단이 이용된다. 이렇게 발의건수에만 골몰하는 결과 의원 발의 법안 가운데는 내용이 부실한 쓰레기 법안도 많아진다. 만사가 과유불급이라 의원발의법안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 아니라 경계할 일이다. 입법쓰레기만 양산할 공산이 있기 때문이다.
19대 국회에서 왜 법안의 가결 비율만 떨어진 것이 아니라 가결법안의 절대수가 줄어들었을까? 19대 의원들이 특별히 더 무능하거나 나태할 가능성이 없다면 그리고 갑자기 추가적인 입법의 필요가 사라진 함포고복의 세상이 열린 게 아니라면, 달라진 국회법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국회선진화법은 소수의 합법적 횡포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개정돼야 한다. 지금처럼 정당의 법안 처리에 대한 지배력이 국민의 선택과 무관한 국회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한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다수당이 국회를 주도하는 게 민주주의이다./사진=연합뉴스 |
흔히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현행 국회법은 제18대 국회 막판에 통과, 발효된 것으로 몸싸움과 단상 점거 등 국회 내의 폭력사태를 방지한다는 취지는 좋았다. 선진화법이라는 말도 그래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법은 결과적으로 국회를 사실상의 ‘식물’ 상태로 전락시킨 악법 중의 악법으로 드러났다.
국회선진화법은 폭력국회 방지 및 처벌 외에도 안건조정, 직권상정 제한 및 안건 신속처리, 그리고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조항 때문에 국회의 의사결정이 재석의원 과반수의 동의에서 사실상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반대 동의를 얻은 소수당은, 이보다 다수지만 재적의원 5분의 3에는 미치지 못하는 찬성표를 지닌 다수당을 저지할 수 있다. 또, 신속한 처리가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서도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지연시킬 수도 있다.
그 결과 의석의 3분의 1 이상을 확보한 소수당은 동의의 대가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맞교환 형태로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다수당이 이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국회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식물국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전의 국회법에서는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을 경우 의장의 직권 상정이라는 우회 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은 국회선진화법에서는 사실상 봉쇄돼 있다. 물론 의장의 직권상정이 몸싸움의 계기가 된 경우가 허다했지만, 식물국회보다는 동물국회가 오히려 나았다는 이야기가 공연한 것만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20대 국회가 19대 국회와 달라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국회의원의 성과를 재는 정교한 새로운 척도가 개발되어야 한다. 정량적으로는 발의법안의 수만이 아니라 통과법안의 숫자와 비율도 포함시키면서 법안의 질에 대한 정성적인 평가도 포함하는 지표가 필요하다. 통과법안 가운데는 기존의 법률에 숫자 몇 개, 글자 몇 자만 바꾼 게 허다하기 때문이다. 제20대 국회의원도 그 이전의 국회의원들과 같은 ‘합리적 인간’일 것이라고 본다면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유인구조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둘째,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은 소수의 합법적 횡포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개정돼야 한다. 지금처럼 정당의 법안 처리에 대한 지배력이 국민의 선택과 무관한 국회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반한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다수당이 국회를 주도하는 게 민주주의이다.
돌이켜보면, 애당초 이런 반민주적인 의사결정 규칙을 재석의원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27명의 찬성으로 결정한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 헌법정치경제학의 대가로 198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즈 뷰캐넌은 국회법과 같은 의사결정의 ‘규칙’을 정할 때는 보통의 안건과는 달리 절대다수나 만장일치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재석의원의 단순 다수결로 재적의원 초다수(supermajority)의 찬성이 필요하도록 의사결정 규칙을 변경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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