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연수를 고발한다
교사의 역할, 무엇을 배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교사들에게는 놀면서도 월급 받는 방학이 있어 좋겠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가끔 있다. 글쎄다. 어떤 일이나 다 그렇지만 대충하기로 작정하면 없고, 제대로 하기로 들자면 밑도 끝도 없는 것이 '일’이다. 교사에게 방학은 그야말로 재충전의 시기이고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연수를 찾아다니든, 독서를 하든 혹은 여행을 하든, 배움의 창고를 새롭게 가치 있는 고급스러운 것으로 깊게 넓게 채워가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 '일’을 하기에 방학만큼 좋은 것은 없다. 그것이 교직을 더욱 값지고 빛나게 하는 것인데 그저 놀고먹는 시간만으로 채울 수는 없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이번 방학도 가르치고 또 배우는 일로 일정은 빼곡히 채워졌다. 배움이 없이 가르치는 일만 한다면 이내 바닥을 드러내고 말 것이므로 늘 방학이면 배우러 다닌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강의를 하기도 한다. 이번 방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공부를 하러 달려갔다.
그런데 배움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채워나가던 중 뜻밖의 수업을 만났다. 우리 경제의 저성장이 시장경제 지상주의와 성장 지상주의로 인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주된 강의 내용이었다.
이제는 鮮度(?)가 약간 떨어진 피케티를 열심히 위대하다고 추어대는 것쯤은 봐줄 수도 있겠다싶을 정도였다. 피케티는 자기 스스로 오류를 인정하고 새로 논문을 발표하겠다는 논문을 내어놓는 판에 침이 마르도록 피케티가 위대하다고 찬양가를 불러대었다. 벌떡 일어서서 질문 포격을 하거나 아니면 더 이상의 괴로움을 참지 말고 강의실 문을 박차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지경이었다.
▲ /사진=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교육고발' 게시판 |
강의자료 중에는 우리나라가 사회적 지출 항목에서 OECD평균(19.3%)에 훨씬 못 미치는 8.1%로 표기된 성장과 분배의 논쟁이라는 제목으로 된 그래프 자료(2011)가 있었고, 임금불평등도(9분위/1분위)의 비교자료가 있었다.
이 역시 일본이 2.79, 미국이 3.53이고 OECD평균이 3.35 인데 우리나라는 4.09로 되어 있었다.
OECD 각국의 조세, 재정지출이 얼마나 소득재분배 효과를 가져 오는가 하는 자료도 있었는데 이 통계는 시장소득기준으로 지니계수의 축소 비율을 보여주는 통계였다.
우리나라는 최하위였다(약 3~4%포인트). 일본도 약 12%포인트, 미국도 족히 7.5~8%포인트는 되어 보이는데 우리만 최하위였다. OECD 평균은 15~6%포인트 정도 되어 보였다. 우리나라는 분배의 정의도 없고 조세를 걷어도 소득 재분배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나라였다.
▲ /사진=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교육고발' 게시판 |
우리나라의 저성장은 곧바로 저복지 탓이라는 인과론으로 이어졌다. 특히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 대한 언급과 아울러 낮은 경제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며 우리나라의 정치는 국가와 시장, 분배・재분배와 성장이라는 축으로 나뉘는 사분면 중 '관치경제발전국가’ 모형으로 묶어 놓고 있었다.
▲ /사진=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교육고발' 게시판 |
일본과 히틀러와 ‘박정희 모델’은 동급이었다! 여축없이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모델이
박정희모델과 연장선상에 있다는 이야기는 놀람을 넘어 충격이었다. 지금의 정치가 ‘독재’라는 표현을 그렇게나 하고 싶었나보다 라고 짐작되었지만
만일 지금 정권이 정말 독재정권이라면 훌륭하신(?) 강사님께서 지금 하시는 그런 강의를 교사 대상으로 할 수나 있을 것 같으냐고 반문하고
싶었다
충격은 그뿐이 아니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일본이 덮어놓고 토건국가로 내달린 탓이라고 지적하며 관치국가의
대표모델이 '2끼 3스께’의 만주국 모델인데 이것이 바로 박정희모델이고, 박정히 모델은 다시 한 번 전체주의의 대표인 '스탈린 모델’과 동치로
언급되고 있었다. 높은 투자율, 중공업 우선, 대기업 중심, 분배와 복지 무시, 초기 고성장, 후기 침체.
▲ /사진=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교육고발' 게시판 |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는 더욱 상황이 나쁜데 그 이유는 '복지기피’에다가 '토건국가’가 결합된 탓이라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으면 저성장이 된다는 이야기, 미국의 공화당 집권은 미국의 저성장을 가져오고 민주당 집권이 고성장을 이끌었으며, 일본은 토건국가의 입지를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복지가 소홀해진 것이고 그 이유로 인해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 /사진=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교육고발' 게시판 |
브라질은 BRICS에서도 그 입지가 무너지는 판이건만 강사는 브라질의 룰라가 포용적 성장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빈곤율이 30%에서 19%로 낮아졌다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덕분에 최근에 최저임금이 200헤알에서 510헤알로 인상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 /사진=자유경제원 자유북소리 '교육고발' 게시판 |
미국+유럽국가의 불평등, 미국+일본의 불평등, 개도국의 불평등 곡선을 언급하며 ]세습자본주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피케티가 등장할 차례였다. 역U자 가설 이야기가 이어졌고, 우리나라의 '줄푸세’는 미국 공화당 5대 도그마의 한국판일 뿐이며, 결국 이 나라를 온통 재벌세상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이병막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모두 규제완화만 말하고 있을 뿐이며 복지를 무턱대고 포퓰리즘으로 몰아가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깨알같은 인용이 등장했다.
“한국의 복지국가는 단순히 복지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노동시장, 재벌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며, 이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는 양극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황덕순, 2011).”
복지국가에 대한 강력한 의지 없이는 양극화문제도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규제완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보다는 포용적 성장만이 답이라는, 경제민주화에 복지국가를 더할 때 한국 경제가 제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화려한 레토릭으로 끝을 맺는 강의였다.
이어서 이어진 교사토론은 우리의 복지 지수에 대한 교사들의 체감 정도를 표기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향후 우리가 지향할 복지국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발표하라고 했다.
이 강의를 들은 교사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을 마친 모둠마다 토론결과를 발표해야했다. 다섯 개의 모둠 중 네 개의 모둠이 ’보편적 복지'가 궁극의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불평등한 국가이므로!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강사가 제시한 읽기자료 칼럼들은 흙수저 운운하는 우리 세태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고, 흙수저 빙고게임도 소개하고 있었다.
이런 연수를 받은 교사들에게 성장이 답이며, 우리의 시장경제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유연하게 대응할 때 성장할 수 있으며 그러한 성장을 위해 자유가 허용되고 경쟁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연수과정에서 위와 같이 배운 교사가 복지 포퓰리즘의 폐해를 제대로 학생들에게 이야기 해줄 수 있겠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은 답답해져왔다. 그 귀한 방학 중에 공부하러 온 교사들에게 흙수저와 헬조선으로 절망하고 자조하게 만드는 강의나 듣게 해서 학교 현장으로 돌아간 후 무엇을 가르칠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묻고 싶었다. 대한민국이 흙수저이고 헬조선이라서 끊임없이 탈북이 이어지고, 우리나라로 와서 일하겠다는 해외근로자가 줄을 서고 그런 것인지, 정작 열변을 토하시는 강사님은 스스로 흙수저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지 대놓고 묻고 싶었으나 참느라 애를 써야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우리가 함께 일으키고 지켜가야 할 나라이며 지금까지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해나갈 나라이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에겐 기회의 차단보다는 기회의 제공이 많은 나라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시퍼렇게
기업가 정신이 살아있어서 지금까지 잘 달려올 수 있었음을 우리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그 역사적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필자의 근무지는 부산지역에서도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동네이며 그런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자기가 선택하는 일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고 있건만!
수저의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수저로 무엇을 뜨며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흙수저 일지언정 뜨거운 불에 구워내면 '도자기수저’가 되는 것이 아닐까.
교사가 무엇을 배워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지 절실하게 느끼고 깨닫는 강의였다. 아울러 이러한 내용의 강연은 교수님들끼리 서로 자신들이 믿는 가치를 두고 갑론을박을 할 때나 나누었으면 좋았을 이야기겠다 싶다. 제시된 데이터는 이미 경도된 것이며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자신의 정치철학에 입각한 자신만의 견해일 수 있는 것이어서 노교수의 '권위’에 실어 전달하는 순간 그저 '배우러’온 교사들의 머리에는 차곡차곡 쌓일 뿐이고, 이런 생각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파될 것이라는 걱정만 안겨준 연수였다. '제대로’ 배워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 배워야겠다고 학구열에 불타는 교사들에게 '아무것(?)’이나 배워서는 안 된다는 교훈 또한 깊이 각인시켜준 연수였다. 부정적 사고와 복지 포퓰리즘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교사연수를 고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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