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그 사건, 광우뻥 선동 6.
팬클럽 소녀들, 촛불소녀로 떠 받들어지다
PD수첩의 '극딜’
2008년 4월 18일, 이명박 정부는 미루고 미뤄왔던 한미 쇠고기 협상을 타결시킨다. 쇠고기시장을 개방하겠다고 한 것이다. 뼈와 내장을 포함한 30개월 이상, 대부분의 부위를 포함한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약 열흘 후, 4월 29일. MBC PD수첩이 방영된다.
PD수첩의 이른바 '극딜’은, 그간 좌익언론에서 깔아뒀던 각종 밑밥들을 끌어모아 터뜨린 '한 방’이었다. 그 핵심내용은 총 세 가지로, (1) 광우병으로 위험한 다우너 소가 도축되고 있다, (2) 버지니아 주 20대 여성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했다, (3) 한국인은 유전형 때문에 광우병에 극도로 취약하다, 였다.
사실 PD수첩 제작진들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 그간 좌익언론과 매체에서 뿌려두었던 밑밥들이 어마어마했으니까. “자칭” 광우병 전문가들이 단정적으로 내놓았던 왜곡된 혹은 거짓된 정보들을 보고 근거가 있는 전문지식이라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훗날 밝혀진 사실들이지만, 다우너 소가 유난히 위험하다는 증거는 없고, PD수첩에서 언급한 버지니아 주 20대 여성인 故 아레사 빈슨의 사인은 인간 광우병이 아니라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밝혔으며, 한국인이 유전형 때문에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주장에는 과학적인 증거가 전혀 없었다.
결국 PD수첩의 방송내용은 전부 좌익언론들이 깔아뒀던 왜곡, 과장, 거짓 주장들의 총집합이었다. PD수첩의 제작진들은 방송 제작의 바탕이 되었던 “자칭” 전문가들의 주장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서 영상을 짜깁기하는 테크닉까지 동원했다. 이는 객관성, 사실성에 근거해 보도를 할 의무가 있는 언론매체의 도덕적 한계를 훨씬 넘어선 행위1)였다.
그간 좌익언론의 왜곡 보도는 그 영향력이 적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니 주장의 객관성과 사실성에 대한 검증절차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당연하다. 반면 공중파 TV 방송에, 고정시청자가 상당수 있는 PD수첩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후 검증이 이루어지며 PD수첩의 방송 내용이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PD수첩의 이 방송은 좌익언론과 좌익단체가 그간 국민들에게 주입해왔던 '미국산 쇠고기 = 광우병’이라는 인상을 수면 위로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고, 전 국민들이 이에 동요했다. PD수첩의 방송은 “광우병 공포”의 방아쇠가 되었다.
▲ 광우병에 여론의 관심이 모아지고, 대중의 의식 속에 광우병이라는 위험존재가 처음 각인된 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 때였다. 이는 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협상과정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부’를 협상카드로 사용하며 생긴 일이었다. 사진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7월 11일 김해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한 민주당 정세균 대표 등 지도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
팬클럽소녀들, 촛불소녀로 떠 받들어지다
최초의 촛불시위는 2008년 5월 2일에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PD수첩의 여파가 네티즌을 움직였고,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번개모임’의 형태로 실시된 것이 바로 이 5월 2일 촛불시위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모임을 주도한 것이 여중생들이었다는 점. 당시 여중생의 비율이 시위 참가자 전체의 무려 80% 이상을 차지했다.
이를 두고 우익과 좌익의 평가가 엇갈렸다. 우익은 해당 여중생들을 “광우병 괴담에 놀라 거리로 뛰쳐나온 철부지들2)”이라고 표현했다. 또 전교조 교사들이 어린 학생들을 충동질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라고 좌익단체 전교조를 의심했다. 마땅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전교조가 학생들을 부추겼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간 전교조의 만행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의심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전교조에 대해서는 이후 2장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반면 좌익은 이 여중생들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여중생들을 '촛불소녀’로 아이콘화 하면서 (말 그대로 아이콘화 했다. '촛불소녀’ 캐릭터로.) “희망의 세대로 거듭난 세대”라 칭하기 시작했다.
'왜 하필 학생 중에서도, 여학생. 그것도 여중생이 촛불시위를 시작하게 됐을까?’에 대한 의문에 한 좌익매체는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했다.
“어차피 학원을 땡땡이 칠 바에, 남학생들은 PC방에서 하루 저녁을 보내는 소아적 선택을 했다. 자본주의가 문화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쳐놓은 덫에 제대로 포섭된 것이다. 반면, 게임의 유혹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운 여학생들이 쇠고기 문제에 직결될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이 갖는 본능적인 돌봄과 생명에 대한 관심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여성은 제 몸으로 젖을 생산하여 아기를 먹이고, 이후에는 요리를 하여 식탁을 꾸미며 식생활을 주관하는 주체이다. … 이들이 먹을거리 문제에 대해 남학생들보다 훨씬 민감한 촉각을 가지고 대응하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3)” |
매우 흥미로운 분석이다. 남학생이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자본주의 탓이고, 여중생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숭고한 모성본능 때문이라는 설명인데, '꿈보단 해몽’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시대정신에서 발행한 <광우병 촛불시위 추적보고서>는 위 좌익매체의 분석을 이렇게 평가했다.
“우선, “(남학생들은) 자본주의가 문화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쳐놓은 덫에 제대로 포섭된 것”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모든 것을 자본주의의 폐해로 연결시키려는 강박증적인 도그마를 여기서도 엿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롭다. … 이 설명은 왜 남성이 아니고 여성이냐는 의문에는 어느 정도 답이 될 수도 있다. … 그러나 여성 중에서도 왜 여중생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에는 답이 될 수 없다. 만약 모성과 식탁의 주재자가 여성이기 때문이라면, 여중생이 아니라 여고생, 10대가 아니라 20~40대 여성이 가장 적극적이었어야 한다.”-시대정신 89p.4) |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하필 여학생이, 그것도 여중생이 거리로 뛰쳐나와 촛불시위를 시작했을까?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 청계광장의 여중생들은 주로 인기 연예인 팬클럽을 통해 모이게 되었다. 유명 D그룹 팬클럽 사이트에 “광우병 쇠고기를 먹고 우리 오빠들이 뇌에 구멍이 나서 죽을지 모르니 지켜주자5)”는 내용의 글들이 상당수 올라왔으며, 이를 통해 시위모임이 계획되었다. 시위현장에 모인 여중생들끼리도 서로 '팬클럽 회원’으로 알고 지내던 사이로, '오빠’들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여중생들이 온라인상에서 특정 가수 팬클럽을 조직하고, 오프라인에서 '번개’의 형식으로 모임을 가지는 현상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당시 '번개모임’이 괴담과 선동으로 얼룩진 정치적 모임이었던 '촛불시위’였다는 점이 비극이라면 비극이겠다.
더군다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시 학생들에게 인기(?)가 최악이었다.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0교시 수업, 영어몰입교육, 자사고 추진계획 등을 들고 나와 학생들의 원통을 샀던 것이 이 전 대통령이다. 사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커뮤니티 '아고라’에서 실시된 “이명박 탄핵서명운동”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안단테’라는 ID를 쓰는 한 고등학생이 시작한 것이었다. 서명운동은 2008년 4월 6일 처음 실시되었는데, 이는 PD수첩의 방송은 물론, 한미 쇠고기 협정도 하기 전이었다. 쇠고기 문제를 제쳐두고서라도, 10대 학생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적대했던 것이다.
종합해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학생들에게 원래 미움을 사고 있었고, 인터넷을 통해 번진 광우뻥 괴담들은(물, 공기, 화장품, 생리대 등으로도 전염이 된다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괴담들) 학생들의 감수성을 자극하여 불안, 걱정, 분노 등을 끌어내기 충분했고, 팬클럽 여중생들 특유의 그 행동력에 의해 이러한 요소들이 '촛불시위’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철없는 여중생들의 행동을 좌익은 영웅화하기에 급급했다. <광우병 촛불시위 추적보고서>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들(촛불시위를 시작한 여중생들)을 가리켜 거창하게 “10대의 정치적 각성”이니 “여중생들이 사회모순에 눈을 떴다”느니 하면서 여중생들을 칭송하고 영웅시한 어른들은 어린 소녀들에게 아부한 것이다. 대선과 총선에서 대패하여, 절망과 패배주의의 늪에 빠져있던 좌파를 건져준 것이 너무 고마웠을 터이다. 실은 그게 아니라고, 미국산 쇠고기가 그렇게 위험한 게 아니고, 화장품, 생리대로 광우병에 걸린다는 소문은 터무니없는 괴담이라고 타이르고 안심시켜야 할 어른들이 그들의 공포를 부추기고, 그들로 인하여 이명박 정부가 쩔쩔매자 그 열매를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계획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10대 소녀들의 공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시대정신, 91p 6) |
팬클럽 소녀들을 성녀 잔 다르크 마냥 미화하며, 그들의 순진한 공포와 걱정을 다독여주지는 못할망정, 정부에 분노하라고 부추기는 어른들. 2008년 한국은 얼마나 부끄러운 사회였던가.
한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그 사건, 광우뻥 선동 7.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그들, 달라지는 촛불시위
5월 2일, 순진한 여중생들에 의해 촛불시위의 불이 댕겨지자, “그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이 누구냐고? 간단히 말해서 국민들의 분노를 이용하기 위해 국민들을 부추기는 세력들을 말한다. 이들은 반미친북을 외치며 좌익단체를 주도해왔고, 매 사건마다 어김없이 등장하여 상황을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조종해왔다. (이 책의 2장 “무지의 분노를 이용한 이들”에서 다룰 내용이다.) 이 세력은 5월 6일 <광우병위험미국산쇠고기전면수입을반대하는국민대책회의>를 출범시킨다. 매번 이런 조직을 만드는 사람들이 늘 같은 사람들이다 보니, 이름도 항상 이렇게 길다. 대책회의로 부르도록 하자.
아무튼 이 대책회의는 5월 2일 우연히 여중생에 의해 시작된 촛불시위를 재빨리 가로챘다. 시위를 본격화, 정례화하기 위해서였다. 대책회의는 크게 세 가지 주요세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째는 정치단체들. 한국진보연대(이하 진보연대)를 필두로 한 친북운동권 세력이다. 이 세력이 대책회의의 사령부 역할을 한다. 진보연대 공동대표인 오종렬, 한상렬 씨가 대책회의의 대표 역을 맡았다. (이 사람들의 이름을 잘 기억해두자. 이후 다룰 사건들에서도 계속 등장하는 분들이다.)
두번째는 이익단체들. 전교조, 민주노총 등 친북운동권 세력과 늘 붙어 다니던 단체들이다. 사실 이 단체들을 만든 것이 친북운동권이었으니 가족 같은 사이일 수밖에.
세번째 세력은 참여연대나 민변, 흥사단과 같은 시민단체들이었다. 상당히 많은 수의 단체들이 이 대책회의에 참가했는데, 이들은 한미 FTA 반대, 평택미군기지 이전 반대, 미군 철수 운동 등을 주도했던 단체들로, “전문시위꾼”들이었다.
만일 대책회의가 촛불시위 현장에서 평범한 민간인들이 모여 민주적 절차를 거쳐 만든 단체였다면, 촛불시위가 폭력적인 반정부시위로 이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책회의는 반미친북과 관련된 모든 사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해 목소리를 내는 세력들이 또다시 모여 “자임해서” 만든 단체다. 이들은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를 원형으로 삼고 거기에 새로운 단체들을 추가하여 5월 2일 첫 촛불시위 이후 단 4일 만에 대책회의를 조직하고, 촛불시위의 주도권을 가져간다.7)
2008년 5월 2일부터 7월 1일이라는 기간 동안에만 전국 98개 지역에서 총 1,736회의 촛불시위가 개최되었다. 초기에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를 중심으로 촛불시위가 계획되고 실시되었다. (각종 괴담의 지원지도 아고라였다.) 그런데 대책회의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며, 전문시위꾼들의 확성기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인터넷을 보고 촛불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이 시위현장에서 대책회의8)의 지시를 받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5월에서 6월으로 넘어가며, 광우병 위험보다는 반정부 투쟁 그 자체에 더욱 관심을 가진 대책회의가 시위를 완전히 주도하면서 초기 참가자의 주류였던 중고생들이 점차 빠져나가 고성인들의 참여가 늘어났다.
▲ 사진은 자유경제원이 2015년 4월 9일 베스트웨스턴 서울가든호텔 릴리홀에서 개원18주년 기념으로 주최한 특별 토론회 <광우병 사태, 그 후 7년 ‘천민민주주의’에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전경. 토론회 시작에 앞서 참석자들이 광우병 관련 영상을 관람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
참가자들의 참가이유도 다양해졌다. 신동아 2008년 7월호에 실린 촛불시위 연행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보면 광우병 위험 때문에 참가했다는 사람들 외에도, '사는 게 힘들어서’, '수돗물 민영화 반대’, '전경의 과잉진압에 격분해서’, '대통령의 국민을 섬기는 태도 부족’ 등 제각기 다른 이유 때문에 참가한 사람들이 많았다.9) 촛불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변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대책회의는 시위를 최대한 장기화, 거대화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온 나라가 들썩이는 이 상황을 이용해 그들 마음에 들지 않는 체제를 바꿀 수 있었으니까. 꼭 극좌 반미친북 세력이 아니더라도, 좌익에 속해있으면 어쨌든 촛불시위는 달가운 일이었다. 집권당과 보수세력을 억압함으로써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촛불시위의 영향으로 이후 민주당은 국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한나라당의 법안통과를 저지할 수 있었다.
또 촛불시위는 좋은 '아이템’이 되어, 이후 좌익시민단체에서는 용산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촛불을 꺼내들었다. 이런 결과들은 충분히 예상되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대책회의가 시위를 더 키우고 싶고, 또 실제보다 더 커 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대책회의는 시위의 규모를 계속해서 부풀렸다. 최대인원이 참가했었던 6월 10일 시위의 경우, 경찰 측에서 추정한 서울 세종로 일대 촛불시위의 참가인원은 8만 명이었는데, 대책회의 측은 무려 7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전국 규모로 경찰의 추산규모는 15만 명, 대책회의 측은 100만 명을 주장했다. 대책회의는 이런 방식으로 촛불시위를 홍보하고, 시위의 영향력을 키우려 노력했다.
혼란의 시기가 끝나고
촛불시위는 6월 중순 그 절정에 도달했다가, 대책회의가 내세우는 정치투쟁적 색깔이 점점 짙어지며 하락세를 맞이하게 된다. 쇠 파이프와 각목이 등장하고, 전경에게 흉기를 휘두르거나 집단폭행을 가하기도 하고, 건물 방화, 기물 파손 등 점차 폭동과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가자 일반 시민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전문시위꾼”들만 남아 열심히 투쟁하다 8월 중순 완전소멸하게 된다. 앞서 도입부에서도 살펴봤지만, 시위가 한창일 때에 벌어진 사건들은 경악을 금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사실상 테러, 폭동에 가까운 행위들을 “촛불시위”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던 사람들이 많았다. 시민들의 분노를 끌어올리기 위해 거짓 선동, 음모론들이 퍼지기도 했었다. 혹시 주변에 아직도 광우병 촛불시위가 시민들의 '정당한’ 분노였으며,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평화시위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필시 두 유형 중 하나다. 진실을 전혀 모를 정도로 무지하거나, 시위 주동세력이었거나.
광우병 촛불시위는 인터넷을 통해 퍼진 각종 '뻥’들, 왜곡된 정보로 여론을 오도한 좌익언론들, 그리고 촛불시위를 반정부 폭력시위로 이끌었던 주도 세력들에 의해 만들어진 한 편의 비극적 드라마였다. 국민들은 올바른 지식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속았고, 무지했기 때문에 분노했으며, 그렇게 이용당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똑 같은 사람들에 의해 이러한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7월 1일, 미국산 쇠고기가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했고, 8월 11일 LA 갈비 등 뼈 있는 미국산 쇠고기들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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