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효순이와 미선이…누가 두 소녀의 죽음을 이용했나

자유경제원 / 2016-03-02 / 조회: 6,905       미디어펜

두 소녀의 죽음을 이용한 이들 1. 소녀들의 불행한 죽음


떠나보내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이름, 효순이와 미선이


반미종북 좌익세력이 국민의 분노를 이용하여 본인들의 정치적 이익을 꾀했던 것은 광우병 때가 처음이 아니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일련의 사건들이 광우병 촛불시위의 원조격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신효순과 심미선, 이 두 어린 영혼의 안타까운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한다는 점. 꿈 많던 소녀들이 생일파티 하러 가던 길에 변을 당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사고였다. 왜 굳이 이런 당연한 말을 하냐고? 이유가 있다. 이건 '살인사건'이 아니라 '교통사고'였다고, 여기서 갑자기 '미군철수', '자주통일' 등의 반미친북 운동이 나오면 곤란하다고, 그건 좌익종북 세력이 선동해서 그런 거라고 구구절절 설명을 하면 꼭 나오는 말이 있더라고. "너는 피도 눈물도 없다"라는 말.


두 여중생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무조건 반미친북을 외쳐야 한다는 괴상한 논리다. 사실 이 사건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화를 다스리기가 힘들다. 두 소녀의 죽음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파렴치한 세력들에 대한 분노. 더군다나 이 세력이, "살인자 집단 미군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뻔뻔한 말까지 해댔으니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 


2003년 4월, 효순 양과 미선 양은 북한 평양의 모란봉 제1중학교 6학년 9반에 명예학생으로 등록되어 2005년 3월 24일에 졸업했다.1) 북한이 제멋대로 벌인 짓이다. 반미시위의 소재로 이용되던 두 소녀는 급기야 북한의 중학생이 되어버렸다. 두 소녀 부모의 심정이 어땠을까? 북한이 우리나라의 반미종북 세력과 동조하려는 차원에서 저지른 일로 추정된다.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두 소녀의 불행한 죽음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 번 살펴보자. 사고는 2002년 6월 13일 오전 10시 45분경 발생했다. 다음날이 생일이었던 신효순 양과 친구 심미선 양은 생일파티를 위해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두 여중생이 걷고 있던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의 편도 1차로 도로는 폭이 3.3미터에 불과한 좁은 길이었다. 현장은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 곡각지에 둘러싸여있었으며, 산을 깎아 만든 도로로 인도가 따로 없는 급경사 산골길이었다. 차가 온다면 사람이 피할 곳이 없는 곳이었다.


효순, 미선 양의 뒤에서는 주한 미군 미 보병 2사단 44공병대대 소속 차량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이때 맞은편에서 M2/M3 브래들리 기갑 전투차량 5대가 내려왔다. 행렬 속 사고차량은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차를 갓길 쪽으로 붙였다. 사고차량의 폭은 3.65미터로 도로폭(3.3미터)보다 컸기 때문에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들을 피하기 위해서는 갓길 위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불행히도 사고차량을 조종하던 운전병 마크 워커와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는 갓길을 걷고 있던 효순, 미선 양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두 여중생은 사고차량에 치여 압사당한다.2)


보다시피 이는 명백한 '교통사고’였다. 미군은 장시간 훈련으로 인해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고, 급경사에 급커브 길에서 발생한 시야의 사각지대로 인해 효순 미선 양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더군다나 하필이면 좁은 도로를 꺾어 올라가고 있을 때 맞은편 차량 행렬과 마주쳤다. 미군이 더욱 주의했더라면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살인자”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마치 미군이 의도적으로 두 여중생을 살해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마크 워커와 페르난도 니노가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아무런 이유 없이 두 여중생을 치어버릴 리가 없다. 아니 설령 사이코패스라고 하더라도, 수십 수백 명의 목격자가 있는 현장에서 그런 일을 저지르겠는가?


사건 발생 10년 후, 미선 양의 아버지께서는 “사고를 낸 미군도 이제는 편히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심 씨는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하는데, (미군이) 애들이 미워서 낸 게 아니지 않느냐”며, “얼굴도 모르지만 그 미군들도 이제는 마음의 짐을 덜고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심 씨는 효순 양의 부친 신현수 씨도 마찬가지 생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건에서 가장 분노해야 할 사람들은 효순 미선 양의 부모다. 그런 부모도 이 사건이 “단순한 사고”라고 말했으며, 사고의 원인이었던 두 미군이 편히 쉬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데 두 여중생 부모의 가슴에 계속 못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살인자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며 반미(反美) 이슈마다 두 소녀의 이름을 팔아 우리들의 슬픔을 분노로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그 사람들이 어떻게 두 소녀의 죽음을 이용했는지 살펴보자. 


사고 직후 여론의 반응


사고 당시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첫 승을 거둔 대한민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있었다. 너도나도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고 있을 때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 및 좌익시민단체들이 해당 사건을 “미군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규정하고 두 소녀들의 죽음에 정치적 색채를 섞고자 했으나, 월드컵 열기에 의해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이 쉽지 않았다.28각종 종북 행위들 때문에 법적으로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총련 같은 좌익단체들에게는 분명 못마땅한 시기였을 터다. '건수’가 하나 생겼는데 대중이 관심이 없었으니.


다만 인터넷 여론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당시 인터넷은 '안톤 오노 사건’(2002년 2월 21일 동계 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500미터 결승에서 김동성 선수를 실격시키고 금메달을 차지했다는 논란)에 의해 반미감정이 들끓고 있었다. 미국과 부시 미 대통령, 안톤 오노 선수 등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과 패러디 콘텐츠가 하나의 유머 코드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당연히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은 인터넷 여론을 뒤흔들었다. 이 사건이 비록 오프라인에서의 적극적인 행동을 유도할 정도로 공론화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인터넷에는 미국을 독재자, 살인자, 악마의 나라 등으로 칭하는 이들이 많았다. 미국에 대한 증오가 미제소멸을 외치는 북한 인민군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사고차량의 운전병 마크 워커가 의도적으로 두 여학생을 죽였다는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널리 퍼질 정도였으니.


   
▲ 자유경제원은 2015년 4월 9일 베스트웨스턴 서울가든호텔 릴리홀에서 특별 토론회 <광우병 사태, 그 후 7년 '천민민주주의'에 흔들리는 대한민국>를 주최한 바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떼법-천민민주주의에 흔들린다는 문제의식으로 개최됐다. 그런데 반미종북 좌익세력이 국민의 분노를 이용하여 본인들의 정치적 이익을 꾀했던 것은 광우병 때가 처음이 아니다. 2002년 6월 일어났던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광우병 시위의 원조다. /사진=자유경제원


두 소녀의 죽음을 이용한 이들 2. 들끓는 반미감정


미국의 사고 대응


한편, 미국 당국은 사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적극적인 수습에 나섰다. 미 8군 사령관을 통해 유감의 뜻을 전했으며, 사고 다음날인 6월 14일에는 미 보병 2사단 참모장 등이 분향소를 직접 방문했다. 피해 유가족들에게 각각 위로금 100만원과 배상금 1억 9천여만원씩을 전달하기도 했다. 라포트 주한 미군 사령관은 공개적으로 사과를 전했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커질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신속한 후속처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해당 사고가 의도치 않게 일어난 “불의의 사고”였음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 보병 2사단을 비롯한 주한 미군, 미 정부는 해당 사고가 훈련 중 발생한 사고였다고 공식 표명했으며, 유족들에 대한 사고 설명에서 해당 사고는 완전히 우발적이었음을 거듭 강조하였다. 6월 28일 미 2사단 공보실장은 이 불행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과실이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으며, 한국 검찰 역시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입장이었다.3) 7월 3일, 미국 당국은 운전병과 관제병을 과실치사 혐의로 미 군사법원에 기소했다.


대규모 반미 시위의 도화선


7월, 효순 미선양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월드컵의 응원열기 속에서 하락세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흐름을 급변하게 한 사건이 있다. 7월 10일, 한국 검사가 사상최초로 미국 측에 재판관할권을 넘겨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검사는 당시 김대중 정부 청와대에 파견을 갔다가 법무부 검찰4과장으로 영전해 온 유재만 검사였다.


미국 입장에선 당연히 받아드릴 수 없는 요구였다. 작전 중 교통사고를 일으킨 미군에 대한 재판관할권은 미국에 있다. 이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파병을 실시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주둔국과 협정을 맺어둔다. 생각해보라. 이라크에 파병 간 우리나라 군인이 작전 중 실수로 교통사고를 냈는데, 이라크 법에 따라 재판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파병군인이 작전 중 일으킨 고의성 없는 사고인데, 재판관할권을 한국에 넘겨달라는 유 검사의 청은 받아들여질 리 없는 청이었다.


여기서 잠시, 이런 무리한 요청을 한 유재만 검사가 누구인지 한 번 살펴보자. 유 검사는 DJ 정부 초기에 청와대에서 근무했으며, 2005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지휘하였고, 이후 민주당에 영입된 인물이다. 친좌익 반우익적 정치색이 너무나 뚜렷한 인물이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이 모든 것이 유 검사의 계획이었다”라 평가하기도 한다. 무슨 말이냐고? 유 검사는 미 정부가 재판관할권을 절대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예상하고 그런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미 정부의 거부가 반미시위를 불러오고, 이를 통해 좌익세력이 우세해지는 결과를 노렸다는 것이다.4) 당시 유재만 검사에게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러한 추측이 아주 억지스러운 것이라 말하지는 못하겠다. 실제로 유 검사의 억지 요청이 범국민적 반미시위의 도화선이 되었으니까.


들끓는 반미감정


8월 7일, 미군은 “동 사고가 공무 중에 일어난 사고이고, 이제껏 미국이 제1차적 재판권을 포기한 전례가 없다”며, 미 사법체계에 따라 관련자들을 재판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장갑차 운전병, 관제병과 미 보병 2사단 사단장 등에 대한 재판권을 한국 법무부 등으로 이속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재판은 동두천 캠프 케이시 내 군사 법정에서 군사 재판으로 열리게 되었다.


주한 미군이 한국 정부의 재판권이양 요청을 거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른바 “효순이 미선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한미 주둔군 지위 협정(SOFA)을 전면 재개정하고 재판 관할권을 한국 정부에 이양하도록 하는 방법을 논해야 한다는 좌익언론을 그 필두로, 미군을 우리나라 법정에서 재판하지 못하는 현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견해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반미감정이 지배적이었던 인터넷 여론은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시켰고, 좌익단체들은 서명운동 등을 실시하며 시민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미국에 대한 격한 분노를 드러내기 시작한 대중은 점차 미국을 적으로 몰아세우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향은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를 중심으로 점점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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