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무상 외치는 진보교육감, 망국병 부르는 교육 표퓰리즘

자유경제원 / 2016-03-20 / 조회: 6,136       미디어펜

교육쟁점들의 지나친 정치화


I. 서론


발제자는 현재 우리 교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육포퓰리즘의 심각한 폐해를 현장을 책임지는 교사의 입장에서 매우 일목요연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본인은 발제자의 시각과 의견 그리고 주장에 공감하며, 발제자가 언급한 내용을 포함해 우리 교육계에서의 이념갈등의 현상을 학교선택권, 학력향상 관리, 인성교육에 있어서 자율과 훈육의 문제, 교원평가 시스템, 교육복지, 교육내용 등의 6가지로 요약하고자 한다. 


II. 학교 선택권


통념적인 의미에서 교육선택권이란 학부모와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따라서 교육선택권은 학부모와 학생의 교육권이라는 개념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교육권이란 교육에 대한 일정한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법이 일정한 자격이 있는 개인 혹은 단체에게 부여하는 권한을 의미한다(강인수, 2004). 


한편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가 관리하고 감독하는 교육체제인 공교육제도에 있어서 교육의 주체들은 학생, 학부모, 교사, 설치자로서의 지방차지단체 또는 학교법인, 그리고 국가 등인 바, 이들 교육의 주체들은 모두 법이 정하는 테두리 안에서 교육권을 보유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교육 주체들 간의 교육권은 상충될 수도 있고, 보다 큰 목적의 실현을 위해 상호 보완적이 될 수도 있다. 


교육의 주체들 중에서도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교육이라는 행위의 대상이자 수혜자는 곧 학생이며 학생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은 그 존재의 의의를 상실한다. 다음으로, 학부모는 미성년인 학생의 이익을 가장 잘 보호하고 대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부모의 교육권은 다른 어떤 교육주체들의 권한보다 우선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31조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교육기본법 3조와 12조는 각각 적성과 능력에 따라 교육 받을 권리와 학습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있다. 또한 교육기본법 13조에서는 자녀 아동의 교육에 관한 학부모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교육권은 학생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필요로 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학습을 할 수 있는 권리고,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학교 선택권, 교육내용 선택권, 학교교육에 대한 참여권 등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강인수, 2004). 결국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권의 핵심은 교육에 관한 선택권으로 귀결된다. 


한편 우리나라는 교육에 엄청난 예산과 재원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타 선진국들과 비교해 볼 때 공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연간 국내총생산의 3%에 육박하는 20조원이 사교육시장에 투입되고 5조원 정도가 해외유학 내지는 연수비용으로 지출되는 현상들은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증거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공교육에 대한 불만의 가장 큰 원인은 학부모와 학생들의 교육선택권이 제한된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이영, 2007).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의 공교육체제 하에서 많은 교육수요자들이 불만을 느끼는 것은 바로 교육선택권에 관한 부분이다. 평준화를 기본적인 틀로 설정하고 있는 학교교육제도 하에서 실제로 이들은 지극히 제한된 선택권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 공교육체제의 근간은 교육의 양적 팽창을 지향하는 평준화체제이다. 즉,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 규정된 교육기회의 균등한 보장을 최우선시하는 평등주의가 1970년대 중반의 고교평준화 도입 이후 현 시점까지 우리 교육 정책의 기저였다고 할 수 있다(김성열, 2007). 


그러나 이제 우리의 공교육은 양적 확대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고교 졸업생들의 대학진학율이라는 지표만 놓고 볼 때 우리는 여타 선진국들보다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양적 발전 다음에 와야 하는 것은 당연히 질적 향상이다. 여기서 질적 향상이란 단순히 수월성을 추구하는 교육만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다. 과거 진학의 기회를 우선시했던 교육수요자들이 이제는 보다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욕구를 표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공교육체제 역시 다원화되어야 한다. 공교육체제를 다원화하고 그것이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 및 내용을 다양화하고 교육수요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함으로써 공교육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육수요자들은 고비용의 사교육보다는 학교교육을 신뢰하고 만족스럽게 여기게 되는 바, 이것이 바로 공교육 정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진보진영이 보수와의 투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포퓰리즘에 기초한 정책을 남발한다면 국가와 교육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사진=연합뉴스


공교육체제를 다원화하고 교육수요자에게 학교선택권을 보장해 주는 방안은 3가지로 대별될 수 있는데, 그 첫째는 학생들의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무시험선발의 골격은 유지하되 지역 내 학교들에 대한 선택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 제도는 많은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서울시교육청도 시범적으로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교육활동 전반에 걸친 단위학교별 자율성의 보장이다. 각 학교별로 교장의 책임 하에 학교별로 특성 있는 교육프로그램이 유동적이고 탄력성 있게 운영된다는 조건 하에서만 이 같은 교육선택권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획일화되고 경직된 학교체제는 대폭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선진국에서처럼 단위 학교들이 자율성을 향유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자율성은 자연스럽게 개별 학교의 책무성과 연계되고 교육수요자들은 이러한 책무성을 바탕으로 학교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교육수요자의 입장에서 개별 학교들을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료와 정보들이 공개되어야 한다. 현재 미국과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는 학교평가는 바로 이러한 정보와 자료들을 교육수요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선택을 돕고 있다. 물론 이렇게 되면 학교들 간의 비교와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같은 경쟁과 비교를 ‘서열화’로 치부하며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국민의 교육권을 박탈하는 행위다.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선택권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두 번째 방책은 개별 학교 내의 교육프로그램을 학생들의 필요나 능력에 따라 다원화하는 것이다. 7차 교육과정에서 구상은 하였지만 여러 가지 여건의 미비로 인해 본격적으로 실행할 수 없었던 수준별 수업이 이 같은 다원화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미국의 공교육체제는 우리의 체제와 매우 상이하다. 미국의 공교육체제는 피상적으로는 평준화의 틀을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동일한 학년의 학생들 중 일부는 미적분을 배우고 다른 일부는 방정식의 기초를 배울 정도로 다원화되고 탄력성 있다. 이 같은 시스템 하에서는 교육수요자들의 선택권이 학교를 결정하는 데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교육의 내용 및 교육프로그램의 선택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 


개별 학생들의 능력, 수준, 혹은 적성에 따른 차별화되고 다양화된 프로그램이 학생들 간의 개인차를 더욱 심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이 같은 교육프로그램의 취지와 기능을 잘 못 이해하는데서 기인한다. 특히 수준별수업의 경우, 낙오되는 학생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과 상위집단 간의 간극을 좁힘으로써, ‘수준이하의 개인차’를 경감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라 볼 수 있다(정범모, 2009).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선택권을 보장해 주는 세 번째의 방안은 학생들의 특기나 적성 그리고 장래의 진로는 물론, 지역적 특수성과 학부모들의 특색 있는 수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특성화된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소위 특수목적고는 바로 이러한 취지하에 도입된 제도이지만, 사회의 일각에서 설립취지와는 달리 입시준비를 위한 장소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여기서 특성화된 학교라 함은 단순히 지적 능력이 탁월한 집단만을 위한 학교는 아니다. 특성화 학교는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산업현장에 투입되는 학생들, 일반 고교의 체제나 제도 속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들, 언어나 과학 혹은 예체능 방면에 특출한 재능과 적성을 가진 학생들 등을 위해 다채로운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특성화된 학교들을 통한 교육선택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우선 이들 학교들에 대한 편견의 불식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와 아울러 특성화된 학교들은 그 운영이 설립취지와 목적에 부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육수요자의 선택권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대안은 공교육에 있어서 사학의 역할과 입지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중등교육은 많은 부분 사립학교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고등교육의 경우 사학의 비중이 더 크지만 논의의 편의상 이 부분은 여기서 제외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들 사립학교들은 이름만 사립일 뿐 교육과정의 선정, 운영, 학생선발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중앙 혹은 지방정부의 통제와 감독을 받는다. 더욱이 이들의 재정자립도는 지극히 빈약하여 이들 학교의 교원에 대한 인건비는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는 실정이다. 요약컨대 우리나라의 사립학교들은 대부분이 유명무실한 존재들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육수요자들의 선택권은 자연히 제한 될 수밖에 없다. 


대외적으로는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중국은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도가 지나칠 정도로 사립학교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영국, 미국,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는 정부의 통제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립학교들이 전체 공교육의 약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립다운 사립학교들이 공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이다. 이제는 우리의 교육도 정부의 주도와 감독 위주의 후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 공교육에 있어서 ‘사적 영역(private sector)'을 허용함으로써 관 중심의 획일성과 경직성에서 탈피해야 한다. 


사립학교라고 해서 무조건 등록금이 비싼 ‘부자들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는 것은 선진국의 예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종교단체나 자선단체 혹은 독지가들에 의해 운영되는 사립학교들은 ‘귀족학교’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사립학교의 활성화를 통해 우리의 공교육체제를 더욱 유연하고 탄력 있게 만들 수 있다.

한편 교육수요자의 선택권이 마치 학교별 전형에 의한 선발로 곡해되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학교별 전형은 고등학교 취학률이 지극히 저조하던 1960-70년대의 선발방식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취학률은 학령인구대비 거의 100%에 준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별 학교들이 전형에 의해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은 득 보다는 실이 훨씬 많다. 따라서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교육선택권이 현재와 같은 거주지역 중심의 무전형선발체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끝으로, 교육수요자의 선택권보장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선, 저소득계층에 대한 배려다. 어떤 사회건 불평등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그러나 그 불평등이 용인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혜택에서 소외된 계층(socially disadvantaged groups)에 대해 보상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즉, 재능 있는 빈곤층 자녀들에게도 엘리트 교육의 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는 대학입학 농어촌전형 혹은 사회적 약자계층에 대한 자사고 특례입학 등이 이와 유사한 장치라고 볼 수 있는데, 이처럼 입학에 대한 특전을 부여하는 제도보다는 이들에 대한 보충지도를 통해 저소득계층 학생들의 학력을 증진시키는 방안이 더욱 합리적이라고 사료된다. 실제로 뉴욕시는 저소득층 자녀들을 대상으로 성적우수자들이 진학하는 공립특수목적고에 대비한 보충교육을 실시하여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 진보는 모두 틀렸고 보수는 언제나 옳다고 강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논리에 내포된 가장 위험한 요소는 포퓰리즘이다.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은 ‘돈 안 쓰고 노력 안 해도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라는 허구적 발상을 기초로 하고 있다. 무상보육도 마찬가지다./사진=연합뉴스


III. 학력향상 관리 


학교는 지ㆍ덕ㆍ체를 겸비한 인간을 기르는 곳이다. 학생들의 지적 발달과 인성함양이 이루어지는 곳이 학교다. 따라서 좋은 학교는 좋은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고, 좋은 인재란 탁월한 기량과 덕을 겸비한 사람을 일컫는다. 지적 능력의 계발과 인성함양에 덧붙여, 학교는 학생들의 건강한 신체발달과 건전한 생활습관형성을 유도해야 한다. 결국, 학교는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을 도모하는 교육의 장이다. 


그런데,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어떤 학교가 좋은 학교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우선 ‘공부 잘 가르쳐 주는 학교’라는 답이 가장 많이 나온다. 왜냐하면 학생들의 지적 발달은 학교교육이 지향하는 매우 중요한 목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 혹은 똑똑한 아이들만을 위한 학교를 만들자는 주장은 아니지만, 모든 학생들의 지적 수준과 능력이 향상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격려하며 때로는 채찍질하는 것은 학생 개개인을 위해서나 우리 사회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요약컨대, 학교의 중요한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학생들의 학습을 촉진ㆍ진작시킬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학력을 관리하고 점검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학력의 질적 관리 및 향상을 위한 장치는 크게 두 가지 특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바, 우선 평가 및 점검의 기능이고 다음으로 평가결과를 토대로 한 개선의 기능이다.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이하 학업성취도평가)는 바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태동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학업성취도평가의 취지 및 목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김성숙, 2010).


우선, 학업성취도평가는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을 점검하고 이를 통해 발견된 취약점을 보완하여 모든 학생들에게 기초학력을 보장해 주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둘째로, 평가의 결과를 토대로 교육과정, 교수 및 학습, 교육환경 등을 개선하고자 한다. 셋째, 개별 학교의 교육성과를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학교 간 혹은 지역 간 간극을 해소할 수 있는 차별적 지원을 그 목적으로 한다. 끝으로, 학업성취도평가를 통해 학생별, 학교별, 지역교육청별, 그리고 국가전체의 수준에서 연도별로 교육향상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이상에서 학업성취도평가의 주요 기능은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평가를 통해 국가수준에서의 학력을 점검하고 확인한다.

2) 지역별 그리고 학교별 비교를 통해 그들 간의 격차를 파악한다.

3) 취약지역 그리고 취약학교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제공하고 이에 필요한 교육자원을 지원한다.

4) 연도별 평가를 통해 학생, 학교, 지역, 그리고 국가전체의 변화 및 향상도를 확인한다.


결국 학업성취도평가의 목적은 개별 학생들의 우열을 판정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평가의 결과는 학교교육을 점검하고 문제점을 진단하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되는 바, 이 같은 자료 없이는 학교교육에 대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진단과 분석은 어렵다. 그러기에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평가를 실시하여 수업과 학습의 질을 관리하고 이를 통해 교육의 질적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그런데 소위 진보진영이라고 분류되는 교육감들은 이구동성으로 학업성취도평가를 거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들 진보진영은 학업성취도평가가 학교와 학생들의 불필요한 부담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결국 학교를 서열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이에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학업성취도의 기본취지는 학교간의 줄 세우기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평가를 하지 않는다고 학교간의 격차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같이 공개된 평가를 토대로 낙후되거나 취약한 학교들을 가려내고, 이들에 대한  차등지원을 통해 이러한 학교들의 교육여건과 질을 향상시킨다면 학교간의 격차는 점차로 감소될 것이다. 따라서 학업성취도평가는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준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학업성취도평가에 대한 준비가 그 자체로서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단순히 시험점수를 높이기 위한 경쟁은 평가의 취지를 손상시킬 소지가 있다. 특히 평가의 결과가 완전 공개됨으로써 개별 학교와 교사들을 동기화하고 그들의 책무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학교들이 과중한 부담을 느낄 수 있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많은 선진국들에서는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의 결과를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경우 학업성취도평가의 결과에 따라 작성된 개별  학교들의 국가수준 석차를 웹사이트에 등재하여 모든 국민들에게 완전 공개하는 시스템을 통해 학교 간의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별 학교들의 심리적 부담이 가중되고 교육계 일각에서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필자 역시 학업성취도평가의 결과가 특정학교들의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조장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견임을 전제로, 학업성취도평가의 결과에 대한 공개를 현재 운영하고 있는 제반 교육정보 시스템(소위 NEIS)처럼  학생과 학부모에게만 제한하는 방안을 제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생과 학부모의 알권리는 충족시키되 일반대중에 대한 공개가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현재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전집 대 표집’의 평가실시방식에 대해서도 보다 세심한 분석이 필요하다.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현재의 평가방식은 전집이 아니라 표집이다. 초ㆍ중등학교 재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중 3개 학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평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대상이 과도하게 많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것이 곧 학생들에 대한 부담으로 연계될 수도 있기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본연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평가대상의 규모를 최적화할 수 있는 방안이 향후 심도 있게 논의되고 검토되어야 한다. 규모가 큰 전집의 경우 평가의 부담이 문제가 된다면, 규모가 축소된 표집의 경우에는 표집 자체의 대표성과 신뢰성이 문제시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학업성취도평가와 아울러 학습의 질을 관리하는 체제로서의 경쟁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진보진영의 주장대로 경쟁이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인 것이라면, 경쟁을 조장하는 모든 평가, 보다 정확히 표현해 평가의 결과가 점수나 등급으로 표기되어 학생들 간의 비교가 가능한 평가는 거부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평가의 대부분은 폐지되어야 한다.


물론, 과열된 경쟁은 그 득보다는 실이 많을 수 있으며, 소위 ‘무한경쟁’의 교육적 가치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다소 회의적이다. 지나친 경쟁은 과욕을 낳고 과욕은 부정행위를 유발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 수 해전 전 세계적인 경제적 난국을 초래한 금융위기의 원인은 바로 탐욕을 채우기 위한 과열경쟁에 있었다. 그러나 경쟁 자체의 교육적인 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경쟁을 회피하려는 군색한 변명임과 아울러 교육적으로 부당한 주장이다. 적절한 경쟁은 학생뿐 아니라, 학교와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까지도 동기화시킬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선의의 경쟁’ 혹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것이다.


특히 핀란드나 스웨덴 같은 소규모의 자원이 풍족한 국가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경쟁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교육의 중요한 기능이 현실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배양해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학교는 마땅히 경쟁에 대한 적절한 훈련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국가 전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대외적으로는 많은 나라들과 경쟁하지만, 국내에서만큼은 협동만으로 살 수 있다는 발상은 논리적 일관성도 결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지극히 비현실적인 것이다.   


   
▲ 교육에 소요되는 비용은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고 노력 없이 좋은 성과를 거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단 이 같은 포퓰리즘이 대중들에게 확산되다 보면 대중이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사진=이해찬 공식페이스북 페이지


IV. 인성교육: 훈육 대 자율


학교는 학생들의 지적 능력만을 향상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은 아니다. 어쩌면 교과교육보다 더 중요한 학교의 기능은 건전한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 및 사회성을 함양시켜  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 견해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인성교육의 방식이다. 진보진영에서는 훈육을 부정적 시각으로 보면서 학생들의 자율을 강조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라는 헌장을 제정하려 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됨이 옳다고 본다. 우선 훈육이 과연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인가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학생인권조례의 정당성을 심도 있게 분석해 보아야 한다. 


훈육은 기본적으로 외적 제재수단에 의한 통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훈육을 교육과 동일시하는 것은 교육에 대한 편협한 시각임만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훈육이 교육의 중요한 일부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교와 같이 이질적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조직의 경우, 훈육의 순기능은 그 부작용이나 역기능을 능가한다. 학교는 교육이라는 목적의 구현을 위해 다소의 강제성이 용인되는 집단으로서, 학교 내에서의 학생들의 권리와 자유는 상황에 따라 제한되고 유보될 수 있다. 특히 집단의 공익, 사회성 함양,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위해 존재하는 규칙을 무시하거나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제재가 부여되어야 하며, 이는 성인들로 구성된 조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훈육의 교육적 순기능이 모든 외적제재수단의 정당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적 목적의 달성을 위해 혹은 집단의 효율적 통제를 위해 교사가 학생들에게 폭력성이 있거나 신체적 고통이 수반되는 체벌을 가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체벌의 전면 금지에 앞서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에 대한 보다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학급당 인원수가 40명에 가까운 과밀학급들이 다수 있으며, 이들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은 수업과 학생지도 외에도 각종 공문서 작성 등의 행정잡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체벌금지가 실효를 거두려면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지도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근무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급선무다. 


다음은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한다. 경기도 교육감은 이미 작년에 온갖 논란을 무릅쓰고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강행하였고, 현재 서울 교육감 역시 경기도의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로,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의 주체들을 편가를 가능성이 높다. 학생의 인권이 있다면 교사와 학부모에게도 인권이 있는데, 만일 이들 간의 충돌이나 갈등이 생긴다면 이는 학생인권조례의 제정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둘째,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조례로서 보호해야 할 만큼 심각하게 인권이 훼손하고 위협받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단순한 조례제정보다는 교과부나 교육청 등의 감독과 관리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위반 사례에 대한 엄격한 제재를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학생인권조례에 포함된 내용들은 이미 우리의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보편적 인권으로서 이를 다시 조례로 제정해야할 당위성이 약하다. 더욱이 조례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유사무에 대한 사항이나 법률의 위임을 받은 사무에 대하여 규정하는 법규범인 바,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하급법인 조례로 정하는 것은 법체계상 타당치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김민호, 2010).


끝으로,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된 학생 자치권과 참여의 권리, 그리고 집회의 자유가 학생들을 정치화시킬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러한 권리가 확대 해석될 경우 자칫 미성년자인 학생들이 기성세대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김정수, 2010).


현재 선진국들은 학교의 안전과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그리고 학교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신뢰와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학생들의 훈육에 대한 조례나 규정들을 강화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학교라는 집단은 미성년자들의 교육과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특수한 집단이기에 경우에 따라 이들의 자유와 권리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을 인권침해라고 보는 것은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식견의 결여를 의미한다.

 

V. 교원역량 제고


미국 교육 개혁의 대명사처럼 우리나라 교육계에 널리 알려진 미셸 리 원싱턴 D.C. 교육감은 항상 ‘교육개혁의 성패는 교사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무조건 교사를 폄하하고 매도하며 탄압하는 교육행정가가 아니다. 단,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교사들을 독려하고 적절한 당근과 채찍으로 교사들을 동기화하는 지도자임만은 틀림없는 사실 같다. 


지난 정권부터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온 교원평가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교원들의  동기화를 통해 교육의 효과를 최적화하는데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직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원평가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김이경, 2008). 우선, 개별 교사들의 전문성 부족 분야를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는 평가이다. 둘째, 교육계의 리더쉽을 갖춘 지도자 내지 행정가로서의 적격 여부를 판정하는 평가이다. 셋째, 교육행정가가 아닌 평교사로서 탁월한 열정과 지도능력을 보임으로써 타 교사들의 모범이 되는 우수교사들을 선별하기 위한 평가이다. 끝으로, 학교라는 조직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저해가 되는 부적격자를 판별하는 평가이다. 


한편 이상에서 전문성 개발과 우수교사 선정을 위한 평가는 성장중심의 평가로 분류될 수 있고, 교육행정가 선발과 부적격교사 판별을 위한 평가는 관리중심의 평가로 분류될 수 있다. 물론 이상의 분류는 어디까지나 개념적인 것이며 현실에 있어서 교원평가를 네 가지 혹은 두 가지로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 세부적인 기능과 용도에 따라 교원평가가 어떤 식으로 규정되든 간에 교원평가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교육의 질적 향상이다. 올해부터 시작된 교원능력개발평가는 바로 교원평가의 한 형태이다. 교원평가의 당위성이 제기되고 평가체제의 법제화에 대한 요구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시안 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교원평가체제에는 분명 많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절대다수가 원하는 제도로 판정된 교원평가가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하는데 대해서는 지난 정부 핵심인사들과 국회의원들의 책임이 크다. 그들 모두 특정 교원단체의 정치적 눈치나 살피면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염원하는 교원평가의 도입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교원평가에 대한 학부모들의 원망이 얼마나 절박하고 간절한 것인지는 아래의 인용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교사가 학교에서의 정규 수업시간과 계기교육 등을 통해 자녀의 인성과 가치관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작 학부모들이 자녀를 지도하고 있는 교사에 대한 평가와 선택 권한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면 학부모들의 자녀교육을 통한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중략) 교사에 대한 선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운에 따라 능력 있는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에게 배워야 한다는 것은 학부모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교원평가를 통해 교사의 능력을 개발하고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중략) 교원평가는 중요하기에 시급히 법제화를 통해 교원평가제가 정착되어서 교육의 질이 향상되고 학부모가 만족하는 교육을 받는 시대가 와야 한다(김정수, 2010).”


교원평가에 대해 일부 교원단체들과 진보진영은 ‘교직은 전문직이기 때문에 타율적 평가체제를 사용하여 업무의 질적향상을 도모한다는 것은 전문직의 품격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전문직은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법은 없다. 변호사의 평판과 처우는 의뢰인들의 평가에 의해 결정되고, 의사 역시 환자들의 부단한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변화에 대해 가장 저항적인 집단으로 손꼽히는 교수들도 평가체제를 수용한지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교육이 온 국민의 지대한 관심사인 상황 하에서 교원평가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재론이 필요치 않을 것으로 본다.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은 교원평가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하며 이 제도의 당위성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교원능력개발평가는 문자 그대로 교사들의 능력을 향상시켜 학생들에게 보다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실시되는 평가다. 게다가 이 제도는 오랜 세월동안 학부모와 학생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는 제도다. 일부 교사들의 불만표출이라면 몰라도, 교육감들이 이 사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거부 운운하는 것은 자신의 당선을 도운 특정 교원단체의 이익을 위해 학부모와 학생들의 권리와 요구를 무시하는 처사로 비쳐질 수 있다. 


올해부터 시작된 교원능력개발평가는 교장 및 교감의 경우는 학교경영 전반에 대하여, 그리고 교사들에 대해서는 수업 및 생활지도에 대하여 동료교원 간의 평가, 학생 만족도 조사, 학부모 만족도 조사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평가시기는 학부모 및 학생 만족도의 경우 매년 6월에서 7월 사이, 그리고 동료교원 평가는 매년 10월까지 실시되며 그 결과는 개별 교사들에게 통보되고 교사는 이를 바탕으로 자기능력개발계획서를 작성하여 학교장에게 제출토록 되어있다. 그리고 개별 학교 및 해당 교육청에서는 교사들에 대한 평가결과를 토대로 미흡한 영역에 대한 연수를 실시할 수 있다. 


현행 제도는 우선 시작단계에 있는 만큼 평가를 통한 승진 등의 결정보다는 교원들의 전문성 신장이나 능력 개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더욱이 교원평가의 궁극적인 목적이 교사들 개개인에 대한 근무평정보다는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있는 만큼 소위 교사들에 대한 관리보다는 그들의 성장 쪽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현재로서는 무난하다고 사료된다. 


그러나 교원평가체제가 교사들을 동기화하고 그에 따라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재처럼 평가의 결과를 교원들의 능력개발에만 활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즉, 교수평가의 경우에서 보듯이, 평가제도가 기대에 부응하는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평가의 결과가 교사들의 실질적인 처우나 인사, 그리고 보수 등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김민호, 2010). 특히 학생들에 대한 학업 및 인성지도 실적이 탁월한 우수교사들에 대한 포상과 부적격 교사들에 대한 제재는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높아지고 있다. 


교원평가제도가 능력개발의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인사와 연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작업들이 선행 내지는 병행되어야 한다. 우선, 교사들의 교육행위나 실적을 마치 회사에서 영업직 사원들을 평정하듯 교원평가의 결과에 의해 정량적으로 판정하고 그에 따라 인사와 처우를 차등화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이는 전혀 교육적이지도 못하거니와 자칫 모든 교사들을 획일적인 기준으로 서열화하고 교육활동을 경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수교사들에 대한 포상은 상징적인 차원이 아닌 보다 현실적인 특전이나 보상으로 주어져야 한다. 우수교사들에 대한 연구년 보장 혹은 연구비나 포상금의 지급 등이 실례가 될 수 있다. 아울러, 부적격교사에 대한 제재 역시 구체적이 불이익을 수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몇 차례의 경고조치와 재교육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부적격 판정을 받을 경우 정직이나 감봉 등의 징계로 다스려야 하며, 극단적으로는 교단에서의 퇴출도 고려해야 한다. 


셋째, 교원평가가 정착되고 그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교원평가체제의 법제화가 시급하다. 현재의 교원능력개발평가는 시ㆍ도 교육규칙에 근거하여 실시되고 있기 때문에 교육감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변경될 수도 있다. 그리고 교원평가제도의 법제화와 아울러 평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교원평가업무에 대한 행정 및 재정적 지원체제의 구축이 병행되어야 한다.  


넷째, 실효성 있는 교원평가체제의 정착을 위해서는 교사들의 근무여건이 대폭 개선되어야 한다. 특히 현재와 같이 교사들이 공문서 작성 등의 행정잡무에 시간을 빼앗기는 관행이 사라지고 선진국에서처럼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재처럼 교육과학부 -- 시ㆍ도 교육청 -- 구ㆍ군 교육청의 옥상옥 식으로 조직되어 있는 교육행정기구들을 축소하고 그 업무를 간소화해야 함은 물론, 법정 교원수를 확보해야 한다. 


끝으로 현재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평가방법에 관해 더욱 심도 있는 연구와 분석이 계속되어야 한다. 어떤 평가체제이건 평가의 대상 전원이 동의하는 기준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지금처럼 평가자들의 주관적인 평가가 그 결과를 좌우하는 시스템 하에서는 객관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평가지표개발에 있어서 학업성취도나 교육프로그램, 그리고 학생지도활동실적 등 보다 가시적이고 관찰 가능한 것들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가시적인 지표들을 활용할 경우 지역별 내지는 학교별 특성이 고려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 대한민국 헌법 31조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교육기본법 3조와 12조는 각각 적성과 능력에 따라 교육 받을 권리와 학습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있다. 또한 교육기본법 13조에서는 자녀 아동의 교육에 관한 학부모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VI. 교육복지: 무상급식


 몇 해 전 교육감 선거에서 소위 진보 교육감후보들이 최대의 공약으로 내걸었던 완전한 무상급식이라는 공약은 엄청난 득표력을 과시했다. 이에 힘입어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은 당장 공약을 실천에 옮길 태세이고 이들의 공약에 위협을 느껴 마지못해 무상급식의 확대를 약속했던 교육감들도 자신들의 약속을 지켜야하는 부담을 지고 있다. 그런데 이 무상급식의 확대 및 전면 실시는 현실적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사실 무상급식이란 잘못된 표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국민이 내는 혈세로 모든 학생들의 급식을 해결하자는 것이 무상급식의 개념이며, 이는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무상급식은 어떤 측면에서 살펴보더라도 합당치 못한 발상이다. 우선 사회정의라는 관점에서 무상급식은 공정성에 위배된다. 경제적으로 급식을 조달할 여유가 있는 가정의 자녀들에게까지 세금으로 지원되는 급식을 제공한다는 것은 결국 약자 계층에게 분배될 사회적 혜택을 감축시키는 행위이다. 


게다가 무상급식은 소위 무임승차라는 매우 위험한 심리를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얼마 전 그리스의 예에서 보았듯이 보편적 복지를 우선시하며 선심정책을 남발하는 국가의 재정은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온갖 복지혜택을 경험한 국민들은 국가의 파산에 대해 불감증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경우 국가전체의 경제적 기능이 마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타개를 위해 정부가 제시한 긴축재정이 퇴직자들의 연금을 축소시킨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폭동에 가까운 소요가 반복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보편적 복지의 확대와 무임승차심리의 위험성을 인식할 수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의무교육은 무상교육이므로 의무교육기간 동안의 급식 역시 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중학교까지의 의무교육이 완전한 무상교육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아직도 학교운영지원비를 부담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무상 의무교육을 위해서는 이 부분이 선결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사료된다. 두 번째는, 무상 의무교육의 개념에 급식까지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은 그들의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점이다. 만일 무상 의무교육을 ‘의무교육에 소요되는 일체의 경비부담을 없애는 것’으로 확대 해석한다면, 급식만이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학용품비, 피복비, 교통비 등도 모두 세금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무상교육의 당위성에 대한 진보진영의 논리 중 대중들에게 가장 호소력 있는 듯 보이는 것이 바로 ‘차별적 상처’라는 표현이다. 즉, 현재처럼 저소득계층의 학생들만 무상급식을 제공받을 경우 그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과의 차별 대우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을 분석해 보면 그 허구성은 쉽게 드러난다. 만약 이들의 주장대로 차별적 상처라는 것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무상급식 뿐 아니라 저소득계층에 대한 생활비보조, 학자금지원, 장학금지급, 특례입학 등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한 모든 배려나 혜택은 수혜자들에게 차별적 상처를 주는 것이므로 없어져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학교급식비에 관한 한 약간의 운영의 묘만 기한다면 무상지원의 대상인 학생들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신중섭, 2010). 현재 프랑스가 이러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데, 급식비를 학교가 아닌 해당지역관청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학교나 교사들은 누가 급식을 지원받는지에 대해 모른다. 


무상급식에 대한 진보진영의 구호 중 가장 설득력이 약한 것은 소위 ‘친환경 무상급식’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급식비를 지급하면 그 급식은 친환경이 되고, 수혜자들이 직접 급식비를 부담하면 그 급식은 친환경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는 논리성이 전혀 없다. 친환경 급식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급식재료의 특성에 관한 것이지, 급식비의 지급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상에서 열거한 문제점들과는 별도로, 무상급식의 가장 큰 현실적인 난제는 이에 소요되는 추가재원의 확보방안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대략 15% 내외의 저소득층 초·중·고생들이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고 있다. 무상급식이 큰 폭으로 확대될 경우 이를 위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기존의 예산에서 전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자체로부터 추가적으로 지원받는 것인데, 양자 모두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교육청 예산은 인건비와 같은 경직성 예산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유동적인 전용이 어렵다. 더욱이 중산층 이상 되는 가정의 아이들까지 무료로 밥을 먹이자고 학교시설의 건립 및 보수에 소요되는 예산을 삭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진보 교육감들은 ‘불필요한 예산지출을 줄이면 된다’라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설득력이 없다. 애초에 불필요한 예산이면 승인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경기도에서는 교육청이 예산을 전용하여 무상급식을 확대함에 따라 교사연수비는 말할 것도 없고, 저소득계층의 자녀들에 대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지원비마저  현저하게 줄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로부터 추가지원을 받는 것 역시 용이하지 않다. 지자체의 예산 또한 주도면밀한 계획에 입각하여 집행되는 것인 만큼 중·상류층 자녀들의 무상급식을 지원할 정도로 여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무상급식을 위해 별도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현실적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진보 교육감들은 4대강사업 예산의 일부만 전용하면 완전한 무상급식을 실현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데 이는 논리적 자가당착이다. 무상급식이 자신들의 선거공약이듯이, 4대강사업은 현 정부의 주요 공약사항 중의 하나이다. 자신들의 공약은 실천해야 하지만 현 정부의 공약은 파기해도 좋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는 현 정부를 지지한 60%에 가까운 유권자들을 무시하는 오만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무상급식의 대폭적인 확대를 유보하는 것이다.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이 같은 무상급식은 이미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완전한 무상급식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선진국들 중 완전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는 핀란드와 스웨덴 두 나라뿐이다. 그런데 이 국가들은 우리나라 보다 조세율이 상당히 높고 빈부의 격차가 작다. 즉, 무상급식이라기 보다는 부모들이 내는 세금에 자녀들의 급식비가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전국의 모든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상급식에 소요되는 경비는 연간 약 2조원이다. 이는 작년 우리나라 전체 교육예산의 5%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돈이면 약 8만 명 정도의 교원을 신규채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의 필요나 과목의 특성에 따라 1교실에 2인 이상의 교사를 배치하여 학교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한편,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의 학교에 보다 많은 교사를 지원하여 지역  간 학력격차를 경감시킬 수 있다. 중산층 이상의 학생들에게까지 무료급식을 확대하는 것과 교사를 증원하는 것 두 가지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판단에는 복잡한 사고가 필요치 않다고 본다. 


   
▲ 우리나라는 교육에 엄청난 예산과 재원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타 선진국들과 비교해 볼 때 공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연간 국내총생산의 3%에 육박하는 20조원이 사교육시장에 투입되고 5조원 정도가 해외유학 내지는 연수비용으로 지출되는 현상들은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증거들이라고 볼 수 있다./사진=연합뉴스


VII. 교육내용


앞서 교육수요자들의 선택권을 논하는 자리에서, 선택권이란 반드시 학교 선택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교육내용에 대한 선택권까지도 포함되는 광범위한 개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20세기에 비해 21세기는 개인들의 관심과 욕구가 더욱 다원화되고 있으며 교육의 초점 또한 지식의 전수 및 획득에서 창의성과 다양성으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과거 진학 기회의 확대를 요구하던 교육수요자들은 이제 보다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갈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학교교육의 양상 역시 다원화되고 있는 추세다. 학교교육체제의 다원화는 결국 교육프로그램 및 내용을 다양화하고 교육수요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함으로써 급격한 사회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주고 공교육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내용의 다양화에 기초한 선택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아무리 현대사회가 다양화된 사회라고 하더라도 학교교육을 통해 가르칠 공통적인 요소는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교육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능은 사회통합이다. 따라서 교육내용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이 사회전체의 분열을 획책하고 통합을 저해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정통성의 부정,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 사회구성원들 간의 반목과 갈등 조성 등의 요소를 담고 있는 내용이 학교교육에 포함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내부분열로 인해 와해된 사회에는 공교육시스템이 존재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다음으로, 학교교육을 통해 소개되는 다양한 관점이나 견해들은 절대로 교조적으로 전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정한 시각이 교사를 통해 무비판적으로 주입되는 것은 세뇌로서 이는 학교교육이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위험요인이다. 예를 들어, 종교교육의 한 부분으로 기독교를 소개하고 가르치는 것과 교사 개인의 종교적 신념인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며, 후자는 바람직한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 


VIII. 결어


이상에서 본문을 통해 오늘날 우리 교육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쟁점을 학교선택권, 학력향상 관리, 인성교육에 있어서 자율과 훈육의 문제, 교원평가 시스템, 교육복지, 교육내용 등의 6가지로 요약하고, 각각의 쟁점에 대한 보수 측의 입장을 정리해 보았다. 


진보는 모두 틀렸고 보수는 언제나 옳다고 강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논리에 내포된 가장 위험한 요소는 포퓰리즘이다.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은 ‘돈 안 쓰고 노력 안 해도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라는 허구적 발상을 기초로 하고 있다. 교육에 소요되는 비용은 누군가는 지불해야 하고 노력 없이 좋은 성과를 거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단 이 같은 포퓰리즘이 대중들에게 확산되다 보면 대중이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의 재원이 고갈되어 국가경제가 파탄이 났는데도 자신들의 연금이 줄어든다며 화염병을 던지는 그리스의 국민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저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장담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진보진영이 보수와의 투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포퓰리즘에 기초한 정책을 남발한다면 국가와 교육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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