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사라진 미디어비평부터 돌아온 여성 예능까지

자유경제원 / 2016-07-29 / 조회: 7,437       PD저널

▪ ‘노오오력’의 덫과 허상: SBS 2부작 드라마 <미스터리 신입생>(1월 29~30일 방송)

입학철만 되면 대학가에 전설처럼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 사람이 오리엔테이션과 엠티에서 정말 감쪽같이 신입생인 척 하더니 정작 수업에는 들어오지도 않고 알고 보니 학생 명단에도 없더라, 혹은 동기인줄 알았는데 사실 그 사람은 합격생이 아니라 이제 삼수를 시작하는 학생이라더라 하는.

‘나는 다행히 이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라는 우월감 속에 그 전설은 웃음거리와 안줏거리가 되지만,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왠지 모를 찝찝함 속에는 함께 입시 전쟁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그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에 대한 이해와 동정이 들어있다.

기대에 가득 찬 부모님에게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어 사촌동생 대신 신입생인 척 하게 된 아영(남지현)과, 자신이 가지지 못한 모든 걸 가지고도 뒤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의 이름을 빌려 ‘가짜 대학생’이 된 민성(연준석)의 모습은 안쓰럽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그토록 바랐던,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이 한가득 느껴진다.

그래서 “그렇게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더라”고 허탈하게 읊조리는 아영이의 모습이 더 씁쓸하다. 아영이와 민성이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 JTBC <욱씨남정기> ⓒJTBC

■이런 밥그릇, 괜찮나요? : JTBC <욱씨남정기>(3월 18일~5월 7일 방송)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다행이라고 한다. 매달 한 번씩 꼬박꼬박 입금되는 돈이 있다는 게 어디냐고, 남의 돈 버는 게 원래 치사한 일이 아니냐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분노의 말은 뱉는 게 아니라 침과 함께 그냥 꿀꺽 삼키는 게 미래를 위해선 현명한 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 걸까.

황금화학의 하청업체인 러블리 코스메틱의 직원들은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마녀라고 불리는 그녀, 옥다정(이요원)이 나타나기 전까진. 갑(甲)인 황금화학의 팀장이면서도 옥다정은 하청업체에 룸살롱 접대를 강요하는 상사에게 양주병을 휘두르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러블리 코스메틱으로 자리를 옮겨 ‘을(乙)’이라면 마땅히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접대를 금지시킨다. 이뿐만이 아니다. 더 이상 하청업체에 머무르지 않겠다며 자체 브랜드 론칭을 선언한다.

하지만 옥다정의 이런 모습은 러블리 코스메틱의 사람들에겐 당황스러울 뿐이다. 때때로, 아니 꽤 자주 더럽고 치사하지만 밥벌이가 원래 이렇지,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듯 서로에게 먹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냐고, 그래도 지금 우리는 하청업체로서 꽤 안정적인 상황에 접어들지 않았냐고 말해 왔던 이들이다. 옥다정은 끊임없이 묻는다. 그렇게 먹는 밥이 정말 괜찮은지 말이다.

아니, 괜찮지 않았다. 을로서 마땅히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갑들의 갑질을 받아주지 않고서야 러블리 코스메틱의 사람들은 알게 된다. 그동안 전혀 괜찮지 않았음을, 갑의 갑질을 키우고 완성한 건, 굴욕의 밥벌이에 분노하면서도 어느 순간 그 굴욕에 길들여져 애써 굳이 만족을 찾아낸 자신에 있음을 말이다.

이와 같은 을의 각성을 끌어내는 옥다정의 존재는, 사실 현실에선 판타지다. 하지만 누군가의 판타지를 모두 함께 꿈꿀 때, 현실은 그 판타지 이상의 결실을 맺는다는 걸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그래서 옥다정의 말을, 질문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부심 없는 밥그릇은 먹으면서도 비참할 뿐입니다. 정말 괜찮습니까?”

▲ KBS 2TV <백희가 돌아왔다> ⓒKBS

▪단막극이 왔다: KBS 2TV 4부작 드라마 <백희가 돌아왔다>(6월 6~7일, 13~14일 방송)

오랜만에 단막극이 돌아왔다. 요즘은 단막극이라기보다는 ‘간막극’이 맞을 정도로 정규 드라마와 드라마 사이 시간을 제외하고는 단막극을 보기 어려워졌다. 그런 가운데 지난 6월 7일부터 14일까지 방송된 4부작 단막극 KBS <백희가 돌아왔다>는 기존 틀에서 벗어난 실험적・도전적 드라마를 기다린 시청자들에게는 단비 같은 작품이다. 드라마 시청률이 10%만 넘어도 ‘대박’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백희가 돌아왔다>는 최고 시청률 10.4%(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그만큼 단순한 ‘간막극’이 아니라는 말이다.

드라마는 조용한 섬 섬월도에서 과거의 스칼렛 오하라 양백희(강예원)가 신분 세탁 후 18년 만에 돌아온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를 ‘단순’하게 그리지 않는다. 섬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코믹적인 요소는 물론, 배경음악을 적재적소에 사용해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코미디로 시작되는 드라마의 큰 줄기 속에는 ‘옥희의 아빠 찾기’와 백희가 섬월도를 떠나게 된 ‘빨간 양말 비디오’에 대한 미스터리적 요소를 풀어나가는 재미까지 더해진다.

4부작 안에 빼곡하게 채워진 여러 요소들과 실험적 설정, 그리고 익숙하면서도 적절하게 더해진 배경음악으로 인해 시청자는 단순히 정규드라마 사이를 메우기 위한, 전문용어로 ‘땜빵’이 아닌 한 편의 ‘드라마’를 보게 된다. 그래서 더욱 반갑게 외칠 수 있다. “단막극이 돌아왔다.”

▲ JTBC <지금, 여자입니다> ⓒJTBC

▪나를 사랑한다는 것: JTBC 특집다큐 <지금, 여자입니다>(3월 5일 방송)

작은 일에서부터 ‘나’를 찾기 시작하면서 삶 전체를 되찾은 여성들이 있다. 누군가는 이들을 ‘특별’하게 바라볼 테지만, 사실 그들이 꼭 특별한 것만은 아니다.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던 육아에 지쳐 점점 자기 자신을 잃고 우울증에 빠졌던 전업주부 김미경 씨는 ‘나를 위한 운동 시간’을 가지면서 삶 전체에 대한 의욕을 되찾았다. 금융 전문가 서은진 씨는 아이를 낳고 힘들어도 끝까지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정아 씨는 아이를 낳고도 매년 남편, 아이와 함께 배낭여행을 떠난다.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조희선 씨는 장례를 치르던 중 문득 자신의 조문객이 남편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는 걸 느끼고 자신의 일을 찾았다. 자기만의 방을 만드는 일로 시작해 인테리어 쪽에 재능을 찾으며 지금은 전문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가 됐다. 결혼 전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던 ‘워커홀릭’ 장새롬 씨는 군인 남편이 울릉도로 발령을 받고 ‘전업맘’이 돼 아이들을 키우며 한동안 우울감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이 역시 자신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살림꾼이 되기로 마음먹고 스스로를 일으켰다.

‘엄마’가 되는 것과 ‘나’로 사는 것. 그 사이에서 그들은 한 가지만을 택하지는 않았다. 하나만을 택한 삶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 한 시간, 30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찾는 것은 소박해보이지만서도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이야기한다. 안 그래도 힘든 세상인데, 여자에게, 엄마에게 특히 더 힘든 이 세상 속에서 그렇게라도 각자가 행복할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 KBS 1TV <미디어 인사이드-세월호 참사 2주기…언론 역할은?> ⓒKBS

▪사라진 세월호의 진실, 사라진 미디어: KBS 1TV <미디어 인사이드> ‘세월호 참사 2주기…언론 역할은?’(4월 17일 방송)

세월호가 침몰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진실은 바다 속에 가라앉은 채 떠오를 줄 모르고 있다. 이 같은 진실을 건져 올리려는 움직임과 목소리를 막는 일부 언론들. 그런 언론들을 비판하고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지적하는 KBS <미디어 인사이드>에서 지난 4월 17일 언론에게 물었다. ‘세월호 참사 2주기…언론 역할은?’

세월호 2주기는 1주기와 달랐다. 세월호 침몰의 진상 규명을 위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1차 청문회가 열렸지만 지상파 3사 메인뉴스는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했다. 보도를 해도 단신으로 처리될 뿐이고, 그나마 단신도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 내용보다는 당일 있었던 자해 소동에 초점을 맞추는 내용이었다.

<미디어 인사이드>는 “승객보다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과 선원 등에 대한 유죄 판결은 났지만, 참사의 진상은 여전히 물밑에 가라앉아 있다”며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제대로 규명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감시해야 할 언론의 책임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역할은 명확하다. 세월호 참사 3주기가 되기 전에 그날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진상규명’을 위한 목소리에 힘을 보태주는 것, 그리고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다. 비록 언론의 자정을 촉구하는 역할을 해온 <미디어 인사이드>의 폐지가 아쉽지만, 언론의 역할이 권력 감시라면, 그런 언론이 제대로 권력을 비판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건 다름 아닌 ‘시청자’다. 시청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 EBS <다큐프라임-민주주의> ⓒEBS

▪민주주의 탐구생활: EBS <다큐프라임-민주주의 5부작>(5월 23~25일, 30~31일 방송)

이념의 단어를 들이대면 본질은 사라지고 논란만 남는다. 지난 5월 하순 EBS에서 방송한 <다큐프라임-민주주의 5부작>도 예외일 수 없었다. 자유경제원을 시작으로 여당의 중진 의원이 이 방송과 이 방송의 제작진을 향해 “좌편향”, “좌파” 등의 단어를 꺼내든 후, 방송에서 말하고자 한 내용-지금, 왜, 그래도 민주주의일까-에 대한 토론은 자취를 감췄다.

EBS는 이 방송의 기획의도에서 “불평등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써 민주주의의 가치를 재해석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다큐프라임-민주주의 5부작>은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위해 고안된 인류의 지혜인 민주주의가 왜 불평등이 확산되고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핀다.

방송에서 던지는 민주주의의 역사와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지난 연말 고용 불안을 야기한다는 비판과 함께 반대 여론이 높았던 노동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정부는 왜 민의를 거스르며 밀어붙였는지, 또 민의의 단위이기도 한 기업의 직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할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서명에 동원될 수밖에 없었는지 등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 보게 된다.

민주주의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어야 지금의 불평등을, 정치에 대한 환멸을 해소할 수 있을까.왜 노엄 촘스키와 토마 피케티, 아마티아 센 등 세계의 석학들은 민주주의가 답이라고 말할까. ‘좌파’라는 단어로 촉발된 논란 아래 묻힌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다.

▲ KBS 2TV <언니들의 슬램덩크> ⓒKBS

▪여성 예능의 부활: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4월 8일~)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여성 예능’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지난 4월 첫 방송을 시작했다. 예능 대세인 김숙을 비롯해, 라미란, 홍진경, 제시, 티파니, 민효린이 ‘꿈 계’의 멤버가 되어 각자 원하던 꿈을 서로 도와주며, 함께 이뤄내는 컨셉인 <언니들의 슬램덩크>에 대해 시청자들은 “<남자의 자격> 여자버전 같다”, “식상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시청률도 1회에서는 5.2%였지만 4회에서는 3.2%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5월 6일 방송(5회)에서 두 번째 꿈 계주로 나선 민효린의 꿈 ‘걸그룹 도전’이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걸 그룹 도전’이라는 꿈은, 춤과 노래 실력이 부족한 다른 멤버들에게는 힘든 ‘도전’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함께 이뤄내고자 멤버들 모두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만큼은 진지했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멤버들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고,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그들의 숨겨진 모습들과 케미가 드러났다.

시청자들은 이에 환호했다. 걸그룹 ‘언니쓰’의 'Shut up'은 음원차트에서 올킬을 했고,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6월 3일부터 7월 8일 방송까지 6주 연속으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남성 출연자 위주의 현재 예능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었다”는 박인석 PD의 말처럼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이제까지 ‘여성이라서 안 된다’고 말하던 예능의 세계에서, ‘여자라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 MBC <나 혼자 산다> ⓒMBC

▪별일 없이 산다: MBC <나 혼자 산다>(5월 6일, 5월 27일~)

관찰 예능 프로그램인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올해 상반기에 가장 돋보였던 출연자는 바로 김반장(밴드 ‘윈디시티’의 보컬 겸 드러머)이다. 혼자 살아가는 연예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나 혼자 산다>에 5월 6일(156회)에 첫 출연한 김반장은 이전까지 출연했던 연예인들과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서울 북한산 끝자락에 위치한 동네에 위치한 꽃과 나무가 있는 ‘마당 있는 집’에 살며 ‘도심 속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도시가스가 나오지 않아 매일 뜨거운 물을 끓여야 하는 상황에서도,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여유를 즐겼다. 햇볕이 좋은 날에는 지붕에 올라가 이불을 널어놓고서, 느긋하게 낮잠을 자기도 했다.

스튜디오에서 김반장과 함께 VCR을 통해 이러한 장면을 보던 전현무, 이국주 등 다른 멤버들은 연신 놀라움을 표하다가, 점점 김반장의 ‘남다른’ 삶에 부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바쁜 것 없이 여유롭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김반장의 모습이 방송된 직후 시청자들은 ‘신선하고 새롭다’는 반응을 보이며 환호했고, 이후 5월 27일 방송부터 김반장은 고정멤버로 합류해 자신만의 독특한 싱글 라이프를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나 혼자 산다>에서는 이국주, 김용건, 전현무, 황치열 등의 멤버들이 출연하고 있으며, 연예인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혼자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3년 넘게 꾸준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세옥·최영주·구보라·이혜승 기자  kso@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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