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시장점유율·기간산업? 규제 부르는 `나쁜` 용어

자유경제원 / 2016-08-24 / 조회: 8,520       미디어펜

용어전쟁 4 : 계속될 수밖에 없는 용어전쟁


1. 용어전쟁, 피할 수 없는 전쟁


솔직히 말해 누군가에게 무엇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고 노력하기 이전에는 정명(正名)이 중요하며 용어에 대해서도 있는 힘을 다해 다투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했다. 심지어 하이에크가 공자의 정명을 인용하고 있는 부분을 읽으면서도 그냥 눈으로 읽었을 뿐 얼마나 절실한 마음으로 인용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필자 스스로 어떤 점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많은 장벽에 부딪쳤고 그런 장벽의 일부가 명칭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정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왜곡된 용어를 바로잡기 위해 그리고 선점 당한 용어들을 되찾거나 그게 어려우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고 느낀다. 오늘 출간을 축하하는 책의 제목, 용어전쟁은 이런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론은 용어로 만들어지고 그 용어를 통해 사람들은 그 이론을 이해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 속에 숨은 이론이나 의도가 담겨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출간하는 '용어전쟁’은 다른 한편, 이론 전쟁이기도 하다.


2. 하이에크의 노모스(nomos)와 테시스(thesis)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하이에크가 공자의 정명을 인용하는 까닭은 아마도 정명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가 그의 법과 사회질서 그리고 정치질서에 대한 종합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는 3권으로 된 저서, 『법, 입법, 자유 I, II, III』(Law, Legislation and Liberty)에서 법을 nomos와 thesis로 구분했다. Nomos는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 self-generating order)에 적합한 법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으며, Thesis는 특정 조직에 적합한 법을 지칭하는데 특히 정부의 조직과 행정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위한 법을 의미했다.


자생적 질서 속에서는 그 속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면서 살 수 있으려면, 그 법의 성격이 특정한 목적을 추구하는 조직에서와 같은 성격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조직법으로서의 Thesis는 그 속의 구성원들이 이 조직의 목적에 적합하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모든 이에게 적용되지 않고 특정 직무를 맡은 이에게만 적용되는 성격을 가지는 조항도 허용될 수 있다. 그러나 자생적 질서에 적합한 법은 모든 이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특정인에게는 적용이 배제되어서는 자생적 질서에 적합한 성격이라고 할 수 없다.


당시 지배적인 법실증주의의 영향으로 모든 실정법을 법적 성격에 있어 같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상황에서 하이에크가 자신의 법 이론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고대의 문헌으로부터 자신의 이론을 제시할 수 있는 용어들인 nomos와 thesis를 다시 찾아내어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nomos와 thesis라는 용어가 얼마나 법학자들에 의해 사용되는가가 그의 이론의 수용 여부와 이에 입각한 현실 세계에서의 변화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 시장의 진입이 열려 있는 한 높은 시장점유율이 문제될 필요는 없다./사진=미디어펜


3. 경쟁과정과 소비자 선택율


경제학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지만 과정과 결과가 혼동됨으로써 경제정책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분야가 바로 경쟁 그리고 독점과 관련된 개념이다. 커즈너(Kirzner)는 경쟁과정과 경쟁의 결과를 엄밀하게 구분하고 경쟁의 핵심을 기업가정신으로 보았다. 즉, 기업가정신은 소비자들의 필요를 먼저 발견해서 이를 소비자들이 좋아할 방법으로 충족시키려고 기민성(alertness)인데 경쟁이란 바로 이런 기업가정신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시장 경쟁이란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서로 다른 것들을 시도하는 과정을 의미했다. 이런 관점에 서면 완전경쟁의 조건인 동질적인 재화란 경쟁을 통한 소비자들의 필요를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할 뿐이다. 이런 그의 연구를 종합한 저술이 바로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들어간 『경쟁과 기업가정신』(Competition and Entrepreneurship)이다. 


사실 '시장점유율’은 market share라는 영어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용어이다. 이 market share라는 용어 자체는 상당히 중립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market share라는 말을 시장점유율이라고 번역하고 그 점유율이 높은 기업을 시장지배자(dominant firm)로 번역하는 순간 그 기업은 무엇인가 규제되지 않은 채 그냥 두면 위험한 독점자로 비친다.


특히 시장과정이 아니라 시장을 경쟁의 결과 나타나는 최종적인 결과 혹은 시장구조와 연결해서 생각하면, 어떤 시장에 유일한 판매자가 존재한다면 경제학을 배운 사람들은 곧장 이것을 독점가격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으로 여기고 이를 규제해야 할 대상으로 파악하기 쉽다.


그러나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더 많은 소비자들이 그 기업의 제품을 선택의 결과 그 시장에서 그 기업의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면 이는 반경쟁적(反競爭的)인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의 결과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시장의 진입이 열려 있는 한 그런 높은 시장점유율이 문제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장점유율보다는 그런 점유율이 높게 된 이유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소비자선택률이 더 바람직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런 높은 시장점유율이 소비자들의 순수한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오로지 국가가 그 판매자에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독점적 판매권을 부여한 결과라고 한다면, 우리는 소비자선택율이라고 부르지 않고 다른 용어, 예컨대 시장점유율을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 market share라는 말을 시장점유율이라고 번역하고 그 점유율이 높은 기업을 시장지배자(dominant firm)로 번역하는 순간 그 기업은 무엇인가 규제되지 않은 채 그냥 두면 위험한 독점자로 비친다./사진=미디어펜


4. 기간산업


사실 인간 생활에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모든 산업은 나름대로 그 가치를 지닌다. 물이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지만 다이아몬드에 비해 시장가격이 훨씬 낮은 이유는 사람이 물 전체와 다이아몬드 전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이 1탱크만큼 있다면 당연히 그는 식수와 음식물 만들기에 쓸 것이다. 또 다른 물 1탱크가 있다면 이번에는 그보다는 덜 시급했던 수요들에 그 물을 배정할 것이다. 그리고 점차 물이 더 많아지면 그는 그 물을 청소하는 데도 쓰고 꽃에 물을 주는 데도 사용할 것이다. 만약 물이 정말 많이 있다면 그는 그야말로 그 물을 “물쓰듯” 할 것이다.


이 예는 사람들이 부여하는 가치는 결국 얼마나 특정 재화가 얼마나 공급되어 있느냐와 관계되며 그 재화의 물리적 특성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다른 재화나 서비스에 비해 무조건적으로 더 중요하거나 필수적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산업도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기간산업”이라고 부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을 기간산업이라고 부르게 되면, 마치 이 산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보호나 지원이 당연한 것처럼 암시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언론지상에는 기간산업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었다.


5. 결론


다시 정명(正名)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정명 사업이 줄기차게 이어져 최소한 대다수 사람들이 왜 특정 용어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이해하는 날이 앞당겨지길 기대해본다. 지금부터 평소에 용어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정명을 위해 어떤 용어들을 어떻게 바꾸는 게 좋을지 계속해서 생각해볼 작정이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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