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식에 참석한 고 이병철 삼성회장. 한경DB
고(故)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과감한 투자가 한국의 문화예술 발전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자유경제원은 9일 서울 마포동 리버티홀에서 '예술을 사랑한 기업인 이병철: 기업이 있는 곳에 예술이 꽃핀다’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오는 12일 호암 탄생 107주년을 맞아 “이 창업주는 '기업이 있는 곳에 문화예술도 꽃핀다’는 명제를 증명해낸 기업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주제발표에 나선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공동대표는 “이 창업주는 문화예술 분야 발전이 개인과 국가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확신이 있었다”며 “문화재 보호법이 없어 해외로 수많은 국내 문화재가 유출되던 1950년대부터 이 창업주는 문화재 유출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골동품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보국의 시대에 개인의 정신활동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취급받았지만, 호암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며 “1982년 세계 최대 개인 미술관인 호암미술관을 세우는 등 인프라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말했다. 호암미술관 면적은 3960㎡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일본 이데미쓰미술관(2300㎡)의 1.5배 규모로 건설됐다.
남 대표는 “이병철은 예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미술관이라는 형식의 유산으로 남겨준 우리 시대 최고의 예술적 기업인”이라며 “호암의 예술 정신은 오늘날 삼성그룹의 문화예술 저변화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토론에 나선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다인 씨는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를 호암이 찾아온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호암이 1979년 10월 일본 야마토문화관에서 열린 고려 불화 특별전에서 한국인은 경매에 참여할 수 없게 되자 미국인 고미술 전문가를 앞세워 경매에 참가했다”며 “이때 사들인 작품 2점은 국보와 보물로 지정돼 국내 대표적 고려 불화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곽은경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실장은 “한국에선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며 “기업인들이 예술품 수집처럼 대중이 보기에 고상한 취미를 가지면 사치스럽다고 비판하고, 기업의 예술 분야 후원은 당연히 내야 하는 '준조세’로 여긴다”고 꼬집었다. 곽 실장은 “기업인의 예술 활동에 대한 비난은 한국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문화예술 분야가 발전할 기회를 가로막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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