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사를 길거리로 내몬 강사법

박재민 / 2019-09-17 / 조회: 9,216

새학기를 준비하는 대학생에게 다음 학기에 어떤 강의를 열리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졸업을 위해서는 매 학기 6과목 내외의 강의를 수강해야 하기 때문에 학기마다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강의가 열리는지, 적절한 숫자의 강의가 열리는지의 문제는 학교와 학생들이 갈등을 빚는 단골주제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번 2학기, 대부분의 대학에서 개설되는 강의의 수가 예년에 비해 대폭 줄어들었다는 평가다. 연세대학교의 ‘강사법 관련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동위)’는 기자회견에서 “올 2학기 선택교양만 100개가 넘는 수업이 줄어들었고, 필수교양 가치와 윤리 영역 65% 감소, 국제대 공통교과과정 39% 감소 등 학교의 교육권은 무참히 훼손됐다”고 발표하며 학생들에게 강의의 다양성을 보장해줄 것을 촉구했다. 고려대학교의 공동위 역시 예년과 비교하여 70개의 강의가 줄어들었음을 지적하면서, 비슷한 내용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것은, 상술한 발표주체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강사법(대학 시간강사 처우 개선 관련 ‘고등교육법’ 개정안)의 여파라는 설명이다. 강사법은 지난 2010년, 조선대학교의 한 시간강사의 자살사건으로 촉발된 법안으로, 매우 열악한 근로환경에 처한 대학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자는(특히 고용안정성과 지위 측면에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처우 개선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강사 1인당 비용이 증가하자, 총 비용의 인상을 원치 않는 대학에서는 강사를 적게 임용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상술한 공동위와 여러 시민단체는 법안의 목적인 강사의 생존권을 강조하며 대학의 선택을 ‘편법’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경제논리에 따른 대학의 편법적 행위로 인해 법안의 시행목적이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육부의 조사에 따르면, 올 2학기 강사법의 시행 이후 7800명의 강사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의 선택은 어쩌면 예상된 수순이었다. 대학도 결국은 자선단체가 아닌 하나의 경제주체이고, 10년가량 이어진 대학등록금의 동결로 많은 대학이 재정난에 빠진 상황에서 비용만 증가하는 강사법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강사법으로 인해 수많은 대학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처럼, 아무리 선한 목적을 위해 시행된 법률이라 해도 그 선한 목적을 달성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회는 선의만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상호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선한 의도를 가진 행동도 필연적으로 예상치 못한 효과를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술한 강사법 외에도 이러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2007년 비정규직 근로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시행된 비정규직보호법 또한 역설적으로 2년짜리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그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무수히 많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국가의 입법은 조심스러워야만 한다. 단지 그 법률이 목적한 바를 달성하지 못할 뿐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별다른 고민 없이, 선한 의도를 명목으로 시행된 법률이 오히려 무수히 많은 개인의 삶에 피해를 끼친다면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국가의 근본적인 목적조차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명한 자유주의 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무분별한 입법을 지적한 바 있다. 물론 학술적인 논의를 현실에 직접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으나, 입법에 있어 철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가정책의 잘못된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일화가 ‘로베스피에르의 우유’이다. 프랑스 대혁명기 지도자 중 하나였던 로베스피에르는 당시 우유의 가격이 너무 비싸 국민들이 우유를 제대로 먹지 못하자, 그저 우유의 가격을 시장가의 절반으로 통제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가격이 비싸니 가격을 내리면 된다는, 굉장히 근시안적인 정책이었다. 이에 너무도 당연히 낙농업자들은 우유를 팔아서는 이윤을 남길 수 없게 되니, 젖소를 모두 도축장에 팔아버려 우유 공급이 사실상 끊어지게 되었다. 결국 오히려 우유 가격은 과거보다도 폭등하여 극소수의 상류층만 소비할 수 있는 식료품이 되었고, 정책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국민들의 삶이 피해를 입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위 사례는 벌써 200년도 더 지난 일로, 소위 ‘오래 전에 있었던 우스운 일’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근로자가 평생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되니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게 하는 법률이나, 대학 강사의 처우가 매우 열악하니 1년의 임용기간을 보장해주고, 일정 조건만 채우면 자동으로 계약이 연장되게 하는 법률에서 로베스피에르의 우유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법률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모두 예측하여 부작용이 전혀 없는 입법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단 한번만 생각해보면 예측할 수 있었던 부작용까지도 용인해서는 안 될 것 아닌가? 입법부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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