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는 비난 받아야 하는가?

몇 년 간 우리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화두가 크게 주목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에 불공정하다고 여길법한 사회적 이슈나 사건들이 연이어 불거지면서 '공정'이라는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 것 같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공정'의 훼손은 자기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런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읽어낸 것처럼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제목으로 신간을 출간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tyranny of merit :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즉 <실력의 폭정 : 무엇이 공동선을 만드는가?>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지만, 한국어판은 <공정이라는 착각>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원제에는 존재하지 않는  '공정(fairness)'이라는 단어가 추가된 것이다.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는 능력주의의 한계에 대해 비판하고 '기여적 정의'라는 개념을 통해 능력주의가 아닌 공동선에 기여할 때 비로소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의 문제를 논할 때 일반적으로 '분배적 정의'라는 개념적 틀을 사용한다. 반면 '기여적 정의'의 가치에 따르면 공동선에 대한 기여의 정도에 따라 분배가 적절히 이루어질 때 공정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기여적 정의'의 관점에서는 비정규직 보육교사가 사회적 양육이라는 공동선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면, 의료서비스 제공을 통해 공동선에 기여하는 의사와 동등한 대우(비슷한 수준의 연봉)를 받을 수 있을 때 그 사회는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때 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능력주의가 죄악시 되고 이를 공정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능력주의가 비판받는 사회에서는 자유시장경제의 가치가 부정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자유시장경제의 토대는 '자유와 경쟁'이라는 기본 가치이다. 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누구나 노력과 경쟁을 통해 꿈을 이루고 부를 누릴 수 있는 사회가 자유시장경제가 추구하는 사회이다. 능력주의의 부정은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든다.

그렇다면 과연 능력주의는 비난받아 마땅한 것인가?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능력주의의 큰 문제점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먼저 진정한 의미의 능력주의는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개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 자체가 주어지는 요인이기 때문에 능력주의는 모순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분노와 증오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능력주의 사회는 무한의  극한 경쟁을 초래하여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 유지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능력주의의 모순을 주장하는 첫 번째 주장은 '능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능력주의에서 말하는 '능력'은 '노력'의 의미에 가깝다. 환경이라는 외부 변수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자유시장경제에서는 누구나 노력을 통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다. 선천적으로 불리한 신체 조건을 지닌 박태환이나 황선우 같은 선수가 어떻게 세계무대를 재패할 수 있었는가? 바로 자유와 경쟁이라는 가치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노력'의 가치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고, 능력주의의 순기능이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역으로 생각해 보자. 승자는 승리의 기쁨을 향유하기 위해, 패자는 패배의 슬픔을 회피하기 위해 경쟁을 하고 그 과정에서  혁신을 추구해 가는 것이 바로 자유시장경제이다. 승자 앞에 놓인 것이 오만이 아니라 기쁨이며, 패자의 앞에 놓인 것이 분노와 증오가 아니라 슬픔일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기쁨을 추구하며, 슬픔을 회피하고자 한다. 승자는 또 다른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패자는 또 다른 슬픔을 다시는 경험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 경쟁의 과정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우리 사회는 한 단계 발전하게 되는 것이 자유시장경제가 추구하는 가치이다.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능력주의의 역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역기능이 있다고 해서 능력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마치 교통사고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전체 도로구간에 대한 차량 속도제한을 시속 30km로 제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통사고는 줄어들겠지만 신속하고 편리한 이동이라는 차량의 근본적인 이용 목적이 훼손되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시장시장경제가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이다. 능력주의를 죄악시하고 '기여적 정의'를 우선시한다면 선량한 '공동선'이라는 가치는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와 경쟁'을 통한 보다 나은 삶의 추구라는 인간 본성에 내재한 근본적 가치는 훼손될 것이다. 나아가 자유시장경제는 활력을 잃게 될 것이다. '빈곤 속의 공동선'이라면 이를  공동체의 진정한 선(善)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