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아이돌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엔터테이너일 뿐이다?

이문원 / 2019-12-17 / 조회: 10,382

오래 전 인식 같은 게 아니라 사실 지금 당장도 만연한 인식 중 하나다. 그만큼 생명력이 길다는 건 그 '근거’도 어떤 식으로건 탄탄하게 마련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굳이 따져보자면 자주 언급되는 몇 가지 근거들을 추려볼 수도 있다. 대략 다음과 같다.


(1) 아티스트는 자신의 음악을 직접 만들어 자기세계를 표현하려 하지만 아이돌은 그저 남들이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행할 뿐이다. (2) 아티스트는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돼 팀을 이루거나 혼자 스스로 의지로 활동하지만 아이돌은 회사 측에서 팀을 만들어준 대로 활동할 뿐이다. (3) 아티스트는 음악활동을 위해 존재하지만 아이돌은 여타 부가활동들이 많다. (4) 아티스트는 자기 본모습을 보여주려 하지만 아이돌은 꾸며진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많지만 나머진 차차 설명해보기로 하겠다. 어쨌든 최소 '아이돌과 아티스트는 다르다’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이들 중 위 근거들에 딱히 반론을 가진 이들은 없을 듯싶다. 그런데 이 근거들은 사실 근거가 아니다. 엄밀히 허수아비 때리기에 가까운 허상의 개념 때리기라 할 만하다. 하나씩 살펴보자.


이런 식이면 롤링스톤즈도 아티스트가 아니라 아이돌이란 얘긴가?


먼저 “아티스트는 자신의 음악을 직접 만들어 자기세계를 표현하려 하지만 아이돌은 그저 남들이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행할 뿐이다.”란 측면을 보자. 요즘 대중음악 팬들 중 이런 얘길 하는 사람은 없다. 10년 전만 해도 어느 정도 공감을 사기도 했지만, 그 10년 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다. 일단 스스로 작사, 작곡을 맡는 아이돌들이 워낙 늘었다. 10년 전만 해도 빅뱅 정도만 예외로 뒀지만, 지금은 오히려 작사, 작곡 안 하는 아이돌 그룹이 예외에 가까울 정도다.


현 시점 K팝의 꼭대기에 서있다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부터가 데뷔 당시부터 멤버 전원이 작곡 등 프로듀싱에 가담해온 팀으로 잘 알려졌다. 당연히 그 외에도 많다. 예컨대 보이그룹 세븐틴도 방탄소년단과 비슷하다. 멤버 우지는 그동안 발표된 세븐틴 거의 모든 곡에 참여했고, 안무 등 퍼포먼스에도 준, 호시, 디에잇, 디노 등 멤버가 직접 참여한다. 보이그룹 펜타곤도 멤버 후이의 경우 “매주 새 앨범을 내도 될 정도로 많은 자작곡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JYP엔터테인먼트 보이그룹 스트레이키즈는 앨범 전체를 멤버들이 작사, 작곡 참여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대중성으로 승부한다’는 걸그룹 경우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전소연, 그리고 이미 원더걸스 시절부터 자작곡을 시도해온 선미 등 점차 자작곡으로 승부하는 팀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다못해 아이즈원 같은 프로젝트 그룹마저도 멤버들이 작사 정도엔 반드시 참여한다. 그리고 팀 활동 중 작곡을 배우겠다며 열심이다.


결국 “아이돌은 그저 남들이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행할 뿐”이란 인식도 실제적으로 2010년대엔 잘 통하지 않는 얘기가 됐단 것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2010년대 이전에도 예외들이 분명 존재해 굳이 '주장’할만한 것까진 못됐다. 허랑한 얘기다.


그 다음 “아티스트는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돼 팀을 이루거나 혼자 스스로 의지로 활동하거나 하지만 아이돌은 회사 측에서 팀을 만들어준 대로 활동할 뿐이다.”란 부분. 분명 절대다수 아이돌 팀이 '저런 식’으로 성립돼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성립되고 있음을 부정하긴 힘들다. 그런데 과연 현대 대중음악사에서 '아이돌’이라 불리는 상품들만 '저런 식’으로 성립돼왔는지는 여러모로 의문이 커진다.


지금도 활동 중인 세계 록음악계 전설, 롤링스톤즈 같은 그룹은 어떨까. 1963년 블루스 밴드로 시작해 비틀즈 아류 로큰롤 밴드로 탈바꿈한 뒤 프로듀서 겸 매니저가 조지오 고멜스키에서 앤드루 올덤으로 바뀌면서 팀 자체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 올덤의 전략에 의해 비틀즈와는 전혀 다른 '반항적인 악동’ 콘셉트를 가져갔고, 음악 성향도 동시에 바뀌었다. 그러면서 멤버도 올덤의 권한으로 교체시켰다. 그것도 팀의 기존 블루스 밴드 색채에 가장 큰 역할을 한 피아노 이언 스튜어트를 “주걱턱에 생긴 것도 광부 같다”는 이유로 축출시켰다.


이후 팀의 의상이나 무대매너 등도 대부분 올덤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비틀즈와는 차별화된 터프하고 퇴폐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고 예명으로 교체한 멤버까지 존재한다. 한 마디로, 2000년대 한국의 웬만한 아이돌 그룹과 결성 및 활동과정으로 봤을 때 다른 점이 거의 없거나, 오히려 그보다 더 노골적으로 “자연발생적이지 않은” 면모들을 보여준다.


그럼 20세기 세계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록그룹 롤링스톤즈도 “아티스트가 아니라 아이돌”인 걸까. 당연히 아무도 그렇게 부르진 않는다. 왜냐고 물으면, 작사 작곡을 하니까, 란 옹색한 답이 나온다. 그런데 한국 아이돌도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 다음부턴 사실상 대응할 답이 없어진다. 이 같은 사례는 비단 롤링스톤즈에만 해당되는 얘기도 아니다. 비틀즈, 비치보이스 시절부터 얼터너티브 록을 거쳐 힙합의 시대까지 접어든 지금 시점도 마찬가지다. 이는 '아티스트’란 개념을 제대로 이해 못하든가, 아니면 '아이돌’이란 뭔지 고민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단 점을 방증할 뿐이다.


음악만 하지 않고 부가활동이 많으면 '진정한 아티스트’가 못 된다...그럼 퀸은?


이제 다른 '근거’들도 한 번씩 살펴보자. “아티스트는 음악활동을 위해 존재하지만 아이돌은 여타 부가활동들이 많다.” 할리우드건 한국이건 배우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지 않는 엔터테이너가 얼마나 된다고 하는 얘기들인지 모르겠다. 당장 대표적 라틴팝 아티스트 제니퍼 로페즈는 현재 한국서도 개봉 중인 영화 <허슬러>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지명이 점쳐지는 판국이다. 작년엔 레이디 가가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랐었다. <헝거 게임> 같은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에 출연했던 레니 크래비츠는 또 어떤가. 비요크는? 믹 재거는?


비단 배우뿐 아니라 유명 음악 아티스트들 중엔 목사 안수를 받고 병행하는 사람도, 셰프를 병행하는 사람도, 농부 일을 함께 하는 사람도, 혹은 지난해 선풍을 일으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속 그룹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처럼 박사학위를 받은 천체물리학자로서 활동을 병행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음악 아티스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병행활동도 사실 배우가 아니라 작가다. 대부분 아티스트들은 자기 책 한두 권씩은 꼭 내고, 그중엔 소설 등 픽션도 많다. '부가활동’이란 게 뭔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발상 자체가 사실상 '20세기 이전’ 엔터테인먼트계에서나 통용되던 얘기다. 어쩌면 그때도 안 됐는지 모른다. 세계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 역시 엄밀히 말하자면 '프로 배우이자 작가’였다.


“아티스트는 자기 본모습을 보여주려 하지만 아이돌은 꾸며진 모습만을 보여준다.”는 부분. 이쯤 되면 엔터테인먼트계 자체에 무슨 대단한 편견을 갖고 있거나, 혹은 그저 아이돌을 어떻게든 공격하고 싶어 난리가 난 심정처럼만 보인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조차 자기 이미지 관리를 위해 신비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이 속속 등장하는 판에 도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건지조차 알기 힘들다.


그밖에도 많다. “팬클럽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조직해 돈을 벌어들이면” 아티스트가 아니라 아이돌이란 입장도 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역시 자신을 후원해줄 귀족부인들로 구성된 나름(?)의 팬클럽을 관리하며 연애편지에 가까운 편지서비스 등으로 후원을 받아내 온 음악사는 잘 모르나보다. “시장에서 팔릴 만한 음악을 하면 아이돌, 안 팔릴 것 같아도 하면 아티스트”란 막무가내 주장도 있다. 하다못해 디스코조차 그 시대엔 팔릴지 안 팔릴지 모를 실험적인 음악형태였단 점은 간과된다.


최악의 경우 “돈 많이 벌었으면 아이돌, 못 벌면 아티스트”란 것도 있다. 막 나가자는 얘기다. 심지어 클래식음악가들까지도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 정도 인물들이면 모두 돈은 많이 번 아티스트들이었다. 다만 모차르트처럼 '쓰는 속도가 버는 속도보다 빨라’ 생활고에 시달렸던 경우가 있을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왕궁이 아니라 성당에서 주로 활동하는 통에 큰돈을 못 만진 요한 세바스찬 바흐 정도 예외만 있겠다.


결국 위 '아티스트와 아이돌은 다르다’는 근거들은 전체가 다, 최소한도 현 시점에선, 전혀 말이 안 되는 얘기들이 된다. 모두 자유시장경제와 함께 작동한 '대중문화 Pop Culture’ 논리에선 벗어나는 얘기들이고, 엄밀히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더라도 여전히 말이 잘 안 된다. 문화와 예술이란 맥락 자체에 대중적으로 큰 편견, 도그마가 드리워져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이들에 대한 질시와 경계가 원인인가


애초 '아이돌’은 대중음악계에서 지금 같은 식으로 쓰이던 용어가 아니었다. 한국선 제2차 아이돌 붐이 일어난 2007년경부터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사실 그보단 역사가 훨씬 길다. 애초 1950년대 즈음 미국서 탄생한 표현이다. 10~20대 젊은 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아티스트들, 동시에 다른 연령층에선 상당부분 거부감을 지니는 '젊은 세대 전용 아티스트’들을 가리키는 세대상품 용어였다. 엘비스 프레슬리 즈음부터 그를 '아이돌’이라 가리키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이르러선 비틀즈나 롤링스톤즈 등 밴드에도 '아이돌’ 호칭이 따라붙었다.


한국선 일본서 1980년대부터 쓰던 의미를 그대로 수입해 쓴 형태다. 10대 무렵 어린 나이에 데뷔한 각종 종합상품 격 아티스트들을 지칭했다. 특히 댄스음악 중심이란 점에 방점이 찍혔다. 그만큼 군무(群舞)를 중심으로 한 퍼포먼스에 중심이 간다. 그러다보니 그룹 형태가 일반적이 됐다. 그렇게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댄스그룹’ '10대그룹’ 등으로 불리던 아티스트 형태가 '아이돌 그룹’으로 불리게 되면서 '아이돌’이란 용어가 일반화된 순서다.


그런데 정작 일본선 한국형 아이돌들을 대부분 '아티스트’로서 본다는 점이 특이하다. 최소한도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경계’에 있는 일종의 경계상품들로 여기는 게 일반적이다. 일본에서 아이돌이란 '그 어느 분야에서도 전문적이지 않은 다방면 탤런트’를 말하는 것에 가깝다. 다양한 분야에서 가볍게 소비되는 존재 말이다. 그런데 한국형 아이돌은 일단 수년간 트레이닝에 의해 지극히 전문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연기 등 타 분야로 진출해도 출중한 연기를 보여주며 종종 연기상에 거론되기도 한다. 일본의 아이돌 개념으로부터도 벗어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선 '아이돌’이라 불려선 안 되는 상품이란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에 대한 폄하는 지속된다. 여전히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댓글엔 '아이돌이란 이유만으로’ 폄하하는 이들이 계속 등장한다. 그러면서 반대급부로 홍대 등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 등을 예찬하는 분위기도 나온다. 최근 문제시 되고 있는 '음원 사재기 혐의’ 발라드 가수들도 그 소속사에서 늘 방패처럼 쓰는 논리는 '지금 같은 아이돌 천하에 진지한 아티스트가 인기를 얻는 게 그리도 분하냐’는 투다. 엄밀히 아이돌들도 앨범 수록곡 중에 발라드 곡은 필수처럼 몇 곡씩 수록돼있고, 실제적으로 그런 발라드 가수들 곡에 비해 완성도도 더 뛰어난 경우가 많은데도.


이처럼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원인에 대해선 여러 지점이 거론된다. 일단 핵심적인 부분은, '모든 걸 다 가진’ 이들에 대한 대중의 질시와 경계란 점이다.


인기도 많고, 그만큼 돈도 많이 벌고, 거기다 이 외모지상주의사회에서 외모까지 출중한 아티스트군()에 대한 질시와 경계. 아이돌에 대한 대부분 폄하가 아이돌과는 상반된 분위기, 아이돌이 가진 대부분 것들을 '갖지 못한’ 인디밴드 등에 대한 예찬과 연동된다는 점으로 봤을 때도 그렇다. 어쩌면 '진정한 아티스트는 가난한 아티스트’란 식 오래된 문화예술계 도그마가 작동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식이라면 생전 그림 한 점 판 일이 없다는 빈센트 반 고흐 등 '진정한 아티스트’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겠지만.


또 다른 지점으로, 이른바 '기예(技藝)’로서 문화예술을 바라보던 옛 시각이 아직 바뀌지 않은 탓이라 볼 수도 있다. 아티스트(artist)를 구성하는 아트(art)란 단어 자체가 '기술’을 의미하기도 한단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예술도 그저 남다른 기술을 갖고 그 기술을 팔아먹는 여러 일들 중 하나였단 얘기다. 그러니 노래, 춤 등에 남들 못하는 수준으로 유난히 특출 난 면이 있는 이들만 예술가로서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아이돌은 그에 비해 일종의 '종합아티스트’에 가깝다. 춤은 전문 댄서만은 못하고, 노래도 성악가들만큼 엄청난 성량이나 감정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외모를 포함한 모든 미적 쾌() 요소들에서 일정수준 이상으론 성취돼있고, 그 모든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작동해 특별한 종류 감흥을 전해주는 아티스트들이다. 그러니 기존 '남들은 따라하지 못하는’ 특정분야 기술력(?)만을 바라보는 대중인식 하에서 이들은 딱히 평가해줄 게 없는 '유사 아티스트’들로 보일 수 있다.


'신종 계급주의’ 탄생을 알리는 사회병리현상일 수도


그런데 여러 입장들 중 가장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은, 대중은 그런 식으로 아이돌에 대한 각종 질시를 일종의 '계급’ 설정으로 억누르려 하는 것일 수 있단 점이다. 너는 돈 많이 벌고 잘 났지만 그건 사회적 '계급’과 그에 따른 '권위’ 요소와는 관계없는 얘기란 발상 말이다. 흔히 재벌가를 놓고도 대중은 이런 식 '계급’을 부여하기도 한다. 일제시대 친일파 자손이니 하는 과거사는 거의 당연한 듯 따라붙는다. 사생활 측면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진정한 귀족’은 이들 '잘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이들이라 주장하곤 한다.


이쯤 되면 '계급주의에서 벗어나려는 계급주의’, 신종 계급주의라 할 만하다. 특히 계급 개념 자체를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대중 스스로 각종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보상받으려 남들 계급을 '만들어준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생각보다 치명적인 사회병리현상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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