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의 폭로 이후: 정권별 재정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옥동석 / 2019-01-07 / 조회: 9,254

“2017년 11월 기획재정부 실무진은 초과세수로 더 이상 적자국채를 발행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김동연 부총리는 ‘정무적 판단’을 이유로 불같이 화를 내며 적자국채 발행을 강행하라고 요구하였다. 부총리의 ‘정무적 판단’은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 비율을 높여 문재인 정부의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당시 실무진의 핵심이었던 신재민 사무관은 2018년 7월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12월말에 이 사실을 유튜브에 폭로하였다.


신재민 사무관은 당시의 실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8.7조원의 국채를 발행하면 1년 이자 부담만 2,000억원 돈이다. … 고위 공무원이 가져야 한다는 정무적 고려, 정무적 판단이라는 것은 … 정권이 유지되도록 기여해야 (하는) … 것인가? … 승진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미래세대가 막대한 재정부담을 지더라도 5년간의 국가채무 비율만 적절히 관리하면 문재인 정부의 재정성과는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가! 이것은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가 우리 사회에 던진 또 다른 중요한 정책적 화두이다.


우리는 5년 단임 정권의 재정운용 성과를 국가채무 지표로 곧잘 비교한다. 5년 임기 중 초년도와 마지막 연도의 국가채무 비율을 비교하며 그 증가분을 정권별로 비교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각 정권 5년간의 국가채무 순증 금액을 살펴보면, 김대중 정부 73.5조원, 노무현 정부 165.4조원, 이명박 정부 143.9조원, 박근혜 정부 217.1조원이다. 절대 규모 대신에 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의 순증을 살펴보면, 김대중 정부 6.2%p, 노무현 정부 11.1%p, 이명박 정부 3.5%p, 박근혜 정부 6.0%p 등과 같다. 


이처럼 국가채무가 정권별 재정성과를 비교한다는 사실을 김동연 부총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채무비율을 가능한 높여 문재인 정부의 재정성과를 과대포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반면 기획재정부 실무진은 단임의 정권보다 미래의 재정부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한번 발행한 적자국채는 그것을 상환하지 않는 이상 미래의 정부와 미래의 세대에 막대한 이자부담을 안겨준다. 32세의 젊은 사무관 신재민은 이 명백한 사실 앞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적자국채의 발행은 결국 실무진의 반대로 미수에 그쳤지만, 5년 임기만을 생각하는 부총리의 ‘정무적 판단’에는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미래에 막대한 재정부담을 지우면서 임기 중에 별 부담이 없는 재정사업들(예컨대, 공무원수 증가)이 ‘정무적 판단’의 미명으로 얼마나 많이 채택되었을까? 개별 재정사업의 미래 재정부담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는 그 어디에서도 생산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조차 잘 알고 있을 ‘정무적 판단자들’, 과연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심판해야 할 것인가! 한숨만 절로 나올 뿐이다.


국가채무 지표는 또 다른 약점도 갖고 있다. 정부는 국가채무 대신 공공기관의 부채를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얼마든지 정책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성공공기관(금융성기금 포함)의 부채를 증가시키는 대표적 형태로는 공적자금이 있다. 공적자금 외에도 비금융공기업의 부채를 증가시킬 수도 있다. 만약 공적자금과 비금융공기업의 부채를 추가로 감안한다면 과거 정권의 재정성과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김대중 정부는 공적자금을 150조원 조성함과 동시에 주요 비금융공기업 10개의 부채를 약 20조원 증가시켰다. 노무현 정부는 주요 비금융공기업의 부채를 약 120조원 증가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공적자금 160조원과 함께 주요 비금융공기업 부채를 160조원 증가시켰다. 반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공적자금 조성도, 비금융공기업의 부채증가도 없었다. 2014년부터 시행된 공공기관 부채감축 정책이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개혁을 통해 미래의 재정부담을 수백조원 줄였다.


이 모든 사실들을 감안할 때, 우리는 정권별 재정성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재정통계를 논쟁하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노력해왔다. 김대중 정부 이래로 정부회계에 발생주의를 도입하며 미래 재정부담을 부분적으로나마 파악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관리재정수지 개념을 도입하였고, 이명박 정부는 재정범위를 공공비영리기관으로 확대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비금융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 전체 부채를 관리하고자 통계를 정비하였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기회주의적인 ‘정무적 판단’의 꾐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매 정권의 재정성과를 어떻게 비교·평가할 것인지 그 해답을 반드시 찾아내어야만 한다.


옥동석 / 인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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