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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이 쌓아올린 거대한 성과 조커가 된 사람들

손경모 / 2021-07-27 / 조회: 1,788

경제학을 열심히 배우던 학부 때 한 학기 동안 한국은행 부행장이 하는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인류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 중앙은행으로 일컬어진다며 중앙은행 예찬론을 펼쳤다. 당시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다 가시지 않았던 때라 양적완화를 두고 매파와 비둘기파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였다. 당연히 그 부행장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양적완화를 더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실제로 국가 경제는 그런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그렇게 할 때였다.

 

양적완화는 결과적으로 배급과 같은 소비부양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통해 총수요를 인위적으로 증가시켜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논리다. 쉽게 말해 누군가 유리를 깨면 유리공장이 활성화되고, 누군가 길에 쓰레기를 버려야 환경미화원의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인쇄하는데 대략 200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부는 200원을 통해 나머지 4만 9천 800원을 원하는 곳에 쓸 수 있다. 나머지 국민 전체에게는 강탈이지만, 그 4만 9천 800원을 쓰는 정치인들에게는 노획물이다.


이번 코로나는 우리 사회에 불신이라는 큰 상흔을 남겼다. 그 상징이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왔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벼락 맞듯 가난해졌다. 서울에 집을 사자던 아내와 정부를 믿고 기다리자던 남편이 급등한 집 값 때문에 이혼한 이야기는 흔해서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사람들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이유를 모른 채 절망하고 있다. 이런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원인은 당연히 양적완화를 통한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사람들의 재산을 강탈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거대한 성을 만든다. 주택 가격 급등을 통해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경계를 만든다. 서울과 서울 외곽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만든다. 강남 3구와 다른 구 사람들의 경계를 만든다. 물론 이런 가격 차이에 따른 경계는 원래부터 존재했지만 인플레이션은 이것을 절대 넘볼 수 없는 성벽으로 만들어 계급화 시키고 고착화 시킨다. 이제는 서울에서 태어난 것만으로 벼슬을 한 것이고, 지방 촌에서 태어난 것만으로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자조가 나오는 시대다. 개천에서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사는 삶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주소지가 곧 계급을 상징하는 세상이 됐다.


성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양적완화는 하늘이 내려주는 축복이다. 가만히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부채를 통해 가계운영을 해도 집값이 너무 빠른 속도로 올라 빚이 저절로 줄어든다. 반대로 집 없는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다. 아무리 저축해도 집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담보비율이라도 맞춰서 대출로 집을 사려해도 필요한 현금이 너무 많고, 그마저도 집값의 상승속도가 저축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열심히 저축하면 할수록 집을 살 가능성이 사라지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이제는 필자도 더 이상 늦기 전에 ‘집을 사야한다’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몇 대에 걸쳐 소작농으로 산 농부에게 ‘왜 돈을 모아 땅을 사지 않냐’는 말처럼 모욕적인 말이 어디 있을까.


대중들의 심리는 그들이 소비하는 문화 예술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영화나 그 속의 영웅들을 보면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사람들은 인류를 구원해줄 ‘슈퍼맨’에 열광했다. 그런 막강한 힘이 문명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도시화로 인해 음지의 범죄들이 늘자 사람들은 ‘배트맨’에 열광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우리를 지켜줄 영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전에는 악인으로 여겨지던 배트맨의 ‘조커’가 이제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영웅이 됐다. 조커를 이해하고 그의 처지를 동정하고 그를 동일시한다. 사람들의 내면의 분노가 쌓일대로 쌓였기 때문이다.


영화 조커를 보면 고담시는 금융재벌인 토마스 웨인(배트맨의 아버지)에 의해 성장한 도시다. 그리고 동시에 토마스 웨인으로 인해 타락했다. 인플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화폐를 먼저 쓸 수 있는 사람들은 극대화된 부를 누릴 수 있다. 반대로 그 돈을 가장 마지막에 쓰는 일반인이나 서민들은 계속해서 가난할 수밖에 없다. 구조적인 강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담시라는 성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장엄해지는데, 그 성의 바깥은 쓰레기장이 되고 만다. 성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더 이상 성 안의 영웅 배트맨에 공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성을 부술 ‘조커’라는 악당에게 공감한다. 성이 부서져야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 수 없고 사람을 보살피지 않는 성이 길까지 막는다면 그 성은 부서져야 한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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