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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정성우 / 2020-12-23 / 조회: 4,281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


이 서양 속담은 과거 로마 제국이 세계의 중심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제국의 영광엔 '정비된 도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도로를 통해 다민족 상인들이 교역할 수 있었고, 수레와 마차가 그 도로를 다니며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한마디로 로마의 도로는 문명을 전파하고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일종의 '열린 길’이자 '개방성'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플루타르코스는 "패배자를 동화시키는 방식만큼 로마를 강대하게 한 요인은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개방성'으로 국가가 번영한 사례는 로마 제국 외에도 꽤 많이 있다.


1648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한 네덜란드는 해상 무역을 통해 급성장하여 예술과 문화, 과학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이 무렵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며 최초의 근대 기업인 동인도회사도 설립됐다. 당시 전 세계의 무역선 중 약 75%가 네덜란드 선박이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네덜란드는 한때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다. 이처럼 네덜란드가 독립 이후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유, 특히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기 때문이었다.


에스파냐의 식민통치를 받던 네덜란드는 주로 상인들 사이에서 칼뱅주의가 큰 인기를 끌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외에 다른 신앙은 용납되지 않았다. 에스파냐의 국왕 펠리페 2세가 가톨릭 수호를 자처하고 프로테스탄트(고이젠)를 박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항은 더 거세졌으며 끝내 네덜란드는 독립을 쟁취하고 말았다. 이후 네덜란드는 종교적인 관용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고, 이에 따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유럽 각지에서 박해를 받던 사람들이 네덜란드로 대거 몰려들었다.


네덜란드로 이주한 사람들 중에는 특별한 솜씨를 갖춘 장인과 상인들이 포함되어있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선박 건조 기술과 혁신적인 금융 기법이 도입되었으며 이를 통해 네덜란드는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네덜란드는 종교의 자유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의 우수한 능력과 기술도 함께 수용하여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로마 가톨릭과 순혈주의를 내세웠던 에스파냐는 이교도들이 빠져나가면서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울러 미국이 초강대국의 대열에 들어선 것도 네덜란드와 비슷한 맥락으로 살펴볼 수 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미 서부의 여러 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홈스테드법(자영농지법)'을 제정했다. 이 법을 통해 링컨은 5년 동안 서부 개척에 종사한 21세 이상의 남성 호주에게 수속비용만 받고 20만 평의 국유지를 분양하기로 약속했다. 게다가 외국인일 경우, 시민권 획득까지 보장하였다. 이로 인해 남북전쟁이 끝난 후 유럽의 많은 사람들이 미 서부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바로 이때 '아메리칸 드림'이 등장한 것이었다.


이후 미국은 다수의 이민자들로 구성된 저렴한 노동력이 공급됨으로써 신흥 공업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으며, 여기에 신기술 및 선진 경영 방식까지 더해져 가파르게 발전하였다. 그 결과 미국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1870년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1914년)하기 전까지 약 5%를 기록했다. 비슷한 시기 영국의 경제 성장률은 1870년대 2.1%, 1880년 1.6%로 하락 일변도를 달리고 있었으니, 미국의 경제 성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개방성'을 바탕으로 한 '아메리칸 드림'이 미국을 팽창시킨 원동력이 된 셈이었다.


결국 고대 로마와 네덜란드, 미국 모두 열린 자세로 외부 자원을 흡수함으로써 부국강병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만약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면 그들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실제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는 칭기즈 칸의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만리장성을 쌓은 진나라는 중원을 통일한지 겨우 15년 만에 망했다. 또한 전시에 외적이 침입하는 통로라며 길을 닫아버렸던 조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일찍이 실학자 박제가 등은 "나라가 가난한 건 수레가 다니지 못한 까닭"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처럼 닫힌 성()에선 흥하기 어렵다. 성()의 존재 목적이 지키는 데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망하지 않고 성장을 도모하려면 적극적으로 세계화와 열린사회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즉, '개방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도 이제 폐쇄적인 성()의 울타리를 과감히 허물고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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