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의 도덕적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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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Dan Klein 202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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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서] Dan Klein_Moral Authority of `76.pdf
250년 전에 출판된 아담 스미스 (Adam Smith)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은 그 이후에 출판된 어떤 정치.경제 서적들보다 가장 영향력이 크다. 왜일까?
아담 스미스는 23세의 나이에 스코틀란드의 글라스고우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36세가 된 1759년에 도덕감성론(Theory of Moral Sentiments)을 출판하여 일약 유명한 교수가 되었다. 도덕감성론은 인간의 덕행, 즉 인간이 행동을 보다 도덕적으로 해야 할 책임을 논술한 저서이다. 스미스는 탁월한 윤리 학자로서 존경 받았다. 윤리 학자는 도덕적 가르침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스미스는 도덕적 권위자였다.
그리하여, 1776년에 국부론이 출판되었을 때는, 그것은 통상과 재정에 관한 흥미로운 논리일 뿐 아니라, 도덕적 권위자의 가르침이었다. 국부론이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은 그것이 도덕적 권위를 가진 아담 스미스의 저술이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드렸다.
그 결과는, 극적인 서구의 경제발전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국부론이 출판된 뒤 얼마 있지 않아서 부터 서구의 생활수준과 경제성장 속도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수 세기 동안 변화가 없던 일인 당 국내총생산은 마치 그의 저서가 동기였던 것 처럼, 십사년후 아담 스미스의 서거 즈음에, 놀랄 만큼 가속적으로 증가했다. 경제학자 디어드러 머클러스키(Deirdre McCloskey)는, 하키 스틱의 날에 해당하는 지난 250년간의 변화를 <위대한 풍요화, the Great Enrichment>라고 칭한다.
무엇이 국부론의 가르침인가? 아담 스미스는 어떤것에 도덕적 권위를 주었는가?
현대적 관점에서는 경제행위에 관한 아담 스미스의 도덕적 가르침은 이미 친숙해져있어서 그것의 새로웠음을 인식하기 힘들다. 인간 사회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한다. 사회의 일원이 “공공의 선보다, 나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하면 의혹을 일으킨다. 물론, 개인의 이익 추구가 사회에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고로, 우리는 어떤 개인의 이윤 추구가 사회에 해가 되는지 아닌 지를 알아야 한다.
아담 스미스의 가르침을 두가지의 도덕적 권위로 분석해보자.
첫째, 아담 스미스는 어떤 개인이 정직한 방법으로 이윤을 추구할 때, 그것은 사회적 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고로, 아담 스미스는 정직한 방법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의 도덕성을 인정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아담 스미스는 만일 당신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정직한 수입을 위해 열심히 일 한다면 하느님이 흡족히 여기실 것이라는 것이다. 당시 목사들이나 다른 저술가들도 같은 요지로 말했지만, 국부론은 이 발상을 특히 인상 깊게 가르쳤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정직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떳떳할 뿐만 아니라 미덕이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정직한 이윤 추구에 대한 도덕적 권위 부여는 경제활동에 활력을 주었다.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할 뿐 아니라, 새로운 물건이나, 새로운 방법을 물건을 만드는 등, 혁신적인 방법으로 이윤을 추구하게 되었다. 정직한 이윤 추구가 도덕적으로 정당화 되니, 사람들이 대담하게 전통적인 일의 틀에서 벗어나서 정직한 방법이라면 어떤 식이든지 개혁할 의지가 생겼다. 정직한 이윤에 대한 도덕적 승인이 <위대한 풍요화>에 필수적인 혁신을 활성화 시켰다.
둘째, 아담 스미스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사람들이 정직한 방법으로 각자의 이윤을 자기 식으로 추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는 도덕적 권위를 부여했다. 이것은 재산권과 연관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기존의 정부의 여러 제한들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개인의 자유 원칙은 추정적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실로, 아담 스미스는 자유주의 원칙에 예외를 두었다.
아담 스미스의 도덕적 용인은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이라는 표현과 관계가 있다. 국부론에서 아담 스미스는 시장에서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은, 의도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아담 스미스는 어떤 사람이 어디에 투자를 할까 생각할 때, “그는 공공의 이익을 의도하지도 않고, 얼마나 많이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는지 알지도 못한다”라고 했다. 그러면, 아담 스미스는 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공공의 선을 증진한다고 했을까?
정직한 수입은 사기, 허위, 협박, 강압을 통한 것이 아니다. 정당한 수입은 어느 물건, 한 예로 진공 소제기,를 살 때 고객들이 내야 할 돈 보다 사는 물건의 가치가 크다는 생각에서 고객이 자발적으로 준 것이다. 이러한 교환은 쌍방 간에 득이 되는 상생이다. 진공 소제기 사업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질이나 가격에서 소비자가 더 득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물건을 내 놓아야 한다. 만일 경쟁 기업이 더 가치 있는 물건을 내놓으면 소비자는 경쟁 기업에서 물건을 사기 마련이다. 고로, 기업들은 소비자를 위하지 않고는 돈을 벌 수가 없다. 소비자는 사회의 일부이니, 정직한 수입이란 사회에의 기여를 통해서 생기는 것이다.
기업인 또한 사회의 일부이다. 도덕정서론에서 아담 스미스는 인간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설파했다. 기업인도 사회의 일부이니, 기업인이 정직하게 자기 이윤을 추구하는 것도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다.
만일 사회의 각 부분이 자신들을 잘 보살핀다면, 사회 전체도 잘 보살피게 된다. 인간 각 개인은 자신의 영역에서 가장 잘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 시킬 수 있기에, 자기 자신을 잘 보살필 도덕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얼마나 잘 공익을 증진할 수 있는지는 개인의 능력에 달려있고 그 능력은 지식에 달려있다. 도덕정서론에서 아담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사람은 무엇 보다도 자신을 보살피도록 생겼다는 데에 아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공익을 위함이란 좋은 진공 소제기를 제조.판매 한 다던지, 공장에서 성실하게 일함 이리라. 진공 소제기 공장을 열면 노동자의 수요를 증가시켜서 임금을 올리게 된다. 정직한 수입을 얻고자 하는 노력이 공익을 승진시키는 좋은 방법이다.
만일, 가능성을 포함한, 사회 전체를 신이 설계하고 창조했다면, 그 사회에 포함된 인간들은 신의 보이지 않는 손 (시장의 조짐 내지 신호, 즉 시장 가격, 손익, 등)에 이끌려 행동하게 된다. 이렇게 이해하면 보이지 않는 손의 신의 손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시장의 조짐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원천적인 조짐은 도덕적 권위이다. 신의 섭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지상에 있는 신의 대변자들은 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인간은, 1766년의 사람들을 포함한, 특정한 사람들을 도덕적 권위자로서 기대내지 의지하게 되어있다. 그들은 아직도 살고 있다.
댄 클라인 (Dan Klein)은 죠지 메이슨 (George Mason) 대학에서 경제학교수이고, 동 대학의 머카터스 센터 (Mercatus Center)에서 진(JIN) 석좌교수로 아담 스미스 연구를 책임지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The Spirit of Smithian Laws, Central Notions of Smithian Liberalism, Smithian Morals 와 Smithian Essays 가 있다.
*위 내용은 칼럼을 번역한 내용임
The Moral Authority of '76
by Daniel B. Klein
번역: 최영백 세인트존스대학교(St. John’s University)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