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젠슨황의 끈질긴 도전 정신, 위기 극복하고 혁신의 길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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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최현조 2025-12-05 , 마켓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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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무너뜨리기 가장 어려운 CEO입니다.”
사업을 하며 여러 번의 실패를 겪은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한 말이다. 파산 위기와 연이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1999년 엔비디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GPU인 GeForce 256을 개발했다.
처음부터 그의 사업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개인 PC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3D 그래픽 기술의 가능성을 본 젠슨 황과 동료들은 당시 블루오션이던 GPU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프로젝트 실패와 자금난, 대기업의 시장 진입 등 여러 변수로 인해 난항을 겪었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그는 자신과 회사를 믿고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투자를 받기 위한 노력도 서슴지 않았다. PC용 그래픽 카드인 RIVA 128을 발표했을 당시, 엔비디아에는 직원들의 한 달 치 금액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남다른 그의 추진력으로 인해 RIVA 128은 출시 4개월 만에 100만 대가 팔리며 엔비디아에 410만 달러의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2000년대 초반, 한 통의 전화가 엔비디아에 전환점을 가져왔다. 스탠퍼드 대학 연구원에게 온 전화로, 엔비디아의 GPU가 컴퓨터의 단순 계산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계기로 엔비디아는 게임 그래픽에만 머물렀던 GPU를 연산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CUDA를 개발하게 되었다.
CUDA는 GPU의 처리 능력을 기반으로 복잡한 계산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게 하는 기술이다. 이러한 혁신은 인공 지능, 과학 연구, 암호 화폐 채굴 등 산업 전반과 실생활에 활용되어 폭발적인 수요를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엔비디아는 세계 시가총액 1위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RIVA 128의 대성공 1년여 전, 엔비디아의 잠재력을 알아본 유명 기업가가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바로 삼성을 굴지의 기업으로 만든 이건희였다. 편지에는 “한국을 초고속 인터넷으로 연결하고, 비디오 게임으로 한국의 기술을 발전시키고, 세계 최초로 비디오 게임 올림픽을 열고 싶다. 이를 위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적혀있었다. 이건희가 젠슨 황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젠슨 황의 기업가 정신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현재 한국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력과 생산능력에서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 중심에는 삼성전자가 있다. 삼성이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기 전, 내부에서는 반도체의 초기 비용이 높다는 등의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반도체가 미래 성장 동력임을 확신한 이건희는 1974년 개인 자금을 투자해 자금난에 빠진 한국 반도체의 지분 50%를 인수한다.
이후 1983년 삼성전자는 컴퓨터 전체 시스템의 효율성과 반응 속도를 높여주는 주요 메모리 반도체인 64킬로바이트 D램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일본이 앞서고 있었는데, 선진국의 기술 이전 없이 자체 개발한 D램으로 인해 세계 시장 진출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건희에게 위기는 끊임없이 찾아왔다. 당시 삼성전자는 저렴한 인건비로 수출 경쟁력을 갖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노동 운동 이후 인건비가 상승하고 일본의 기술의 압박까지 받는 어려움에 직면하자 “양보다 질을 향해라”는 경영 철학을 밝혔다. 불량률을 낮추기 위해 불량이 나온 생산라인이 해결될 때까지 생산을 멈추고, 500억 원어치의 애니콜을 임직원 앞에서 태우는 등 그 정신을 공고히 하였다. 이후 체계적인 품질 관리, 경영 방식의 개선, 인재 양성, 교육 혁신 등 다방면의 노력으로 시장 경쟁력을 높였다.
이건희와 젠슨 황은 끈질긴 도전 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의 길을 개척하였다. 그들의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과 과감한 실천, 변화의 기회를 포착하는 용기는 산업과 시대를 초월하여 기업을 각 분야의 선두로 이끌었다. 오늘날 한국 경제의 성장과 지속 가능성 또한 이러한 기업가 정신에 힘입어 왔다. 저성장이 구조화된 지금, 기업가 정신은 정부와 전 세대를 막론하고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최현조 자유기업원 인턴연구원